초혜가 진소정을 도와 강시들의 사체를 파묻고 주변을 정리하는데는 반시진 가까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주변을 정리한 설지와 일행들이 서둘러서 다시 갈길을 재촉할 무렵 용아를 등에 태운 비아는 이미 무당산의 초입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빗살 같은 속도였다. 호북성과 섬서성을 가로 지르는 고산준령을 이정표 삼아 긴 그림자를 남기며 비행한 끝에 준마를 타고도 쉴새 없이 사흘이나 달려야 할 거리를 불과 반시진만에 돌파해버린 비아의 경이적인 비행 속도는 절정에 올라 있는 고수라 해도 쉽게 따라 잡지 못할 속도였다.

무당산의 초입에 당도한 비아가 용아의 지시를 받으며 비행 속도를 늦추고 있을 그 무렵, 오늘도 중원 도교의 중심부인 무당산의 커다란 대연무장에서는 가벼운 백색 무복 차림을 한 나이 어린 무당파의 제자들이 태극권을 수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거친 숨소리와 커다란 기합성, 그리고 그 기합을 터트리고 있는 소년들이 흘린 땀방울들로 인해 연무장은 후끈한 열기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늘 예외는 있는 법. 연무장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자리한 커다란 전각의 지붕이 마련해준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는 도명을 받은 정식 무당 제자들만 입을 수 있는 백색의 도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은 나이 어린 도사 하나가 정좌를 한 채 한 손을 턱에 괴고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연무장을 말없이 지켜 보고 있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가려주는 그늘 아래에 편안하게 앉아서도 뭐가 불만인지 십여세 정도로 보이는 소년 도사의 인상은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무량수불!"

그때였다. 뚱한 표정으로 연무장을 내려다 보던 소년 도사의 귀에 나직하지만 중후하고 청량한 도호 소리가 파고 들었다. 듣는 순간 심신이 깨끗해지는 것 같은 느낌 마저 들게 하는 도호성의 주인공은 바로 당대 무당파의 장문인인 현허 도장이었다. 뚱한 표정을 한 채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소년 도사를 발견한 현허 도장의 입가에는 훈훈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현허 도장의 곁에는 이제는 중년으로 접어 들고 있는 청진 도사를 비롯해서 몇명의 도사들이 수행원 자격으로 따르고 있었다.

속으로는 연신 무언가를 투덜거리면서 그늘 아래에 편안하게 앉아 있던 소년 도사는 자신의 휴식 아닌 휴식을 방해하는 청량한 도호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려 도호성의 임자를 확인하고는 마지 못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더없이 태평한 목소리로 도호를 내뱉으며 무당 장문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무량수불! 장문 사형 오셨어요."
"허허허. 그래. 그런데 우리 귀여운 사제가 또 무슨 사고를 쳤길래 사숙께서 이리로 내려 보냈느냐"

놀라운 소리였다. 무당파의 장문인인 현허라고 한다면 무당파 뿐만 아니라 당금 중원 무림 전체를 통털어서도 그 항렬이 높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런 무당 장문인 현허의 입에서 사제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그렇다면 현허 도장의 눈 앞에서 부루퉁한 표정을 짓고 서있는 소년 도사가 현허 도장의 사제라는 소리가 아닌가? 그랬다. 나이 어린 무당파의 오대 제자들이 땀 흘리며 수련하는 장면을 지켜 보고 앉아 있던 소년 도사는 바로 현진이라는 도명을 가지고 있는 일성 도장의 제자였다.

무당파의 제자들에게는 소사숙이라고 불리고 있는 열두살 나이의 소년 도사는 약 사년전 쯤 귀양의 한 객잔 근처에서 구걸하던 중에 우연히 객잔을 찾은 일성 도장의 눈에 띄어 제자가 되는 기연을 얻게 된 현진이었다. 그 당시 한 눈에 현진의 법상치 않은 자질을 발견한 일성 도장은 그 길로 소년에게 현진이라는 도명을 붙여 주고는 제자로 받아 들였다. 그리고 성수의가에서의 오랜 식객 생활을 청산하고 서둘러서 무당파로 복귀한 후 오늘 까지 현진을 가리키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는 중이었다.

문일지십, 천외천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타고난 자질을 가진 현진 도사는 일성 도장의 제자가 된 후 자신의 자질을 유감 없이 발휘하기 시작하여 이년만에 태극혜검을 비롯한 무당파에서 전해지는 대부분의 무공을 섭렵해 버리는 천재적인 자질을 보여 일성 도장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아직은 지닌 바 내력이 일천하여 완성된 무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사람들은 무당파의 새로운 신성 현진 도사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후일의 일이고 지금 현진 도사는 자소궁의 제단에 차려진 음식을 몰래 훔쳐 먹다가 일성 도장에게 현장을 들킨 후 그 벌로 오대 제자들의 수련을 봐주라는 엄명(?)을 받고 대연무장으로 내려와 있던 중이었다. 원시천존에게 바쳐진 제물이라고는 하나 어차피 내버려두면 죄다 상해서 내다 버릴 음식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음식 중에서 조금을 그것도 아주 조금을 자신의 입속으로 옮겼다고 해서 자신에게 오대 제자들의 수련을 봐주라는 엄명을 내린 사부에게 잔뜩 심통이 나 있던 현진이었다. 당연히 그런 현진의 입에서 장문인이라고는 하나 자신에게는 사형인 현허 도장에게 말이 곱게 나올리는 만무했다.


"제단에 올려진 떡 하나 집어 먹었더니 사부님이 저기 풋내나는 얘들 무공을 봐주라고 해서요."
"오! 그랬단 말이지. 사숙께서 오대 제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져 주시는구나. 허허허"
"아이 참! 사형!"
"어허! 이 놈아, 비록 이 사형이 늙은 몸이기는 하지만 아직 귀는 먹지 않았다."
"아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허허허. 그래 사숙께서 오대 제자들의 무공을 봐주라고 했다면서 연무장에 내려 가지 않고 왜 여기 있는게냐?"
"아니. 재들 숫자가 얼마인데 내가 저 얘들 무공을 어떻게 다 봐줘요?"
"허허허. 낸들 알곘느냐. 사제가 재량껏 해야겠지"
"아휴! 그러실줄 알았어요. 그만 볼일 보세요. 저는 좀더 고민해 볼래요"

그러면서 다시 털썩 제자리에 주저 앉는 현진이었다. 그런 현진 도사의 눈으로 고만고만한 꼬맹이들이 보기에도 어슬픈 동작으로 태극권을 수련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 모습을 바라 보던 현진 도사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 무렵 갑자기 머리 위 파란 천공에서 커다란 새의 울음 소리가 들려 왔다. 날카로운 고성의 그 울음 소리는 무당산 전역으로 고루 퍼져 나가며 도사들의 이목을 순식간에 집중시켰다.

"삐이이익!"

날카로운 고성이 잠들어 있는 무당산을 깨운 후 대연무장의 상공 위로 하나의 작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나타났다 싶은 순간 어느 사이엔가 무당파의 오대 제자들이 모여 있는 대연무장으로 내려 앉고 있었다. 용아를 등에 태운 비아였다. 용아의 지시대로 방향을 잡아 무당산에 도착한 비아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고 긴 울음 소리를 토해내어 자신의 도착을 알린 후 먼지를 가득 피워 올리는 성공적인 착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무당파의 장문인을 비롯한 장내의 모든 도사들은 법상치 않은 매의 등장에 호기심을 느끼며 비아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도사들 중에서 청진 도사가 가장 먼저 반응하며 입을 열었다.

"흠! 저 녀석은 성수신녀의 애조인 비아 같은데..."
"성수신녀? 비아?"
"예! 소사숙.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성수의가에 있어야 할 비아가 갑자기 무당산에는 무슨 일이지? 장문인 제가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그러시게. 아무래도 서찰을 가지고 온 듯 싶으이"

현허 도장의 허락을 얻은 청진 도사가 연무장으로 내려 가는 돌계단으로 향하는 그 순간 비아도 청진을 발견하고 접었던 날개를 다시 펴고는 저공 비행으로 청진에게 다가 왔다. 청진 도사는 날렵하게 생긴 매가 가까이 다가 오는 순간 그 매가 확실히 비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던 용아의 작은 머리가 비아의 머리 뒤로 언뜻 보이는 걸 확인하고 나서는 망설이지 않고 비아를 향해 다가 갔다.

오랜만의 만남이 반가웠던지 청진 도사의 발 아래에 내려 선 비아가 청진 도사의 다리를 부리로 몇번 부비더니 자신의 발에 묶인 가죽 주머니를 부리로 가리켰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청진 도사가 비아의 뜻을 이해하고 곧바로 비아의 다리에 단단히 묶여 있는 가죽 주머니를 풀어내고는 그 내용물을 확인했다. 가죽 주머니 안에 든 것은 현허 도장의 예상대로 제법 두툼한 서찰이었다.

서찰을 깨내 든 청진 도사는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서찰을 장문인에게 건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서찰을 받아 든 현허 도장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서찰을 다 읽고 나서는 침중한 표정으로 서찰을 청진 도사에게 건네주었다. 읽어 보라는 의미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서찰을 받아 든 청진 도사의 안색도 서찰을 읽어 내려갈수록 점점 침중해지더니 서찰을 다 읽고 나서는 현허 도장과 마찬가지로 잔뜩 굳은 표정이 되었다.

"자네들이 나가서 성수신녀 일행을 모셔 와야겠네. 일이 참 공교롭구만..."
"예. 그리하겠습니다. 허면 구파일방의 이번 회합은 어찌하실 생각이신지?"
"그야 예정대로 진행해야 하지 않겠나. 성수신녀와도 무관치 않을 것 같구만"
"예. 알겠습니다. 그럼 사제들과 함께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리하시게"

현허 도장과 청진 도사가 설지가 보낸 서찰을 읽고난 후 심각한 표정으로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고 있을 때 현진 도사는 그런 심각한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표정을 한 채 자신의 눈 앞으로 날아든 비아를 요리조리 뜯어 보기에 정신 없었다. 그리고 그런 현진 도사가 사람들의 예상을 깬 어이없는 말을 내뱉는 바람에 심각했던 장내의 상황은 한편의 우스깡스러운 경극 무대장으로 돌변해 버렸다.

"햐! 고녀석, 구워 먹으면 무척 맛있겠다. 쩝"

현진 도사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해 버렸던 것이다. 그 순간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굴리며 청진과 현허를 살펴 보고 있던 비아가 날카로운 소성을 뱉으며 누가 말릴새도 없이 현진 도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진 도사가 누구던가? 무당 제일의 기재로 내일의 무당파를 책임질 동량이 아니던가? 그런 현진 도사가 방심했다고는 하나 고작 매의 공격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장내의 누구도 믿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제운종을 펼치며 날아드는 비아의 첫번째 공격을 피하는 현진 도사의 모습에서 사람들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어진 비아의 두번째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한 현진 도사는 비아에게 뒤를 잡혔고 결국 비아의 날카로운 부리에 자신의 작은 엉덩이를 내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때 부터 장내는 쫓고 쫓기는 일수일인에 의해 경극 무대로 변해버렸다.

"아악! 으윽! 미안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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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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