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북성 균현에는 사시사철 뿌연 안개에 산봉우리가 가려져 있어 온전한 제 모습을 반쯤 감추고 있는 신비로운 명산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이 명산은 태화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무당산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중원 오악으로 불리우는 중앙의 숭산, 동쪽의 태산, 남쪽의 형산, 북쪽의 항산, 그리고 서쪽의 화산에 비견될 만큼 산세가 수려하다. 그리고 멀리서 바라보면 희미하게 나마 보이는 산의 형세가 향로의 모습을 무척 많이 닮아 있기도 하다.

더불어 삼풍진인 장삼봉이 소림에서 파문 당한 후 천하를 유람하던 중 무당산에 이르러 영기가 짙게 서린 세 봉우리를 발견하고 그 모습에서 마침내 도를 깨달아 문파 하나를 개파하게 되는데 그 문파의 이름이 바로 무당산에 자리한 무당파였다. 그리고 지금 괴괴하게 느껴지는 정적 속에 휘감긴 무당산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어 버리며 거침없이 오르는 일행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일행의 모습이 기이했다.

당나귀 한마리가 맨 앞에서 저 혼자 털레털레 산을 오르고 있었으며 그 뒤로는 잡티 하나 없는 순백의 백마 두마리가 눈부신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두 여인에게 고삐를 잡힌채 따르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는 앞선 두 여인 보다 더욱 화사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여인 하나가 터벅터벅 산을 오르고 있었으며 마치 그 여인을 호위라도 하듯이 정갈한 도복 차림의 검수 십여명이 그 여인의 좌우를 따르며 함께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행들의 꼬리에는 밧줄에 꽁꽁 묶인 두명의 늙은이가 가쁜 숨을 연신 들이키며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바로 설지 일행들이었다.

"우와! 이거 왜 이리 멀어. 헥헥"
"무량수불!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오르시면 곧 해검지가 보일겁니다,"
"흥! 아까도 다 왔다고 그러셨잖아요?"
"허허! 무량수불! 이번에는 진짜 입니다. 한식경 정도만 더 오르시면 됩니다"
"정말이죠? 한식경만 더 올라가면 되는거죠?"
"예. 그렇습니다. 무량수불!"
"아우! 발 아퍼"

연신 투덜거리는 설지와 청진 도사의 이런 대화는 무당산을 오르는 내내 반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런 대화를 들으면서 골치가 지끈거리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귀혈쌍사였다. 자신들은 내공을 금제당해 오로지 근력만으로 험한 무당산을 오르고 있었기에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성수신녀라는 어린 계집이 별 어려움 없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무당산을 오르면서도 산을 올라오는 내내 자신들도 하지 않는 불평을 계속 터트리자 입속에서 연신 욕설이 튀어 나올 지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슬퍼런 무당십이검에게 끌려 가면서 욕성을 퍼부을 만큼의 담량이 귀혈쌍사에겐 없었다. 그저 꾹 참고 뒤를 따르는 것 밖에는...

"무량수불! 공녀님. 바로 저기가 우리 무당의 해검지 입니다."
"앗! 그래요. 청청언니, 혜아, 해검지래, 해검지"

지루한 산행이 끝나는 것이 반가웠던 설지가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앞서 가던 초혜와 진소청도 걸음을 멈추었다. 작은 연못과 수령이 수백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고송 한그루로 이루어진 해검지 앞에 일단의 무인들이 입산의 절차를 밟기 위해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발견한 설지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청진 도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보표 아저씨! 저 사람들을 보니 전부 무인들 같은데 평소에도 이렇게 많은 무인들이 오가나요?"
"무량수불! 아닙니다. 금번 저희 무당에서 구파일방의 대회합이 있습니다. 하여 방문객들이 이렇듯 많은 것이지요"
"흠, 구파일방의 대회합이라..."
"예. 공녀님. 무당산에 오르시면 사숙조님께서 상세하게 설명해 드릴 것 입니다."
"그래요? 그런데 우리도 차례를 기다려야 될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그냥 가시지요."
"흠, 아냐, 아냐! 그래도 차례를 지켜야 되는데... 음, 음, 아! 영패, 헤헤, 청청언니, 혜아 영패 꺼내"

차례를 기다릴 것 처럼 이야기 하던 설지가 이내 좋은 생각이라는 듯 성수령패를 떠올리고는 가방 속의 설아에게 영패를 꺼내게 했다. 설아의 귀여운 머리와 함께 가방 밖으로 불쑥 튀어 나온 영패를 손에 받아든 설지가 영패를 앞으로 척 내보이며 제일 앞에서 해검지를 통과했고 뒤 이어서 진소청과 초혜도 해검지를 지키는 무당 도사에게 영패를 내보이며 해검지를 통과했다.

한편 그 순간 해검지를 지키고 있던 무당 제자에게는 청진 도사의 근엄한 전음이 고막을 자극하고 있었다.
-성수신녀 일행이시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조용히 본산에 도착을 알리거라.

설지 일행이 내보이는 영패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무당 제자는 갑자기 이 같은 청진 도사의 전음이 들려 오자 화들짝 놀라서 전음이 들려온 곳으로 짐작되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자신의 예상대로 전음을 보내온 주인공과 더불어 십여명의 무당 검수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무당십이검이었다.


"무량수불! 제자 은진이 무당십이검 사형들을 뵙습니다"

낭랑한 도호 소리와 함께 무당십이검이라는 소리가 해검지를 지키는 도사의 입에서 흘러 나오자 장내는 갑작스럽게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무당의 무력을 대표하는 무당십이검이 한자리에 나타나자 입산을 기다리고 있던 무인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분분히 무당십이검을 향해 포권하며 눈을 맞추기 위해서 노력했다. 다행히도 장내에는 무당십이검이 걸음을 멈추어서 예를 갖추어야 할 명숙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무당십이검은 가볍게 포권으로 대응하고 서둘러 설지의 뒤를 따랐다. 꼬리에 귀혈쌍사를 매달고서...

 

한편 해검지에 자리하고 있던 무인들은 무당십이검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는 것에 흥분하여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탄성을 토해내면서 사라지는 무당십이검의 뒷모습을 경외의 눈으로 쫓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무인들의 눈에 이상한 장면이 포착되었다. 그것은 무당십이검이 마치 앞서 걷는 세명의 여인들을 호위라도 하는 듯이 사방을 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몇몇 무인들이 고개를 갸우뚱 거릴 때 문득 한 사람이 해검지를 지키는 무당 도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보시오, 대관절 저 앞의 여인들이 누구기에 무당십이검이 저렇듯 따르는게요?"
"무량수불! 도우들 께서도 잘 아시는 분들이십니다."
"엉? 우리가 아는 분이라고? 그게 누구요?"
"예. 앞서 올라가신 세분 공녀님들은 성수의가의 성수신녀 일행들이십니다"

"호! 성수신녀 일행들이라. 성수신녀 일행이라면 성수령패의 주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요?"
"무량수불! 예. 그렇습니다. 저도 성수신녀 일행은 오늘 처음 보는지라 더이상의 자세한 답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허, 이보게. 자네 보았나. 난 월궁의 항아들이 하강하신줄 알았네. 그려"
"그러게. 허허, 성수신녀의 미색이 보통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더니 이제 보니 그 소문이 오히려 부족한 듯 싶으이"
"내 말이 그 말이네. 이거 오늘 눈이 호강하는구먼. 허허허"

설지 일행과 무당십이검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으며 이렇게 주고 받는 무인들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해검지를 지난 설지 일행은 드디어 진무관에 딸린 대연무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당파의 나이 어린 오대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무당파의 기본 권법인 태극권을 수련하는 대연무장은 오늘도 오대 제자들이 흘린 구슬땀으로 촉촉히 젖어 있었다. 하지만 설지 일행이 대연무장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때마침 휴식 시간이었던 듯 오대 제자들은 대연무장 여기 저기에 나누어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었다.

"이야! 꼬마 도사들이 왜 이렇게 많아"

"허허, 무량수불! 입산한지 얼마되지 않은 오대 제자들입니다."
"흠, 그래요?. 그런데 저기 걸어 오는 쟤도 오대 제자예요?"
"누구를... 아! 저 분은 일전에 말씀드렸던 소사숙이십니다."
"오! 쟤가 그때 그 녀석이구나. 호호, 그 녀석 귀엽게 컸네"
"설지 언니. 저 귀여운 녀석이 그때 할아버지께서 들고 튄 그 녀석이라고?"
"호호호, 그래. 그런가 봐"

초혜의 말대로 자신들을 향해 다가 오는 있는 꼬마 도사는 일성 도장이 들고 튀었다는 바로 그 현진 도사였다. 한편 현진 도사는 무당십이검과 함께 대연무장에 나타난 눈이 튀어 나올만큼 예쁜 누나들의 정체가 자뭇 궁금하여 설지 일행들을 향해 다가 오던 중에 갑작스럽게 머리 속을 스치는 왠지 모를 불길한 생각과 함께 오한이 드는 것을 깨닫고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분명 이럴 때는 무조건 발길을 돌려야 했겠지만 현진 도사는 그렇지 못했다. 여인들의 정체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면의 경고를 무시한 댓가는 이렇게 나타나고 있었다.

 

"호호호. 요 녀석이 그때 그 꼬맹이구나. 너 몇살이니?"
"우와! 설지 언니, 이 꼬마 도사 무척 귀여워"

이렇게 말하면서 설지와 초혜가 현진 도사의 양볼을 좌우로 늘려 보거나 엉덩이를 톡톡 두들겼던 것이다. 거기다 평소 조용하던 진소청 마저 함께 합류하여 현진 도사의 머리에 씌어진 도관을 벗겨내고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마치 어린 동생을 오랜만에 만나기라도 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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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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