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그러니까 여기가 무당파의 조사전이란 말이지?"
"무량수불!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설지 일행의 무당파 탐사 여행에 길 안내자가 되어 버린 현진 도사는 속으로 한숨을 폭폭 내쉬며 무당파의 중지 중의 중지라고 할 수 있는 조사전의 문을 열고 설지 일행을 안으로 안내했다. 조사전에 오르는 동안 둘러 보았던 무당파의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설지 일행도 조사전을 둘러 보고 나서는 반드시 감탄을 터트리리라고 짐작하면서... 하지만 현진 도사의 이런 생각은 이번에도 적중하지 않았다. 코를 막고 조사전 내부를 휘휘 둘러 보던 설지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햐! 듣던 것과 달리 먼지 말고는 별로 볼게 없네."
"흠, 무량수불!"
"응? 꼬맹이 도사, 방금 흠이라고 했어? 그거 지금 무지하게 마음에 안든다, 뭐 이런 뜻의 흠인거야? 그런거야?"
"무,무량수불! 아,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설지의 정확한 지적에 내심 뜨끔해진 현진 도사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부정을 해보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설지의 눈이 초롱초롱한 빛을 발하는가 싶더니 장난끼가 다분한 미소가 입가에 슬쩍 자리 잡았던 것이다.

"오호라! 그리 정색하는 걸 보니 내 짐작이 맞았나 보네. 이거 섭섭한데..."
"아, 아닙니다. 무량수불! 무량수불!"
"어라! 이제는 도호를 두번씩이나 뱉을 정도로 마음에 안든다 이 말이지?"
"흡! 아, 아니라니까요. 씨!"
"호호호, 그래, 그래, 이제야 비로소 꼬맹이 같구나."
"호호호"
"호호호"

무당파의 소사숙 현진이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진땀을 흘리는 모습을 바라 본 여인들의 짤랑짤랑한 교소성이 터져 나오는 이 곳은 다름아닌 무당파의 조사전이었다. 한편 구파일방의 무인들 중에서 무당파가 초행인 일부 무인들 몇몇은 흔치 않을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하기 위해 서로의 뜻을 모아서 도문의 중심이랄 수 있는 무당파를 둘러 볼 수 있게 정식으로 요청했었었다. 

타문파의 구석 구석을 둘러 본다는 것은 무가의 입장에서 볼 때 쉽게 허락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이런 요청을 했었던 무인들도 자신들의 요청이 받아 들여 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헌데 거절 당할 것을 각오하고 요청했던 것이 어쩐 일인지 흔쾌히 받아 들여져 지금 무당파 도사의 안내를 받으며 이십여명에 달하는 구파일방의 무인들이 무당파의 구석 구석을 돌아 보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중지라고 할 수 있는 곳들은 멀리 떨어져서 외관만 바라 보아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구파일방의 무인들은 도문의 그윽한 향취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무당파 도사의 안내를 받으며 무당파를 구성하는 전각들을 비롯한 주요 시설들 여러 곳을 둘러 보았던 이십여명에 달하는 구파일방의 무인들은 잠시전에 조사전과 조금 떨어진 곳에 당도해서 자신들을 안내해온 무당파 도사로 부터 조사전과 얽힌 선대의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귀를 기울여 가며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조사전 내에서 도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인들의 웃음 소리가 흘러 나오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채 서로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자신들을 안내해 온 무당파의 도사에게로 시선을 주며 웃음 소리의 정체에 대해서 무언의 질문을 맹렬히 날리기 시작했다. 도문의 중심이랄 수 있는 무당파의 중지에서 미처 예상치 못했던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 온다면 누구라고 하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강한 의미를 포함하고서...

한편 이십여명의 무인들이 거의 동시에 날려 보낸 실체가 없는 날카로운 칼날에 담긴 무언의 질문을 갑작스럽게 받은 무당파의 도사는 자신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처하자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가 이내 신색을 추스리고 장중하게 도호를 발하며 저간의 사정을 간략하게 중인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량수불! 그러니까 지금 저희 무당파의 조사전 내에는 아마도 소사숙의 안내를 받은 신녀 일행 께서 들어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응? 신녀?"
"신녀라니? 이게 무슨 말이야?"
"신녀라고? 자네 신녀가 누군줄 아나?"
"글쎄, 신녀라면... 혹시 마교의 성녀를 가리키는 말인가?"
"예끼, 이 사람아, 무당파의 소사숙 께서 마교의 성녀를 안내하고 있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혹시, 신녀라면 그 분을 말씀하시는게 아닐까요?"

신녀라는 호칭을 들은 중인들이 중구난방으로 소란스럽게 떠들며 신녀의 정체에 대해서 서로에게 질문을 퍼부어대자 장내는 삽시간에 장터를 방불케 하는 시끌벅적함으로 채워져 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 보고 있던 무당파의 도사는 가볍게 긴 한숨을 한번 불어낸 후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제법 큰 목소리로 도호를 발해 중인들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향하게 만들었다.


"무량수불! 잠시 진정들 하시지요. 제가 상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시구려. 그래 신녀가 대관절 누구인게요. 정말 마교의 성녀인게요?"
"무량수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신녀라 함은 성수의가의 성수신녀를 일컫는 말 입니다."
"호! 성수신녀!"
"성수신녀라고?"
"오! 의술이 신의 경지에 달했다고 소문이 자자한 그 성수신녀!"
"무량수불! 예. 그렇습니다. 신녀께서는 저희 무당파에 커다란 은덕을 베푸신 귀빈이십니다. 하여 장문인 께서 직접 무당파의 모든 곳을 가리지 말고 안내해 드리라고 소사숙께 명 하셨습니다"

무당파 도사의 입으로 부터 무당파에 커다란 은덕을 베푼 귀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장내는 아까 보다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십년전 설지로 부터 많은 것을 얻었던 소림과 무당, 그리고 개방과 녹림에서는 자신들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에 대해서 설지와 연관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철저히 함구로 일관했던 것이다. 자연히 세인들에게 흘러 나간 설지와 관련된 소문은 신의 경지에 달했다는 의술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러니 자연히 성수신녀가 무당파에 베푼 은덕에 대해서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무인들이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행을 안내하고 있는 무당파의 도사 역시 자파와 설지가 어떤 식으로 연관되었는지 그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있었다. 단지 무당파가 성수신녀로 부터 큰 은덕을 입었으며 무당 검선이라는 별호로 강호에 위명이 자자한 무당파의 큰 어른 일성 도장과는 조손 사이 처럼 가깝다는 것이 알고 있는 전부였다. 당연히 중인들의 의문에 답하기 위해 무당파 도사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내용은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무량수불! 저도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있습니다. 단지 저희 무당파가 신녀로 부터 큰 은덕을 입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무당파의 도사가 이렇게 이야기 하자 중인들은 더 이상 캐물을 수 없었다. 자파의 비밀을 외부인에게 선뜻 알려 주는 문파는 하늘 아래 단 한 곳도 없었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하지만 자리한 무인들 대부분의 눈에 깊게 어린 짙은 호기심만은 무당파의 도사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한편 조사전의 바깥에서 자신들의 정체를 놓고 중인들이 의견을 분분히 나누던 그 순간, 한바탕 웃을을 터트렸던 설지 일행은 현진 도사를 앞세우고 조사전의 뒷문을 거쳐 장서각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길을 잡고 있었다. 

그렇게 현진 도사가 설지 일행에게 시달리기를 사흘째 되던 날, 드디어 현진 도사는 무당파의 안내역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며 반색했다. 그 날 아침 부터 구파일방의 대회합이 태청관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현진 도사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부인 일성도장이 설지 일행을 태청관으로 데리고 오라는 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무량수불! 신녀님과 사저들 께서는 채비를 갖추시지요"

거처에서 차를 나누어 마시며 오늘은 또 어떻게 현진 도사를 골려 먹을까 궁리하던 세 여인들은 거처 바깥에서 나직한 현진 도사의 음성이 들려 오자 입가에 배시시 미소를 배어 물며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 가까이 앉아 있던 초혜가 서둘러 일어나서 조용히 문을 열자 거기에는 지난 사흘 동안 자신들에게 시달렸던 현진 도사가 도관을 갗춘 귀여운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현진 사제 왔구나. 그런데 무슨 말이야? 채비를 갖추라니?"
"예, 초혜 사저. 사부님께서 신녀님 일행을 태청관으로 인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응? 태청관으로? 아니 왜?"
"예. 오늘 부터 구파일방의 대회합이 시작되었는데 사부님께서 세분도 참석하시라 하셨습니다"

현진 도사의 입에서 대회합이라는 말이 나오자 가장 먼저 반색한 것은 설지였다. 드디어 궁금해 했던 마화의 실체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손목에 채워진 성수지환을 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난 설지가 초혜와 진소청을 돌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장 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갑자기 설지가 앞장 서서 걸어가 버리자 당혹해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현진 도사였다.

지난 사흘 동안 세 여인들의 무당파 탐사에 동행했었던 현진 도사는 출발에 앞서 세 여인들이 채비를 갖추고 거처에서 나오는데 최소한 일각 이상을 기다렸던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채비를 갖추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휑하니 거처를 박차고 움직여 버리니 말문이 막혀 버렸던 것이다. 참으로 여자란 알다가도 모를 존재라는 생각을 하며 현진 도사는 서둘러 앞장 서 걸어가는 설지의 곁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 그렇게 일행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기를 잠시 현진 도사와 설지 일행은 태청관의 입구에 별 탈 없이 무사히(?) 당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태청관은 어제의 태청관과 그 분위기 부터 달랐다. 태청관의 주변을 구파일방의 무인들이 삼엄한 기세를 피워 올리며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혹여라도 벌어질지 모를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지만 고즈넉한 도문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풍경이기도 했다.

설지 일행이 태청관으로 다가 가자 마중 나와 있던 청진 도사가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 후 가볍게 주변을 일별하고 태청관 안으로 설지 일행을 안내했다. 그런데 청진 도사의 안내를 받아 설지가 구파일방의 대회합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 가자 여태껏 잠잠하기만 했던 성수지환이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뜻밖의 상황에 잠시 성수지환을 만져 보며 걸음을 멈춰 세웠던 설지가 성수지한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 후 다시 몇걸음을 옮기자 이내 성수지환으로 부터 다시 진동이 느껴졌다. 십년만에 처음으로 성수지환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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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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