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마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수지환이 설지가 향하고 있는 태청관 내부에서 강한 마기를 느꼈기 때문이리라. 가벼운 진동을 일으켜서 자신의 존재와 마기의 존재를 한꺼번에 알려주고 있는 성수지환을 설지가 다시 한번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는 사이 자신들을 안내해 왔던 청진 도사는 막 태청관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한쪽 옆으로 물러 났다.

그러한 청진 도사의 동작을 차분한 시선으로 지켜 보고 있던 장내에 자리한 강호 명숙들은 두 눈에 의문을 가득 담고 시선을 출입문 쪽으로 고정시켰다. 청진 도사의 행동에서 아랫 사람이 윗사람을 영접하는 듯한 정중한 태도를 감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장내에는 구파일방의 일부 장문인들을 비롯해서 이번 대회합에 초청받은 모든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장내의 모든 인물들은 혹여 아직 까지 자리하지 않은 강호 명숙이 있는지 주변을 둘러 보았으나 강호에 존재감이 뚜렷한 구파일방의 인물들 중에서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을 쉽게 떠올릴 수는 없었다. 그런 이유로 대회합에 조금 늦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당십이검의 첫째인 무당파의 대제자 청진 도사의 안내를 받아 장내로 들어서고 있는 인물에 대해서 장내에 있는 모든 이들의 관심이 한꺼번에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였다.

더구나 구파일방의 대회합을 치르고 있는 태청관 내부에는 지금 빈자리가 몇개 남아 있지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그 빈자리들은 일성 도장의 바로 옆자리들이었다. 즉 지금 청진 도사의 안내를 받아서 장내로 들어서고 있는 인물들은 일성 도장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진 무당파의 전대 고수거나 혹은 무당파의 귀빈이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드디어 짧은 시간 동안 여러가지 생각들을 떠올리고 있던 강호 명숙들의 시선에 태청관으로 들어 서고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가득 채워졌다.

여자였다. 아니 여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뒤 쪽으로는 무당파의 도복을 정갈하게 차려 입은 꼬맹이 도사 현진이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청진 도사의 안내를 받아서 태청관으로 들어 서고 있는 세 여인들! 하나 같이 경국지색의 미를 자랑하는 그녀들이 태청관으로 성큼 들어 서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일성 도장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귀여운 손녀들을 바라 보는 것 같은 흐뭇한 표정과 함께 얼굴 가득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인 일성 도장이 손까지 흔들어 가며 세 여인들을 반겨 주고 있었던 것이다.

"허허허! 어서들 오너라. 조금 늦었구나"
"어머! 할아버지, 저희가 조금 늦었나 봐요. 죄송합니다."
"허허. 너희들이 늦은게 아니다. 우리가 예정 보다 조금 일찍 모인 것이지. 이리들 오거라."

그러면서 일성 도장이 자신의 옆에 비어 있는 의자들을 가리켰다. 비로소 빈 자리의 주인들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장내에 있는 무당과 소림을 제외한 구파일방의 일부 장문인들을 비롯한 중인들은 이 순간 머리 속이 더욱 복잡해 지고 있었다. 일성 도장과 스스럼 없는 대화를 나누는 절색의 미녀를 오늘 처음 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중인들의 복잡한 시선을 받으면서 일성 도장 옆의 빈 의자에 자리한 설지 일행은 중인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로 집중되자 조금 무안한 듯 볼을 가볍게 붉혀야 했다.

"허허허, 여기 모이신 분들의 눈치를 보아하니 너희들의 정체가 몹시도 궁금한가 보구나. 인사들 드리거라"
"예.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성수의가의 나설지입니다"
"성수의가의 진소청입니다."
"저는 성수의가의 초혜라고 합니다"

설지를 비롯해서 세 여인들의 소개가 차례대로 이어지자 장내는 잠시 술렁였다. 지금 자신들을 향해 소개를 하고 있는 미인들의 정체가 강호에 그 명성이 자자한 의가이자 천하제일가라는 성수의가의 인물들이라는 것에 첫번째 술렁임이 있었고 성수의가의 인물들이라고는 하나 이번 구파일방의 대회합에 그녀들이 참가한 것이 다소 의외라는 생각에 두번째 술렁임이 있었다.

한편 그런 중인들의 반응을 지켜 보는 무당파의 도사들과 소림사의 승려들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설지의 능력을 제대로 확인한 후에 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하는 생각이 거의 동시에 들었던 것이다. 설지 일행의 소개가 끝나고 장내가 잠시 술렁이자 무당파의 당대 장문인인 현허 도장이 장중한 도호를 발하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무량수불! 잠시 제 말을 들어 주시겠소이까? 여기 자리하신 성수의가의 세 분 공녀 께서는 저희 무당파의 최대 귀빈이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번 대회합의 목적인 마화의 수송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어 주실 분들이시기에 저희 무당파에서 이번 대회합에 모셨습니다. 예정되어 있지 않았던 일이라 미리 언질을 드리지 못했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 주셨으면 하오이다." 

더없이 정중한 태도로 현허 도장이 성수의가의 인물들이 자리한 연유를 설명하자 뒤이어서 소림사의 계율 원주인 천붕일권 혜명 대사가 현허 도장의 말을 이어 받아서 부언했다.

"아미타불! 빈승과 소림사에서는 세 분 공녀의 참가에 이의가 없소이다. 아니 오히려 크게 환영하는 입장임을 밝히오이다"


현허 도장에 이어서 혜명 대사의 입에서 이 같은 말이 나오자 장내는 다시 한차례 술렁거렸다. 강호에서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무당파와 소림사에서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자신들이 모르는 사전 조율이 있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조율이 대회합에 해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이에 자리한 중인들을 대표해서 화산파의 장문인 유도옥이 입을 열었다.

"허면, 소림사에서도 저기 세 분 공녀들과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오?"
"허허, 아미타불! 그렇소이다. 저희 소림은 성수신녀께 큰 은혜를 입었었지요"
"큰 은혜라고 하셨소이까?"
"예. 그렇소이다. 자세한 내막은 밝혀드릴 수 없으니 양해를 바라겠소이다."
"흠, 흠, 그렇게 까지 말씀하시니 더 이상 할말은 없소이다만."


혜명 대사의 부언을 들은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이 짐짓 헛기침을 하며 이렇게 대답한 후 장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성수의가의 합류에 대해서 자리한 중인들의 의향을 타진하려는 것이었다. 그런 유도옥의 시선이 장내에 자리한 각 대문파의 대표자들을 향해 천천히 옮겨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도옥의 시선에 담긴 의향을 깨달은 중인들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것으로 성수의가의 합류에 대한 동의를 대신 표하였다. 이렇게 장내를 쭉 한번 돌아 본 유도옥이 최종적으로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헛 기침을 터트리며 중인들을 환기시킨 후 잠시 멈추었던 말을 다시 이어갔다.

"흠, 성수의가의 세 분이 참여하는 것에 반대하는 문파는 없는 것 같으니 이번 회합의 주제로 다시 돌아가시지요"
"아미타불! 그리하시지요"
"자! 이것이 저희 화산에서 발견한 마화입니다. 마기가 워낙 강해 부적을 이용해서 겨우 마기를 억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이 목갑 하나를 꺼내 보인 후 제자를 시켜 중인들이 잘 볼 수 있는 가운데 탁자로 옮겨 놓게 하였다. 단단하기 그지 없는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윤기나는 그 목갑은 선명한 주삿빛 글씨로 쓰여진 부적으로 온통 도배하다시피 해놓고 있었는데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불길함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헌데 그 순간 갑자기 마화가 담긴 목갑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불길함만이 새어 나오는 것 같던 목갑이 한차례 부르르 진동하더니 미세하지만 중인들의 눈에 확연히 감지될 정도의 마기가 목갑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중인들 중에서 화산파의 장문인 유도옥이 다급하게 경호성을 발하며 목갑에서 흘러 나오는 마기를 막기 위해 다가 서는 순간 또 다시 기이한 일이 중인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목갑에서 흘러 나온 마기가 흩어지지 않고 한데 모여 잠시 부유하는 것 같더니 마치 물줄기가 아래를 향해서 흐르듯이 한 인물을 향하여 허공을 거슬러 날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마기가 흘러 가고 있는 곳에는 설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마화의 마기를 감지한 성수지환이 강한 흡입력으로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마기가 흘러 가는 것을 당혹한 시선으로 보고 있던 화산파의 장문인 유도옥은 마기가 나아가는 방향에 자리한 무당파의 도사들과 소림사의 승려들에게 다급히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도 태연한 무당파와 소림사의 인물들에게서 의아함을 느낀 유도옥은 나오려던 말을 꿀꺽 삼켜 버리고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 시켰다.

장내에 자리한 모든 중인들이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마기의 흐름을 그들 역시 보고 있을 것인즉 무당파와 소림사의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태평함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도옥의 의문은 이내 풀려 버렸다. 마기가 최종적으로 흘러 들어 가는 곳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성수의가의 한 여인이 차고 있는 비환으로 마기가 흘러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설지는 마기가 자신을 향해 다가 오자 성수지환이 채워져 있는 왼쪽 팔을 조금 들어 올려 허공을 거슬러 다가 오는 마기의 흐름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가온 마기는 지체없이 성수지환으로 흘러 들고 있었다. 십년만에 접하는 순도 높은 마기가 좋았는지 마기를 받아 들이는 성수지환은 가볍게 진동하며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각여가 지나고 더이상 목갑에서 흡수할 마기가 흘러 나오지 않자 마기를 흠뻑 받아 들인 성수지환이 가벼운 울음을 토하더니 장내의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던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성수지환에서 눈부신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커다란 방패 모양의 강막이 허공 중에 생겨나서 설지의 앞을 가로 막았던 것이다. 마치 호신강기가 방패 형태로 펼쳐진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내에서 다시 한번 소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 순간 가장 놀라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설지였다. 마기를 흠뻑 받아 들인 성수지환이 가볍게 울음을 토하더니 기이한 울림을 전해 주었던 것이다.

그 울림은 분명 내가 고수의 운공 방식과 닮아 있었다. 이에 설지가 내력을 이용하여 성수지환이 이끄는 대로 내력을 불어 넣자 갑자기 자신의 눈 앞에 강막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방패가 등장했던 것이다. 성수지환에 숨겨진 내력 하나가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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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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