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불! 그런데 이렇게 떼를 지어서 움직여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응?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이예요?"
'허허! 녀석, 그렇지 않느냐. 뒤를 한번 보거라."
"응? 뒤? 뒤가 왜요?"
"허허허, 네 녀석 눈에도 보이지 않느냐. 온갖 병장기를 패용한 무인들이 한둘도 아니고 이렇게 떼를 지어서 움직인다면 관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겠느냐?"
"아!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그럼 어떻게 해요?"
"글쎄다. 화산 장문인과 혜명 대사를 불러 논의해 봐야겠구나"

현진 도사의 부푼 기대와 함께 출발한 마화의 이송단은 지금 막 균현을 벗어나기 직전이었다. 균현 내에서라면 무당의 이름이 통용되는 덕분에 무인들의 통행에 별다른 제약이 없었지만 균현을 벗어나게 되면 그때 부터 문제는 달라지는 것이다. 온갖 병장기로 완전 무장한 승도속의 무인들 한무리가 지니간다면 이를 가만히 두고 볼 현과 관원들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량수불! 청진은 어디있느냐?"

나지막 하지만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음성이 일성 도장의 입에서 빠져 나와 사방으로 조용히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퍼져 나간 음성은 어렵지 않게 청진 도사의 귀를 자극할 수 있었다. 한편 소림사에 도착할 때 까지 마화 이송단의 행로를 책임지게 된 청진 도사는 그 덕분에 출발과 동시에 설지 일행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런 청진 도사의 귀로 일성 도장의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은 부산스러웠던 행로가 막 안정 궤도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무량수불! 사숙조님 청진입니다. 하명하실 일이라도 계신지요?"
"그래. 이제 곧 균현을 벗어나게 될터인데 이대로는 곤란할 것 같구나. 이송단의 전진을 잠시 멈추고 혜명 대사와 화산 장문인에게 내가 뵙잔다고 전하거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한데 이대로는 곤란할 것 같다는 말씀은..."
"허허허, 그러고 보니 너도 세상 물정 모르는 도사이긴 매한가지구나"
"송구합니다."
"허허. 그런 말이 아니다. 청진아! 주위를 한번 둘러 보거라. 뭐가 보이느냐?"
"예? 그야, 저희 무당을 비롯한 구파일방의 무인들이.... 아!"
"허허허, 이제야 알겠느냐? 이대로 굳이 가자고 하면 못갈 것도 없겠지만 굳이 관과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긁어 부스럼인게야."
"무량수불! 예. 잘 알겠습니다. 허면 화산 장문인과 혜명 대사를 모셔 오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한 청진 도사가 이송단의 선두를 향해 크게 손을 젓자 이송단은 천천히 멈추어 서기 시작했다. 때마침 이송단이 멈추어 선 곳은 넓다른 초지가 자리한 곳으로 많은 인원이 쉬어 가기에 더없이 적당한 곳이었다. 앞에서 부터 차례대로 멈추어 서기 시작한 이송단의 행렬이 모두 멈추어 선 후 각 문파의 무인들이 제작기 흩어져 잠시지만 편안한 휴식에 들어갈 무렵 일성 도장과 혜명 대사 그리고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은 한자리에 모여 앞으로의 행로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미타불! 일성자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보니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오이다."
"흠, 그냥 밀고 나갑시다. 구파일방의 정예들이 지나가는데 제깟 관군 놈들이 뭘 어쩌겠소이까?"
"무량수불! 그렇긴 하오만 그들의 시선이 결코 곱지 않을 것이오. 쓸데없는 마찰은 피하는게 좋지 않겠소?"

평소에 거칠것 없이 과격한 발언을 쏟아 내기로 유명한 유도옥의 말을 들은 일성 도장은 입가에 뜻 모를 미소를 지어 보이며 유도옥의 의견을 완곡한 표현으로 반대하였다. 그런 일성 도장의 모습에서 무언가 대안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혜명 대사는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며 곧 바로 입을 열었다.

"허면 일성자 께서 생각해 두신 것이 있으신지요?"
"허허허, 혜명 대사의 눈은 속일 수가 없겠구려. 그렇소이다. 저기 저 놈이 있지 않소?"
"예? 누구를..."

일성 도장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던 혜명 대사는 꺄르르 하고 교소를 터트리는 한무리의 여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설지 일행이었다. 설지를 발견한 혜명 대사는 그제서야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일성 도장의 의견에 뜻을 같이 한다는 표현을 했다. 하지만 유도옥의 입장에서는 일성 도장의 말이 무슨 말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흠, 빈도는 일성자께서 하신 말씀을 잘 못알아 듣겠소이다만"
"허허허, 미안하구려. 저기 있는 설지 저놈의 신분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계시겠지요?"
"흠, 그야, 성수의가의... 아! 의가!"
"허허허, 그렇소이다. 미화 이송단의 행렬을 성수의가의 행렬로 바꾸면 되는 간단한 것이지요"
"아미타불! 묘안이십니다. 헌데 신녀께서 허락하실지..."
"걱정마시오. 이목을 끌게는 되겠지만 성수의가에 해가 되는 것도 아니니 거절하지는 않을게요.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이송단의 행로가 감추어진다는 이점도 있지 않겠소?"
"그렇기야 합니다만. 성수의가에 피해가 돌아가지는 않을지..."

혜명 대사가 우려 섞인 음성을 토해내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장내에서 뇌전이 울려 퍼지는 것 처럼 콰르릉하는 기음이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닌가? 사전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리가 들려 오자 반사적으로 구름 한점 없는 양춘지절의 너무도 멀쩡한 마른 하늘을 올려다 봤던 세 사람은 이내 그 소음이 뇌전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소리의 출처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런 세 사람의 눈에 뜻밖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콰르릉하는 소음의 정체가 진짜 뇌전이었던 것이다.


헌데 그 뇌전의 크기가 묘했다. 작아도 너무 작았던 것이다. 번쩍 번쩍 하는 눈부신 빛과 콰르릉하는 기음만을 놓고 보면 분명 뇌전이었지만 어린 아이 팔뚝 길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뇌전 여러개가 초지의 가운데 쯤에서 반장 정도 크기의 작은 먹구름을 벗삼아 무서운 기세로 내려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뇌전이 떨어지는 아래 쪽에는 도사 복장의 작은 그림자 하나가 뇌전과 빗방울을 피하기 위해 사방으로 신법을 펼치고 있었으나 역부족이었다.

무슨 조화인지 반장 정도 되는 작은 먹구름이 도사 복장의 작은 그림자만을 따라 다니며 비와 뇌전을 퍼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인들의 교소와 '꼬맹이 도사 힘내'라는 소리가 들려 오는 것으로 봐서 도사 복장의 작은 그림자는 무당파의 소사숙인 현진 도사이며 밖에서 보는것과 달리 그리 위험한 상황은 아는 듯도 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일성 도장을 비롯한 세 사람의 얼굴에는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아미타불! 대관절 이게 무슨..."
"허허허. 무량수불! 아무래도 설지 저 놈의 장난인 것 같구려"
"예? 장난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그보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 빈도는 보고도 믿기지가 않소이다. 저 작은 먹구름은 뭐고 그 먹구름이 어떻게 한 사람만을 따라 다니며 비와 뇌전을 퍼붓고 있는지..."
"허허허, 무량수불! 장문인꼐서는 먹구름의 윗쪽을 한번 보시지요"
"윗쪽이라니 대관절 뭐가 있기에... 헉! 아, 아니 저,저게..."
"허허허, 장문인께선 용을 처음 보시는 듯 하외다."
"요, 용이라고 하셨소이까?"
"허허허, 그렇소이다."
"허면 제가 지금 보고 있는게 그 전설에나 나오던 그 용이라는 말씀이신지요?"
"허허, 왜 아니겠소이까? 인세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진짜 용이지요."
"허! 용, 용이라고? 호풍환우한다는 그 용? 허허허"
"아미타불! 장문인 께서 많이 놀라셨나 봅니다. 허허허"
"왜 그렇지 않겠소이까? 아니, 잠깐, 잠깐, 허면 혜명 대께서도 저 용에 대해서 알고 계셨소이까?"
"아미타불! 그렇습니다. 저 용은 용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신녀의 일행이지요."
"허, 어찌 그런 일이..."
"무량수불! 그나저나 설지 저 놈과 현진 저 놈은 도대체 뭘하는게야?"

일성 도장을 비롯한 세 사람이 초지의 한가운데 갑자기 나타난 먹구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그 무렵 꼬맹이 도사 현진은 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잠시 전에 설지가 '꼬맹이 도사 신법 수련이나 한번 할까?'라고 하면서 부터 시련은 시작되었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머리 위에 생겨난 먹구름과 먹구름을 뚫고 떨어지는 뇌전에 혼비백산하여 일각여에 걸쳐 사력을 다해 피해 보았지만 무슨 조화 속인지 현진 도사는 먹구름의 마수에서 좀체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간혹 들려 오는 '꼬맹이 도사 힘내'라는 소리만 아니었다면 꿈을 꾸고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한편 한가로운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구파일방의 무인들은 초지의 한가운데서 갑작스럽게 벌어진 기사에 대부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먹구름과 뇌전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죽을 힘을 다해 신법을 펼치고 있는 현진 도사는 바라보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단지 하나의 부속물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그만큼 지금 벌어지는 현상이 신기했던 것이다. 아니 인세에서 두번 다시 보기 힘든 기사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무량수불! 설지야, 지금 현진 저놈이 뭘하고 있는게냐?"
"아! 할아버지. 헤헤, 별거 아니에요. 신법 수련중이예요"
"신법? 내가 보기에는 그냥 비를 맞고 돌아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응? 호호호, 비를 맞고 돌아 다녀요? 그렇기도 하네. 호호호."
"원, 녀석들도... 그보다 장난 그만하고 내말이나 좀 들어 보거라"
"예?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그래. 혜명 대사와 화산 장문인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결과 아무래도 이번 마화 이송단을 성수의가의 행렬로 감추는게 좋을 것 같다는 것으로 결론이 낫구나"
"응? 성수의가의 행렬이라고요? 가만, 아무래도 그거 할아버지 의견 같은데 맞죠? 내말이 맞을거야"

초혜를 돌아 보며 연신 동의를 구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기 보다 귀엽게 그지 없는 설지였다.

"허허허,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그리 말했어. 허허허"
"봐! 내 말이 맞지, 내 그럴 줄 알았어"
"허허, 녀석, 그래 어떻게 할테냐?"
"음... 그렇게 하세요. 그럼 이송단의 선두 마차에는 우리 의가의 표기를 내걸어야 겠네요"
"응? 그렇지! 그렇게 하면 금상첨화겠지만 가져 왔더냐?"
"물론이죠. 뭐 제가 가져온 것은 아니고 밍밍이 가져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헤헤"
"허허. 그 말이 곧 그 말 아니더냐. 그럼 청진에게 이야기해서 표기를 내걸도록 하거라"
"예! 밍밍! 밍밍! 어딨어?"
"허허, 그보다 저 놈 좀 어떻게 해주거라"
"예? 아! 용아 이제 그만 하고 내려 와"

일성 도장과 설지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에도 현진 도사는 뇌전을 피하느라 기진맥진해 있었다. 설지의 명(?)에 의해서 마침내 먹구름과 뇌전이 거짓말 처럼 사라져 버리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 쉰 현진 도사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연신 가쁜 숨을 내쉬어야 했다. 난데 없아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고 돌아 다녔음에도 무슨 놈의 땀은 이리도 흘러 내리는지... 지금 땅바닥에 주저앉은 현진 도사의 속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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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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