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처음 만난 자신을 향해 구워 먹으면 맛있겠다는 실없는 농을 던졌던 현진 도사의 엉덩이를 날카로운 부리로 단호하게 응징했었던 비아는 설지와 다시 합류한 이후 부터 좀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까마득한 상공 위에서 은밀히 설지를 따르고 있었다. 마화 이송단이 출발한 이후에도 비아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다. 설지를 조용히 따르면서도 유유자적한 비행을 즐기는 이런 비아의 모습을 무당파의 일성 도장을 비롯한 무당십이검과 소림사의 혜명 대사와 십팔나한 정도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뿐 여타 문파의 인물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절대 고수에 가까운 비아가 행동을 은밀히 한 덕택에 자신의 기척을 지우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비아가 지금 혼망 속에 사로 잡혀 있었다. 설지를 따라 상공에서 비행하던 비아의 눈에 우연히 기이한 형태로 일렁이는 귀둔산의 한자락이 들어 왔고 이를 확인해 보려 근처의 나무 위로 내려 앉았던 비아는 갑자기 자신을 엄습하는 사이한 기운에 화들짝 놀라 다시 날아 오르려 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눈 앞으로 언젠가 한번 경험해 보았던 것 같은 일이 다시금 일어 나면서 비아의 날개를 얼어 붙게 만들어 버렸다. 지금 비아가 바라보고 있는 눈 앞에서는 갓 태어난 어린 매 한마리가 높다란 나무 위의 둥지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고통속에서 죽어 가고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그 어린 매의 커다란 눈에서는 상상치 못할 공포심이 어려 있었다. 이제 갓 태어나 미처 세상을 알기도 전에 죽을 위기에 빠져 있는 어린 매의 심정이 오죽할까?

그런 어린 매를 지켜 보는 비아는 자신이 나서서 도움을 주기 위해 그 어린 매에게로 다가가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이 다가서는 만큼 그 어린 매의 모습은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비아는 지금 저기서 죽어가고 있는 작고 여린 매가 오래 전의 자신의 모습이란 것을 깨닫고 비로소 그때 느꼈던 충격과 공포가 다시금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는걸 경험해야 했다. 그리고 기억하기 싫은 끔직했던 그 순간이 다시 뇌리를 강하게 자극하자 비아의 몸은 삽시간에 잔떨림에 노출되어 버렸다.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고통스러워 하던 비아는 한순간 거짓말 처럼 공포에서 벗어 나와 커다란 울음 소리를 토해내며 가까스로 날아오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혼망 속에 빠져서 벗어날 수 없었던 비아를 구원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설지였다. 어쩔 수 없이 죽어가고 있던 그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작고 귀여운 여자 아이가 자신의 앞에 쪼그려 앉아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한채 자신을 쓰다듬던 기억이 되살아 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손길이 더 없이 포근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혼망 속에 사로잡혀 있던 비아는 비로소 혼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힘차게 날아 오른 비아는 커다란 울음 소리를 토해내며 곧바로 설지 일행이 야숙 준비를 하는 곳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눈 한번 깜빡할 정도의 짧은 시간에 이미 설지 근처로 다가온 비아의 모습은 섬전 그 자체였다.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매의 긴 울음 소리를 듣고서 하늘 위를 바라 보고 있던 사람들의 시야에 비아의 모습이 보였다 싶은 순간 이미 비아는 설지의 폼으로 파고 들며 전신을 바르르 떨어대기 시작했다.

"응? 비아!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안겨들듯이 날아든 비아가 심하게 떨어대기 까지 하자 설지는 당혹한 음성을 토해내며 부드러운 손길로 비아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공청석유를 복용하고 환골탈태 까지 이룬 비아였지만 영수인 백아와 호아 그리고 용아 처럼 자신의 의사를 설지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갖고 있지 않았다. 당연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비아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을 확인한 설지는 귀둔산의 중턱에서 비아를 놀라게 만든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설지 언니! 비아 이 녀석이 왜 이래? 지금 떨고 있어"
"글쎄? 확실하진 않지만 귀둔산 자락에 내려 앉았던 비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었나 봐. 아무래도 내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던 그 존재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아"
"헤, 그렇구나. 그럼 정말로 저기 귀둔산에 귀신이 있는거 아냐?"
"잘 모르겠어. 아까 까지만 해도 사람은 아니고 그렇다고 귀신은 더더욱 아닌 듯 했는데 지금은 글쎄?"
"으악!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진짜 귀신이 있다는 말이야?"
"아유! 요 녀석 호들갑은, 잘 모르겠다니까. 우선 백아랑 호아 더러 살펴 보라고 해야겠어"

"무량수불! 비아는 이제 괜찮은게냐?"
"예. 할아버지, 이제 떨림은 그쳤어요"

초혜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자연지기의 힘을 빌려 자신을 어루만져 주었던 설지 덕분에 비아는 공포와 떨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진한 떨림 조차 거의 사라져 버릴 무렵 품에 안고 있는 비아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준 설지는 염려가 가득 담긴 음성으로 비아를 내려다 보며 입을 열었다.

"어때? 이제 좀 괜찮아?"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비아의 모습을 본 설지는 비로소 염려를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래! 다행이네. 당분간은 내 곁에 있도록 해. 알았지?"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비아의 머리를 한차례 더 쓰다듬어 준 설지는 비아를 자신의 발치 곁에 내려 놓고 백아와 호아를 불렀다.

"백아, 호아! 이리와봐"

한 곁에서 느긋한 자세로 사이 좋게 퍼질러 있던 백아와 호아는 설지가 부르는 소리에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기지개를 한차례 켠 후 털레 털레 걸어 설지에게 다가 갔다. 그리고 '무슨 일이야?' 하는 표정으로 설지를 바라 봤다.

"지금 까지 내가 한 말 다 들었지? 귀둔산을 한번 살펴 봐 줘, 그럴리는 없겠지만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물러나와야 해!"

설지가 이렇게 공연한 당부 아닌 당부를 백아와 호아에게 할 무렵 갑자기 설지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 속에서 한차례 작은 요동이 있는 것 같더니 설아의 머리가 불쑥 빠져 나왔다. 그리고 이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설아는 백아와 호아 곁으로 다가가며 '나도 갈래!'하는 표정을 얼굴에 만들었다. 진한 사기가 자신을 유혹하는 것을 뿌리치지 못한 결과 나타난 행동이었다.

"응? 설아도 갈려고? 음. 가만있자... 그래! 설아도 함께 가도록 해."

자신의 기감을 불쾌하게 자극하는 존재에게서 음습한 사기를 함께 느꼈던 설지는 설아의 행동을 보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영수에 가까운 설아에게 음습한 사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를 끼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백아와 호아, 그리고 설아가 귀둔산을 향해 걸음을 옮길 무렵 비아가 나타나고 순식간에 설지의 품으로 파고들 때 부터 유심히 지켜 보고 있던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이 혜명 대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대사! 신녀의 품에 안겨들다시피 날아 들었던 저 놈은 아무리 봐도 매 같소이다만..."
"아미타불! 예. 장문인께서 보신대로 매가 맞소이다. 허나 조금 특이하다면 특이한 매라고 할 수 있지요"
"특이하다라? 무엇이 말이오?"
"허허허, 장문인께서 보시기에 비아, 아! 저 매의 이름이 비아입니다. 비아 저 녀석이 어떻게 보입니까?"
"흠, 글쎄요. 그저 제 눈에는 평범한 매로 보입니다만..."
"허허허, 예. 원래는 평범한 매였지요. 갓 태어난 비아 저 녀석이 실수로 둥지에서 떨어져 죽어가는걸 발견한 신녀께서 지극 정성으로 회생시켜서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얼마전까지 저 녀석이 양날개를 활짝 펼치면 그 길이가 무려 십장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체구를 자랑했었지요. 그때 신녀 께서는 비아를 타고 다닐거라고 하셨지요. 허허허"
"허! 날개 길이가 십장이라... 허면 평범한 매가 그런 거조가 된데에는 필경 신녀의 도움이 있었겠소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을 일별한 혜명 대사는 주위를 한번 둘러본 후 목소리를 낮추어 은근한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허허, 그렇지요. 장문인께만 알려드리는데 비아 저 녀석이 그런 거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신녀 께서 공청석유를 배합한 성수보령환을 주기적으로 복용시켰기 때문입니다."
"예? 공청석유!"
"쉿! 목소리를 낮추시지요"

공청석유라는 말에 놀란 유도옥의 목소리가 갑자지 커지자 주의를 환기시킨 혜명 대사가 말을 이었다.

"예. 바로 그 공청석유를 비아 저녀석이 장복을 했었지요. 그래서..."
'내 맞혀 보리다. 그래서 매가 환골탈태를 헸겠지요? 아니 그렇소이까?"
"허허, 맞습니다. 새도 환골탈태가 가능하더군요. 십장에 이르는 날개를 가진 거대한 비아가 환골탈태를 겪고나자 지금 처럼 저렇게 평범한 모습으로 바뀌어 버리더군요."
"허면 대사께서 그 모습을 직접 보셨소?"
"예. 저 뿐만 아니라 일성자 선배를 비롯해서 본사의 방장께서도 함께 지켜 보셨습니다"
"허, 그런 기사가... 허면 외형만 변했소이까? 다른 공능도 있을 법 한데..."
"아미타불! 그렇습니다. 언뜻 보면 평범한 듯 보이지만 도검이 불침하는 체질로 바뀌어 버렸지요"
"도검불침! 허..."
"허허허, 신녀께서 직접 칼을 들고 비아의 날개에 시험해 보셨지요. 그 결과 날개만이 아닌 몸 전체가 도검불침임이 확인되었소이다"
"허, 도검불침이라... 허면 금강불괴라는 소리이오이까?"
"흠, 글쎄요? 그건 아무래도 아닌 듯 하오이다. 절대 고수가 전력을 다해 공격을 펼친다면 상처가 생기겠지요"
"그렇구료. 그렇다해도 한낱 미물인 매가 도검불침의 경지에 올랐다라... 허허 기사로다, 기사야"

혜명 대사와 유도옥이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설지의 전송을 받으며 귀둔산으로 오르기 시작한 백아 일행은 순식간에 비아를 혼망 속으로 끌어 들였던 산자락 곁에 다가서 있었다. 그런 백아 일행에게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일그러진 공간이 드러나고 있었다. 아울러 공간 너머에서는 지독히도 음습한 사기가 흘러 나와 귀둔산의 전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음습한 사기를 발견한 설아의 작고 귀여운 붉은 혀가 날름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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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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