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 Sayer - More Than I Can Say

 

리오 세이어 (Leo Sayer) : 1948년 5월 21일 영국 서식스 주 쇼럼바이시 출생

갈래 : 팝 록(Pop/Rock), 소프트 록(Soft Rock), 에이엠 팝(AM Pop)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leosayer.com/
노래 감상하기 : http://youtu.be/GnIlo91CrBw / http://youtu.be/j2iVzVun8Ow


지금은 수십개가 넘는 텔레비전 채널을 통해서 교양, 오락, 영화, 스포츠, 뉴스 등 다양한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시절이지만 SBS 방송국 조차 개국하지 않았던 그 엣날엔 채널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거기다 1980년 12월 1일에 언론 기관을 통제하기 위해 단행된 언론 통폐합으로 방송사는 <KBS>와 <MBC>로 양분되고 말았으며 채널 수는 <KBS>와 <MBC>, 그리고 동양방송(TBC-TV)이 KBS로 강제로 흡수되면서 이름을 바꾼 <KBS 제2TV>와 교욱 전문 방송인 <KBS 제3TV(현 EBS)>를 포함하여 달랑 네개가 전부였다.

거기다 <KBS 제3TV>의 경우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송출 방식인 초단파(VHF)가 아닌 극초단파(UHF) 방식으로 송출되었기에 수신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상은 세개 채널이 전부였다.(극초단파 방식은 높은 주파수대의 파장이 짧은 전파를 사용하기에 전파 간섭없는 원거리 송신이 불가능하다. UHF 방송을 시청하기 위해서는 텔레비전 뒷면에 동그란 원형의 안테나 설치가 필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싶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저 시절엔 세개의 채널만으로도 충분했을 정도로 정보의 양이 많지 않았었다.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그리고 이런 네개 채널에 더하여 우리말 방송은 아니지만 시청이 가능했던 또 하나의 채널이 더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 채널은 다름아닌 주한 미군을 위한 채널인 <AFKN(현 AFN)>이었다.

드라마 'General Hospital'을 포함해서 음악 쇼 프로그램인 '솔리드 골드(Solid Gold)'와 '소울 트레인(Soul Train)'등이 방송되었던 AFKN 방송은 당시 외국 팝 가수의 정보에 목말라 하던 이들에게 정보의 부족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가끔은 우리나라에서 개봉하지 않은 영화를 방영해 주어서 쏠쏠한 재미를 안겨 주기도 했었다. 내게는 지금도 영화의 몇 장면이 기억나는 '로보캅1'을 텔레비전의 작은 화면으로 무척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남아 있다. ('로보캅1'은 영화관에서 개봉하지 않았으며 '로보캅2' 부터 우리나라의 영화관에서 개봉했었다)

그리고 이런 영화 뿐 아니라 인기있는 팝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 역시 심심치 않게 틀어 주었었는데 그런 뮤직 비디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뮤직 비디오가 바로 오늘 소개하는 '리오 세이어(본명: Gerard Hugh Sayer)'의 'More Than I Can Say'였다. 서식스 주 쇼럼바이시(Shoreham-by-Sea)에서 태어난 리오 세이어는 어린 시절 교회 성가대 활동을 통해서 음악을 가까이 하게 되었으며 중학교 시절에는 학교 밴드에서 '버디 홀리(Buddy Holly)'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노래를 부르면서 밴드 경험을 쌓기도 했다.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었던 리오 세이어는 대학교 졸업 후 우연히 한 밴드의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 음악을 듣고 그 음악에 매료되어 인생항로를 변경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전문 하모니카 연주자에게 악기 연주를 배우면서 가수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 리오 세이어는 먼저 지역에서 활동하던 밴드에 가입하는 것으로 초석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조직한 음악 클럽 '워딩 워크샵(The Worthing Workshop)'을 거쳐 '테라플레인 블루스(Terraplane Blues)' 밴드를 결성하면서 본격적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7년에는 거주지를 런던으로 옮기고 예술가들과 음악가들을 만나며 새로운 출발을 모색해 보기도 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여 고향으로 다시 돌아 와야 했다. 그리고 낮에는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고 밤이 되면 클럽 무대에서 노래하는 이중 생활을 지속했었던 리오 세이어는 1969년에 '패치스(Patches)'라는 이름을 밴드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 밴드의 활동을 통해서 조금씩 존재감을 늘려 나가기 시작했다.

밴드 경연 대회에 출전하기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 나가던 리오 세이어는 드러머이자 작곡가인 '데이브 코트니(Dave Courtney)'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아담 페이스(Adam Faith)'에게 발탁되었으며 마침내 1973년에 싱글 'Why Is Everybody Going Home'을 발표하면서 데뷔하게 된다. 같은 해에 데뷔 음반 'Silverbird'를 발표했었던 리오 세이어는 이 음반에서 발매된 싱글 'The Show Must Go On'을 영국 싱글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시키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리고 'Long Tall Glasses (I Can Dance)(1974년 4위)'와 'Moonlighting(1975년 2위)'등을 히트시키면서 상승세를 이어가던 리오 세이어는 1976년 11월에 발표한 네번째 음반 'Endless Flight'에서 'You Make Me Feel Like Dancing(영국 2위, 미국 1위, 캐나다 1위)'과 'When I Need You(영국 1위, 미국 1위, 캐나다 1위)'를 싱글로 발표하여 영국과 미국 그리고 캐나다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된다. 특히 'When I Need You'는 우리나라의 팝 음악 애호가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두 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을 탄생시킨 후 약간 주춤했던 리오 세이어는 1980년으로 접어 들면서 다시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1980년 8월에 발표되었던 여덟번째 음반 'Living In A Fantasy'에 수록된 'More Than I Can Say' 덕분이었다. 싱글로 공개된 이 곡이 영국과 미국의 싱글 차트에서 모두 2위 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캐나다의 싱글 차트에서도 3위 까지 진출했었던 이 곡은 우리나라의 AFKN 채널을 통해서도 뮤직 비디오가 자주 방송되면서 팝 가수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애호가들의 갈증을 다소나마 해소시켜 주기도 했었던 추억 속의 애청 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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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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