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잠에 취한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환골탈태 과정을 거치고 있는 제자를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 보고 있던 일성 도장은 혹시라도 하는 생각에 곁에서 함께 지켜 보고 있는 설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떠냐?"

"예? 뭐가요?"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현진 저 놈을 저리 버려두어도 괜찮겠느냐는 그런 말이다"
"아! 호호호. 걱정마세요. 설마하니 제가 도사 할아버지 께서 말년에 거둔 제자를 다치게야 하겠어요?"
"흠흠, 그렇다니 다행이다만... 가만 너 방금 뭐라고 했느냐? 말년? 말년이라고? 예끼! 이 놈, 아직 이 할애비 멀쩡하다. 볼테냐?"

그러면서 양쪽 손의 도포 자락을 걷어 올리며 팔 근육 자랑을 하는 일성 도장의 모습에서는 무당파의 명숙이 아니라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분위기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설지와 초혜. 그리고 진소청은 무척 재미있다는 듯 짤랑짤랑한 교소를 터트렸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백아 일행이 올라간 귀둔산 쪽에서 갑자기 지축을 울리며 산 전체를 부르르 떨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포효 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응? 설지 언니! 이거 호아 목소리 아냐? 무슨 일이지?"
"그러게. 호아가 화가 났나 보네. 무슨 일이지?"

설지와 초헤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 귀둔산이 훤하게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야숙을 준비하며 설지를 둘러 싸고 벌어지는 기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마화 이송단의 상당수 무인들도 갑작스럽게 들려온 엄청난 포효 소리에 놀라 대부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응? 대사! 이게 무슨 소리요?"
'아미타불! 아마도 신녀의 일행인 호아가 터트리는 포효 같소이다."
"허! 아니 그 작은 몸에서 이리도 큰 포효가 터져 나오다니... 허허, 과연 천년마령호인가"
"아미타불!"

혜명 대사의 입에서 긍정을 담은 나직한 불호 소리가 흘러 나오는 그 순간 다시 한번 귀둔산을 부르르 떨게 만드는 엄청난 포효 소리가 숙영지로 전해져 왔다. 미녀의 손에 들린 비파 음을 산산히 부숴 버리는 백아의 포효였다. 그리고 그 순간 여태껏 잠에 취한 채 환골탈태 과정을 거치고 있던 현진 도사가 잠결에 들려온 백아의 포효 소리에 놀라서 번쩍하고 눈을 떴다.

공교롭게도 환골탈태 과정이 마무리 되던 순간에 백아의 표효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그렇게 눈을 뜬 현진 도사의 눈에서 예리한 안광이 한차례 떠돌다 사라진 것을 날카로운 안목을 가진 일성 도장을 비롯한 혜명 대사와 유도옥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장내에 있던 이들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실소를 떠올려야 했다. 백아의 포효 소리에 놀라서 잠이 깬 현진 도사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다는 것이 허공으로 거의 삼장 가까이나 솟구쳤던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은 현진 도사가 '어어어' 하는 당혹성과 함께 땅으로 추락하는 것을 받아낸 것은 양쪽 손의 도포 자락을 걷어 올리고 있던 일성 도장이었다. 부지불식간에 누워 있던 자세에서 허공으로 튀어 오른 제자를 일성 도장이 엉겁결에 받아든 것이다.

"이런 녀석하고는... 괜찮은게냐?"
"예! 사부님... 이게 무슨 일이죠?"
"허허. 녀석! 별일 아니다. 그 보다 네 몸이나 한번 살펴 보거라."
"예? 제 몸이요? 제 몸에 무슨... 응? 이,이게 뭐야?"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던 현진 도사는 무언가 손에 잡히는 것을 깨닫고 들어 올렸던 손을 내려 그 손에 묻은 거무튀튀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물체를 살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물체의 정체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심각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설지 아가씨! 이번에는 백아죠?"
"응! 맞아. 이번에는 백아야. 근데 백아가 짜증이 난 것 같은데..."
"짜증이 났다고? 설지 언니, 그걸 어떻게 구별해?"
"호호. 잘 들어 보면 다르다는 걸 알게 돼."
"햐! 그 참 신기하네. 난 아무리 들어 봐도 구분이 안될 것 같은데..."
"그보다 야! 꼬맹이! 너 빨랑 가서 몸이나 좀 씻고 와"
"윽! 그러고 보니 이게 무슨 냄새야?"

아니게 아니라 한손으로 코를 잡고 한손으로는 손바람을 일으켜 냄새을 쫓는 초혜가 아니더라도 일성 도장과 현진 도사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 모두가 코를 막아야 할 만큼 현진 도사의 몸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 냄새의 진원지는 바로 환골탈태 과정에서 몸을 통해 빠져 나온 노폐물이었다. 피부가 벗겨지고 새살이 돋아 나오는 과정에서 완전히 제거 되지 못하고 너덜거리며 아직껏 몸에 붙어 있는 피부 껍질과 노페물의 조화가 불러 일으키는 소동이었던 것이다.

"도사 할아버지! 도사 할아버지도 함께 가세요. 도사 할아버지 몸에도 꼬맹이에게서 나온 노폐물이 잔뜩 묻었어요"
"응? 으응! 허허허, 그래 알았다. 현진아 가자꾸나. 오랜만에 이 사부랑 수욕이나 하자꾸나. 궁금한게 많을터이니 빨리 따라 오거라"
"예? 예! 사부님"

여전히 손에 묻은 거무튀튀한 물체를 보며 죽을 병에 걸린게 아닌가 하고 쓸데없는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던 현진 도사는 설지의 핀잔을 들은 후에야 정신을 언뜻 차렸고 일성 도장의 재촉에 두서없는 걸음을 빠르게 옮겨야 했다. 그렇게 노사부와 제자가 사이 좋게 개울로 향하는 것을 지켜 보던 유도옥이 곁에 있던 혜명 대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대사! 내가 지금 본 환골탈태 장면이 꿈은 아니겠지요?"
"허허허, 아미타불!"
"허면 신녀가 무당파의 현진 도사에게 복용시킨 것이 성수보령환이라고 했소이까?"
"아미타불! 그렇게 들었습니다."
"성수보령환이라면 성수의가 비전의 환단이기는 하나 환자의 치료를 위한 것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영약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소이다. 그려"
"아미타불! 그렇지는 않을겁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니까 성수보령환이 약효가 좋긴 하지만 환자 치료용일 뿐이라는 얘기이지요"
"아니 그게 무슨..."
"허허허, 아미타불! 그러니까 성수의가 비전의 성수보령환과 신녀 께서 가지고 다니는 성수보령환이 다르다는 말씀이지요."
"아! 그럼, 혹시 조금 전에 말씀하신 비아가 먹었다는 공청석유가 배합된 그 성수보령환이...."
"아미타불! 그럴겁니다. 같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비슷한 성분이겠지요"
"허! 내 생전에 무당파가 부럽다는 생각이 다 들다니..."

자존심 강한 구파일방의 한 축인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의 입에서 무당파가 부럽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그만큼 잠시 전에 있었던 현진 도사의 환골탈태 과정이 지켜 보는 무인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로 설지에게 성수보령환 한알을 얻기 위해 갖은 아부를 하는 이들이 늘어 났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초아의 도움이 없었다면 성수보령환 한알만으로는 애초에 환골탈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한편 그 시각 귀둔산자락에서는 엄청난 사기의 흡입으로 배가 통통하게 불러진 설아가 뒤뚱거리며 걸음을 옮겨 호아의 등에 오르고 있었다. 아직 사기를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기에 움직임에 제약이 있는 설아를 호아가 등에 태워 데려가기로 했던 것이다. 마치 오리가 걸어 가듯 그렇게 뒤뚱거리며 어렵게 호아의 등에 올라탄 설아가 작은 양쪽 앞발로 호아의 털을 움켜 잡고 출발 준비를 마치자 호아는 산 아래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호아의 뒤를 따라 백아 역시 산 아래를 향해 몸을 날리기 시작했는데 모진 풍파를 격으며 천년을 살아온 영수들 답게 그 움직임은 절대 고수들 조차도 따라 잡지 못할 만큼 표홀하기 그지 없었다. 설아가 작은 앞발로 호아의 털을 움켜 쥐지 않았다면 아마도 하산 도중에 서너 차례 정도는 호아의 등에서 굴러 떨어졌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다 보니 산을 오를 때 처럼 백아 일행은 순식간에 설지 일행이 기다리는 숙영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백아랑 호아가 오고 있어. 설지 언니!"
"그래. 그렇구나. 근데 저 녀석은 왜 저래?"
"응? 뭐가?"
"저기 봐봐, 호아 등에 설아가 타고 있는데 좀 달라진 것 같아"
"달라졌다고?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네, 저 녀석 몸 색깔이 왜 저래?"
"그러게"

설지와 초혜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설지에게 다가온 호아는 먼저 설아를 살펴볼 것을 설지에게 주문했다. 배가 터지도록 사기를 흡입한 설아 녀석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호아의 뜻을 전해 들은 설지가 호아의 등에 앉아 있는 설아를 향해 왼쪽 손을 내밀자 그때 까지 호아의 털을 움켜 잡고 있던 설아가 호아의 등에서 앞발을 풀고는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설지의 손으로 옮겨 왔다.

"어디 보자. 설아 너 무슨 일 있었어?"

그렇게 말하며 설아의 작은 머리를 오른 손 검지 손가락을 가만히 쓸어 주자 기분 좋은 표정을 얼굴에 떠올린 설아가 그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통을 한차례 출렁거렸다. 채 흡수되지 못한 사기를 설아가 다시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그때 까지 요요로운 붉은 빛을 뿜어내던 설아의 전신이 더욱 붉어지는 듯하더니 다시 흐려지기를 수차례나 반복했다. 그런 설아의 변화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지켜 보는 설지의 눈에 또다른 설아의 변화가 감지되었다. 바로 탈피 과정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현진 도사가 환골탈태를 하는 과정과 너무도 흡사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설아의 몸에서는 노폐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천고의 영약인 적실영과를 좋아하는 설아의 몸 속에 노폐물이 쌓여 있을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진행되는 탈피 과정이 마무리 되고 나자 적안백린사인 설아의 모습은 영수라는 말에 제법 어울릴법한 외양을 갖추게 되었다. 눈부신 백색의 피부와 네개의 다리, 그리고 빨간 색을 띤 두개의 눈과 머리 위에 자리한 청록 빛 뿔 두 개가 탈피 과정을 거치자 이전 보다 더욱 늠름해 보였던 것이다.

"캬오!"

탈피 과정을 거친 설아가 환희에 찬 울음 소리를 설지의 손 위에서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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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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