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요 녀석 좀 봐. 순식간에 탈피를 해버렸네. 호호. 기분이 무지하게 좋은가 봐? 그렇지? 설지 언니!"
"응! 그런 것 같아. 요 녀석이 이렇게 기분 좋아하는 걸 나도 처음 보기는 하지만 말이야."

초혜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설지가 오른 손 검지를 들어 설아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설아의 입에서 다시 한번 기분 좋은 울음 소리가 토해졌다. 그리고 온 몸으로 기쁨을 표하려는 듯 한차례 몸통을 꿈틀거리기 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설아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온몸으로 탈피의 기쁨을 표현하려던 설아가 누군가의 시선과 마주친 후 갑작스럽게 하던 동작을 멈추고 고개 까지 푹 숙이더니 이내 잠잠해졌던 것이다.

설아의 시선이 마주친 곳, 그 곳에는 용아가 있었다. 설아가 몸통을 꿈틀하던 그 순간 하필이면 설지의 어깨 위에 정물인 듯 앉아 있던 용아의 날카로운 시선과 부딪치고 만 것이다. 백아와 호아하고는 어느 정도 친해졌지만 용아는 여전히 설아에게 무서운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용아가 탈피 후 환희에 찬 울음 소리를 토해내는 설아를 같잖다는 듯 노려 보자 순식간에 기가 꺾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호호호! 용아, 그만 해! 자! 설아는 다시 가방 속으로 들어가고 난 호아랑 이야기 좀 할께"

설아의 머리를 오른 손 검지 손가락으로 두어번 톡톡 두들겨 준 설지가 설아를 자신이 메고 있는 가방의 입구 쪽으로 옮겨 주었다. 그러자 설아의 모습은 순식간에 가방 속으로 사라져 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방 속으로 사라져 갔던 설아가 날카로운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토해내더니 곧바로 고개를 가방 바깥으로 내밀었다. 가방 속이 자신이 떠날 때와 달리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고개를 내민 설아가 '이게 뭐야?'라는 시선을 설지를 향해 한차례 날려 보낸 후 다시 가방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때 부터 성수보령환을 꺼내기 위해 설지가 온통 뒤집어 놓은 가방 속을 설아가 다시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누군가 설지의 가방 가까이로 귀를 가져가면 기물을 정리하는 설아의 손에 의해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설아가 가방 속을 다시 정리하느라 분주한 사이 설지는 호아에게 귀둔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호아 말은 이상한 존재가 갑자기 나타났단 말이지? 진법과 비슷한 것이 펼쳐진 공간 속에서?"

설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호아가 다시 심령상의 대화를 이어 갔다.

-그래! 사람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것의 정체는 인간들이 말하는 귀신이나 요괴와 비슷한 것 같았어. 귀신이나 요괴라기엔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지만...
"이상하다고?"
-그래, 귀신이나 요괴가 진법이 펼쳐진 공간 안팎을 자유자재로 드나든다는 이야기는 천년을 살아 오면서도 듣지 못했어. 귀신이나 요괴라면 오히려 진법 속에 갇혀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흠...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럼 그게 뭐 같아?"
-글쎄? 그런데 한가지 미심쩍은게 있긴 해.
"미심쩍다고?"
-응, 그것이 드나들었던 그 공간에서 초아의 기운과 비슷한 기가 느껴졌었거든,
"초아랑?"
-그래, 그런데 만년삼왕이 그리 흔한 존재도 아니고 확실하지는 않아.
"음... 음... 아무래도 내가 직접 올라가 봐야 겠네...

-그래. 그렇게 하는게 좋겠어. 그것이 비파를 이용해서 공격해 오기는 했지만 설지 너라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거야.
"좋아. 나랑 함께 가서 살펴 보기로 하고..."
-아! 그전에 여기 인간들에게 귀둔산에 올라가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도록 해. 다른 인간들은 그 요괴 같은 것의 공격에 당하면 죽지는 않겠지만 이지를 상실하게 될거야"
"응! 알았어. 걱정 마, 그렇지 않아도 도사 할아버지께 사람들 잘 단속하시라고 말씀드렸었는데 다시 한번 말씀드릴께"

설지와 호아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근처의 개울가로 몸을 씻으러 갔던 일성 도장과 현진 도사가 말끔해진 모습으로 돌아 오고 있었다. 특히 현진 도사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애기 피부 처럼 깨끗해진 피부가 첫번째로 변한 외양이라면 두번째는 서기 같은 것이 몸 전체를 은은히 감싸고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환골탈태를 거치면서 완전히 갈무리 하지 못한 공청석유의 신묘한 영험 때문이었다. 아마도 몇차례의 운공조식을 거치게 되면 몸 전체를 감싸고 흐르는 서기 마저 모두 내공으로 화하게 될 것이다.

"설지야! 무슨 일이 있는게냐?"
"다녀오셨어요? 도사 할아버지!"
"그래, 무슨 일이더냐?"
"예. 호아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저 산에 귀신이나 혹은 요괴 같은 것이 있다고 해요"
"호! 귀신이나 요괴라고?"
"예. 그런데 아무래도 진법 비슷한 것의 보호를 받고 있나 봐요"
"응? 그게 무슨 말이냐. 귀신이 진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맞아요. 확실한 것은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우선은 그래요"
"허면 조사는 누가.. 혹 네가 직접 가려느냐?"
"예.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보내기에는 너무 위험할 것 같아요"

"흠. 이제 곧 날이 저물텐데 위험하지 않겠느냐?"
"예. 그래서 내일 아침 일찍 조사해 보려고요."

"그래. 그러는게 좋을 것 같구나."
"아! 그리고 도사 할아버지, 아까도 말씀드렸었는데 혹시라도 밤에 귀둔산에 오르는 이가 없도록 단속 부탁드려요"
"그래. 그건 걱정 말거라. 어떻소? 장문인과 대사 께서도 들으셨지요?"
"예. 염려 놓으십시오"
"아미타불! 걱정마시지요"


한편 일성 도장과 설지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현진 도사는 일성 도장의 곁에 서서 자신의 신체 변화가 신기한 듯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는가 하면 팔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몸 주위를 은은히 흐르는 서기가 흩어지지 않는 것이 몹시도 신기했던 것이다.


"야! 꼬맹이 도사!"

그런 현진 도사를 잠시 동안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던 설지의 목소리였다. 이에 흐뭇한 미소와 함께 서기를 감상하고 있던 현진 도사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예? 예! 설지 누님!"
"호호호. 신기한가 봐?"
"예. 제 몸에서 은은히 빛이 나는 것 같아서요."
"헤, 그러고 보니 귀여운 꼬맹이 도사 사제도 은근히 잘 생겼네"
"호호호. 그러게"

초혜와 진소청의 말에 갑자기 얼굴이 확 붉어지며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이 더 없이 순박해 보이는 현진 도사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세명의 여인들이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꼬맹이 도사! 저쪽으로 가서 운공조식을 한번 해봐. 이 누님들이 호법을 서줄테니까 염려는 말고"

설지의 말에 다시 한번 얼굴을 붉히는 현진 도사의 모습에서 세 여인들은 왁자하니 웃음보를 터트렸다. 그렇게 마화 이송단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마화 이송단의 한켠에서는 은밀한 움직임이 몇몇 후기지수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귀둔산을 절대 오르지 말라는 명령이 사문의 존장에게서 하달되었으나 영웅심에 사로 잡힌 몇몇 후기지수들이 이를 어기고 밤을 틈타 귀둔산을 오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산파와 공동파, 그리고 점창파의 후기지수들로 구성된 이들 열명은 밤이 깊어가자 조용히 숙영지를 벗어나 귀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설지는 현진 도사의 불완전한 생사현관을 다듬어 주느라 바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이름 모를 산새 소리들과 함께 마화 이송단의 새벽은 깨어 나고 있었다. 지난 밤 임독양맥이 타통되기는 했지만 혈맥이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현진 도사의 혈맥을 다듬어 주느라 늦게 잠자리에 들었던 설지도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막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설지의 귀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전해지고 있었다. 설지 일행이 묵고 있는 천막 바로 곁에 자리하고 있는 일성 도장의 천막으로 향하는 발자국 소리였다. 그리고 그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청진 도사였다.

"사숙조님! 기침하셨습니까?"
"무량수불! 새벽 부터 무슨 일이더냐?"
"예. 그것이..."
"뭣이!"

청진 도사에게서 무슨 말을 전해 들었는지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는 일성 도장이었다. 그리고 잠시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있는가 싶더니 이내 설지 일행이 머무르는 천막의 입구에서 일성 도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설지야! 일어났느냐? 할애비다."
'예. 도사 할아버지. 들어 오세요"

설지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천막의 앞을 가린 천을 들추며 일성 도장이 천막 안으로 들어 섰다.

"설지야! 후기지수 몇놈이 사라졌다고 하는구나."

막 잠에서 깬 설지는 다짜고짜 튀어 나오는 일성 도장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해 했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화들짝 놀라며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라졌다니, 누가? 왜요?"
"흠. 흠, 이런, 너무 다급한 마음에 내가 실수했구나. 방금 청진이 전해준 말이다. 아무래도 지난 밤에 후기지수 열 놈이 귀둔산에 오른 듯 하구나. 그리고 아직 까지 소식이 없다는 걸로 봐서 무슨 일인가를 당한 듯 하구나"
"어머! 열 명이나요?"
"그래. 정신 나간 놈 열 놈이 영웅심에 사로 잡혀서 지난 밤에 귀둔산에 오른 듯 하다. 그 사실을 날이 밝아 오기 시작한 새벽녘에 알게 되었다는구나."
"아유! 멍청한 작자들 같으니... 안되겠어, 서둘러야 겠네"

그때 까지도 수마의 끝자락을 어렵게 붙들고 있던 설지가 과감히 수마를 떨쳐 버린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일성 도장을 천막 바깥으로 내보낸 후 주섬 주섬 옷을 갈이 입기 시작했다. 한쪽 옆에서는 초혜와 진소청도 잠옷을 벗고 경장으로 갈아 입느라 부산을 떨고 있었다.

그런 소란스러움에도 호아는 여전히 침상 한쪽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러나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세 여인들을 한번 째려봐준 호아도 양쪽 앞발을 길게 뻗으며 기지개를 한차례 켠 후 몸을 일으켰다. 호아를 마지막으로 지난 밤 설지 일행이 잠자리에 들었던 천막 속의 세상도 새 아침을 맞이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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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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