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이나 되었다고?"
"응! 아마 그 정도는 된 것 같아"
"우와! 그럼, 설지 언니! 우리 이거 구워 먹자. 아침을 굶었더니 배고파"
"응? 그럴까?"

다시 한번 매화검수들을 자지러지게 만드는 대화가 설지와 초혜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천년하수오! 세상에는 수많은 기화이초가 이름모를 산 속 어딘가에서 자생하고 있을터이지만 영초라고 불리울 수 있는 약초의 존재는 그리 흔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일반인의 경우 평생가도 구경 한번 하기 힘든 것이 바로 영초라고 불리우는 약초이다. 그런데 하물며 천년이나 묵은 하수오의 경우 그 약효를 거론할 필요 조차 없는 것이다. 매화검수의 경우만 하더라도 천년하수오라는 소리에 경악성을 토해내지 않았던가?

일반적인 약재로 사용하는 하수오의 경우 병약체를 개선하고 신진대사 기능을 회복하는데 탁월한 효능을 발휘하여 주로 강장제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하수오가 천년이나 묵었으니 이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제대로 복용할 경우에는 복용자의 체내에서 강장작용을 극대화까지 발현되도록 하여 잘하면 무병장수에 이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천년하수오인 것이다. 더불어 무공을 익힌 무인이 이를 복용하고 운기행공을 하게 되면 단숨에 반갑자에 해당하는 내력을 얻을 수 있는 효능을 가진 것이 또 천년하수오인 것이다.

"그래! 그러자. 요즘 피부가 좀 거칠어진 것 같기도 한데 이 놈을 잘 구워 먹으면 좀 좋아질려나?"

매화검수들이 모여 있는 곳 여기저기에서 한숨 소리가 푹푹 새어 나오고 있었다. 천년하수오를 고작 피부 미용을 위해서 먹겠다는 소리로 들렸으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설지는 토인의 가슴팍에 자리하고 있는 상당히 큰 천년하수오를 마치 무우 뽑듯이 쑤욱 뽑아 들고는 이러저리 살펴 본 후 발 아래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잠시 주변을 살펴 보다 허공 한 곳을 향해 손을 휘두르자 숲 저편에서 나뭇가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사람들의 눈 앞으로 굵은 나뭇가지 여러개가 허공을 날아 오는 것이 목격되었다.

"허,허공섭물"

허공섭물도 이 정도면 신인의 경지에 달했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후기지수들을 제외한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무인들이 허공섭물을 시전할 수 있지만 설지 처럼 먼 거리에 있는 그것도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허공섭물을 시전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오늘 여러차례 놀라고 있는 매화검수들은 더는 놀랄 기력도 없는지 허공섭물이라는 비명같은 외마디 합창 이후 모두 입을 딱 벌리고 허공을 날아 오는 나뭇가지에 시선을 고정해 두고 있었다.

허공을 격해 날아온 나뭇가지들을 발 아래 천년하수오 옆에 안착시킨 설지는 가슴팍이 휑하게 뚫린 채 서 있는 토인을 향해 다시 한번 손짓을 했다. 그러자 발 아래 쪽 부터 형체가 사라지며 바닥으로 스르르 주저 앉기 시작하는 토인이었다. 마지막 머리 부위 까지 다시 흙으로 돌아간 토인이 남긴 흔적은 바닥에 수북히 쌓인 흙 뿐이었다. 만약 토인이 남긴 흙 무더기가 없었다면 잠시전 까지 이 곳에 토인이 우뚝 서 있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토인이 남기고 간 흙의 잔재가 조금 이상했다. 그냥 바닥에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를 비워 두고 둥근 원형을 이루며 쌓여 있었던 것이다. 마치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며 성을 쌓아 놓은 듯 한 그 모양을 흡족한 눈으로 바라 보던 설지는 이내 굵은 나뭇가지들을 흙으로 둘러 쌓인 가운데 부분에 던져 넣고는 손가락을 한차례 탁하고 튕겼다. 그러자 바짝 말라 있던 부러진 나뭇가짓들 사이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붉은 화염이 굵은 나뭇가지들을 모두 삼켜 버렸다.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기 시작한 굵은 나뭇가지들이 화염을 견디지 못하고 숯으로 변하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은은한 열기를 피워내는 숯불이 순식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낸 설지가 곁에 있던 현진 도사의 시선을 붙잡더니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바로 천년하수오였다.

"예?"
"꼬맹이, 이거 구워 봐. 잘 구워 태우지 말고"
"아! 예"
"그리고 하수오가 구워질 동안 혜아하고 청청 언니는 후기지수들을 다시 한번 살펴 봐줘"
"응! 알았어 설지 언니"
"예. 아가씨, 걱정마세요"

한편 설지의 입에서 '잘 구워'라는 소리가 나오자 다급해진 것은 매화검수들이었다. 너무나도 귀한 영초가 숯불로 들어가는 것 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겠다는 사명감(?)에 가장 먼저 나선 것은 화지경이었다.

"저. 신녀! 할말이 있소이다"
"예? 제게요?"
"그렇소이다. 다름이 아니라..."

갑자기 말의 속도가 빨라지는 화지경이었다. 현진 도사가 커다란 천년하수오를 들고 숯불로 다가가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천년하수오 같은 영초를 그냥 구워 먹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 호호호, 그거라면 염려마세요."
"아,아니, 염려가 아니라..."
"호호호.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지 잘 알아요. 그런데 저 천년하수오는 약재로써의 효능을 발휘하기는 힘들거예요. 무엇때문인지 모르지만 화산파 후기지수를 다치게 했던 사기에 노출되어서 잘못 복용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거에요. 그래서 초혜가 구워 먹자고 한 것이고..."
"아! 그런 일이.. 잘 알았소이다. 그럼"

포권하며 물러나는 화지경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설지는 막 천년하수오를 숯불 속에 밀어 넣고 그 앞에 쪼그려 앉는 현진 도사를 보며 상큼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렇게 현진 도사가 천년하수오를 굽기 시작할 무렵 부터 다시 한번 후기지수들을 살펴 보기 시작한 초혜와 진소청은 그후로 반식경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른 후에야 후기지수들을 살펴 보는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설지 언니! 모두 이상 없어. 아직 깨어나지 못한 이들에게서도 별다른 이상을 찾지 못했어"
"그래, 수고했어. 청청 언니는?"
"예! 아가씨 제가 맡았던 이들도 대부분 깨어났고 별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잘 됐네, 그럼 이제 먹을 일만 남았나? 꼬맹이 어떻게 됐어? 다 익있어?"
"예. 설지 누님, 다 익었습니다. 드시면 됩니다."
"그래? 그럼 먹어야지. 아참! 아까 그 화산파 후기지수 어디있어?'
"응? 누구? 아! 목자성이란 사람?"
"그래! 그 사람, 그 사람 어디있어?"
"아가씨, 그 사람이라면 저쪽에 다른 후기지수들과 같이 있습니다."
"어디? 아! 저기 있구나. 목소협! 목소협! 잠깐만 이리 와 보세요"

그렇게 목청 높여 목자성을 부른 설지는 현진 도사가 잘 구워 놓은 천년하수오로 다가가 작은 나뭇가지로 여기 저기를 쿡쿡 찔러 보기 시작했다.

"이야! 잘 익었다. 꼬맹이 수고했어. 그럼 먹어 볼까, 혜아, 청청언니 먹자"
"응! 청청언니"
"예, 아가씨"
"꼬맹이 너도 먹어 봐"
"예. 설지 누님"


세 여인과 현진 도사가 잘 구워진 천년하수오를 막 입으로 가져갈 무렵 후기지수들과 함께 한쪽에 모여서 지난 밤에 있었던 기이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목자성이 숯불 쪽으로 다가 왔다.

"부르셨습니까?"
"아! 목소협, 어서오세요. 다른게 아니고 지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해서 말이예요"
"그 일이라면..."

하려던 말을 잠시 멈추고 화지경을 비롯한 매화검수들에게로 시선을 준 목자성은 화지경이 고개를 끄덕여 허락을 하자 자신을 비롯한 후기지수들이 지난 밤에 겪었던 일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정신을 잃기 직전 까지의 상황이었지만... 구체적인 내용들이 백아와 호아가 기이한 존재와 만나서 겪었던 일들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미루어 후기지수들이 만났던 비파를 든 여인이 백아 일행과 맞닥뜨린 존재와 동일 존재임을 확인한 설지는 마지막 남은 천년하수오 한조각을 꿀꺽 삼키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이제 그 기이한 여인을 만나러 가 볼까요?"
"무량수불! 출발하시겠습니까?"
"예, 아! 그 전에... 후기지수들은 여기 남아 있으라고 하시고 우리가 앞에서 올라갈거예요. 그러니 나머지 분들은 모두 저희 뒤를 따라 오세요."
"무량수불! 그리하겠습니다."
"아미타불!"
"원시천존!"

마지막으로 조심하라는 당부을 잊지 않은 설지가 초혜와 진소청을 돌아 보며 무언가를 당부한 후 호아를 앞장 세우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사람들을 바라 보는 후기지수들의 심정은 암담하기 그지 없었다. 어떻게 당한 것인지도 모르게 당해버린 것은 둘째치고라도 사문의 명을 어긴 셈이 되었으니 돌아올 불호령이 두려웠던 것이다. 한편 호아의 길 안내를 받으며 앞장서서 산을 오르던 설지 일행은 한식경 정도를 더 오른 끝에 주변과는 다른 일그러진 공간을 목격할 수 있었다.

"여기야? 음... 호아말대로네"
"설지 언니! 왠지 으시시해"
"그러게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느꼈던 기운 같은데..."
"예? 아가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응? 아냐, 아냐, 아직은 확실치 않으니까 기다려 봐."
"설지 언니, 들어가 볼거야?"
'아니, 지금 무언가 나오려고 하고 있어. 모두 조심해요."

설지의 입에서 조심하라는 당부가 막 나오자말자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부유하는 듯한 모습으로 예의 그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비파를 가슴에 안고 허공을 날아 오는 그 여인은 같은 여자인 설지가 보더라도 화용월태의 미모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왠지모를 음습함이 화용월태의 미모를 잠식하고 있기도 했다. 한편 그 여인이 허공 중에 모습을 드러내자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설지의 가슴 어림에 달려 있는 초아의 작은 잎사귀가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햤다. 그 모습이 반가운 누군가를 만나서 손짓으로 인사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발진"

허공을 미끄러져 나온 여인이 무엇때문인지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 설지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러자 진소청과 초혜 그리고 호아와 백아, 마지막으로 용아 까지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모습이 꺼지는 듯 사라지더니 다음 순간 비파를 든 여인을 가운데 둔 포진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 눈부신 속도를 제대로 따라 잡은 이는 설지 외에 아무도 없었으니 말 그대로 전광석화 같은 동작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람과 영수들에게 포위당한 비파를 든 여인은 잠시 당혹한 표정을 얼굴에 그리는 듯 하더니 이내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비파를 든 여인은 그 자리에서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설지의 주도 하에 펼쳐지고 있는 이 진은 십년전에 설지가 만들었던 무적 강시진을 약간 변형한 것으로 무엇이든 이 진안에 갇히면 해진이 될 때 까지 움직일 수 없게 하는 효용이 있는 진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저! 소저는 누구예요?"

진 속에서 설지가 이렇게 말하며 비파를 들고 허공 중에 떠 있는 여인의 근처에 까지 다가 갔다. 기이한 일은 설지가 다가갈수록 비파를 든 여인이 점점 아래로 내려 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지가 걸음을 멈춘 곳에서는 비파를 든 여인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바닥에 내려 서 있었다. 그런 여인을 향해 손을 뻗어 가던 설지가 갑자기 여인을 향해 나아가던 손길을 멈추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이상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천천히 눈 앞의 여인을 자세히 살펴 본 설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여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지켜보는 사람들 눈에는 분명히 설지의 손이 여인의 어깨 근처에 닿는듯 했으나 자세히 보니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인의 어깨에 다가간 설지의 손이 여인의 어깨를 뚫고 그대로 지나쳐 갔던 것이다. 하지만 피가 흘러 나와야 할 여인의 어깨 부위는 여전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였으며 설지의 손만 허공을 가르며 지나가고 있었다.

허상이었던 것이다. 실상과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완연한 기를 포함한 허상이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설지의 입에서 나직한 경탄성이 흘러 나왔다.

"햐! 신기하네. 그보다 이 기운은..."

'창작 연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협 연재] 성수의가 113  (0) 2013.03.17
[무협 연재] 성수의가 112  (0) 2013.03.10
[무협 연재] 성수의가 111  (0) 2013.03.03
[무협 연재] 성수의가 110  (0) 2013.02.24
[무협 연재] 성수의가 109  (0) 2013.02.17
[무협 연재] 성수의가 108  (0) 2013.02.03
Posted by 까만자전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