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 모두 멈추시오."

박산현의 관문에 다다른 마화 수송단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바로 관문을 지키는 수문장이었다. 성수의가의 의행으로 꾸미고는 있으나 절대 고수들의 숫자가 상당수 존재하는 탓에 마화 수송단의 행렬 곳곳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뻗어 나가는 것 까지는 숨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예기를 감지한 수문장은 다른 어느 때 보다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본관은 박산현의 관문을 책임지고 있는 수문장 경호라고 하외다. 어디서 오는 행렬인지 소속과 목적지를 밝히시오"
"무량수불! 빈도는 무당파의 청진이라 하외다. 본도와 일행들은 성수의가의 의행으로 하남성의 소림사로 향하고 있소이다"
"성수의가의 의행? 헌데 의원들의 모습으로는 보이지가 않소이다만"
"무량수불! 본도를 비롯한 무인들은 성수의가의 성수신녀와 두분 공녀님들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서 함께 하고 있는 것 입니다."
"흠! 안전을 책임진다라... 그렇다고 해도 너무 과한 것 같소이다만"
"무량수불! 허허! 과하다니요. 성수신녀와 두분 공녀님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부족하달 수 있습니다."
"흠, 뭐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허면 박산현에서는 얼마나 머물다 가실 예정이신지..."

그 순간 청진의 머리 속으로 설지의 전음이 날아 들었다.

-보표 아저씨! 넉넉잡아서 한 열흘 정도면 될 것 같아요. 
"무량수불! 신녀께서 한 열흘 정도 머물며 병자들을 살필 예정인지라 현재로써는 그 정도 머물 계획입니다."
"흠, 열흘이라... 알았소이다. 아! 그리고 양민들이 보는데서 함부로 무력 시위를 벌일 생각일랑 꿈에서도 하지 마시오"
"예.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믿겠소. 공연히 관과 마찰을 일으킬 생각이 아니시라면 그 약조 잊지 마시오"
"무량수불!"
"통과!"

수문장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커다란 관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통상적으로 양민들이 드나드는 관문 옆의 작은 문으로는 마화 수송단의 커다란 마차들이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려진 조치였다. 그그긍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관문이 완전히 개방되자 사람들의 시선 속으로 푸른 초지가 곧장 다가 왔다. 관문과 박산현의 열린 성문 사이에는 삼십장 정도의 초지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유사시에는 많은 수의 관병들이 숙영지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잘 관리되고 있었다.

"이야! 멋지다. 설지 언니, 그렇지?"
"그래! 정말 멋지구나. 객잔을 따로 잡을 필요 없이 여기서 숙영하면 될 것 같은데. 할아버지, 어때요?""
"허허. 네말대로 정말 좋구나. 그런데 우리가 사용해도 되는지 모르겠구나"
"여기서 병자들을 본다고 하면 굳이 말릴 것 같지는 않은데요. 보표 아저씨! 한번 여쭤봐 주실래요?"

관문을 들어서는 마화 수송단의 마차들을 살펴 보고 있던 청진 도사는 설지의 말을 듣고 잠시전에 대화를 나누었던 수문장에게 다가가 몇마디를 나누더니 금방 돌아와 고개를 끄덕였다.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하는군요."
"헤헤. 잘 됐다. 설지 언니"
"무량수불, 허면 청진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게 하고 숙영 준비를 하도록 하거라"
"예! 사숙조님"

마지막 마차가 관문을 들어서는 것을 끝으로 마화 수송단이 모두 초지 안으로 들어서자 청진은 서둘러서 행렬의 선두를 인솔하여 숙영 준비를 하게 하였다 마차들이 정차하는 소리와 말과 마차를 분리하는 소리, 그리고 짐 내리는 소리 등으로 부산한 가운데 박산현의 관문과 성문 사이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성수의가의 의행이 그렇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설지야! 그런데 말이다. 아까 그 놈, 수문장이라는 놈 말이다. 좀 이상하지 않더냐?"
"응? 뭐가 이상해?'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성수신녀라고 하면 강호인 뿐만 아니라 양민들 사이에서도 제법 명성이 높을텐데 성수신녀라는 말을 듣고도 별다는 반을을 보이지를 않았잖느냐?"
"맞아! 철대숙의 말대로 저기 수문장 아저씨 반응이 영 떨떠름했어"
"호호호! 난 또 뭐라고. 내 이야기를 못 들었을 수도 있잖아."
"그런가?"
"그렇다니까. 그리고 내게 봉황옥패가 있다는건 알려지지 않았을테니 말할 필요도 없고"
"흠! 하긴 주위 소문에 무관심하다면 모를수도 있겠구나."
"내말이 맞다니까. 그것보다 철숙부 얼굴이 왜 그래? 한달 전에 비해 팍 삭은 것 같은데?"
"응? 정말이냐? 너무 심심해서 죽을 것 같더니 결국 이렇게 얼굴로 드러나는게로구나"
"호호호. 정말 심심하긴 심심했나 보네. 가만... 이럴게 아니라... 설아! 나와 봐"

철무륵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설지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가방 속의 설아를 찾았다. 그러자 설지가 메고 있던 가방 속에서 무언가 작은 움직임이 이는 것 같더니 이내 설아의 작은 머리가 가방 바깥으로 쏙 올라 왔다. 요요로운 붉은 눈동자에 호기심을 가득 담은 설아의 머리를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두어번 톡톡 만져준 설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아! 그거 어떻게 됐어? 다 됐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지만 설지가 이렇게 이야기 하자 설아의 작은 머리가 그렇다는 듯 끄덕여졌다. 둘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던 듯 막힘없이 의사를 전달하는 설지였다.

"그럼 가지고 나와"

가방 바깥으로 머리 부분만 쏙 올라와 있던 설아의 작은 머리는 설지의 말을 들은 후 다시 가방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가방 속에서 작은 움직임이 몇차례 일더니 다시 설아의 작은 머리가 가방 바깥으로 쏙 올라 왔다. 하지만 지금 올라온 설아의 모습은 잠시 전의 모습과는 달랐다. 설아가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 작은 잎사귀 같은 것을 물고 있었던 것이다.


"수고했어, 설아. 이리 줘"

설지가 가방 속으로 손을 넣자 작은 잎사귀를 물고 있던 설아가 입에서 잎사귀를 떼었다. 그런 연후 설지가 조심해서 무언가를 들어 올리자 마침내 그것의 온전한 모습이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 왔다. 폐부를 시원하게 만드는 청량한 향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다름아닌 설지가 귀둔산에서 거두어들인 오천년 묵은 삼이었다.

"응? 그건 삼이 아니냐?"
"맞아! 삼이야. 그것도 오천년은 족히 묵은거야. 설아! 여기 침좀 발라 봐"

그러면서 설지가 손에 들고 있던 오천년 묵은 삼의 몸통을 설아의 입쪽으로 가져 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설아가 작은 입을 한껏 벌려 독아를 드러내더니 그대로 삼의 몸통에 박아 넣었다. 다음 순간 미약하지만 매캐한 독향이 설아의 독니와 삼의 몸통 사이에서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독향은 설아가 삼의 몸통에서 입을 떼는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철숙부! 이거 먹어. 설아가 침까지 발라 놨니까 무지하게 좋을거야?"
"응? 이걸 날 보고 먹으라고?"
"응! 염려말고 먹어. 먹고나면 이제 부턴 독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거야"
"독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아이 참! 숙부도 설아가 침바르는 것 봤잖아. 모르긴 몰라도 만독불침 정도는 될걸"
"그,그게 정말이냐? 그 귀한걸 내가 먹어도 되겠느냐?"
"응! 그러니까 잔말 말고 빨리 먹어. 피부도 고와질걸, 아마"
"그,그래. 알았다."

설지가 내민 삼을 받아든 철무륵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입으로 삼을 가져 갔다. 사람들이 아연한 표정으로 지켜 보는 가운데 순식간에 오천년 묵은 삼을 입속으로 모두 털어 넣은 철무륵은 마지막 잎사귀 하나 까지 꼬옥 씹어 삼킨 후 곧바로 운기행공에 들어 갔다. 그런 철무륵의 지근거리에는 설지로 부터 초록이라는 별호(?)를 부여 받은 녹림도가 두눈을 부라리며 호법을 서서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고 있었다.

"무량수불! 설지야, 저 삼을 철무륵 저 사람에게 복용하게 하는데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느냐?"
"응? 그건 왜요?"
"허허, 녀석, 너도 눈이 있다면 주변을 한번 둘러 보거라"

알성 도장의 말을 듣고 뒤늦게 주변을 둘러 본 설지는 그제서야 주변의 반응들을 확인한 듯 배시시 미소지으며 일성 도장을 바라 보았다. 일성도장이 이렇게 이야기하는데에는 무당과 소림을 제외한 타문파에서 혹시라도 설지와 철무륵을 시기하여 음해할까 저어해서였다. 이런 일성 도장의 심중을 눈치챈 설지가 입가에 환한 미소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성 도장의 염려를 불식시키는 한편 지켜 보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알리기 위해서 설지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음... 할아버지 그건 말이죠. 저 삼이 사기에 노출되었던 것은 아시죠?"
"그래. 지켜 보았던 이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더구나"
"설아가 스며든 사기를 흡수하기는 했지만 저 삼은 정종심법을 익힌 사람들과는 상생이 맞지 않아요. 오히려 마인들과 상생이 더 잘 맞는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예. 그래서 정종심법을 익힌 분들이 저 삼을 복용하게 되면 득보다는 실이 많기 때문에 철숙부에게 복용하라고 한거예요. 철숙부의 내공은 정종심법이 아니거든요."
"허허. 그랬구나. 허면 정종심법을 익힌 사람들이 복용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진다는게냐?"

지금 일성 도장의 이 말은 주변에서 지켜 보는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을 비롯한 각 문파의 수장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음, 음... 아마도 심하면 주화입마에 들것이고 운좋으면 내력 손실이 조금 있겠죠"
"허허허, 과연, 과연, 허면 철무륵 저 사람이 복용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더냐?"
"설아의 침까지 발라서 드렸으니 아마도 환골탈태를 거치고 나면 만독불침은 될거예요."
"환골탈태? 허허허. 철무륵 저 사람은 설지 네 덕에 벌써 두번이나 기연을 맞이하는구나."

그랬다. 철무륵은 이미 십여년전에 설지가 준 공청석유를 먹고 한차례 환골탈태를 했던 적이 있었다. 이제 설지 덕분에 두번째 환골탈태의 기연이 철무륵에게 찾아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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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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