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가 설아의 침을 잔뜩 발라서 선심 쓰듯이 안겨준 삼을 복용한 철무륵이 두번째 환골탈태의 기연을 맞이하기 위하여 운공 삼매에 빠져들던 그 순간 일단의 사람들이 숙영 준비를 마쳐가던 마화수송단을 찾아 왔다. 먼길을 온 듯 여기 저기 때가 묻고 헤어진 남루한 의복을 갖춰 입은 그들은 등에 커다란 봇짐들을 하나씩 둘러 매고 있어 언뜻 보기에 상인들의 행렬로 보였다.

십여명에 달하는 상인 무리는 분주히 움직이며 숙영 준비를 마무리하는 마화수송단을 잠시 살펴 보다 마침내 찾는 것을 발견한 듯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 상인들 틈에서 상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 하나가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는 무인 하나를 불러 세웠다.

"실례하겠소이다"
"흠, 무슨일이요?"

근처를 바쁘게 지나가던 공동파의 후기지수는 자신을 불러 세우는 상인들을 힐끗 바라본 후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어쩔 수 없이 성수의가의 의행으로 위장하고 있지 않았다면 상인들과 말을 섞는 일 따위는 결코 없었을 것이라는 내심이 그렇게 간접적으로 표현되어 나온 것이었다.

"아! 바쁘신데 미안하외다. 우린 사천에서 온 약재상들이오. 성수의가의 표기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아하니 의행인 듯 한데 혹여 필요한 약재가 있으신가 해서 말이오"
"약재? 흠, 여기서 잠시 기다려 보시오. 내 여쭤보리다"

다른 물건을 호객하는 상인이었다면 쫓아 버렸겠지만 의가의 의행에서 약재상을 내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약재상들을 일별한 공동파의 후기지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한번 내쉬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마화수송단의 행렬을 총괄하는 청진 도사 앞이었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무량수불! 무슨 일인가?"
"예. 다름이 아니라 십여명에 달하는 약재상들이 찾아와 필요한 약재가 없는지 물어 보고 있습니다."
"약재상?"
'예. 사천에서 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당문과 거래하는 약재상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 그 상인들은 지금 어디 있나?"
"저쪽에 있습니다."

공동파의 후기지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청진 도사의 눈에 한눈에 보기에도 상인들로 보이는 십여명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두런거리는 모습이 비쳐 들었다.

"알겠네.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자넨 그만 가보게'
"예!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공동파의 후기지수가 공손히 포권을 하고 물러가자 청진 도사는 약재상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두어 발자국을 떼어 상인들을 향해 걸어가던 청진 도사는 문득 자신의 기감에 날카롭고 상스러운 예기가 한쪽에서 감지됨을 느꼈다. 바로 철무륵이 삼을 복용하고 운공 삼매에 빠져 있는 곳이었다. 잠시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 청진 도사는 일성 도장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설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부드러운 미소을 한차례 지어 보인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무량수불! 빈도는 무당파의 청진이라 하외다."
"아이고. 이거 도사님께서 친히 걸음을 주시다니 반갑습니다."
"예. 저도 반갑습니다. 한데 약재상들이시라고..."

호들갑스럽게 자신을 반겨주는 상인 하나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가던 청진 도사는 상인들 무리에서 뜻밖에도 아는 얼굴 하나를 발견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떠올려야 했다. 자신이 아는 한 분명 그 사람은 상인이 아니었다.

"아니, 귀하는..."
"하하. 반갑소이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던 청진 도사는 갑작스럽게 들려 오는 전음에 흠칫했으나 이내 신색을 회복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새로 인사를 건네온 상인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겉으로는 평범한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반갑소이다. 청진 도사. 지금 공무 수행중이니 아는 체 하지 마시고 도와 주시오.

- 장포두가 맞으시군요. 무슨 일이십니까?

- 예. 다름이 아니라 박산현에서 부녀자 실종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고 하여 내사 중에 있습니다.
- 아! 그 일이라면..

- 무언가 아시는게 있으시오?
- 예. 하지만 저 보다는 성수신녀께 직접 들으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성수신녀? 허면 공주마마께서 이곳에 행차해 계시다는 말씀이시오?
- 예.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자세한건 신녀께 직접 여쭈어 보시지요.

- 그리하겠습니다.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지..

- 물론입니다. 따라 오시지요.

"하하하! 그런 걱정은 마시오. 이래뵈도 우린 사천당문에 약재를 납품하는 장사치들이라오. 좋은 약재가 많이 있으니 염려 놓으시고 말이나 잘 전해 주시오.

"무량수불! 허면 따라들 오시지요. 성수신녀께 안내해 드리겠소이다"
"부탁드리겠소."

혹여 내사에 도움이 될까 싶어 나운학을 만나러 왔던 장학일 포두와 겉과 속이 전혀 다른 대화를 나눈 청진 도사는 상인으로 위장해 있는 관인들을 안내하여 설지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 철무륵의 운공 삼매는 정점에 달해 있었다. 반장 정도 높이의 허공 중에 둥실 떠오른 철무륵의 입과 코로는 쉴 사이 없이 뿌연 기류가 드나들고 있었으며 종내에는 머리 위로 세개의 꽃봉우리와 같은 환영이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무공의 최상위 단계라는 삼화취정의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허! 저 사람 기어이 정점에 도달하는군."
"우와! 설지 언니, 저 예쁜 꽃봉우리 모양이 삼화취정이라는거야?"
"그래. 숙부도 마침내 대성을 이루게 되네"
"헤헤. 철대숙은 좋으시겠다.

일성 도장과 초혜가 감탄사를 터트리는 그 순간 철무륵의 호법을 서고 있던 초록이는 자신들의 총표파자가 무의 정점인 삼화취정에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감격에 겨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산적들이라고 도적놈들이라고 업신여김을 받던 자신들의 총표파자가 무림사를 통털어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소수의 사람들만 벽을 통과했다는 삼화취정의 단계에 들어서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던 것이다. 

한편 철무륵의 그런 모습을 바라 보며 자신의 소매로 눈 밑을 연신 쓱쓱 문질러 눈물을 훔쳐 내기에 바쁜 초록이와 달리 기절할 둣이 놀라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마화수송단의 후기지수들과 상인들로 위장한 장포두를 비롯한 관인들이었다. 자신들도 무공을 익히고 있기에 지금 철무륵이 보이는 현상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알고 있었던 것이다.

평생을 고련한다고 해도 당도하리라고 보장하지 못하는 삼화취정의 단계를 직접 눈으로 목도하고 있으니 그 놀라움이 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철무륵의 모습을 편안하게 바라 보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화산파를 비롯한 각 문파의 수장들이었다. 더욱 증진한다면 자신들도 언젠가는 도달하게 되겠지만 지금 이 순간 각 문파의 수장들 가슴 속에서 피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기심이었다.

"무량수불! 신녀께 손님들이 찾아 오셨습니다."
"응? 손님이요? 갑작스럽게 손님이라니 누군데요?"
"보시면 아실 것 입니다."

철무륵이 단숨에 삼화취정의 벽을 넘고 안정 단계에 도달 할 무렵 청진 도사의 안내를 받은 관인들이 설지에게 안내되었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대신한 장포두가 서둘러서 전음으로 설지에게 자신들이 찾아온 용건을 이야기 하기 시작하자 심각한 표정이 되어 가던 설지는 곧 바로 관인들을 이끌고 무당파가 마련한 커다란 천막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세! 천세! 천천세! 신 포두 장학일 공주마마께 문후드립니다."

설지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던 듯 천막 안으로 들어온 관인들은 일제히 오체투지하며 왕족을 대하는 예를 차렸다. 한편 그 모습을 본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은 내심 무척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매화검수인 화지경으로 부터 설지가 대정국의 공주 신분이라는 얘기를 얼핏 듣기는 했으나 실감을 하지 못하다가 관인들임이 분명한 자들이 몰려와 왕족을 대하는 극진한 예로써 설지를 대하는 것을 보고 마침내 공주 신분이라는 것이 새삼 피부로 와닿았던 것이다.

"어서오세요. 장포두! 그러고 보니 왕포쾌도 계시는군요."
"예. 공주마마 신 왕팔 공주마마께 문후 드립니다."
"그래요. 그런데 여기 까지는 어쩐 일이세요? 두 분은 호북성 상직현 소속이 아니던가요?"
"예. 마마, 소신들은 마마 덕분으로 승차하여 현재는 기찰 포두로 지내고 있습니다."
"기찰 포두? 기찰 포두가 뭔가요?"
"예. 마마, 기찰 포두란 폐하께 받은 황명을 직접 수행하는 직책으로 각 성의 관할에 대한 제약이 없는 직책이옵니다."
"아! 그렇다면 비밀 감찰 기관 같은 것이군요?"
"예. 마마. 그렇사옵니다." 
"호호, 잘됐네. 두 분 축하드려요"
'마마, 황송하옵게도 이 모두가 마마의 덕분이옵니다"
"호호호, 아니에요. 강직하신 두 분을 제대로 알아보신 폐하 덕이겠죠. 하여간 부녀자 실종 사건을 내사하고 있으시다고요?"
"그러하옵니다. 무당파의 청진 도사가 마마께 여쭈어 보면 얻는게 있을 것이라고 해서 마마를 알현하게 되었사옵니다."
"잘하셨어요. 그게 어떻게 된거냐고 하면..."

설지로 부터 매군려와 그녀의 부친, 그리고 인간 사냥에 대한 이야기 까지 긴 이야기를 전해들은 장포두와 그 일행들은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돌아 보았다. 인간으로써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현령의 아들과 관병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모두가 함께 느꼈던 것이다.

"아! 장포두 아저씨, 여기 혜아랑 청청 언니와도 인사하세요"
"예? 혜아와 청청이 누구신지요?"
"아이 참, 초혜와 진소청 언니 말이예요"
"아! 그렇다면 여기 두 분 소저가..."
"맞아요. 작은 쪽이 혜아고 그 옆이 청청 언니예요"
"허허, 진소저 반갑소이다. 그리고 초소저도 반갑구려. 초소저는 정말 몰라 보겠소이다"
"헤헤. 반가워요. 장 아저씨, 왕 아저씨."
"장 포두님, 왕 포두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장학일과 왕팔은 초혜와 진소청과 인사를 나누면서 눈부시다는 생각을 거의 동시에 떠올렸다. 예전의 그 꼬맹이와 작은 소녀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없었고 그저 눈부신 자태의 두 미녀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잠시 옛 기억을 떠올렸던 장학일은 신색을 바로 하고 설지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마마! 허면 염두에 두신 방안이라도 있으신지요"
"음, 글쎄요. 전 초절정 꽃미녀인 우리 막내를 미끼로 활용해 볼까 생각 중이예요"
"초절정 꽃미녀 막내라면... 초소저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헤헤, 저 맞아요. 그런데 그 초절정 꽃미녀라는 말이 예쁘다는 말이 아니고 못난이라는 말이예요."
"응? 초소저 그 무슨 말이요?"
"음, 그게 말이죠. 제가 초절정 꽃미녀고 청청 언니는 초초절정 꽃미녀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지 언니는 초초초절정 꽃미녀이기 때문에 당연히 제가 가장 못난이라는 그런 말을 돌려서 말한 거예요. 헤헤헤."
"호호호"
"허허허"
"하하하"

때 아닌 훈풍이 초혜의 말 한마디를 타고 불어와 무겁게 가라 앉아 있던 천막 안의 분위기를 다소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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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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