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지금 그 말 사실인가?"
"예! 그렇소이다."
"한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냔 말이네."
"장문인! 그만 진정하시게. 분타주라고 했던가? 자초지종을 세세히 이야기 해보게나"
"예. 도장 어르신. 그러니까..."

흥분한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을 일단 진정시킨 일성 도장이 박산현의 개방 분타주에게 자초지종을 물어 오자 침을 한차례 꼴깍 삼킨 분타주는 그때 부터 자신이 박산현의 분타원들을 대동하고 부리나케 달려 오게 된 연유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 부터 긴 시간 동안 이어진 분타주의 말을 요약하자면 시작은 제갈세가에서 부터 였다고 한다.

같은 제갈 성씨를 사용하면서도 방계라는 이유로 늘 푸대접을 받으며 후계 구도에서 멀어져 있던 세가주의 서자가 자신을 추종하는 방계 세력들을 한데 모아 세가주를 비롯한 가문의 장로들을 동시에 압습하여 제압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비슷한 일은 황보세가와 남궁세가에서도 동시에 일어 났으며 종내에는 하북팽가와 사천당가에서도 방계 세력에 의해 세가주를 비롯한 장로들이 모두 제압당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지금 오대세가의 가주가 모두 교체되었으며 그 일이 있은 후로 각 세가는 외부와의 연락을 모두 차단하고 봉문에 들어가다시피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것이다.  

"허면 구파일방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예. 도장 어르신. 그러니까 구파일방에서도..."

오대세가에서 변고가 있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구파일방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허나 오랜 전통의 구파일방에서는 같은 씨족 중심의 세가와는 달리 장문인이 바뀐다거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장문인 후계 구도에서 멀어져 있던 일대 제자와 그를 따르는 일부 이대 제자들이 방심하고 있던 장문인들과 장로들을 암습하여 심각한 부상을 입히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 되었으며 주모자를 포함한 반도들은 모두 제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부 장문인들은 심각한 부상을 입어 위중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화산은? 우리 화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하던가?"
"아! 예, 장문인. 화산에서는 태허, 태일 두분 장로님이 암습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뭣이? 사제들이... 누구라던가, 어느 놈이 감히"
"예. 그것이... 화지경대협의 사제인 곽숭 소협이..."
"뭐라? 곽숭! 감히 그 놈이..."

곽숭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부터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의 몸에서는 자욱한 살기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살기를 가장 가까이서 받고 있는 박산현의 개방 분타주는 지금 죽을 맛이었다. 살갗을 뚫고 들어 오는 살기가 몸서리쳐질 만큼 따끔따끔 했던 것이다. 허나 그 같은 사실을 입밖으로 토해내기에는 시기와 장소가 너무 좋지 않았다. 그저 나 죽었소 하고 참는 수밖에... 헌데 그렇게 살갗을 파고드는 살기를 참아가며 눈을 데구르르 굴리던 분타주의 눈에 묘한 인원 구성이 눈에 띄었다.

상인으로 위장한 관인들과 만개한 부용 처럼 눈부신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세 여인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었다. 그리고 그 묘한 인원 구성을 발견한 순간 부터 분타주의 머리는 쉴새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들의 신원을 밝혀줄 단서가 자신의 머리 속 어딘가에 있기를 기대하면서...

"장문인, 진정하시게. 흥분해서 될일이 아니네"
"흠, 흠, 죄송합니다."
"되었네. 그보다 갑작스러운 이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글쎄요? 일성자께서는 짐작 가시는 바라도 있으신지..."
"다들 모여 보시게. 아마도 이번 일은 십여년전 쯤에 있었던 혈사교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 같네"
"예? 갑자기 혈사교라니요? 그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성수의가에 의해 멸문당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처음에는 다들 그런 줄 알고 있었지. 허나 저기 저 아이 설지가 처음 중원으로 나오던 십년전에 혈사교의 잔당들이 발견되었었네. 더불어 그 잔당들과 관련 있어 보이는 이들이 마공을 익혔던 것도 확인했었지."
"아미타불! 사실이외다. 당시 신녀 께서 저희 소림에 숨어 들어 있던 마승들을 찾아 내셨지요. 덕분에 저희 소림에서는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고 말입니다."
"무량수불! 혜명 대사의 말 그대로 일세. 당시 설지가 마공을 익힌 무인들을 찾아낸 덕에 소림과 우리 무당에서는 마공을 익힌 존재들에 대한 조사를 실시 했었다네. 아마 당시 다른 구파일방에서도 이 같은 통보를 받았을 것이야. 마공을 익히고 있던 이들이 표국과 전장의 후계자였기에 무심코 넘겨 버릴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지. 다들 기억하시는가?"

일성 도장이 이렇게 묻자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을 비롯해서 마화 수송단에 합류한 각 문파의 수장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했다. 당시 자신들의 문파에서도 그 같은 사실을 통보 받고 잠시나마 장로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이다. 허나 결론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으며 소림과 무당 처럼 대대적인 조사 역시 실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로 각 문파에서는 장문인과 장로들이 압습당하는 사태가 오늘날 발생하게 된 것이다.


"허나, 그건 억척이지 않겠소이까? 마공을 익힌 자들이 발견 되었던 것이 벌써 십년전의 일인데 그동안은 잠잠하다가 갑작스럽게 일련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 이해가 되질 않소이다"
"그게 그렇지 않네. 내 짐작이 맞다면 이번에 사건을 일으킨 자들 역시 마공을 익혔을 것이야. 어떤가? 분타주?"

설지와 장포두 일행을 관찰하며 정체를 캐낼 단서를 찾고 있던 박산현의 개방 분타주는 갑작스럽게 날아든 질문에 화들짝 놀라 몸을 한차례 움찔하면서 황급히 입을 열었다.

"예. 예. 맞습니다. 오대세가는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구파일방에서 이번에 사단을 일으켰던 자들은 모두 마공을 몸에 익히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가?"
"허! 어찌 이런 일이.."
"무량수불! 아무래도 무림에 한차례 혈풍이 불것 같구먼"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허허, 생각해 보시게. 이번 사태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같은 일을 위해서 무려 십년 동안이나 준비를 해왔다고 생각해 보시게"
"그런..."
"그렇다네. 아무래도 드러난 혈사교와 마공에 더해서 우리가 소림사로 옮겨 가고 있는 마화도 이번 일과 무관하지만은 않은 것 같네"
"허면 이대로 마화 수송을 계속할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나? 왜? 다들 자파로 돌아가고 싶으신겐가?"
"돌아가서 수습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관두시게. 반도들도 무사히 제압했다고 하니 우리는 여기서 추이를 지켜 보며 대책을 세우는게 나을 것 같네. 상대가 누군지 명확하게는 모르지만 눈을 돌리는 분산의 효과도 있을 것 같고 하니 그냥 예정대로 소림사로 향하는 것이 나을 것 같네."
"흠, 글쎄요."
"내 말대로 하시게. 만에 하나 최후의 보루 하나는 남겨 두어야 하지 않겠나. 그 최후의 보루가 우리라고 생각들 하시게"

 

일성도장의 말이 이렇게 매듭지어지자  장내의 분위기는 싸늘 하게 식어 갔다. 누군지 모르지만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을 동시에 노리고 배후에서 획책을 했다. 그것도 십년간이라는 긴 준비 기간을 거쳐서...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누군가가 암흑 속에 숨어서 무림 전체를 노리고 있다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아니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이에 거대한 암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의 마음은 점차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몇명을 제외하고...

"어떤 시러베 잡놈이야? 무림이 무슨 시전에서 파는 당과도 아니고 그렇지 않느냐, 설지야?"
"응? 호호호, 맞아, 당과랑 무림이랑 동격은 아니지."
"그렇지? 혈사굔지 뭔지 잡히기만 하면 이 숙부가 아주 패대기쳐 놓을테니 염려말거라."
"그 말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그 보다 비아 놈은 지금 어딨느냐?"
"응? 비아는 갑자기 왜?"
"얘들 싸그리 불러 올려면 비아가 가장 빠르지 않겠느냐?"
"아! 그 녹림이십사 뭐라고 하던 산적떼 아저씨들?"
"그래. 그리고 이 놈아 산적떼가 아니고 녹림이십사절객이라고 한다."
"그게 그거지 뭐, 혜아 내 말이 맞지?"

고개를 앞뒤로 크게 움직여 동의를 하는 초혜였다.

"크하하, 그래, 그래, 산적떼면 어떻고 녹림이십사절객이면 어떻겠느냐. 비아나 부르거라"

"알았어. 비아! 이리 내려 와"

설지가 비아를 부르는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천막 속을 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던 작은 목소리였지만 잠시 후 창공에서는 끼익 하는 날카로운 매의 고성이 응답 처럼 들려왔다. 신기하게도 그 작은 목소리가 높은 창공을 비행하던 비아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던 것이다. 철무륵이 신기하다는 듯 설지의 입을 유심히 바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한거냐?"
"응? 뭐가?"
"아니 방금 비아를 부른거 말이다. 그거 어떻게 한거냐고?"
"아! 그거 전음이야"
"엥? 전음? 그러니까 우리가 상대방이 못 듣도록 속으로 웅얼거리는 그 전음이란 말이냐?
"그렇다니까?"
"허. 그 참 신기한 놈들이로세"
"아이 참, 신기하기는 뭐가 신기해, 그 보다 산채에는 뭐라고 적어 보낼거야?"
"응? 아! 그게 말이다. 그래, 이렇게 적어 보내거라. 방울 소리나도록 달려 오라고."
"알았어. 방울 소리... 가만, 방울 소리? 철숙부! 산적떼 아저씨들 방울 가지고 있었어?"
"응? 아! 그, 그게..."
"아휴! 바보 언니, 설지 언니!"
"요것이"
"헤헤. 이거 말이야, 이거"

그러면서 초혜가 양손의 엄지와 검지을 각각 동그랗게 말아서 서로 부딪치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그런 초혜의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두 눈을 멀뚱거리며 '그게 뭐야?'라고 하는 표정을 짓는 설지였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꼬맹이 도사 현진의 입에서는 기어코 억눌린 웃음 소리가 터지고 말았다.

"큭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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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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