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어쭈, 꼬맹이 도사, 너 왜 웃어?"
"아,아닙니다. 큭큭큭"
"허허허"

결국 지켜 보고 있던 일성 도장의 입에서도 기어코 웃음 소리가 흘러 나오고 말았다. 한편 날카로운 소성을 토해내며 숙영지의 상공을 한바퀴 선회한 비아는 설지가 있는 곳을 향해 서서히 날아 내리다 숙영지 반대편의 하늘 위에서 작은 움직임 하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었다. 작은 움직임이 있었던 하늘 아래 숲속에서 방금 작은 비둘기 한마리가 발목에 무언가를 차고 날아 올랐던 것이다.

설지로 부터 말을 듣기는 했지만 늘 대충 흘려 듣는데 그쳤던 비아의 눈에도 그 비둘기는 분명 인간들이 연락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전서구 처럼 보였던 것이다. 어떻게 할까 하는 망설임은 순간이었다. 날아내리던 동작을 접고 순식간에 방향을 바꾼 비아가 전서구를 향해 빛살 처럼 쏘아져 나갔다.

"어라? 설지 언니, 비아 좀 봐"
"응? 저 녀석 갑자기 왜 저래?"

설지와 초혜가 이렇게 갑작스러운 비아의 행동에 의문을 표하고 있을 때 전서구를 향해 쏘아져 나갔던 비아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앞발로 전서구을 일거에 낚아챈 후 방향을 돌려 다시 설지를 향해 날아 내리기 시작했다. 말을 길었지만 순식간에 이루어진 그 같은 비아의 움직임 뒤로는 날카로운 발톱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는 전서구의 구슬픈 비명만이 가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비아! 그게 뭐니?"
"가만, 저건 전서구 아니더냐. 이리 줘 보거라"
"전서구라고? 어디..."

비아가 낚아챈 비둘기가 전서구임을 가장 먼저 알아본 철무륵에 의해 전서구의 발목에 묶여 있던 전서가 풀어헤쳐졌다. 그런데 그렇게 풀어헤친 전서에는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예상 못했던 뜻밖의 내용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박산현 야숙, 혈사자 13호>

짧은 내용의 전서를 확인한 철무륵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 나왔다

"혈사자!"
"철숙부! 왜 그래? 혈사자는 또 뭐야?"
"흠. 그러니까 그게 말이다. 혈사자란 예전 혈사교에서 부르던 명칭이란다. 말하자면 일종의 정찰대 같은 것이지"
"혈, 사, 교!"

철무륵의 입에서 혈사교란 말을 다시 듣게 되자 설지의 태도가 갑작스럽게 돌변했다. 그리고 그런 설지의 입을 통해서 한자 한자 끊어서 씹어 뱉듯이 내뱉어 지는 음성에서는 서늘한 한기가 스며 들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설지의 변화된 모습에 철무륵 까지 흠칫 할 정도로 설지의 변한 모습은 모두에게 충격적으로 다가 들었다. 서늘한 한기가 스며든 음성에 이어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의 날카로운 살기가 설지의 전신에서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저쪽이었지? 청청 언니, 혜아 가자"
"예! 아가씨"
"알았어, 설지 언니!"

일성 도장 조차 한번도 본적 없는 섬뜩한 살기를 표출했던 설지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비아가 전서구를 낚아 챘던 방향 쪽으로 백아와 호아를 대동하고 소림의 연대구품을 시전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설지의 뒤를 따라 진소청과 초혜 역시 연대구품을 시전하여 사라지고 나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일성 도장이 청진 도사를 재촉했다.

"청진은 뭘하는게냐. 속히 따라 가지않고"
"아! 예. 사숙조님"
"아미타불! 공각도 따라가 보게"
"아미타불! 알겠습니다. 원주님"

무당십이검과 소림 십팔나한이 막 사라진 설지의 뒤를 따르기 위해 경공을 시전할려는 그 순간 화산의 매화십이검수들도 장문인의 명을 받들어 일행에 합류하여 설지의 뒤를 함께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보다 한발 앞서 설지가 사라진 방향을 따라 달려가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철무륵이었다. 그렇게 철무륵과 삼파의 절대고수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기 시작한 그 순간 설지는 이미 전서구가 날아 올랐던 숲 가까이에 당도해 있었다.

"멈춰!"

뒤 따르던 진소청과 초혜를 잠시 멈춰 세운 설지가 기감을 확장하여 숲 전체를 살펴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뜻밖에도 십년전 처음으로 강호에 나왔을 때 한번 느꼈던 익숙한 기운 십여개가 숲 한쪽에서 전해져 왔다. 그 익숙한 기운이란 다름아닌 무적강시공을 탄생하게 만들었던 강시에게서 느꼈던 바로 그 기운이었다. 생기라고는 단 한올도 느껴지지 않았던 그 강시의 기운을 십년이 훌쩍 지난 박산현에서 다시 감지한 설지는 약간의 당혹성이 섞인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강시의 기운인데?"
"강시라고 하셨습니까?"
"응! 청청 언니, 십여구 정도 되는 강시가 저 안에 있어"
"어멋! 설지 언니, 강시라면 그 죽지도 살지도 않은 괴물들을 말하는거잖아"
"그래. 그 괴물들이야. 청청 언니, 혜아,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 아무래도 이번 강시는 위험한 놈들 같애"
"알았어, 설지 언니"
"예. 아가씨"

그렇게 말하면서 초혜는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었고 진소청은 차고 있던 검집에서 서늘한 예기를 발산하는 검을 꺼내 들었다. 묵혼을 가져오지 않은 설지는 초혜 처럼 두 주먹을 말아 쥐고는 강시의 기운이 느껴지는 숲 속을 향해 성큼 성큼 걸어 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전혀 조심하는 발걸음이 아니었다. 그런 설지의 뒷 모습을 일별한 초혜가 못말리겠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뒤를 따랐다.

"아휴! 정말, 설지 언니는 조심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어"


진소청을 마지막으로 세 여인들이 숲 속으로 사라져간 그 자리에 잠시 후 철무륵이 당도했으며 이어서 무당십이검과 소림 십팔나한 그리고 화산의 매화십이검수가 속속 당도하여 주변을 경계하며 설지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무량수불! 총표파자, 신녀께서는..."
"이쪽이외다."

청진 도사의 물음에 철무륵이 손을 들어 숲 한쪽을 가리켰다. 철무륵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희미하지만 사람의 흔적이 분명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일행들에게 더욱 확신을 심어준 것은 숲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숲 안쪽에서 들려 왔던 것이다.

"내가 먼저 갈테니 뒤 따라들 오시오"

날카로운 소성을 접한 철무륵이 다급하게 한마디를 남기고 가장 먼저 숲 속으로 뛰어 들었다. 뒤를 이어서 무당파와 소림사 그리고 화산파의 순으로 절대고수들이 숲 안쪽으로 걸음을 옮겨 놓는 그 순간 강시의 기운을 따라 숲 속으로 가장 먼저 뛰어 들었던 설지는 자신의 예상대로 숲 안쪽에서 강시 열두구와 그를 조종하는 혈의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되었음에도 강시들을 조종하는 혈의인의 태도는 느긋하기만 했다. 아마도 강시의 위력을 믿고 있는 듯 했다.

"이봐요! 거기 빨간 옷 아저씨!"
"흐흐흐, 무슨 일이신가? 귀여운 소저"
"아저씨가 혹시 혈사자 13호인건가요?"

설지의 입에서 나온 혈사자 13호라는 말에 잠시 당황한 듯 보였던 혈의인은 이내 신색을 회복하고 괴소를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응? 크크크, 본좌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네가 말한 혈사자 13호가 바로 본좌이니라"

자신을 혈사자 13호 라고 밝힌 혈의인은 자신이 날려 보낸 전서구가 비아에게 잡혔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듯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비아의 비행 방식이 워낙 은밀하고 빠르기 때문에 전서구가 날아 가는 것을 눈여겨 보고 있지 않았다면 하늘 위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모두 알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기 생기가 전혀 없는 저것들은 강시가 틀림없겠군요?"
"뭐라? 아니 네년이 그걸 어떻게 아는게냐?"

그 순간이었다. 무언가 쉭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혈의인은 자신의 팔 한쪽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서 두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진소청이 느닷 없이 검기를 날려 혈의인의 팔 한쪽을 잘라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동작이 너무도 간결하여 혈의인은 자신이 미처 공격당했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팔 한쪽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혈의인은 자신의 팔 한쪽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두 눈 멀거니 뜨고 지켜 봐야 했으며 곧이어 음습하는 지독한 고통으로 인해 생전 처음으로 울부짖는 듯한 비명성을 입으로 토해내야 했다.

"크아악"
"죄송합니다. 아가씨"
"아니, 잘했어, 청청 언니"
"자, 다시 대화를 계속해 볼까요? 그리고 아셨겠지만 그 입 함부로 놀리지 않는게 좋을거예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끔찍한 고통에 울부짖었던 혈의인은 팔이 잘려 나간 부위를 빠르게 점혈하여 일단 지혈을 한 후 죽일 듯한 눈빛으로 으르렁거리듯이 입을 열었다.

"대화라고? 크크크, 죽일년, 모두 공격해"

그렇게 으르릉거리듯이 외침을 토한 혈의인이 한걸음 뒤로 물러 나자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움직임이 없던 강시들이 일제히 움직여 설지를 비롯한 세 여인에게 다가 서기 시작했다. 그런 강시들의 모습을 본 설지의 머리 속으로는 지금 이 순간 의아함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분명 십년전의 강시들과 지난번 무당산을 향할 때 만났던 혈강시들은 종 모양의 마혼령에 의해서 조종당했었는데 지금의 강시들은 혈의인의 '공격해'라는 한마디에 자신들에게 다가 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십년전의 강시들은 분명히 양쪽 견정혈 두곳을 조문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지난번 혈강시들과 지금의 강시들에게서는 그런 조문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모두 조심해! 이번에도 조문이 없는 놈들이야"

한편 설지가 조문이 없는 또 다른 강시의 등장에 의아해 하고 있는 그 순간 강소성과 산동성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취록산의 이름없는 한 동굴에서는 기이한 음성 하나가 동굴 벽을 울리고 있었다.

"크크크, 나찰마라고 했더냐? 멍청한 놈! 멍청한 네 놈의 몸뚱아리는 본좌가 잘 사용해 주마"

질식할 듯한 마기가 가득차 있는 동굴 속에서 들려 왔던 뜻모를 음성은 동굴 벽을 울리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그렇게 멀어져 갔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벽지의 한 동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중원 무림 전체를 혼돈으로 몰고 가는 거대한 폭풍의 전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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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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