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 혈마를 뵙습니다."

뜻모를 음성 한조각을 동굴 안에 남겨 놓았던 미지의 인물이 막 동굴을 벗어나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동굴의 입구에서 부복하고 있는 다섯명의 혈의인들이었다. 설지로 부터 빨간 옷 아저씨로 불렸던 혈사자 13호와 같은 복색인 것으로 보아 이들 역시 혈사자의 일원들인 것 같았다.

"크크크, 네놈들은 누구냐?"
"예? 아! 속하들은 혈사자들 입니다."

자신들의 정체를 묻는 혈마의 모습에 의아한 듯 잠시 고개를 갸우뚱 했던 혈사자 1호는 이내 신색을 바로 하고 머리를 다시 한번 처박으며 입을 열었다.

"혈사자라고? 허면 네놈들 중에서 1호라고 불리는 놈도 있겠구나?"
"예? 그, 그것이 속하가 1호입니다. 헌데 그걸 갑자기 왜 물으시는지 혹여 속하들이 무슨 실수라도..."

혈사자 1호라고 자신을 밝힌 혈의인은 이상하게 대화가 겉도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혈마 스스로가 고른 정예들 중에서도 정예들로 구성된 혈사자가 바로 자신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자신들을 알아 보지 못하는 듯한 혈마의 말에 혈사자 1호의 의문이 증폭되어 갈 즈음이었다.

갑작스럽게 혈마의 모습을 한 미지의 인물에게서 살기와는 비교 조차 되지 않는 끔찍한 마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부복한 혈사자들을 덮쳐 왔다. 뒤이어 자신들을 덮친 마기에 옴짝달싹 못하게 된 혈사자들은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말을 더듬어야 했다.

"혀,혈마시여! 소,속하들이 무슨 잘못이라도...크으으"
"크크크. 네놈들이 감히 본좌에게 의문을 표한다는 말이더냐? 네놈들은 그저 본좌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되느리라. 본좌의 말을 알아들었느냐?"
"추,충!"
"크크크, 그래, 그래야지. 헌데 저것들은 뭐냐?"

혈마의 모습을 한 미지의 인물이 마기를 거두고 나자 비로소 한숨돌리게 된 혈사자들은 부복한 채 혈마가 시선을 주고 있는 방향을 슬쩍 바라 보았다. 거기에는 오십여명의 무인들이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바라 보고 있었다. 언뜻언뜻 붉은 혈광을 안광으로 토해내는 그들은 바로 설지 일행이 부딪치고 있는 강시들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강시들이옵니다."
"강시? 크크크, 재미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있구나. 헌데 저런 것들은 절대 고수의 강기 앞에서는 소용이 없을텐데?"
"예? 아,아닙니다. 저 강시들은 절대 고수들의 강기에도 견딜수 있게 지난 십년간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여 절대 고수라고 하더라도 쉬이 물리치기 어려울 것 입니다."
"호오! 그래? 그럼 어디..."

말과 동시에 혈마가 슬쩍 손짓을 하자 그의 손에서 커다란 강기 하나가 빠져 나오더니 우두커니 서 있는 강시들을 향해 날아 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강기에 직격 당한 강시 하나가 요란한 소음과 함께 뒤로 나동그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혈마가 날린 강기에 정통으로 적중 당한 강시가 쓰러진 채 뒤척이는 것 같더니 곧이어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호오! 재미있군, 재미있어. 그래 이 놈들을 실전에서 활용해 보았느냐?"
"예. 그것이 일전에 귀혈쌍사라는 놈들에게 완성 직전의 혈강시 열두구를 맡겨 시험해 본적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송구스럽게도 모두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모두 파괴되었다고? 무림의 명숙에게 당한 것이더냐?"
"아,아닙니다. 성수의가의 어린 계집년 하나에게 당한 것 입니다"
"뭐라? 성수의가? 의가라면 의원일테고 그것도 어린 계집 하나라고? 크크크, 재미있군, 재미있어"
"하오나, 지금 보시는 강시들은 그 어린 계집에게 파괴되었던 강시 보다 더 개량된 것들 입니다."
"그래? 그렇다고 해도 대단하구나. 명숙이 아닌 나이 어린 계집이 강시 열두구를 파괴하다니..."
"예. 그렇습니다. 그것도 태극혜검에 당했다고 합니다."
"태극혜검? 허면 무당파의 제자라는 말이더냐? 성수의가라고 하지 않았더냐?"
"무당파의 속가 제자는 아니오나 무당파의 최고 배분인 일성 도장에게 사사를 받은 것은 틀림없습니다."
"성수의가의 의원인 것도 맞고?"
"예! 그렇습니다.!"
"크크크, 갈수록 재미있군, 재미있어. 허면 지난 십년간 강시 외에 또 다른 무엇을 준비했더냐?"
"예?! 아! 그것이 오대세가를 비롯하여 중소 문파의 후계자나 후기지수들을 포섭하여..."

혈사자 1호는 내심으로 자신의 눈 앞에 있는 혈마의 정체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가 원하는 답을 술술 풀어 놓기 시작했다. 혈마의 마기에 제압당한 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심령상의 금제가 가해진 것이었다. 그렇게 혈사자 1호가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순한 양이 되어 술술 풀어 놓는 내용 중에는 강시의 개량 외에도 무림 일통을 위해서 오대세가의 방계들에게 접근하여 마공을 전수했던 일에서 부터 중소 문파의 후계자나 후기지수들을 포섭하여 물밑 작업을 벌여 왔던 모든 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꺄악!"
"혜아! 괜찮아?"
"응! 괜찮아, 그런데 설지 언니 이것들 뭐야?"

한편 혈사자들과 혈마의 모습을 한 미지의 인물이 취록산에 위치한 한 동굴 앞에서 처음으로 조우하고 있던 그 시각 설지 일행은 강시들에게 포위당한 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전에 무당산을 향할 때 만났던 열두구의 강시들과는 완전히 다른 강시들이었던 까닭이었다. 진소청이 십이성의 태극혜검으로 공격해 보아도 겨우 작은 생채기만 생겨날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초혜가 권강을 담은 태극권으로 재차 공격해 보았지만 요지부동인건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바라 보는 혈사자 13호는 음충 맞은 괴소를 토해내며 강시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뭣들하는게냐? 서둘러서 저년들을 처리하지 않고?"
"이런 개잡놈이 감히 누구 보고 년이라고 하는게야?"

강시들이 세 여인들을 공격하는 모습을 바라 보며 괴소를 날리고 있던 혈사자 13호는 갑작스럽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음성에 화들짝 놀라서 급히 고개를 돌려 보았다. 왠 산적 같은 놈 하나가 커다란 대도를 어깨에 척 걸친채 서있는 것을 발견한 혈사자 13호는 강시들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해도 등 뒤로 다른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허용했다는 것에 놀라 당혹성을 씹어 삼켜야 했다.

"누,누구냐?"
"나? 보면 모르겠느냐? 산적이다. 이 개잡놈아! 설지야 괜찮은게냐?"
"응! 철숙부! 그런데 이 놈들 이거 위험해"
"뭐라? 그게 무슨 소리냐?"
"이 강시들은 청청 언니의 태극혜검 공격에도 멀쩡해"
"뭣이? 허면 그 강시들도 조문이 없는 것들이냐?"
"맞아! 그것도 개량된 것 같애"

혈사자 13호는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듯 강시들에게 포위된 어린 계집하고만 이야기를 나누는 산적 놈의 행동에 기가 막혔다. 하지만 그 산적 놈에게서는 은연 중에 섣부른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기운이 흘러 나오고 있어 그저 지켜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혈사자 13호가 내심으로 침음성을 흘리고 있을 무렵 철무륵의 뒤를 따라 무당과 소림 그리고 화산의 절대 고수들이 속속들이 장내에 도착하였다.

"무량수불!"
"아미타불!"

"모두 뒤로 물러 서세요"

 

장내에 도착하여 강시들과 대치하고 있는 세 여인의 모습을 발견한 무당십이검과 소림사의 십팔나한이 거의 동시에 강시들을 공격하기 위해 쇄도하려는 순간 설지의 입에서 모두 물러나라는 소리가 들려 왔다. 설지가 그러는데는 필유곡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무당과 소림의 절대 고수들은 철무륵을 중심으로 하여 한걸음 뒤로 물러 났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던 매화십이검수들도 뒤늦게 한걸음 뒤로 물러 났다. 그리고 그 순간 강시들에게 포위되어 있던 세 여인들 역시 강시들의 한축을 힘으로 무너뜨린 후 포위망에서 벗어나 철무륵의 옆으로 다가 왔다. 
 
"어디 다친데는 없는게냐?"
"응! 철숙부, 우린 괜찮아. 저 강시들을 처리하고 나서 마저 이야기 해"
"태극혜검에도 소용없는 놈들이라면서? 어디 내가 한번 해 볼까?"

그렇게 이야기 한 철무륵이 자신의 애도인 단혼을 들어 올려 강시들의 방향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 그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길이가 거의 일장에 달하고 단혼을 빼닮은 거대한 검강 하나가 단혼에서 빠져 나오더니 강시들을 향해 날아 갔다. 그리고 뒤이어 강시 하나를 직격한 검강은 화탄 소리 같은 요란한 소음을 터트리며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그런데 철무륵이 날린 거대한 검강에 직격 당한 강시는 파괴되지 않고 뒤로 나동그라지더니 잠시 후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서서 지켜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뭐야? 저 놈이 왜 저리 멀쩡해? 설지야 이게 뭐냐?"
"나도 몰라! 비켜 봐!"

철무륵을 옆으로 물러 서게 한 설지가 오른 손을 들어 올렸다. 다음 순간 설지의 앞으로 단검 모양을 한 강기 백여개가 일시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성수지환에 숨겨진 공능이 실전에서 처음으로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떠올랐던 작은 강기 다발 백여개가 한꺼번에 전방에 보이는 강시들을 향해 날아갔다. 요란한 화탄 소리를 내며 강시들을 덮친 강기 다발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그 강기 다발이 남긴 여파는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강기 다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강시는 물론이고 풀뿌리 하나 조차 보이지 않았다. 단지 주변 삼장 정도의 공간에 뒤집혀진 땅거죽과 더불어 불에 그을린 듯한 거무튀튀한 자국을 남겨 놓고 있어 강기 다발이 휩쓸고 지나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이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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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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