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가 낚아챈 전서구에서 혈사자 13호라는 글귀를 보고 종적을 쫓아 숲으로 사라졌던 설지와 일행들이 단전이 부숴진 채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혈사자 13호와 함께 숙영지로 귀환하자 가장 먼저 일성 도장이 그들을 맞이 했다.

"그 놈이더냐? 그 놈이 혈사자 13호라는 놈인게냐?"
"예! 도사 할아버지"
"흠, 그렇구나, 헌데 저 놈 혼자더냐?"
"아니예요. 강시들과 함께 있었어요"
"강시? 허! 또 강시란 말이더냐?"
"예! 그런데 문제가 조금 있어요"
"문제? 문제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설지야! 이 숙부가 대신 말씀드리마"
"응! 알았어"

"도장 어르신. 일전의 혈강시를 기억하시죠?"
"그렇다네. 헌데 무슨?"
"예. 그것이 저기 저 혈사자 13호라는 놈을 찾고 보니 혈강시들과는 또 다른 강시 열두구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강시라니?"
"흠, 뭐랄까? 그렇지! 개량된 강시들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날린 도강에도 끄덕 없는 놈들이었으니 말입니다."
"뭐라? 도강에도 견딘다고..."
"예. 비록 십이성의 전력을 다한 도강은 아니었지만 예전의 혈강시들이라면 충분히 부숴지고도 남을 만큼의 위력을 가진 도강이었음에도 이번 강시는 끄덕도 없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예. 강시 한구를 겨냥해서 도강을 날렸더니 바닥을 한차례 딩구는 것으로 그치고 멀쩡히 일어났습니다."
"허! 허면 그런 강시가 얼마나 된다고 하던가?"
"그건..."
"아마도 대충 이백구 정도는 될 것 같아요. 도사 할아버지"
"뭣이? 그게 사실이냐?"

도강에도 끄덕없는 강시 이백구라는 소리에 일성 도장은 물론 주변에 있던 모두가 놀란 표정이 되어 설지를 바라 보았다.

"예! 혈사자 13호라는 저 아저씨가 강시 열두구를 데리고 있었으니 혈사자 1호 부터... 혈사자가 몇호 까지 있는진 모르지만 하여간 열두구씩만 대동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산술적으로 이미 백오십구가 넘어 가잖아요"
"허! 이런 일이... 혈사자 13호라는 놈에게 배후는 물어 보었더냐?"
"예! 도사 할아버지. 혈마라는 사람이..."

그로 부터 한참 동안 설지의 입을 통해 혈사자와 혈마 그리고 강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일성 도장을 비롯한 사람들은 침중한 안색으로 서로를 돌아 보며 무림에 흐르고 있는 암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바야흐로 무림에 본격적인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대비를 해야겠구나. 허나 도강에도 견디는 강시가 최소한 백오십구라니... 헌데 그런 강시들을 어떻게 처리한 것이더냐?"
"헤헤. 그건 설지 언니가 성수지환으로 한꺼번에 모두 날려 버렸어요"
"모두 날려 버려? 어떻게?"
"그게 그러니까 강기 다발을 날려 버리니까 도강에도 견디던 강시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던데요"
"그래?"

초혜의 말을 들으면서 일성 도장의 시선은 설지가 오른 손목에 차고 있는 성수지환으로 향했다. 이미 성수지환을 통해서 강시 다발이 초연되는 순간을 목도하였기에 그 위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일성 도장이었다.

"흠, 그나저나. 설지야!"
"응? 왜 그래? 철숙부"
"여기 일은 어떻게 할 셈이냐?"

"이제 처리해야겠지. 장포두 아저씨 어디있어?"
"마마! 소신, 여기 있사옵니다"

 

기다렸다는 듯 한쪽 옆에서 장포두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 장포두 아저씨! 지금 부터 시전에 제가 말했던 소문을 은밀히 흘려 보내세요. 음... 저기 개방 아저씨들의 도움을 받으면 일이 좀더 쉽겠네요."
"켈켈켈! 그건 걱정하지 말거라"
"호호호. 걱정 하지 말라는군요. 응? 으응? 켈켈켈이라니? ... 으아악"
"히익! 설지 언니"
"꺄아악! 거지떼다 거지떼"

갑작스럽게 들려온 이상한 웃음 소리에 대한 반응치고는 과하다 싶을 만큼의 호들갑을 떨어대는 초혜와 설지였다. 거기다 거지떼라니?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설지의 모습에 사람들이 황급히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피기 시작할 때 설지의 입에서 다시 비명과 같은 부르짖음이 터져 나왔다.

"청청 언니, 혜아 튀어!"
"켈켈켈. 늦었다. 욘석들아!"
"크아악! 거지 할아버지 반칙이야. 반칙. 어떻게 내가 가르쳐준 진법으로 우리를 가둘수 있어요?"
"켈켈켈. 욘석아! 그렇지 않으면 냄새난다고 또 도망갈거 아니더냐. 하지만 걱정 말거라. 이번에는 우리 새끼들도 모조리 땟국물을 쫘악 빼고 달려 왔으니 말이다"
"으응? 킁킁킁. 어라? 진짜네"
"호걸개 아닌가? 오랜만이구먼"
"오호라! 일성 말코 자네도 예 있었던가"

"무량수불! 그 친구 예나 지금이나 거친 입담은 여전하구먼"
"켈켈켈!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가까워진거라고 누군가 그러더군. 난 변함없이 이렇게 쭉 살거니까 신경 끄시게."
"어련하시겠는가? 허허허"

일성 도장과 호걸개라고 불린 거지가 반가운 해후를 나누고 있을 때 박산현의 개방 분타주와 분타원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분주히 노력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눈 앞에 개방의 전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전대의 인물인 호걸개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개방의 정예 오십여명과 함께 말이다.


"태상방주님을 뵙습니다."
"오냐! 오냐! 네 놈이 여기 분타주더냐?"
'예. 그렇습니다."
"그래! 밥은 잘 빌어먹고 다니느냐?"
"예! 태상방주님"
"아휴! 저 봐, 저 봐! 밥은 잘 빌어먹고 다니냐니 무슨 인사가 저렇담"
"켈켈켈! 욘석아, 그럼 거지 놈들이 빌어먹고 다니지 사 먹겠느냐?"
"아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런데 거지 할아버지가 왠일이세요. 타구봉진 까지 펼치시고 말이예요"
"켈켈켈, 시험삼아 펼쳐 본 것이지. 욘석아 진법으로 네놈들을 가두지 않았으면 벌써 저 만큼 달아났을게 아니더냐?"
"음. 그건 그렇죠. 빨리 해진이나 하세요"
"켈켈켈. 알았다. 욘석아"

개방의 태상 방주라고 불린 호걸개가 이렇게 대답하며 한손을 들어 올리자 그제서야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타구봉진이 해진되면서 오십여명에 이르는 거지들의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속으로 들어 왔다.

"허! 이런 일이... 개방에 이런 진법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거늘..."

절대 고수의 반열에 올라 있는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은 내심 경악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주의를 별로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절대 고수인 자신의 이목을 속이고 이렇게 가까이 접근할 때 까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진법이 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었던 것이다. 거기다 자신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고 가둬 버리는 진법이라니 이는 듣도 보도 못한 기사였던 것이다.

"어찌된건가? 아무리 봐도 타구봉진 같은데 무결점에 가까워 진 것 같으니 말일세"
"켈켈켈. 그야 설지 저놈 도움을 조금 받았지."
"거지 할아버지! 그런 거짓말 하시면 못써요"
"으응?"
"설지 언니에게 도움을 조금 받은게 아니라 아주 많이 받는걸 저와 청청 언니가 똑똑히 지켜 봤거든요"
"그,그게... 흠, 흠"
"잘한다. 혜아. 계속해. 계속해"


설지의 응원을 받은 초혜가 계속해서 말을 하려는 순간 호걸개가 황급히 입을 열어 초혜의 다음 말을 잘라 버렸다. 무슨 말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지켜 보는 곳에서 타구봉진의 비밀이 일말이라도 흘러 나가는 것을 우려해서였다.

"흠, 흠, 그 녀석.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지. 그래, 그래, 네 말이 맞다. 아주 많이 도움을 받았다. 되었느냐?"

한편 박산현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개방의 전대 방주인 호걸개와 타구봉진으로 한차례 소란을 겪었던 마화 수송단이 새로 합류한 개방의 인물들과 웃음 꽃을 피워가며 화기애애한 식사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귀주성의 귀양에 있는 녹림의 총 본산에서는 산채로 날아든 매 한마리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뭐해? 잡아"
"으악"
"내 눈! 내 눈"
"으아악!"

"이게 무슨 소란이냐?"

다탁에 앉아서 차 한잔을 마시고 있던 녹림이십사절객의 대형인 엽정은 갑자기 산채 여기 저기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 오자 화들짝 놀라 옆에 세워둔 도를 움켜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 섰다. 촐표파자가 자리를 비운 산채에서 갑작스러운 소란이 일자 혹시라도 적이 침입한 것이 아닌가 우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바깥으로 나와서 눈 앞에 드러난 정경을 마주하게 되자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에 헛웃음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순간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매 한마리 때문에 산채 식구들이 말 그대로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이게... 허허"
"대,대형!"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거기에는 한쪽 눈두덩이 퍼렇게 멍이 든 녹림이십사절객의 막내 장선이 낭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예. 그게..."

장선의 입을 통해서 드러난 사건의 전모는 이러했다. 녹림이십사절객의 막내 장선이 산채의 식구들과 오후 수련을 하고 있는 연무장으로 느닷없이 매 한마리가 날아 들었다는 것이다. 어딘가 범상치 않아 보이는 그 매는 무언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낮게 선회 하다가 장선을 발견하고 막 내려 앉으려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단이 날아드는 매를 발견한 한 산적의 외침으로 인해 시직되고 말았다. 그 산적이 이렇게 외쳤기 때문이었다.

"어이! 그 놈 잡아 봐! 구워서 안주나 하게"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은 매의 반응이 이상했다고 한다. 낮게 선회하던 그 매가 산적의 외침 소리가 들려 오자 마치 그 소리를 알아 들었다는 듯 갑자기 휘청하는 것 같더니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날아 오르더니 자신을 향해 불량한 외침을 터트렸던 산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날카로운 부리가 아닌 날개로 눈두덩을 강하게 후려쳐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공격은 다른 산적들에게도 이어졌으며 급기야 함께 있던 장선 마저 매의 날개짓에 눈두덩을 얻어 맞고는 퍼렇게 멍이 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허허. 그래서 매 한마리를 어쩌지 못해 지금 이 소란이라는 것이냐?"
"그,그것이 매는 매인데 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뭐가 말이냐?"
"날래기도 날래지만 도검을 전혀 두려워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응? 도검을 두려워 하지 않아? 가만...혹시? 모두 멈추거라"

내공은 싣지 않았지만 엽정의 우렁찬 목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채우자 우왕좌왕하던 산적들이 일시에 그 자리에 멈춰섰다. 하지만 막 산적 하나의 눈두덩을 후려쳐 가던 매의 동작은 그 순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재수없게도 마지막 희생자가 되어 버린 그 산적은 매의 날개에 제대로 눈두덩이를 얻어맞고 커다랗게 비명을 토해내고 말았다.

"아이고!"
"비아더냐? 비아가 맞느냐?"

엽정의 입에서 비아라는 말이 나오자 그제서야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나서던 매의 동작이 멈추었다. 그랬다. 녹림 총 본산에 날아들어 가볍게 산적들을 응징하고 다니던 매는 총표파자인 철무륵의 서신을 가지고 온 비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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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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