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림 총본산으로 날아 오기 전에 설지로 부터 미리 언질을 받기는 했지만 막상 산채에 도착하여 안주감 취급을 당한데 격분했었던 비아는 산적들 한사람 한사람을 찾아 다니며 응징을 가하던 도중에 들려온 엽정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릴 때 부터 설지와 함께 다니면서 안면을 익혀 왔던 산적들 중에서 철무륵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이가 바로 엽정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날카로운 소성으로 대답을 대신 한 비아가 도도한 날개짓으로 산채의 상공을 한바퀴 선회한 후에 엽정의 앞으로 날아 내리자 엽정은 어쩐 일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비아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비아가 맞구나. 어쩐 일이더냐? 심부름을 온게냐?"
"삐익"

다시 한번 날카로운 소성으로 대답을 대신 한 비아가 작은 가죽 주머니가 매달려 있는 한쪽 발을 들어 올렸다. 바로 철무륵이 보내온 서신이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서신을 가져온게로구나. 총표파자의 서신이더냐?"

이렇게 말하며 비아에게 다가간 엽정은 발목에 묶여 있는 가죽 주머니를 풀어 헤치고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예상대로 총표파자의 전갈을 설지가 대신 적어 보낸 서신이었다. 서신을 손에 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엽정은 처음에는 신중한 표정이었다가 점점 괴상하게 표정이 변하는 것 같더니 결국 서신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피식하고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서신에는 가타부타 다른 말은 일체 없이 이렇게만 적혀 있었던 것이다. <전부 데리고 비아를 따라서 방울 소리나도록 달려 오너라>

철무륵의 전갈을 받은 엽정이 녹림이십사절객 모두를 소환하여 출발 준비를 서두를 즈음 박산현의 설지는 인간 사냥꾼들을 뿌리 뽑기 위한 작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혜아. 들어가서 이거 갈아 입고 나와"

설지가 초헤에게 불쑥 내민 것은 값싼 마의 한벌이었다. 장포두가 시전에 나가 급히 구해온 것인지라 몸에 맞으려나 싶어 자기 몸에 이리 저리 견주어 보던 초혜가 옷을 들고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 보던 설지는 호걸개를 향해 눈부신 미소를 한번 지어 주고는 눈웃음을 살살 치며 입을 열었다.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는 개방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호호, 거지 할아버지! 소문 좀 내 주세요. 부탁드려요"
"켈켈, 요녀석, 어디서 교태는... 이 놈아 늙은이 눈 버린다."
"아이 참! 거지 할아버지이~"
"허! 그 녀석 참! 이 놈아 행여 젊은 놈들 앞에서는 그렇게 웃지 말거라. 상사병으로 신세 조지는 놈들이 생길까 두렵다. 그래 어떤 소문을 내주면 되느냐?'
"호호! 고마워요. 거지 할아버지. 그러니까 성수의가와의 거래를 위해서 사천에서 온 약초 채집상들이 박산현에 머무르고 있는데 그들 가운데 화용월태의 미소녀가 한명 포함되어 있더라. 뭐 이런 식의 이야기면 될 것 같아요"
"엥? 화용월태? 그게 누군데? 설마 설지 네 녀석은 아닐테고..."

그러면서 고개를 휘휘 저으며 사방을 둘러 보는 호걸개였다. 능청을 떠는 호걸개를 한번 째려봐준 설지가 다시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고 답답한 놈이 냉수를 마신다고 지금 부탁하는 쪽은 호걸개가 아닌 설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호호호! 초혜예요. 초혜"
"엥? 혜아 녀석이라고... 켈켈켈... 화용월태라... 하긴... 그래. 거기다 살을 조금 보태서 소문을 내주도록 하마. 되었느냐?"
"고마워요. 거지 할아버지"
"켈켈켈. 암,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기분이 무척 좋은 듯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리던 호걸개는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 보는 설지 때문에 머쓱해져서 황급히 웃느라 벌린 입을 여미고(?) 왜 그러느냐는 표정으로 설지를 바라 보았다. 그러자 웃음을 그치길 기다렸던 설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뭐 하세요?"
"응? 뭐가 말이냐?"
"아이 참! 소문을 내달라니까요"
"응? 지금 당장 말이냐?"
"예. 지금 당장이요. 되도록이면 현청 주변에서 많은 소문을 흘려 주세요. 그래야 그 놈들 귀에 들어갈테니까요"
"흠, 흠, 오냐. 그렇게 하마. 이 놈들아 들었느냐? 지금 당장 달려가거라"
"예!"

호걸개의 명을 받은 오십여명에 달하는 거지떼(?)가 일제히 썰물 빠져 나가듯이 빠져 나간 직후에 옷을 갈아 입기 위해 천막 속으로 들어 갔던 초혜가 비단 경장 대신 마의를 갈아 입고 등장했다. 흔히 옷이 날개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 평범한 진리가 초혜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듯 했다. 초혜의 눈부신 미모는 값싼 마의로도 완전히 가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설지가 화용월태라고 했던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음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호호! 우리 혜아는 어떤 옷을 입어도 예뻐. 그렇지? 청청 언니!"
"예! 아가씨. 정말 예쁘군요."
"진짜야? 내가 그렇게 예뻐?"
"그럼! 정말이지."
"헤헤. 근데 설지 언니!"
"응? 왜 그래?"
"한시진만 있으면 저녁 시간인데 오늘 부터 꼭 해야 해?"
"호호! 현청 주변에서 잠시 어슬렁거리다 한바퀴만 후딱 돌고 와."
"응! 알았어! 근데 나 혼자 가는거야?"
"아니! 호아랑 같이 가. 아 참! 천잠보의는 어떻게 했어?"

"속에 입고 있어"

"호호! 그래. 잘 했다. 호아! 이리 와"


망태기 하나를 들고 있던 설지가 호아를 불러 가까이 오게 하더니 냉큼 들어 올려 망태기 속에 넣어 버렸다. 거부의 몸짓으로 버둥거려도 보았지만 결국 망태기에 담겨져서 망태기 밖으로 고개만 빼꼼히 내민 신세가 되어 버린 호아였다. 그런 호아를 향해 귀엽다는 표정을 지어 준 설지가 호아가 담긴 망태기를 초혜에게 건네주고 메고 있던 가방의 입구를 열어 설아를 불렀다.

"설아! 뭐하니? 이리 나와 봐"

잠시 후 설지의 가방 속에서 작은 움직임이 이는가 싶더니 설아의 작은 머리가 가방 바깥으로 쏙 올라 왔다.

"호호! 녀석! 적실영과 있지? 한알만 줘봐"

설아의 작은 머리를 오른 손 검지로 톡하고 만져준 설지가 갑작스럽게 적실영과를 찾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초혜가 입을 열었다.

"설지 언니! 갑자기 적실영과는 어디에 쓸려고?"
"호호. 기다려 봐"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 한 설지가 주기 싫다는 표정으로 입안에서 굴리고 있던 적실영과 한알을 토해내는 설아의 작은 머리를 다시 한번 톡하고 두드려 주고는 받아든 적실영과를 손바닥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설지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너무도 청아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평안해지는 것 같은 그 향기는 바로 적실영과로 부터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우와! 이 향기. 킁킁킁. 아! 너무 좋다. 설지 언니 어떻게 한거야?"
"호호호. 비밀이야. 비밀. 영업 비밀"
"치!"
"호호호. 자 이걸 가지고 다녀. 가지고 다니는 동안 최소한 주변 일장 까지는 그 향기가 계속해서 퍼져 나갈테니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쉬울거야. 냄새만 딱 맡아봐도 영약이라는 걸 알 수 있잖니"
"응? 그럼... 이게 일종의 미끼 역할을 하는거겠네?"
"그렇지! 아마도 미소녀라는 소문에 더해서 영초를 지니고 있다는 소문 까지 더해지면 그 놈들은 반드시 걸려 들거야"
"헤헤! 알았어. 설지 언니. 그럼 다녀올게"
"그래! 조심하고. 행여나 누군가 집적거린다고 패고 다니면 안돼. 알았지?"
"응! 걱정 마, 걱정 마. 도사 할아버지, 거지 할아버지, 철대숙 다녀오겠습니다아"
"오냐. 조심하거라"
"켈켈켈. 잘 다녀 오너라"

호아가 담긴 망태기를 어깨에 걸치고 초혜가 종종 걸음으로 숙영지를 빠져 나가자 지켜 보던 철무륵이 걱정 가득한 표정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설지야! 저 녀석, 괜찮겠느냐?"
"응! 숙부, 걱정하지마. 호아도 있고 오늘은 한바퀴만 돌고 올텐데 뭐"
"흠, 그렇다고 해도 이 숙부는 걱정이 되는구나."
"걱정말게나. 청진을 딸려 보낼터이니"
"아! 그래 주시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어르신!"
"무량수불! 그런 말 마시게. 자네의 질녀이기도 하지만 내게도 제자나 마찬가지인 녀석이 아니던가" 

"헤! 이로써 모두 해결!"

설지의 선언(?)으로 걱정을 마무리 한 철무륵은 대현채에서 데리고 왔던 초록이를 불러 무언가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 보던 설지의 눈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처럼 한순간 반짝하고 기광이 흘렀다. 걸음을 옮겨 총표파자의 지시 사항을 경청하고 있는 초록이에게 다가간 설지의 다음 행동은 기를 흘려 보내 초록이의 몸 상태를 살피는 것이었다. 

하지만 총표파자의 지시 사항을 받고 있던 초록이는 설지가 허공을 격해 흘려 보내고 있는 기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불어 설지가 은연중에 흘려 보낸 그 기가 자신의 내부를 살펴 보고 있다는 것 역시 전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의 변화를 눈치챈 것은 다름아닌 철무륵이었다.

 

"왜 그러느냐?"
"응? 아! 초록이 아저씨가 익힌 무공이 뭐야?"
"글쎄다? 뭐를 익히고 있더냐?'
"예? 아! 예! 소인은 그저 흔한 박투술 정도를 익히고 있습니다."
"음. 박투술이라... 그런데 내공의 기초는 제법 충실한데요?"
"아! 예. 아가씨. 소인이 익힌 내공 심법은 도가에서 파생된 정종 심법입니다. 해서 미약하지만... 응? 아니 아가씨, 소인이 익힌 내공이 충실하다는 것을 어찌..."
"이 자식아! 그러니까 설지더러 사람들이 신녀라고 부르지"

철무륵에게 뒷통수 한대를 얻어 맞은 초록이는 그제서야 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륵 끄덕였다.

"내공의 기초는 튼튼한데 축기가 부족하니 무공의 진척도 다소 늦을 것 같고... 맞죠?"
"예! 예. 맞습니다요. 아가씨. 허면 무슨 방법이라도..."

이렇게 질문하는 초록이의 얼굴에는 잔뜩 기대감 어린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런 초록이의 기대를 설지는 저버리지 않았다.

"흠, 물론 방법이 있긴 하죠. 기다려 봐요."

그렇게 이야기 한 설지가 다시 가방을 열어 설아를 부른 후 이번에는 성수보령환 하나를 설아에게 건네 받았다. 일반적인 성수보령환과 달리 공청석유를 배합한 설지표 특제 성수보령환이었다.

"자! 이것 드시고 운기를 해보세요. 제가 길을 열어 드릴게요"
"저,정말이십니까?"
"허! 그 놈, 잔말말고 설지가 시키는대로 하거라"
"옙! 총표파자님. 고맙습니다요. 아가씨"

그렇게 씩씩하게 말한 초록이는 설지가 건네준 성수보령환의 밀납을 벗겨내고 단숨에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운기행공에 들어가는 초록이였다. 주변에 누가 있던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에서 철무륵을 향한 신뢰와 충성심이 느껴지고 있었다. 운기행공에 들어간 초록이는 곧바로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이질적이지만 너무도 포근한 기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떤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눈을 뜨고 확인해 보지 않더라도 설지가 흘려 보내고 있는 기라는 것을 짐작한 초록이는 설지가 보낸 기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기를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후일 녹림의 총표파자를 보좌하는 총사로써 강호를 위진시키는 초록이 두자성에게 찾아온 변신의 계절, 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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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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