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그런데 현청이 어디 있는거야? 호아는 알아?"

원치는 않았지만 설지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망태기를 차지하고 앉아 시전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던 호아는 불쑥 날아온 초혜의 질문에 고개를 빤히 들고 초혜의 얼굴을 바라 보기 시작했다. 그런 호아의 까만 눈동자 속에는 '너나 나나 현청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잖아'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호아의 시선 속에 담긴 뜻을 뒤늦게 눈치 챈 초혜가 낭패한 표정으로 주위를 휘휘 둘러 보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나 붙잡고 현청의 위치를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려나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돌려 사방을 휘휘 둘러 보던 초혜는 뜻밖에도 자신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변을 신경쓰지 않고 걷다 보니 자신의 주위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사실 이목을 사로 잡으며 초혜의 주위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게 된데는 설지가 영업 비밀이라고 했었던 적실영과도 한몫을 하고 있었다.

오십여명에 이르는 거지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소문을 흘린 것과 비슷한 시기에 때 맞춰서 소문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미녀가 박산현의 저자 거리에 등장하자 당연히 소문을 접한 사람들이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었다. 거기다 적실영과가 뿜어내는 청량한 향기는 사천에서 온 화용월태의 미모를 간직한 미소녀 약초 채집상에 대한 소문이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던 것이다.

"아하하!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지? 저기... 아저씨! 현청이 어디예요?"

가까운 객잔에서 점소이를 보고 있는 젊은 청년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자 무슨 일인가 싶어 저자로 나섰다가 갑자기 화용월태의 미소녀가 자신을 지목하여 질문을 던지자 순식간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잠시 말을 더듬어야 했다.

"예? 예! 그,그것이... 저쪽입니다요. 저쪽 길로 일다경 정도 쭈욱 올라 가시면 현청이 보일겁니다요. 예. 헤헤"
"하하하! 석삼, 이 친구야! 갑자기 얼굴은 왜 붉히는겐가? 하하하"

"예끼, 이 사람! 그것도 모르는가 첫눈에 반한거 아닌가? 하하하"
"하하하"

사람들이 던진 농짓거리에 얼굴을 더욱 붉힌 점소이 청년이 황급히 자리를 뜨자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왁자하니 웃음을 터트렸다. 순박해 보이는 점소이 청년의 그런 행동에 초혜의 얼굴에서도 작고 상큼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라져 갔다. 사람들의 웃음 소리를 들으면서 점소이가 사라져 간 방향으로 잠시 시선을 주었던 초혜는 이윽고 고개를 돌려 점소이가 가르쳐 준 방향을 향해 막 걸음을 떼어 놓으려 했지만 미처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걸음을 떼지 못하게 하는 질문 하나가 날아 들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서서히 잦아드는 틈을 비집고 불쑥하고 날아든 그 질문에 발목이 묶여 버린 초혜는 얼굴 가득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질문이 날아든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저! 소저가 사천에서 왔다는 약초채집상인게요?"
"호호. 예. 사천에서 온 당혜라고 해요"

사람 좋게 보이는 인상을 한 중년인이 던진 질문에 급조한 태가 팍팍 나는 이름을 갖다 붙이며 대답을 한 초혜가 다시 서둘러서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이번에도 그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질문이 사람들 사이에서 날아 들었던 것이다.

"이보시오! 소저! 그러면 소저에게서 풍겨 나오는 그 신비한 향기는 혹시 영초의 향기인게요, 내 생전에 이런 기막힌 향기는 처음 맡아 보는 것 같소"
"호호. 맞아요. 그런데 영초는 영초인데 열양지기가 너무 강해 보통 사람들은 복용하지 못하는 영초랍니다."
"허. 과연..."
"좋은 향기가 나더라니..."

사람들의 추측과 감탄을 뒤로 하고 다시 걸음 옮기기를 시도했던 초혜는 이번에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발걸음을 옮겨갈 수가 있었다. 웅성거림 속에서 더 이상의 질문이 날아들지 않았던 것이다. 모여든 사람들을 둘러 보며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대신 한 초혜는 점소이가 일러준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걸음을 옮긴 초혜의 눈에 현청으로 보이는 커다란 전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점소이의 이야기대로 일다경 정도를 걸었을 무렵이었다.

"음, 호아! 여기가 현청인가 봐"
- 무량수불! 초소저, 청진이외다.


현청으로 짐작되는 커다란 전각의 여기저기를 둘러 보며 방심하고 있던 초혜는 갑작스럽게 날아든 전음에 깜짝 놀랐으나 이내 신색을 바로하고 전음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렵지 않게 청진 도사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어쩐일이세요?

- 무량수불! 사숙조님이 보내셨소이다.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있을 터이니 몸조심하시지요.

- 헤헤, 걱정마세요.

청진 도사와 잠시 전음을 주고 받았던 초혜는 다시 현청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기감을 넓게 펼쳐 현청 내부 여기저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딱히 무언가를 찾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호기심에 주변을 살펴 보고 있었던 것인데 뜻밖에도 그런 초혜의 기감에 현청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질적인 기운 몇개가 걸려 들었다.

"응? 이게 뭐야? 뇌옥인가?"


이질적인 기운 몇개가 감지되는 곳이 지하였기에 초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다름아닌 뇌옥이었다. 하지만 초혜는 이내 고개를 흔들어 그런 생각을 부정했다. 무림방파에서 간혹 보유하고 있다는 뇌옥들은 고수들을 감금하기 위한 곳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긴 하지만 관청인 현청에서 뇌옥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던 것이다.

"음, 이거 아무래도 이상한데... 현청 지하에 뭐가 있는거지?"

- 청진 아저씨!
- 무량수불! 말씀하시지요.

- 혹시 현청 지하에 뇌옥이 있다는 이야기 들어 보셨어요?

- 뇌옥이라 하셨습니까?
- 예. 뇌옥이요.

- 무량수불! 들어보질 못했소이다. 헌데 왜 그러시는지요?

- 여기 지하의 좁은 공간에서 현청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기운 여러개가 감지되는데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 같아요.

- 좁은 공간이라 하시면...

- 예. 그래서 제가 뇌옥이 있냐고 물어본거예요. 아무래도 한번 살펴 봐야겠어요.

- 무량수불! 초소저, 그건 안됩니다.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 제가 살펴 보는게 아니고 호아를 보낼거예요. 다들 '왠 도둑 고양이가...' 할걸요. 호호호.

- 흠, 흠...

그 순간 망태기 속에 얌전히 들어가 있던 호아가 갸르릉거리는 낮은 울음 소리를 토해내었다. 아마도 초혜와 청진 도사가 나누는 전음을 엿들었던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졸지에 도둑 고양이 신세가 되어 현청 지하를 탐색하는 임무가 호아에게 맡겨진 것이다.

"알았지?  사고치지 말고 그냥 살펴만 보고 와 줘"
"크릉"

낮은 울음 소리로 대답을 대신 한 호아가 현청의 담을 훌쩍 뛰어 넘더니 순식간에 초혜의 시선에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초혜가 뇌옥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었던 현청의 지하 공간에서는 젊은 사내 하나에 의해서 목불인견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흐흐흐. 오늘은 어떤 년 차례더냐?"

박산현청의 지하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음침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현령의 첫째 아들인 서리태였다. 박산현청의 지하에는 외부에서 눈치채기 힘든 공간 하나가 마련 되어 있었는데 긴쪽의 길이가 이장 정도 되는 장방형 형태를 띠고 있었다. 두꺼운 창살이 달린 작은 창문 하나가 전부인 커다란 철문으로 가로막힌 그곳은 전체적으로 너무 어두워 사물의 식별이 불가능 할 정도였다.

장방형 공간의 내부로 작게나마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철문 바깥 입구 벽에 달린 횃불에서 비롯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없었더라면 아마도 이 장방형의 공간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식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장방형의 공간 내부는 서리태와 몇명의 관원들이 들고 있는 횃불에 의해 주위가 뚜렷하게 구별될 정도로 밝아져 있었다. 그리고 어둠이 밀려나간 그 자리에 드러난 것은 거의 벌거벗고 있다시피한 초췌한 모습의 소녀들 십여명이었다.

온몸 여기저기에 생긴 끔찍한 흉터로 보아 심한 고초를 겪고 있는 듯한 소녀들은 퀭한 눈빛으로 횃불이 비쳐드는 방향을 주시하고 있어 마치 생각이 없는 인형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소녀들 가운데 한명이 서리태의 음침한 목소리가 장방형의 공간에 울려 퍼지는 순간 힘없는 표정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서리태의 앞으로 기계적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길게 목을 내밀었다.

그러자 서리태는 손에 들고 있던 줄을 이용하여 소녀의 목을 묶고 마치 개를 끌듯이 소녀를 끌고 철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이어 장방형의 내부를 훤하게 비추었던 횃불들이 모두 사라지자 다시 짙은 어둠이 밀려와 목불인견의 참상을 조용히 지워 버렸다. 서리태와 관원들이 떠나간 장방형의 공간 안에서는 소녀들의 숨죽인 흐느낌만이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장방형의 공간을 가로막고 있는 철문 바깥에서 귀화를 보는 듯한 눈 두개가 짙은 어둠을 조용히 응시하다 사라져간 것을 갇혀 있는 소녀들은 물론이고 서리태와 관원들도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소녀의 목에 줄을 묶어서 끌고 나가던 서리태의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 보던 귀화에서는 뜨거운 불꽃이 일렁거렸었다. 물론 그 귀화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호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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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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