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사도세가의 두 남매와 당장 돌아갈 곳이 없다는 소녀들을 데리고 마화수송단의 숙영지로 돌아온 설지를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철무륵이나 일성 도장이 아니라 전서를 가지고 녹림 본산으로 날아 갔었던 비아였다. 박산현청의 일을 무사히 마무리 하고 막 숙영지로 들어서던 일행을 향해 날카로운 고음을 터트린 비아가 하늘 위에서 가볍게 날아 내렸던 것이다.

"삐익~"
"응? 비아 아냐? 벌써 다녀온거야?"

자욱한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자신의 바로 앞에 날아내리는 비아를 초혜가 반가운 표정으로 반겨주었다. 하지만 막 날아 내린 비아는 뭐가 불만인지 그 자리에서 팔짝팔짝 몇번을 뛰더니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설지를 향해 다가 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뒤로 돌리는 동시에 오른쪽 날개를 들어 올려 꼬리 쪽을 향하게 했다. 사람으로 치자면 뒤쪽의 무언가를 가리키며 일러 바치는 모습이었다.

"비아! 왜 그래?"
"삑"
"응? 뒤에 뭐 묻었어?"
"삐익"
"어디 봐, 으응? 이게 뭐야?"

무언가가 잔뜩 불만인 듯한 반응을 보이는 비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 설지가 부리와 날개가 가리키는 방향에 있는 꼬리 쪽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러자 얼핏 보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꼬리 날개의 일부분이 불에라도 그을린 듯 거무스름하게 변색된 모습이 설지의 눈에 들어 왔다.

"꼬리에 이게 뭐니? 불장난한거야? 가만, 이거..."

여기 까지 말한 설지가 고개를 홱하고 돌리더니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자신이 찾는 이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견한 설지의 입에서 날카로운 고성이 터져 나왔다.

"철숙부! 이거 철숙부가 그런거지?"

설지에게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쭈뼛거리며 서있던 철무륵은 설지의 고함 소리를 마주하자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어색한 미소를 얼굴에 그리며 다가왔다.

"흠, 흠, 설지야 그게말이다."
"흥, 그게말이다는 무슨... 아니 이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도강을 냅다 날려?"
"그,그게 말이다. 이번에도 가볍게 피할 줄 알았지 도강에 그리 쉽게 맞을 줄 내 어찌 알았겠느냐?"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거야? 꼬리에 맞아서 그나마 다행이지 몸통에 맞았으면 무지하게 아팠을거 아냐?"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각파의 후기지수들은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녹림총표파자 철무륵과 성수신녀 나설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철무륵이 비아를 향해 도강을 뿌렸고 당연히 피하리라 생각했던 비아는 미처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꼬리에 도강을 격중당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 같았던 것이다. 도강이 무엇이던가? 도객으로 절대지경에 도달한 고수들만이 시전 가능한 것이 도강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도강에 격중당하고도 멀쩡한 비아는 도대체 무슨 조화속이란 말인가. 아니 그보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몸통에 격중당했으면 무지하게 아팠을거라는 성수신녀의 말이었다.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한낱 미물인 매의 처지에 도강에 격중당했다면 당연히 저세상으로 훨훨 날아가야 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헌데 아팠을거라니... 철무륵과 설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머리 속이 복잡해지는 후기지수들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흠, 흠. 네가 직접 보거라"

대관절 무슨 일로 철무륵이 비아에게 도강 까지 날렸는지 궁금해 했던 설지와 사람들은 철무륵의 입을 주시했다. 하지만 철무륵은 옆으로 한걸음 물러나면서 직접 보라는 짤막한 말로 그 이유를 대신했다. 그리고 철무륵이 물러난 자리에는 왠 산도적 같이 생긴 사내 하나가 멋쩍은 듯한 미소를 그리며 어정쩡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바로 녹림이십사절객의 막내 장선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괴이했다. 녹림이십사절객의 한명인 장선이 마치 누군가에게 얻어 터진 것 처럼 오른쪽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응? 장아저씨 아니예요? 그런데 그 눈은 왜?"
"그,그래 오랜만이로구나."
"쯧! 이게 다 비아 저놈 짓이다."
"응? 철숙부 그게 무슨 말이야?"
"흥! 무슨 말은 무슨 말, 비아 저놈이 내 서신을 갖고 산채에 난입해서는 얘들을 죄다 두들겨 팼다고 하더라"
"으응? 호호호호"
"큭큭큭"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리는 것은 설지였으며 낮은 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는 것은 초혜였다. 뭐가 그리 통쾌한지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린 설지가 비아를 품에 안아 올리더니 이런 말로 다시 철무륵의 염장을 질렀다.

"호호호, 우리 비아 잘했어."
"잘했다니... 가만! 혹시 설지 네가 비아 저 녀석에게 시킨 일이더냐?"

"아,아냐, 그럴 리가 있겠어. 호호호"

무언가 어색한 웃음으로 마무리 하는 설지를 보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던 철무륵은 설지의 품에 안겨 있는 비아를 향해 눈으로 강기라도 날려 보낼 듯 날카롭게 째려 보았다. 그러면서 전혀 먹혀들지 않을 경고성을 날렸다.

"비아! 이 놈, 다시 한번 그러면 털을 죄다 뽑아 버릴 줄 알거라"
"호호호, 근데 철숙부! 눈에 멍든 사람이 장아저씨 뿐이야?"
"끙, 산채에 있던 얘들 절반 가까이가 그렇게 당했다고 하더라. 산적 소굴이 비아 녀석 덕분에 졸지에 너구리 굴로 변해 버렸다. 나 참 매한테 얻어 터졌다고 어디가서 말도 못하겠고..."
"응? 너구리 굴이라고? 그러고 보니 너구리는 양쪽 눈두덩이가 까맣게 생겼지. 호호호"
"큭큭큭"
"에잉! 그나저나 그 아이들은 누구냐?"
"아! 사도세가 사람들이야. 이야기 들었어?"
"이야기? 뭔 이야기말이냐?"
"응? 못 들었나 보네. 사도세가가 멸문당했데. 오직 여기 이 두사람만이 살아 남았고..."
"뭣이? 그게 정말이더냐?" 
"그렇다니까. 거지 할아버지가 그러셨어"

"사실일세. 조금 전 개방에서 지급으로 온 연락을 받았다네"

설지와 철무륵의 말을 듣고 있던 호걸개가 나서며 저간의 사정을 중인들에게 들려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마화수송단의 수뇌급 인사들은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회동을 갖느라 모두 한자리에 모여 들었다. 한편 설지 일행을 따라 온 열두명의 소녀들은 외형상으로 의가의 형태를 완벽히 취하고 있는 마화수송단의 여기저기를 곁눈질로 훔쳐 보며 사람들을 살펴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병자들이 오가는 모습과 의생 복장을 한 이들이 오가는 모습 그리고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병장기를 휴대한 이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던 그때 그녀들의 귓속으로 설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저들, 이리 모여 보세요"

그렇게 소녀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설지가 소녀들의 모습을 눈으로 쭈욱 살펴 보며 입을 열었다.

"소저들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다들 저를 따라 오신 것으로 보아 마땅히 돌아갈 집이 없거나 혹은 그럴 의사가 없으신 듯 한데... 내 말이 맞나요?"

누군가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 대답해 주기를 바라며 던졌던 질문에 대답을 한 소녀는 은연 중에 맏언니 역할을 하면서 절망 속에서도 붙잡혀온 소녀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들었던 소홍이라는 이름의 당찬 소녀였다.

"예. 마마! 저희들은 이미 몸이 더렵혀질데로 더럽혀진데다 설령 이런 몸으로 집으로 돌아간다해도 반겨줄 이는 없사옵니다. 해서 저희들 끼리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저희들을 성수의가에서 받아 주셨으면 하옵니다"
"흠, 그래요? 아! 그리고 그 마마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그냥 아가씨나 언니로 부르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적성에 따라 성수의가에서 의술을 배우거나 허드렛 일을 돕도록 하세요. 물론 그에 합당한 보수는 매달 지급될 테니까 그리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가씨. 보수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일손이 늘어나면 저희로써도 좋으니까 서로 상부상조하는 셈이 되겠군요. 거기 있는 혜아를 따라 가면 숙소를 비롯해서 적성에 따른 일자리를 배정해줄거예요. 혜아 부탁해!"
"응! 설지 언니! 자, 자! 다들 저를 따라 오세요."

서리태 일당에게 붙들려 인간으로써는 차마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었던 열두명의 소녀들은 이렇게 이날 부터 정식으로 성수의가의 식솔이 되었다. 이 열두명의 소녀들이 후일 어떻게 성장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었다. 한편 소녀들의 신병 처리를 끝으로 박산현에서의 모든 일 처리가 마무리되고 사흘이 흐른 이른 아침에 생사귀혼 금침 대법을 시전 받았던 사도청이 가벼운 신음성을 입밖으로 흘려내며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 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도청이 의식을 회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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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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