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음..."
"소협! 정신이 드시오?"
"으음... 여,여기가..."

간신히 돌아온 의식을 붙잡으며 여기 까지 말하던 사도청이 갑자지 무엇에라도 놀란 듯 화들짝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났다. 하지만 뒤이어 전신으로 전해지는 극심한 통증에 비명을 터트리며 쓰러지듯 다시 자리에 눕는 사도청을 바라보며 개방의 오결 제자 중 하나인 궁허개가 입을 열었다. 다시 자리에 누운 사도청의 시선 속에 생전 처음 보는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사실 성수의가의 의행으로 위장하고 있는 마화 수송단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바로 병자들의 수발을 도와줄 이가 절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마화수송단의 일원 중에서 가장 항렬이 낮은 이라고 하더라도 자파에서는 앞날이 보장된 후기지수들이었음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던 차에 뜻밖에도 오십여명에 달하는 개방의 정예들을 이끌고 마화수송단에 합류한 호걸개는 설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불감청고소원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합류한 그날 부터 개방의 정예들은 병자들의 수발을 돕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개방에서의 위치를 놓고 보자면 절대로 병자들의 수발이나 돌보고 있어야 할 위치가 아닌 궁허개 역시 다른 개방도와 마찬가지로 병실로 꾸며진 천막을 지키는(?) 당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약 반시전에 다른 개방도와 교대를 하고 사도남매가 누워 있는 병실을 한번 둘러 보았던 궁허개는 비어 있는 침상을 찾아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걸터 앉았다.

이제 부터 궁허개는 눈꺼풀을 무겁게 짓누르며 몰려 오는 수마와 씨름을 해야할 터였다. 그런데 막 자세를 잡고 수마와 한바탕 하려던 차에 문득 귓전으로 낮은 신음 소리가 파고 드는 것이 아닌가? 신음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궁허개는 고개를 휘저어 마지막 남은 수마마저 떨궈낸 후 신음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황급히 시선을 주었다. 바로 사도청이 누워 있는 침상이었다.

늘 찾아 오는 수마와 힘겨루기를 하는 것 외에는 별달리 할일도 없는 무료하기만 하던 근무 시간에 때 마침 의식을 회복해준 사도청이 무척이나 고마웠던 궁허개가 마치 경공이라도 펼친 듯 순식간에 사도청이 누워 있는 침상으로 다가가더니 반가운 마음으로 말을 걸었던 것이다.

"아직은 무리하면 아니되오"
"으윽... 여,여기가 어디입니까? 그리고 귀하는?"
"여기? 음.. 그러니까 여기가... 아! 성수의가입니다"
"예? 성수의가라니요? 제가 알기로 성수의가는 귀주성에..."
"하하, 내 말은 성수의가의 의행이라는 말입니다."
"허면 귀하는 성수의가의 의원이십니까?"
"예? 하하, 아니외다. 개방의 오결제자인 궁허개라고 하오이다"
"아! 예. 개방의 궁허개... 헉! 연아, 우리 연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쯧, 무리하면 안된다니까, 걱정마시오, 연아라고 부르는 이가 사도연 소저가 맞다면 그 옆 침상에 있질 않소"
"아! 연아야, 연아야!"
"아직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소이다"
"어,어디를 다쳤습니까?"
"글쎄올시다. 내가 의원이 아니라서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성수신녀의 말을 들어 보면 다친게 아니라 충격 때문에 의식을 차리지 못한다고 하는 것 같았소"
"성수신녀? 성수신녀가 여기 계십니까?"
"그렇소이다. 잠시 기다려 보시오. 의식을 차렸으니 내 기별을 하리다. 자세한건 신녀가 오면 물어 보시오"
"고맙습니다"

병실로 사용하는 천막을 서둘러 벗어난 궁허개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가는 것을 들으며 사도청은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 앉아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사도청의 뺨으로는 눈물 한방울이 소리없이 흘러 내렸다. 그 날의 끔직했던 참상이 되살아나며 분노에 몸을 떨던 사도청은 문득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힘겹게 자세를 고쳐 앉은 후 황급히 운기를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텅 비어 있었다. 내공으로 충만했던 단전이 겨자씨 만큼의 내공도 간직하지 못하고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단전을 확인한 후 좌절감에 빠진 사도청은 몸을 푸들푸들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입에서 대성통곡이 흘러 나와 숙영지 전체로 퍼져 나갔다. 사도청이 의식을 회복했다는 전갈을 들은 설지와 호걸개 등이 서둘러 천막으로 향하다 너무도 애절하게 울음을 터트리는 사도청의 목소리를 듣고는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울음 소리에 섞인 처절한 한이 사람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던 것이다.

"허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무량수불!"
"아미타불!"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섰던 중인들은 일각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울음 소리가 잦아 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설지를 비롯한 중인들이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놀리기 시작했다.


"청아! 정신이 드는게냐?"
"아! 태상방주 어르신!"
"그래. 그래, 나다. 어디 아픈데는 없느냐?"
"예. 견딜만 합니다."
"그래, 그래,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다"
"예. 어르신"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라는 호걸개의 말에 왠지 풀죽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사도청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도청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중인들의 얼굴에는 침중한 표정이 그려졌다. 하지만 장내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몇 있었다. 물론 그 주인공들은 냉기어린 표정의 진소청과 천진난만한 표정의 초혜,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얼굴에 그리고 있는 설지였다.

"설지야! 이제 청이 저 아이가 의식을 차렸으니 단전 문제도 해결해야 하지 않겠느냐?"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던 사도청의 귓전을 울리는 호걸개의 목소리에는 분명 희망이 담겨 있었다. 이를 눈치챈 사도청도 기대에 찬 눈으로 성수신녀라고 짐작되는 여인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상념을 떨쳐 버린 사도청의 입에서는 자신의 단전 보다 동생인 사도연의 안위가 먼저 거론되었다.

"어느 분이 성수신녀이신지... 제 동생은 괜찮은겁니까?"
"호호호. 저예요"

대답하는 설지의 목소리를 들은 중인들의 반응이 기이했다. 다들 '쟤가 왠일이야?' 하는 표정으로 설지를 바라봤던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으로 이렇게들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호호호? 왠 호호호?', 하지만 이를 눈치채지 못할 설지가 아니었다.

"씨! 다들 표정이 왜 그래요? 모처럼만에 조신하게 말 했는데"
"크하하"
"큭큭큭"
"켈켈켈"
"호호호"

참으로 다양한 웃음 소리가 설지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잠시지간이지만 병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침울한 기운이 그 웃음 소리들에 의해 희석되는 듯 했다.

"흥, 하나도 재미없구만... 아 참! 사도 소협, 연아의 몸은 지극히 정상이랍니다. 험난한 길을 뚫고 오셨을텐데 생채기 하나 없는 걸로 봐서 사도 소협이 연아를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다행입니다. 다행입니다. 허면 저 아이가 왜 저리 의식을 놓고 있는지..."
"음, 그건 아마도 너무 큰 충격 때문에 스스로 깨어나기 싫어서 그런 것 같아요. 사도 소협이 깨어 나셨으니 연아는 지금이라도 깨울 수 있습니다."
"정말 그리해도 되는 것 입니까?"
"예. 그동안 제가 세밀히 살펴 보았으나 별다른 문제를 찾진 못했습니다'
"헤헤! 사도 소협이라고 하셨죠? 음, 음, 전 초혜라고 해요."

설지와 사도청이 말을 나누는 사이에 갑자기 불쑥 끼어드는 초혜였다. 그리고 그런 초혜 때문에 당황한 사도청은 잠시지만 말을 더듬어야 헀다.

"예? 예! 초,초소저셨군요. 저,전 사도청이라고 합니다."
"헤헤. 알아요, 사도 소협. 음, 제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당황하셨죠? 설지 언니가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하는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란걸 아셨으면 해서요"
"아! 예, 잘 알겠습니다. 제가 두 분을 불쾌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헤헤, 불쾌하진 않으니깐 신경쓰지 마세요. 그럼 전 빠질테니까 설지 언니와 마저 이야기 나누세요"
"예. 초소저, 고맙습니다."

중간에 끼어 들어서 제 할말을 다하고 쏙 빠져 나가는 초혜를 야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설지가 다시 사도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연아는 제게 맡기시고 그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다들 궁금해 하시니까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보세요"

그랬다. 지금 중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사도세가의 멸문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말많은 중원 무림에서 소리소문 없이 하룻 밤 사이에 말 그대로 세상에서 지워져 버린 사도세가의 이야기가 그때 부터 사도청의 입에서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혈교의 강시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사람의 무인이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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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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