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 사도청의 이야기와 함께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사도청의 입을 통해서 드러난 사도세가 멸문 당시의 정황은 듣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충격 속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혈강시의 등장이야 새삼스러울 것 없다손 치더라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두 사람의 무인이 갖춘 극강의 힘은 단순히 말을 전해 듣고 있는 것 뿐임에도 많은 무인들을 긴장감 속으로 몰아 넣었던 것이다.

"무량수불! 삼초라고 하였는가?"
"예. 삼초였습니다. 세가의 그 누구도 그 두 사람의 손 아래에서 삼초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중인들을 대신한 일성 도장의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사도청이었다.

"허! 그럴 수가"
"도대체 어디서 그런 고수가..."
"염병할! 허면 그 두 놈의 정체는 모른다는 말이더냐?"
"예! 태상방주 어르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 정도의 고수라면 익히 알려진 인물들 일텐데... 그것 참"
"아! 그리고 그 자들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아?"
"예. 분명히 엄중한 기세를 피워 올리고 있기는 했는데 두 눈은 무저갱을 보는 듯 했고 전신은 마치 허깨비를 보는 듯 공허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아미타불! 사도 시주의 말을 들어 보니 본사의 무상반야대능력과 그 특징이 비슷한 것 같소이다."

불쑥 끼어 들어서 내뱉는 혜명 대사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이는 다름 아닌 일성도장이었다.

"무상반야대능력!"
"응? 도사 할아버지 왜 그렇게 놀라세요?"
"무량수불! 무상반야대능력이라니... 그게 말이다. 설지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소림사에서도 제대로 익히고 있는 이가 없다는 무상반야대능력이 아니더냐? 그런데 그와 비슷한 것을 익히고 있다면 당금 강호에서 과연 그들을 감당해낼 수 있는 무인이 몇이나 되겠느냐?"
"아! 난 또 무슨 말씀이라고... 근데 아닐걸요?"
"응? 아니라니?"
"음. 음. 제가 일전에 장경각에 잠깐 들어가서 무상반야대능력을 대충 훑어본 바에 의하면 스님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과 조금 달라요"
"아미타불! 허허, 신녀께서 무상반야대능력까지 보셨었군요. 허면 어떻게 다르다는 말씀이온지..."

혜명 대사와 설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듯이 이야기하는 무상반야대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인들은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소림사의 절대 금지 구역인 장경각과 소림 비전의 무상반야대능력을 마치 시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과 다루듯이 하는 두 사람 때문이었다.

"음, 그러니까 무저갱 같았다는 눈 말인데요. 무상반야대능력을 일정 수준 그러니까 삼성 이상 익히게 되면 눈에서 신광을 발하게 되고 팔성 이상의 수준에 오르면 두 눈에서 깊은 호수를 바라 보는 것 같은 잔잔함과 평안함이 느껴진다고 해요. 무저갱 같았다고 하니까 조금 다르잖아요. 거기다 전신이 허허로웠다는 것도 기세가 내부로 모두 갈무리 되어 평범하게 보여지는 것과 다르고 말이죠."
"아미타불! 듣고 보니 과연 그렇소이다. 허면 신녀 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음, 음, 그러니까 제가 보기엔 귀신인 것 같아요"
"꺅!"
"흠흠"

첫번째 비명은 귀신이라는 말에 깜짝 놀란 초혜가 터트린 것이었고 당황하여 부지불식간에 헛기침을 터트린 주인공은 바로 혜명 대사였다.

"설지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귀신이라니..."
"생각해 봐, 무저갱 같은 두 눈, 허허로운 전신... 딱 봐도 귀신이잖아"
"켁"

사래 들린 듯 비명을 발하는 초혜와 그런 초혜를 바라보는 중인들의 심정이 서로 다르지 않았다. 갑자기 귀신이라니... 당연히 이때 까지만 하더라도 초혜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이들도 설지의 말이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되어 등장하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미 천년 전에 사라진 천마의 수족들인 귀혼십팔마의 일부가 천마에 의해 부활했다는 것이 알려지기 까지는 아직은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편 귀신 이야기로 상황을 묘하게 만들어 버린 설지는 '다들 표정이 왜 그래' 하는 뚱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둘러 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고 사도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사도 소협! 이미 운기를 한 차례 해보셔서 잘 알고 있겠지만 내공이 한줌도 느껴지지 않을거예요"
"예. 그, 그렇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아마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정과 심한 부상으로 정신을 잃는 와중에 미처 깨닫지 못했겠지만 사도 소협의 단전은 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되어 있었습니다."
"예? 단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반문하는 사도청을 향해 고운 미소를 지어 보인 설지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지금은 단전이 깨끗하게 복원 되었어요. 너덜너덜해진 단전을 손보느라고 꽤나 진땀을 뺐답니다. 호호호"

'또 호호호라는데...'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흥'하는 콧방귀와 함께 날려 버린 설지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제 부터는 단전에 칼침을 서너방 맞는다 하더라도 끄덕 없을거예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헌데 칼침이라니... 칼침이 무엇입니까?"
"아하하하... 그,그게"
"쯧. 사도 소협, 설지 언니가 하고 싶은 말은 단전 쪽을 서너번 찔리더라도 별 탈이 없을거다 뭐 이런 말이예요"
"아! 예"
"설지 언니, 숙모 께서 뭐라고 하셨다고?? 조신, 조신이라며. 칼침이 뭐야. 칼침이..."
"허허허"
"크하하하"

초혜의 핀잔에 사람들의 입에서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만 서너번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어찌 단전을 서너 차례 찔려도 괜찮을 수 있는지..."
"호호호, 성수의가의 비전이라서 자세한건 알려 드릴 수 없답니다. 그냥 그렇게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그것 보다 거지 할아버지의 성화 때문에 제가 너무 귀찮으니까 우선 이것 부터 드시고 운공을 한번 해보세요"

사도청을 향해 내미는 설지의 손에는 설아의 침이 조금 묻은 커다란 환단이 하나 놓여 있었다. 바로 설지의 특수 제조비법에 의해 만들어진 성수보령환이었다. 특수 제조비법이라고 해봐야 다 만들어진 보령환에 공청석유를 배합한 것에 불과했지만...

"이,이것이 무엇입니까?"
"몸에 좋은거예요. 설지표 성수보령환인데 먹고 운기를 하면 소실되었던 내공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이미 한번 채워졌던 내공을 되찾는 것이긴 하지만 얼마나 많은 내공을 되찾을 수 있을진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허면..."
"예. 지금 바로 복용하세요. 제가 지켜 보다가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도와드릴테니까요"
"예.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도청은 지체없이 환단의 밀랍을 벗겨 내고 입 속으로 털어 넣었다. 성수보령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환단은 입속으로 들어가자 너무도 향긋하고 청아한 향기를 발산하며 순식간에 녹아 버렸고 이내 식도를 타고 목울대를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이내 사도청의 내부에서 약효가 전신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사도청이 악효를 내공으로 다스리기 위해 서둘러 운기행공을 시작하였다. 한편 사도청이 막 운기행공을 시작하였음에도 장내에 있는 그 누구도 발길을 쉽게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단전이 완전히 손상되어 무인으로써는 폐인이 되어 버렸던 사도청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도청이 내공을 되살리고 무인의 길을 되찾게 된다면? 기적에 가까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다는 뜨거운 열기가 장내에 늘어선 무인들 사이로 흐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편 운기행공을 시작한 사도청의 외양에서는 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내부의 상황은 겉보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공청석유의 공능에 의해서 막히고 끊어진 혈도가 재정립되면서 불쏘시개로 쑤시는 듯한 극통이 사도청을 수시로 괴롭혔던 것이다.

극통 때문에 자칫 실수라도 하게 되다면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되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사도청은 이를 악문채 쉼없이 운기행공을 했고 그 과정에서 비오듯이 흘렸던 땀방울은 한식경 정도가 지나고 부터는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더니 결국 일다경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르자 비오듯이 흐르던 땀방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에 맞추어 사도청의 표정 역시도 운기행공을 막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한결 편안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반시진 정도가 더 흐르자 마침내 사도청이 운기행공을 끝내고 눈을 떴다. 그 순간 중인들은 보았다. 사도청의 눈동자에서 날카로운 신광 한줄기가 잠시 번뜩이다 사라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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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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