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보던 중인들 중에서 그런 사도청의 모습을 가장 기꺼워하는 이는 당연히 호걸개였다.

"어떠냐? 내공을 회복한 것이더냐?"
"예, 태상방주 어르신, 다는 아니지만 약 구할 정도가 회복된 것 같습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설지야, 고맙구나. 고마워"

마치 자신의 일인양 진정으로 고마워하는 호걸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장내의 중인들은 엷은 미소를 얼굴에 그려 넣었다. 무인에게 있어서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단전이 완전히 망가졌던 사도청에게는 기연이었으며 이를 지켜 보는 중인들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이적과도 같았던 기이한 일이 박산현의 한 천막 속에서 그렇게 설지에 의해 일어나고 있었다.

한편 몸을 추스린 다음 날 아침 일찍 부터 시작된 사도청의 주요 일과는 무공 회복을 위한 수련에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동생인 사도연의 침상을 지키는 것이었다. 사도연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켜 보고 있는 사도청의 굳은 얼굴에서는 이따금씩 안쓰러운 표정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여 지켜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하였다. 더구나 사도청이 동생인 사도연의 곁을 지킨지 벌써 칠주야가 흐르면서 극심했던 사도청의 부상 마저 거의 회복 단계에 접어 들고 있던터라 지켜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가슴의 미미한 기복이 없었더라면 살아 있는 것인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일체의 미동도 없이 그렇게 혼절한 상태로 있는 사도연을 아침 저녁으로 살펴보고 있던 설지는 오늘도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가장 먼저 사도연이 있는 천막 쪽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설지의 옆으로는 미처 잠에서 덜 깬듯한 모습으로 연신 하품을 해대는 초혜와 이른 아침임에도 한치의 허술함도 엿보이지 않는 깔끔한 모습의 진소청이 함께 하고 있었다.

"아우! 시끄러"

입을 가릴 생각 조차 하지 않고 하품을 해대던 초혜가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입밖으로 툭하고 뱉어낸 소리였다. 아닌게 아니라 양손으로 귀를 막으며 짜증석인 투정을 하는 초혜의 귀여운 모습에 풋하고 웃음을 터트린 설지의 귀에도 숙영지의 이른 아침은 무척이나 소란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른 아침 부터 숙영지의 공터 여기 저기에서는 다양한 복장의 무인들이 아침 수련을 한답시고 기합성을 질러대고 있었던 것이다.

"쯧! 이른 아침 부터 다들 왜들 저러는거야?"

유독 커다란 기합성이 터져 나오는 화산파의 무인들을 보며 초혜가 이렇게 이야기하자 진소청이 그 말을 받았다.

"아마도 아가씨 더러 한번 봐달라고 다들 저렇게 하는걸거야."
"응? 그런거야?"
"호호, 그럼 다른 이유가 뭐가 있겠니"
"음, 그렇구나. 음흉한 사람들일세. 근데 설지 언니, 화산파 무인들이 펼치는 매화검법에서는 왜 매화향이 안나는거야?"

그 순간이었다. 그토록 소란스러웠던 숙영지가 일시에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언제 그토록 시끄럽게 떠들었냐는 듯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기이한 침묵이었다. 이렇게 숙영지 일대가 갑작스러운 침묵 속에 잠겨든 이유는 자명했다. 바로 초혜의 물음이 그 정답이었다. 소림과 무당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문파의 수장들이 무공 수련을 하면서 가능하면 설지의 이목을 끌수 있게 행동을 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설지의 일거수일투족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라는 지엄한 명을 미리 내려 놓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연 비슷한 이야기에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태반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지엄한 존장의 명을 거부할 수 없었던 무인들이었기에 이처럼 일시에 자신들의 이목을 설지에게 집중시켰던 것이다. 그런 무인들의 행동에 미소를 지어 보인 설지가 별거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글쎄? 제대로 된 길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길? 무슨 길?  초식의 운용 말이야. 아님 운기를 말함이야?"
"음, 아마도 둘다일걸"
"아! 그래서 설지 언니의 어설픈 매화검법에서도 진하게 피어나는 매화향이 화산파 무인들에게서는 피어나지 않는구나"

초혜의 말이 끝나자 엄청난 충격이 숙영지를 휩쓸고 지나갔다. 특히 매화검법의 당사자인 화산파가 받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대저 매화검법에는 검풍과 검막 그리고 검향이 존재하고 있다. 이 중에서 검기를 이용하여 피워 내는 매화검향은 절정 초입에 달하는 검수들이라면 펼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해지고는 있으나 당대에 이르러 그 누구도 매화검법으로 매화향을 피워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인 삼백년전의 절대 마교 시대에 매화검법의 진본이 완전히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실된 진본을 복원하기 위한 무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절대 마교 시대 이후로는 화산파의 그 누구도 매화향을 피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불완전한 매화검법으로도 매화향을 피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지금 설지가 이야기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산파 무인들에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삼백년 동안이나 피어나지 못했던 매화향을 다시 피어나게 했다는 것 외에는...

아침 마다 수련 아닌 수련으로 곤욕을 치러야 했던 매화십이검수의 수장인 화지경은 지금 이 순간 장문인에게 사실을 알려야 겠다는 생각 하나만을 염두에 둔 채 화급히 발길을 옮겼다. 하지만 몇걸음 옮기기도 전에 문득 초혜가 했던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귀에 거슬렸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설픈 매화검법, 어설픈 매화법, 어설픈 매화검법'

그랬다. 초혜가 보기에 설지가 펼치는 매화검법은 자신의 말 그대로 엉성하기 그지 없었으며 간혹 가다가는 발이 꼬여서 검로에서 벗어나기가 일수였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아침 마다 곁눈질로 대충 보는 것이 전부인 매화검법으로 제대로 된 매화향을 피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익힌 어설픈 매화검법으로도 설지는 상당히 진한 매화향을 피워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설지가 지닌 불가사의한 능력이 아니라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지 언니, 나도 그거 가르쳐 줘"
"응? 매화향 피우는거 말이니?"
"응, 나도 배워서 모란향이나 작약향을 무공에 담아볼래"
"그러지 뭐, 청청 언니도 배울거야?"

설지의 물음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진소청이었다. 한편 세 여인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무인들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 보았다. 모란향이나 작약향을 자신의 무공에 접목하겠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아침 일찍 부터 산책을 겸해서 숙영지를 둘러 보고 있던 일성 도장과 혜명 대사는 모란향과 작약향을 들먹이는 초혜의 말을 듣고도 황당해 하기는 커녕 얼굴 가득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있었다.

더불어 초혜의 이런 황당한 생각이 후일 사도연에 의해서 펼쳐지는 사도세가의 난파파풍검법에 진한 도화향이 접목되는 계기가 되리라는 것을 아직 까지는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설지의 생각에는 쓸데없는 잡담이었지만 구파일방의 무인들에게는 용권풍 같은 엄청난 위력을 선사했던 매화향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사도연이 누워 있는 천막 앞에 이르른 설지가 사도청을 부르며 자신들이 당도했음을 알렸다.

"사도 소협 계세요?"
"예. 들어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예. 어서들 오십시오"
"어디보자, 연이 상태가 오늘은 좀 좋아졌으려나..."

가볍게 인사를 나눈 설지가 침상에 누운 사도연의 맥을 짚어가며 꼼꼼히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한발 물러난 사도청은 침중한 표정으로 자신의 동생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자신이 곁을 지킨지 벌써 이레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의식이 없는 사도연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어떻습니까?"
"음, 괜찮아요. 굳이 덧붙이자면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렇습니까? 휴..."
"너무 상심마세요.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날거예요"
"예! 저, 그런데 일전에..."
"예?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예! 다른게 아니고 일전에 신녀께서 당장이라도 연이를 깨울수 있다고 하셨던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 예. 면밀히 살펴본 결과 신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까 당장이라도 깨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깨어나게 되면 정신적인 충격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했으니 많이 힘들어 할 거예요.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연이에게 더 도움이 되겠습니까?"
"음, 음, 저라면 깨워 보겠어요. 아무래도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정신적인 충격에서 더 빨리 벗어나게 될테니까요"
"그러면 깨워 주십시오. 아직은 어린 연이가 이렇게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누워서만 지내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음, 그럼 그렇게 하세요. 준비할게 조금 있으니까 아침 먹고 나서 연이를 깨우는 것으로 하죠"
"예. 잘 알겠습니다."
"허면 우리는 나가 볼게요"
"예. 살펴가십시오"

사도연을 깨우는 것으로 결정한 설지가 걸음을 옮겨 막 천막을 벗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천막 입구에서 설지를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설지에게 말을 걸어 왔다.

"신녀! 아침 부터 걸음을 막아 죄송하외다. 허나 잠시전에 매화검수에게서 매화향 이야기를 듣고 급한 마음에 내 이리 달려 왔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구려"

매화향 이야기를 듣고 흥분한 때문인지 떨리는 목소리로 설지에게 말을 하는 이는 바로 당대의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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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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