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장문 할아버지. 어서오세요"
"허허! 급한 마음에 달려왔소이다. 그러니 이 늙은이 애태우지 말고 속 시원히 말씀해 보시구려. 길을 잃어버렸다는게 무슨 말씀이시오? 아니, 아니, 그보다 매화향을 피울 수 있다는게 사실이오?"
"예. 능숙하지는 않지만 매화향을 피우는게 가능은 해요. 그리고 길을 잃어버렸다는 말은 말 그대로예요. 매화검법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초식이 전개될 수록 기세가 깎여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고 초식의 흐름 역시도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말했던 거예요."

설지가 이렇게 단언하듯 말하자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은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설지의 이야기 속 내용은 자신도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화산파 제자들의 자질이 부족해서이지 매화검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유도옥이었다. 실제로 화산파 장문인인 자신이 펼치는 매화검법에서는 다른 화산파 제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웅혼한 기세가 서려 있어 그런 자신의 짐작을 뒷받침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유도옥도 매화향만은 끝내 피워내지 못하여 대단히 아쉽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제 그 길이 보이려 하고 있었다. 바로 성수신녀 나설지에 의해서 말이다. 사실 숭산파, 향산파, 형산파, 태산파, 그리고 화산파로 분류되는 오악검파의 수장으로서 누대에 걸친 화산파의 염원이 바로 매화향을 재현하는 것에 있다는 것은 강호에서 칼밥을 조금이라도 먹고 사는 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간절한 화산파의 숙원 사업이 바로 매화향의 재현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간절한 화산파의 숙원이 마침내 자신의 대에 이르러 드디어 그 실마리가 풀리려 하고 있으니 지금 유도옥의 심장은 한시진을 쉬지 않고 달린 종마의 심장 만큼이나 거칠게 박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유도옥은 심장은 기어코 터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세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흠, 신녀의 그 말은 매화검법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 같구려."
"예. 아마도 처음에 만들어진 매화검법에서 일정 부분이 누락되면서 후대에 전승된 것 같아요"
"절대 마교 시대에 매화검법이 수록된 진본이 유실되긴 했지만 매화검법 자체는 고스란히 전승되어 온 것으로 알고 있건만...허허"
"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초식과 초식의 흐름이 후반부에 가서는 더욱 자연스럽지가 못해요. 그러다 보니 내기의 응집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아! 물론 매화검법의 바탕이 되는 자하신공을 제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단순한 짐작이긴 해요."
"흠,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려. 허면 신녀 께서 매화향을 피우는게 가능한 것은 그런 부조화를 걷어 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오?"
"예. 그런 셈이죠"
"허면 이 늙은이에게 지금 보여 주실 수 있으시겠소?"
"예? 지금 말이예요?"
"안될 것이라도 있소?
"그건 아니지만 밥먹을 시간인데..."

마치 십대 소년의 그것 처럼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설지의 승락을 기다리고 있던 유도옥은 밥먹을 시간이라는 설지의 말에 하마트면 커다랗게 고함을 칠뻔 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누대에 걸친 화산파의 숙원인 매화향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자리에서 느닷없이 밥먹는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하지만 이는 유도옥이 설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식사 시간이 되면  열일을 제쳐두고 식당으로 쪼르르 향하는 습관이 어릴 때 부터 몸에 배어 있는 설지가 아니던가 말이다. 그러니 설지의 머리 속에는 화산파의 숙원 사업이고 뭐고간에 밥 부터 먹어야 한다는 생각만이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허, 내 이리 부탁하겠소. 식사를 잠시만 미루고 이 늙은이의 부탁을 들어 주시지 않겠소?"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이 이렇게 까지 이야기 하면서 부탁하는데 이를 거절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밥 먹는 시간을 조금 미루기로 결정한 설지는 나무 막대기 하나를 주워 들고 어설픈 매화검법을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이 보는 앞에서 시전해야만 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설지의 매화검법은 겁보기에는 말 그대로 대단히 어설프게 보였다. 매화검법의 바탕이 되는 자하신공을 연성하지 않고 외형적인 모습만 따라가는 매화검법이었기에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겉보기에 어설프다고 그 내용 까지 어설픈 것은 절대 아니었다. 눈 대중으로 익힌 설지의 매화검법이 후반으로 이어지면서 하나 둘 강기로 된 매화가 피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종내에는 피어 오른 매화에서 너무도 진한 매화향이 스며 나와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설지의 모습을 바라 보는 유도옥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면서 핼쑥하다 못해 창백해지려 하고 있었다.

 


"매화향이, 매화향이... 허허"

마침내 어설픈 설지의 매화검법 시연이 모두 끝나자 장내는 탄식 처럼 내뱉은 유도옥의 목소리 외에는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방금 자신들의 눈으로 삼백년간 사라졌던 화산파의 매화향이 다시 피어 오르는 장면을 목도하였던 것인데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한편 시전을 마친 설지는 슬금슬금 뒷걸음으로 기괴한 표정을 하고 있는 유도옥의 곁에서 떨어져 나와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을 향해 달음박질 치기 시작했다. 배고픈걸 죽기 보다 싫어 하는 설지의 옆에는 당연히 초혜와 진소청이 함께 하고 있었다.

한편 잘못했으면 아침을 굶어야 했을지도 모르는 긴박한 순간을 어찌어찌 무사히 넘긴 설지는 숙소로 돌아와서 가방 속의 이것 저것을 챙기기 시작했다. 물론 설지는 입으로 설아는 행동으로... 잠시 후 모든 준비물이 이상없음을 확인한 설지는 진소청과 초혜를 대동하고서 다시 사도청 남매가 있는 천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도청과의 약속대로 의식이 없는 사도연을 깨우기 위함이었다.

"사도 소협! 계세요?"
"예. 들어 오십시오."
"식사는 하셨어요?"
"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허면 바로 시작할까요?"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때 부터 설지를 비롯한 세 여인의 손길은 분주해졌다. 사도연의 머리를 중심으로 침을 시전하는 설지와 환단을 먹기 좋게 물에 개기 시작하는 초혜, 그리고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사도연의 움직임을 꼼꼼히 살펴 가는 진소청으로 인해 병실로 사용하는 천막 내부는 긴장감이 한층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천막 밖에는 뜻밖에도 화산파의 매화검수들을 비롯하여 꽤 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초조함 속에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막의 내,외부가 이처럼 긴장감에 휩싸인지 한시진 정도가 흘렀을 무렵 마침내 천막 내부에서 변화가 감지 되기 시작했다. 그때 까지 미동도 않고 있던 사도연이 약한 신음 소리와 함께 몸을 조금이나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사도연의 모습을 확인한 설지는 시침한 침을 빠른 속도로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침이 머리 속에서 뽑혀져 나오자 사도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듯 하더니 얼마지나지 않아 마침내 사도연이 힘겹게 눈을 떴다.

의식을 회복한 사도연은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듯 몇차례 눈을 깜박인 후 눈동자를 조금씩 굴리기 시작했다. 그런 사도연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설지였다. 그리고 뒤이어 오라버니인 사도청의 모습이 확인되는 순간 내심 오라버니와 헤어졌을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던 사도연의 뺨으로 긴 눈물 방울 자국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커다란 울음 소리가 사도연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으아앙! 오라버니"
"그래, 그래, 연아, 이제 되었다. 이제 되었어"

부둥켜 안은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 보던 설지는 둘만의 시간을 주기 위해 슬며시 침상에서 물러났으며 뒤이어 진소청과 초혜도 설지를 따라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막을 벗어나는 세 사람의 등 뒤로 사도연의 커다란 울음 소리가 슬프게 따라 붙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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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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