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기 힘들 만큼 기세등등한 뜨거운 태양이 여행객의 발걸음을 붙잡는 성하의 계절이 막 시작된 6월의 어느 날 호북성에서 조금 벗어난 하남성의 이름없는 야산 아래에는 지금 한무리의 여행객들이 말 그대로 장사진을 치듯이 자리잡은 채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여행객 한무리라고는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면 그 실상은 조금 달랐다. 온통 검은 색으로 뒤덮인 육중한 마차 한대를 포함하여 십여대의 마차가 한꺼번에 정차해 있었으며 백여명이 넘는 인원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단순한 여행객들이라고는 볼 수 없는 대규모 행렬이었다. 더구나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십여 군데에 나누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들은 대충 보아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흘리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는 무공을 익힌 자들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지 일반 백성들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일반 백성들의 눈에는 솜씨 좋은 의원들의 행렬로 밖에 보이지 않을 터였다. 

단순하게 보이지 않는 이 여행객들이 바로 귀주성의 귀양에 본가를 두고 있는 성수의가의 의행이기 때문이다. 물론 외견상으로는 성수의가의 의행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구파일방의 정예들로 구성되어 마화를 소림사로 이송하고 있는 마화 이송단이었지만 말이다. 하여간 그런 마화 이송단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쪽 편의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의자 대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잘라 놓은 여러개의 통나무를 의자 삼아 하나씩 차지 하고 앉은 세 여인이 지금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호호호"
"헤헤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박수를 치며 웃음꽃을 피워대는 이들 세 여인은 다름아닌 박산현을 떠나 온 설지와 초혜, 그리고 진소청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세 여인이 웃음꽃을 피우는데 원인 제공을 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현진 도사와 용아였다. 세 여인이 나무 그늘에 앉아서 바라 보고 있는 공터에서는 지금 나지막한 우뢰 소리를 머금은 작은 먹구름이 쉴 사이 없이 움직이며 비를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는 현진 도사가 자신을 따라 다니며 비를 뿌리는 먹구름을 피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제운종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먹구름의 위쪽에서는 고개를 빼꼼 내민 용아가 현진 도사의 움직임에 맞추어서 먹구름을 이리저리 옮겨 가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현진 도사 능력으로는 용아가 부리는 조화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켜보는 세 여인들이 더 재미있어 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편 설지는 용아와 현진의 모습을 바라 보면서 웃음을 터트리다가 자신의 발 아래 쪽에 편안하게 누워 있는 호아를 보고는 장난기가 발동해 나른한 표정으로 용아와 현진 도사를 바라보고 있는 호아의 볼록하게 살찐 배를 맨발로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설지의 발장난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던 호아였지만 계속해서 설지가 자극을 하자 귀찮다는 듯 설지의 발을 앞발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부터 밀어내려는 호아의 앞발과 그런 호아의 앞발을 무시하고 배를 누르려는 설지의 발이 교대로 호아의 배 위를 오가기 시작했다. 일수와 일인이 보여주는 참으로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경극을 감상하듯이 용아와 현진 도사가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세 여인들의 뒤로 작은 그림자 하나가 살금 살금 접근하기 시작했다.

기척을 죽이기 위함인지 까치발로 다가서고 있는 그 작은 인형의 정체는 이제 겨우 여섯살 정도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어린 여아였다. 가벼운 경장 차림을 한 것으로 보아 무가의 자손 쯤으로 여겨지는 그 여아는 마침내 원하는 곳에 다다라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직전인지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머금으며 속으로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 여아가 멈춰선 곳은 다름아닌 설지가 앉아 있는 바로 뒷쪽이었다.

한편 호아의 배를 꾹꾹 눌러가며 장난을 치던 설지는 자신의 등뒤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감지하고는 어린 여아 못지 않은 사악한 미소를 머금고 짐짓 모른 채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 여아와 설지가 서로를 향해 노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 해답은 이내 밝혀졌다. 심호흡을 하던 어린 여아가 막 무언가를 시도하려던 그 찰나에 고개를 돌린 설지가 먼저 행동을 취했기 때문이다.

"왁!"
"꺅!"

그랬다. 어린 여아와 설지는 놀래켜 주기 위해 서로를 노렸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린 여아의 실패로 마무리 되고 말았다. 그리고 압습(?)에 실패한 어린 여아는 커다란 눈을 흘기며 뾰루퉁한 표정으로 설지를 바라 봤다.

"칫! 또 실패했어. 설지 언니, 어떻게 알았어?"
"호호호, 연아 냄새 때문에 알았지"
"응? 냄새? 내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
"그럼 우리 연아 몸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향기가 나는걸"
"정말!"
"그렇다니까. 혜아와 청청 언니에게 물어봐"
"정말인거야?"


앙증맞은 표정으로 초혜에게 고개를 돌린 이 여아는 바로 사도연이었다. 올해 여섯살인 사도연은 의식을 되찾고 기력을 회복한 후 부터는 마치 병아리가 어미 닭을 따라 다니듯이 설지가 가는 곳이라면 그 곳이 어디라도 상관없이 따라 다니면서 함께 생활해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무공 수련에 바쁜 친 오라버니인 사도청 보다 설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은 사도연이었다.  

"응! 설지 언니 말이 맞아. 연아 네게서는 좋은 냄새가 나"
"이야! 진짜지?"

그러면서 설지의 품으로 달려와 안겨드는 사도연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코를 킁킁거리면서 설지의 냄새를 맡기 시작하던 사도연은 이내 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헤헤, 설지 언니에게서는 엄마 냄새가 나"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품으로 포옥 안겨드는 사도연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던 설지는 사도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연아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음, 음, 글쎄, 음,음... 나 무공을 배우고 싶어"
"응? 무공을?"
"응, 무공을 배워서 엄마 아빠 복수를 할거야"

마지막에 가서는 파르르 떨면서 이야기 하는 사도연이 안쓰럽다는 듯 다독여준 설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떤 무공을 배우고 싶은거야?"
"음,음, 천하제일 무공!'
"천하제일 무공?'
"응! 아빠가 그랬어, 우리 사도 세가의 가전 무공인 난파파풍검법이 천하제일이라고..."
"호호, 그럼 난파파풍검법을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야?"
"응, 그런데 오라버니가 배우지 말래"
"응? 그건 또 왜?"
"잘 모르겠어"

시무룩하게 이야기 하는 사도연을 바라 보는 세 여인들은 사도청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험난한 피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복수의 길을 여동생이 함께 걷는 것만은 말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연 역시 무림 세가의 여식이기에 운명이 선택한 길에서 벗어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세 여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어리지만 자신의 눈으로 직접 세가의 멸문을 지켜봤음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음, 그럼 이 언니가 다른 무공 가르쳐 줄까?"
"정말?"
"그럼! 어디 보자, 우리 연아에게 무슨 무공이 어울리려나..."

설지의 품에 안겨서 꼼지락거리고 있던 사도연은 생각에 잠겨든 설지의 품 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가 무언가 딱딱한 것이 손에 잡히자 호기심에 그것을 꺼내 보았다. 사도연의 조그마한 손바닥 보다 조금 더 큰 그것은 은은한 붉은 색을 띠고 있는 하나의 옥패였다. 성수일령이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성수령패의 앞,뒤를 뒤집어 가면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세세히 살펴 보던 사도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설지 언니, 이게 뭐야?"
"응? 아! 그거, 그건 일종의 신분패 같은거야"
"신분패라고?'
"응! 내가 가지고 있는 옥패가 성수일령패이고 청청 언니꺼는 성수이령, 그리고 혜아가 가지고 있는 게 성수삼령패야"
"그렇구나! 근데 이거 너무 예쁘다"
"호호호! 탐나는가 보구나"
"응!"

그러면서 씩씩하게 고개를 아래 위로 주억거리는 사도연이었다. 그런 사도연의 모습이 귀여웠던 설지가 크게 인심쓴다는 듯 이야기했다.

"호호! 그럼, 이 언니가 하나 만들어 줄까?
"정말?"
"그럼!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성수령패만 있으면 소림사와 무당파는 하시라도 드나들 수 있어"
"이야! 그럼 빨리 만들어 줘"
"호호호, 그래, 우선 옥돌을 구해야 되니까 며칠만 기다리렴"
"응! 알았어"

반짝거리는 눈망울을 한 사도연의 대답이었다. 후일담이지만 이렇게 해서 사도연이 가지게 되는 성수령패는 소림사와 무당파 뿐만 아니라 화산파에서 까지 자유로운 출입을 허용함으로써 성수령패의 소유자는 무림 제일의 재녀라는 정설을 만들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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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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