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음 날 아침 부터 사도연의 무공 수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지난 밤 사도연의 손에 이끌린 설지가 사도청을 만난 후 간곡하게 설득하여 사도연이 무공을 배워도 된다는 허락을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 왠일인지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깬 사도연의 재촉과 등쌀 때문에 설지는 마지못해 새벽녘의 달콤한 잠을 포기하고 사도연에게 무공을 가르쳐야 했다. 물론 간단하고 가장 기초적인 기마 자세가 전부이긴 하지만...

그런데 설지의 새벽잠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사도연이 뜻밖의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설지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를 감돌게 만들었다. 끙끙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설지의 손을 잡아 끌고 밖으로 나온 사도연이 갑자기 옷을 단정히 하더니 넙죽 엎드리면서 절을 아홉번이나 했던 것이다. 아마도 사부를 대하는 예인 배사지례를 차린 것이겠지만 자그마한 사도연의 귀여운 몸짓이 설지를 미소짓게 하였다. 거기다 아홉번에 걸친 절을 모두 끝낸 후 불쑥 내뱉은 사도연의 말 한마디는 결국 설지로 하여금 폭소를 터트리게 만들었다.

"사부 언니! 이제 뭐해?"
"응? 호호호"
"응? 사부 언니, 왜 그래?"

강호에 나가면 조신하게 행동하라던 숙모의 당부를 깡그리 무시하고 워낙 크게 웃어서 눈가에 눈물 까지 맺힌 설지가 자신의 눈에는 너무도 귀엽기만 한 사도연을 품으로 끌어 당겨 안았다.

"호호호, 얘는 사부 언니가 뭐니, 징그럽게, 그냥 설지 언니라고 불러"
"응? 그래도 돼?"
"그럼, 그러니까 다시 설지 언니라고 불러 알았지?"
"응! 알았어. 설지 언니, 그러면 지금 부터 뭐하면 돼?"
"음, 보자... 뭘 할까?... 그렇지! 기마자세, 그래, 기마자세가 좋겠다."
"기마자세?"
"그래! 두 발을 어깨 보다 조금 넓게 벌리고 서서 주저 앉는다는 느낌으로 엉덩이를 무릎 높이 정도 까지 내려서 멈춰 봐"
"이렇게?"
"그렇지, 그리고 상체는 꼿꼿이 세우고 엉덩이에 힘을 줘"

생전 처음 해보는 기마자세를 설지의 설명에 따라 간신히 취하고 있던 사도연의 표정은 처음에는 자뭇 비장했었으나 시간이 흐를 수록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어린 사도연이 기마자세 같은 힘든 자세를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때? 힘들지?"
"응! 너무 힘들어, 다리도 아프고..."
"호호호, 됐다, 그만하고 다리 풀어"

힘들어 하는 사도연 모습을 보자 더 이상 기마자세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 설지로써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무공을 배우기 위한 근골을 다듬는데 있어서 기마자세 만큼 좋은 것도 없으니 힘들더라도 스스로 헤쳐 나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있을리 없었다. 설지가 대신 해줄수는 없는 문제였으니 말이다.

"처음 하면 꽤 힘들거야. 하지만 근골을 다지는데 기마자세 보다 좋은건 없으니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 좋아. 어때? 할 수 있지?"

"응! 연아는 할 수 있어. 아니 꼭 할거야"
"호호호"

두 주먹을 야무지게 꼭 쥐고 외치는 사도연의 귀여운 모습에 설지가 다시 웃음보를 터트릴 때였다. 때 마침 일성 도장과 혜명 대사, 그리고 철무륵과 유도옥이 숙영지를 돌아 보다 설지와 사도연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가 왔다.

"아미타불!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아! 스님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미타불! 예, 빈승은 편안히 잘 잤습니다"
"도사 할아버지, 철숙부, 장문 할아버지, 다들 편안히 주무셨어요?"
"오냐. 오냐, 너도 잘 잤더냐?"
"원시천존"
"끄아함! 너무 잘 자서 이 숙부는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호호호"


사람들과 분주히 인사를 나누는 설지를 멀뚱히 바라 보고 서있던 사도연도 설지의 인사가 모두 끝나자 뒤늦게 고개를 까닥까닥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런 사도연의 귀여운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 모두가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고 있을 때 일성 도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른 아침 부터 왠일들이냐? 지금쯤이면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 아니더냐?"
"맞아요. 평소라면 그랬겠지만 오늘은 연아에게 무공을 처음 가르치는 날이라서 일찍 일어난거예요?"
"호! 그래? 무공을 가르친다고? 그럼 연아가 설지 네 제자가 된 것이더냐?"
"음, 따지고 보자면 그런 셈이죠."
"응? 따지고 보자면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더냐?"
"무공을 가르쳐는 주겠지만 사부라고 부르지는 말라고 했어요"
"응? 아니, 왜?"
"아이 참! 요 쪼그만게 사부, 사부 하면서 따라 다니면 징그럽기도 하고 우습잖아요. 호호"
"크하하, 듣고 보니 그렇긴 하구나. 아직은 설지 네가 제자를 정식으로 들일 나이는 아니지, 암!"
"아미타불! 제자를 들이는데 나이가 무슨 소용이겠소이까? 능력만 따른다면 상관없는 일이 아니겠소? 하물며 신녀 께서 제자를 들인다고 하면 다들 부러워 하거나 시기 했으면 했지 우습게 볼 사람은 적어도 여기에는 없을 것 같소이다만..."
"응? 그런가? 크하하, 어쨌든 축하할 일이구나"
"아미타불! 사도연 시주께 크나큰 복연이 찾아 온 것 같습니다"
"그래, 연아에게 무슨 무공을 가르칠 예정이더냐? 가전 검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
"맞아요, 도사 할아버지. 사도세가에는 난파파풍검법이라는 가전 무공이 있긴한데 다른걸 한번 가르쳐 볼까 해요"
"다른 무공이라... 우리가 알아도 되는 것이냐?"
"예. 아셔도 돼요. 아니 꼭 알고 계셔야해요"
"응?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음, 그러니까 제가 예전에 소림사 장경각에 들어 갔을 때 여기 저기 굴러 다니던 무서들 중에서 발견한 무공과 관련이 있거든요."
"아미타불! 혹여 소림사의 무공인 것 입니까?'
"그건 아니예요. 역천수라혈마경이라는건데 마공 같았어요"
"헉!"
"뭐라?"
"원시천존! 휴~ 그 마공은 금지된 마공으로 알고 있소이다. 익힌 것을 알게 되면 무림공적이 될게 뻔할 터인데 어찌..."


차마 뒷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는 유도옥이었다. 아마도 어찌 그런 무모한 생각을 했느냐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도옥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심정도 유도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공을 전수하는 것 만큼은 결단코 말려야 할 일이었으며 역천수라혈마경이라는 희대의 마경을 설지가 알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도 극비에 부쳐져야 할 일이었다.

"아미타불! 신녀! 그건 아니될 말이외다."
"대사의 말씀이 맞다. 산적인 나 조차도 연아에게 그런 마공을 전수하는 것만은 절대 안된다는 생각이다."
"도사 할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흠, 네 생각은 어떠냐? 우선 네 생각을 마저 들어 보고 싶구나"
"호호, 도사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철숙부! 마공이 뭐야?"
"응? 마공이 뭐냐니? 그야 마공이란 익히면 익힐수록 골수에 까지 부작용이 끼쳐서 종내에는 피에 굶주린 마귀가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더냐"
"맞아! 다들 그렇게들 알고 계시죠?"

이렇게 말하면서 사람들을 둘러본 설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철숙부의 말씀대로 마공에는 속성이 가능한 반면 심각한 부작용이 따르고 있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마공을 익힌 모든 사람들이 미쳐 날뛰는 것은 또 아니잖아요?"
"그야, 그런 경지에 까지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더냐?"
"맞아. 그런 점도 분명 있지.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달라. 마공을 심각한 부작용이 시작되는 경지 까지 익히고서도 멀쩡한 마인들도 내가 알기에는 분명 존재하고 있고 마공으로 절대지경에 도달한 무인들도 있잖아"
"흠, 그건 아마도 그들이 익힌 마공들이 부작용이 작은 것이거나 부작용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의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그런 마공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을 사전에 미리 제거하고 익힐 수 있다면?"
"응? 뭐라고? 그,그게 가능한 것이더냐?"
"음, 내 생각은 그래, 마공을 극한 까지 익히고서도 광마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분명 그런 부작용들을 알면서도 마공을 익히기 시작했을거 아냐?"
"그렇겠지"
"그리고 그렇게 마공을 익히다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부작용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서 경지에 도달 했겠지."
"허면 설지 네 말은..."
"맞아! 철숙부의 짐작대로 난 역천수라혈마경 상의 모든 부작용을 미리 제거하고 연아에게 전수할거야. 그렇게 되면 마공이되 마공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이지"
"그것이 가능한 것이더냐?"
"응! 가능하니까 연아에게 전수할려고 하지. 설마하니 내가 연아를 마녀로 만들려고 하겠어?"
"맞아요. 설지 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예요. 절대!"

양 주먹을 꼭 쥐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도연의 눈에서는 설지를 향한 믿음이 흘러 넘치고 있었다.

"아미타불! 허나 외견상 마공의 특징이 드러날 수도 있소이다"
"예. 스님 할아버지. 그래서 제가 사전에 어르신들께 이렇게 말씀드리는거예요. 혹시라도 연아에게서 마공의 흔적이 간혹 발견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공이란게 익히고 있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서 마공도 되고 정공도 되는 것이 아니겠어요?"
"물론 그렇긴 하외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하루 아침에 바꿀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소?"
"예. 그래서 우선 연아에게는 역천수라혈마경 상의 심법만 전수하고 무공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볼려고 해요"
"심법만이라... 정말 부작용이 없게 전수가 가능하겠느냐?"
"예. 도사 할아버지. 역천수라혈마경 상의 심법에서 부작용을 걸러내다 보니 어떤 정공의 심법 보다 더 정순한 심법이 되던걸요. 물론 부작용을 제거한 심법은 역천수라혈마경 상의 심법 만큼 속성으로는 연성이 불가능해요"
"호! 그렇다면 전혀 다른 심법이 되는 것이 아니더냐?"
"전혀 다르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마공이라고 부르기는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예요"
"그래? 그렇다면 이름도 새로 지어야 겠구나"
"응! 철숙부, 이름은 내가 생각해둔게 있어"
"가만, 가만 이름을 생각해 두었다고? 혹시 그 이름이란게 역천천신성수경은 아니지? 그렇지?"
"응? 철숙부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머리 속에 들어 왔다 나갔었나?"
"끙! 네 녀석의 작명 실력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이름을 이야기할거다"
"허허허"
"허허"

그렇게 결정 되었다. 역천수라혈마경이라는 희대의 마경이 설지에 의해 역천천신성수경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 순간이었다.

"아 참! 스님 할아버지, 장경각에서 굴러 다니던 역천수라혈마경은 제가 태워 버렸어요. 그때는 어린 마음에 혹시라도 외부로 유출되면 큰일이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죄송해요"
"아미타불! 아니외다. 제가 발견했다 하더라도 태워 버렸을겁니다. 혹여 그때 다른 마공서들은 보지 못하셨소이까?"
"예, 몇권을 더 보긴 했지만 역천수라혈마경 만큼 위험한 무공서는 없었어요. 그리고 그 마공서들도 제가 장경각 내부의 은밀한 곳에 꽁꽁 숨겨 놓아서 쉽게 찾지는 못할거예요. 제가 나중에 숨겨둔 장소를 알려드릴게요"
"허허, 아미타불! 그렇게 하시지요'

어느 해 성하의 계절 이른 아침에 희대의 마경으로 불리우고 있는 역천수라혈마경의 이름이 세상에 다시 등장했다. 그 마경의 주인은 설지였다. 그리고 그 마경은 다시 설지에 의해 역천천신성수경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으며 동시에 사도연이라는 또 다른 전수자가 정해졌다. 훗날 뭇 사내들을 발 아래 두고 강호를 질타하게 될 천향옥선 사도연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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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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