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갑작스러운 마교도의 등장이 초혜의 입으로 전해지자 마화이송단 전체가 잠시 술렁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도와 사도, 그리고 마도의 각 세력들이 균형을 이루며 서로를 절묘하게 견제하고 있는 당금 무림에서 정도와 마도의 인물이 한 자리에서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수의가의 의행으로 위장하고 있는 마화 이송단의 구성원들은 정도의 중심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구파일방의 무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마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삼대 세력이 서로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접촉을 꺼려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이처럼 정,사,마, 어느 한쪽도 명백한 힘의 우위를 입증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로를 견제함으로써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평화로운 무림이었지만 속을 들여다 보게 되면 조금 다른 상황이 전개 되고 있었다. 누군가 먼저 작은 불씨 하나라도 툭하고 던진다면 힘의 균형이 일시에 무너지면서 쾅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험이 당금 무림에는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무림의 판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설지는 십만대산과 마인이라는 소리에 이게 왠 횡재냐 하는 심정으로 앉아 있던 마차에서 빠져 나와 마인을 향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나갔다. 물론 그 와중에도 곁에 있던 사도연을 일성 도장의 품에 안기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어디? 어디?"
"설지 언니! 바로 이 아저씨가 마인인가 봐"

청진 도사가 느꼈던 방정맞은 발소리의 임자인 설지가 다가와서 하얀 색의 깃발이 달려 있는 장대를 등에 메고 있는 마인을 살펴 보는 그 순간 천마신교의 흑룡대주 추자의는 몹시도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은 분명 성수의가의 성수신녀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성수의가의 의행임을 사전에 확인하고 길을 가로막았건만 갑자기 무당파의 고수들이 속속들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뒤로는 승,도,속은 물론이고 개방의 거지들 까지 의행에 섞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 왔기 때문이다.

영문을 몰라 잠시 눈을 껌벅이던 추자의는 곧이어 더욱 난처한 상황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눈이 부실만큼 아리따운 자태의 세 여인들이 자신을 둘러싸더니 신기한 동물이라도 감상하는 듯이 이리저리 살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고양이 처럼 보이는 아기 백호 두마리는 자신의 발치를 뱅뱅 돌면서 이따금씩 킁킁거리며 냄새 까지 맡고 있었으니 순간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추자의였다.

"사부님! 설지 누님의 저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은데요?"
"허허허, 인석아 무당산에서 네 녀석을 처음 발견한 저 아이들이 꼭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더냐?"
"아! 그러고보니... 헤헤"
"허허허. 그나저나 가까이 가서 보자꾸나. 갑자기 마교도가 길을 가로막다니 심상치 않구나"
"예, 사부님"

사도연을 품에 안은 일성 도장과 현진 도사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는 마교도를 향해 다가 가는 그 순간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추자의가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하며 입을 열고 있었다. 성수신녀 나설지를 포함한 아름다운 세 여인들에 대한 소문은 추자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혹시나 눈 앞의 그녀들이 당사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더 없이 조심스럽고 정중한 목소리였다.

"본인은 천마신교의 흑룡대주 추자의라고 하오이다. 성수신녀 뵙기를 청하고자 무례를 무릅쓰고 길을 막은 점 깊이 사과드리오이다. 한데 소저들은 뉘신지..."
"호호호, 반가워요. 마인 아저씨, 전 성수의가의 초혜라고 하고 이쪽은 진소청 언니예요. 그리고 아저씨 앞에서 신기한 눈으로 아저씨를 바라 보는 그 언니가 찾고 계시는 설지 언니랍니다"
"그,그렇구려. 다시 한번 성수신녀와 일행 분들께 인사드립니다."
"호호, 저도 반가워요. 마인 아저씨. 성수의가의 나설지라고 해요. 헌데 무슨 일로 저를 만나시려고..."
"예. 그건..."

말을 하기에 앞서 잠시 주위를 돌아보는 추자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성수신녀의 뒤쪽으로는 철무륵과 호걸개를 비롯하여 일성 도장과 현진 도사. 그리고 소림사의 혜명 대사와 화산파의 유도옥 등이 한꺼번에 다가와 서 있었던 것이다. 이미 무공의 경지가 절정에 도달해 있는 추자의가 가히 일대종사라고 불려도 부족하지 않을 이들을 알아보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정확한 신분은 모르지만 눈 앞에 있는 자들 대부분에게서 막강한 기도가 느껴지고 있었기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추자의였다.

그 만큼 지금 부터 추자의가 하려는 말은 마교 쪽의 입장에서 보자면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르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보아 하니 성수신녀와 단둘이 따로 떨어져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기에 추자의의 조바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추자의의 고심을 설지가 단 한마디로 해소해버렸다.


"혹시 마교 쪽의 누가 아픈가요?"
"아! 예. 그렇습니다. 때문에 본인이 성수신녀를 청하고자 달려온 것 입니다." 
"음, 그러고 보니 저기 백장 쯤 떨어진 숲 속에 숨어 있는 분들이 계시네요. 동료들이신가요?"
"흡! 어,어찌 백장이나 떨어진 숲 속의 인기척을..."
"설지 언니. 그럼 저쪽 숲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기운이 마기라는거야?"
"응! 그런가봐. 그 동안 봐왔던 엉성하게 마공을 익힌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지?"
"응! 다르게 느껴져, 뭐라고 할까? 정순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 아저씨도 그렇고..."

초혜와 설지가 나누는 대화를 듣는 추자의는 지금 이 순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무려 백장 밖에 은신해 있는 사람들의 기척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지하는 성수신녀와 그런 성수신녀에 동조하는 초혜의 말을 종합해 보면 바로 앞에 서 있는 자신은 무론이고 백장 밖에 은신해 있는 자들이 가진 기운의 내력 까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이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무공 수준을 눈 앞의 가녀리게 보이는 두 여인이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와 다름아니었다.

"그러게. 우리가 마공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고 있는게 맞나 봐. 여기 추 아저씨의 내력도 정종을 익힌 보표 아저씨 만큼이나 정순하거든."
"응? 그 말은 청진 도사 아저씨와 여기 추 아저씨가 호각세라는거야?"
"응! 그렇게 보여"

설지와 초혜의 대화는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하지만 마교 제일의 무력 부대이자 마교주의 수신 호위대인 흑룡대의 대주 추자의와 무당십이검의 수좌인 청진 도사가 서로 호각지세라는 말을 듣고난 후 보인 반응은 조금 다르게 나타났다. 대충 한번 살펴본 것만으로 그렇게 판단을 내리는 설지를 추자의는 반신반의하는 눈치였고 설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청진 도사는 내심으로 호승심을 끌어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 참! 이럴게 아니지. 누가 아프다고 하셨죠?"

설지의 말에 본론을 미처 끄집어내지 못하고 있던 추자의는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사뭇 비장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신녀! 도와주시오. 교주 께서 부상을 당해 위중하시오"
"예?"

주저하던 추자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좌중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마교주에게 부상을 입힐 정도로 강력한 무공을 보유하고 있는 이라면 정파와 사파 세력을 통털어도 채 열이 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열명의 절대 고수 중에서 정도를 대표하는 최강의 무인 넷이 바로 이 자리에 있었다. 일성 도장과 혜명 대사, 그리고 호걸개와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이 바로 그들이었다. 사파에 속하는 녹림의 총표파자 철무륵을 포함하면 무려 다섯이나 마교주에 버금가는 무력을 지닌 이들이 마화 이송단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교주라면 천마로 불린다는 마교주 께서 부상을 당하셨다는 말씀이세요?"
"그렇습니다. 신녀! 자신이 천마의 재림이라고 주장하는 놈과 혈교의 잔당들에 의해 본교가 장악 당했소이다. 그 과정에서 본교의 교주 께서 천마의 재림이라고 주장하는 자에게 심각한 부상을 당하셔서 부득이 교인들을 버려두고 황급히 신교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소이다."

분루를 삼키는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추자의의 말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우선 마교가 새로운 세력에게 점령당했다는 것과 그 과정을 개방이나 하오문에서도 미처 파악하지 못하여 아직 중원 무림에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 만큼 모든 일이 급작스럽게 진행되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더불어 압도적인 무력 차이가 아니라면 감히 어느 누가 마교를 그 처럼 신속하게 점령할 수 있겠는가? 마교의 갑작스러운 몰락과 함께 바야흐로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무림 전체가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아마도 그 천마의 재림이라는... 그보다 우선 교주님 부터 봐야겠네요. 어디 계세요"
"예. 말씀하신 숲 속에서 흑룡대의 보호를 받고 계십니다."
"음, 그럼 함께 가 봐요"

그러면서 달려 가려는 설지를 황급히 붙잡는 목소리가 있었다. 바로 철무륵이었다. 마교주가 아니라 마교주 할애비라도 정식으로 붙으면 설지가 밀린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지만 마교도들이 있는 곳에 설지 혼자 보내기에는 왠지 모르게 꺼림칙했던 것이다.

"서,설지야! 기다리거라"
"응? 왜 그래? 철숙부"

"나랑 같이 가자꾸나"
"철숙부도?"
"그래!"
"알았어. 마음대로 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추자의를 앞세운 설지가 달려 가고 그 뒤를 철무륵과 무당십이검이 따라 붙었다. 그리고 그 꽁지에는 발랄한 뒷 모습의 초혜와 진중한 모습의 진소청이 함께 달려 가고 있었다.

"무량수불! 어찌 이런 일이..."
"사부님! 마교가 일패도지했다면 정파와 사파도 위험한게 아닐까요?"
"그러게나 말이다. 중소 문파와 세가들의 몰락이 심상치 않다 했더니만 기어코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무량수불"
"아미타불! 마교주를 만나 보면 좀 더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량수불"

침중한 목소리로 대답 대신 도호를 읊조린 일성 도장의 눈은 마교주가 있다는 곳으로 달려가는 설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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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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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www.walkview.co.kr BlogIcon 워크뷰 2013.09.22 22: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 오랫만의 무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