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 언니!"

사전에 별도의 지시가 있었는지 그도 아니면 흑룡대주가 전음으로 긴급히 지시를 내렸는지 모르지만 일성 도장 일행은 흑룡대 소속의 그 누구에게도 제지를 받지 않고 천마신교 교주의 앞에 까지 단숨에 다가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가온 일성 도장의 품에는 여전히 사도연이 안긴 채 수염을 만지작거리다 설지를 발견하곤 그녀를 커다란 목소리로 외쳐 불렀다. 잠시지간 떨어져 있었을 뿐이건만 마치 수년만의 해후인양 사도연의 목소리에서는 반가움이 가득 묻어 나오고 있었다.

더불어 설지의 모습을 발견한 후 부터 다시금 바둥거리기 시작하는 사도연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어준 일성 도장이 작은 몸집의 그녀를 바닥으로 내려 주었다. 그러자 발이 땅에 닿기가 무섭게 설지를 향해 쪼르르 달려가 품에 덥썩 안겨 드는 사도연이었다.

"설지 언니!"
"아이쿠!"
"헤헤헤, 설지 언니"
"호호. 녀석도"

설지가 자신의 품에 안겨서 얼굴을 마구 비벼대는 사도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모습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 보고 있던 일성 도장이 이내 시선을 거둬 들인 후 천마신교 교주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무량수불! 오랜만이외다. 혁련 교주"
"허허. 그렇구려. 아마 우리 한 삼십년 만에 다시 보는 것 같구려"
"허허허, 벌써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소이다, 그려"
"오랜만의 만남인데 내 몸이 온전치 않아 누워서 맞이함을 이해해 주시오"
"괘념치 않으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되오이다."

동시대의 정과 마를 대표하는 두 거인의 만남은 지극히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마치 오래전에 헤어졌던 친구들 다시 만난양 편안한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는 정과 마라는 이름으로 구분되는 각기 다른 이념 같은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는 듯 보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그랬듯이 두 거인은 그저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무인이라는 입장만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어야 겠지만 그 때가 지금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기에 이 처럼 두 사람의 조우는 화기애애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허허. 고맙소이다, 헌데 곁의 다른 두 분은 뉘신지?"

"아! 이런, 반가운 마음에 결례를 했소이다. 내 소개하지요. 이쪽은 화산파의 당대 장문인인 유도옥 진인이시고 그 옆에 분은 소림사의 계율원을 맡고 있는 혜명 대사외다."
"아미타불! 소림사의 혜명이라고 합니다"
"원시천존! 반갑소이다. 화산파를 책임지고 있는 유도옥이외다"
"허허. 두 분 다 반갑소이다. 사해에 명성이 자자한 천붕일권과 매화검성을 이렇게 뵙게 되니 참으로 광영이외다."
"아미타불,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흠흠, 원시천존!"
"허허! 그리고 신녀 품에 안겨 있는 그 작은 소저는 또 뉘신가?"
"호호, 교주 할아버지, 이 아이가 바로 사도연이예요. 연아 인사드려! 천마신교 교주 할아버지셔"

어른들의 대화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설지의 품속만을 파고들던 사도연이 천마신교 교주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는 듯 하더니 이내 설지의 치마 뒷춤으로 숨어 들었다. 그리고는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천마신교 교주 혁련필의 모습을 한 차례 훑어 보는가 싶더니 다시 설지를 올려다 보면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런 사도연의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로 흘러 나오지 않고 있었다. 소리를 내는 대신 입 모양만으로 벙긋거리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마교야?'라는 것이었다.

"호호, 녀석, 맞아. 교주 할아버지는 천마신교의 교주셔."

설지의 입에서 확인 사살하는 말이 흘러 나오자 사도연이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쭈뼛거리며 뒷춤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 고개만 까닥하면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을 보여 주더니 곧바로 설지의 뒷춤으로 가서 다시 몸을 숨겼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혁련필과 설지를 비롯한 사람들이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호호호"


귀여운 사도연의 모습으로 인해 장내에는 다시 훈훈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훈풍 속에서 자신의 뒷춤에 숨은 사도연을 향해 돌아선 설지가 눈 높이를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은 후 조곤조곤 알아 듣기 쉽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연아!"
"응? 왜 그래?"
"넌 이 언니의 제자지?"
"응!"
"그럼, 이 언니가 성수의가에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응!"
"그렇다면 의가에 소속되어 있는 의원의 자세는 어때야 한다고 했니?"
"음음... 그러니까 사람을 보지 말고 병만 보랬어"
"호호호. 잘 알고 있구나. 맞아. 우리 의원들에게 정,사,마의 구분 따위는 하등 소용이 없는거야. 그저 아픈 사람이 있으면 고쳐 주고 보듬어 주는게 우리 일이야. 알았지?"
"응!"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대답을 한 사도연이 다시 무언가를 떠올린 듯 주저하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치료를 해주고 나서 우리를 헤치려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
"그때는 이거지"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초혜가 굳게 움켜쥔 주먹 하나를 사도연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응? 주먹? 주먹이 왜?'
"헤헤. 까부는 녀석이 있으면 주먹으로 때려주면 된다는 그런 이야기지. 그렇지? 설지 언니"
"호호호. 초혜의 말이 맞아. 선의를 베푼 대상이 악행으로 보답하려 한다면 성수의가의 이름으로 단호히 대처해야지. 그러니까 초혜 말대로 때려 주면 되는거야. 어때? 그러려면 무공을 더욱 열심히 배워야겠지?"
"응!"

다시 크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도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 설지가 일어서면서 일성 도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도사 할아버지! 보셔서 아시겠지만 교주 할아버지의 병세가 조금 심각해서 당분간은 여기 근처에서 머물러야 할 것 같아요"
"허허허. 내 이미 그렇게 조치해 두었다"
"호호호. 고마워요"
"녀석! 고맙기는 우리야 성수의가의 의행을 보조하는 입장이 아니더냐?"
"음, 그런가? 호호"

아직은 마화 이송에 관한 이야기를 천마신교 교주 앞에서 꺼낼 수 없다고 판단한 일성 도장이 에둘러서 성수의가의 의행을 강조하자 누구 보다 눈치가 빠른 설지가 그에 맞장구 치며 계면쩍은 웃음 소리를 흘려 내었다.

"흠, 그 보다 우선 이쪽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 같구나"
"예? 무슨 말씀이세요?"
"흠, 무량수불! 혁련 교주! 교주의 생각은 어떠시오?"
"허허. 우리 처지가 이러하니 당분간은 신세를 져야 할 것 같구려"

혁련필의 말을 들은 일성 도장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감을 표시한 후 '무슨 소리야?'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설지에게 부언 설명을 해주었다.

"흠, 그러니까 네 녀석도 잘 알겠지만 천마신교도라는 신분으로 공공연히 중원을 활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렇다고 저 많은 인원이 은밀히 움직인다는 것도 혁련 교주의 부상을 생각할 때 불가능한 일이고"
"아! 그렇군요. 곳곳에서 마찰이 빚어질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지! 그 때문에 당분간은 우리와 함께 해야 할 것 같구나"
"좋은 생각이세요. 그럼 이제 우리 의행에 마도가 포함되는 건가? 호호. 재밌네"
"허허. 잘 부탁하네"
"무량수불! 설지가 이번 의행을 이끄는 대표니까 설지 말만 잘 듣는다면 별 탈은 없을게요. 허허허"

"허허, 그렇다면 내 다시 한번 정중히 부탁드리리다. 신녀 잘 부탁하오"
"호호호. 걱정마세요, 그런데 한가지 조건이 있어요"
"응? 조건이라... 그래 말해 보시게 그 조건이 무엇인지. 많은 것을 들어 주진 못하겠지만 가능한 조건이라면 반드시 들어 주도록 하지"

"호호호.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예요. 천마신교에서 저희랑 함께 하는 동안 흑룡대 대원들이 여기 초혜랑 청청 언니의 비무 상대가 되어 주면 되는거예요"
"응? 비무?"
"예! 비무요"

설지의 입에서 비무라는 말이 나오자 벌써 부터 초혜의 눈은 반짝거리며 상대를 찾기 시작했다. 흑룡대주 추자의를 처음 만났을 때 초혜가 지어 보였던 의미모를 미소에 숨겨져 있던 진정한 의미가 바로 이것이었다. 정통 마공을 익힌 마인과의 살 떨리는 비무! 초혜가 흑룡대주 추자의의 모습을 보는 순간 배시시 웃어 보였던 것은 추자의가 자신들의 길을 가로막은 것이 무슨 문제 때문인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비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 같은 것이 언뜻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이렇게 적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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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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