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밍밍의 앞에 왠 사내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 길을 막으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어이쿠! 밍밍 이 녀석아, 또 어디 갔다 오는게냐? 너 때문에 이 초록이가 벌써 몇번째 십년감수하는게냐?"
"푸르릉~"

밍밍의 앞에 갑자기 나타나서 십년감수 운운하는 사내의 모습은 조금 특이했다. 머리에 푹 눌러 쓰고 있는 모자를 비롯해서 상,하의는 물론 발에 꿰찬 가죽신까지 온통 초록색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이 사내는 바로 설지로 부터 '초록이'라는 영광스러운(?) 별호를 얻게된 대현채 소속의 녹림도인 두자성이었다. 철무륵과 함께 마화이송단에 합류한 두자성은 설지의 배려로 성수보령환 한알을 복용하였으며 환골탈태에 버금가는 기연을 접해 이전과는 왼전히 다른 기세를 은연중에 흘리고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관도에서 행인들의 주머니를 털턴 이전의 그 습성 까지는 완전히 버리지 못해서 여전히 어딘가 모르게 가벼운 구석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가벼움 덕택(?)에 성수삼령의 애마들을 돌보는 임무를 부여받은 두자성은 오늘도 갑자기 눈 앞에서 사라진 밍밍 때문에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 듯한 황망함을 애써 다독이며 밍밍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두자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럴만도 한 것이 밍밍은 여간 골치덩어리가 아니었다.

진소청과 초혜의 애마들인 백풍과 백운은 묶여 있던 고삐를 풀어 주면 멀리 가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노니는데 반해 아예 고삐를 채우지도 못하는 밍밍의 경우에는 심심하면 눈 앞에서 휙하고 사라져 버리니 두자성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환장할 일이었다. 제 스스로 할일을 알아서 처리하는 영악하기 이를데 없는 당나귀가 바로 밍밍임에야 설지는 걸핏하면 사라져 버리는 밍밍의 이런 행동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설지에게 하늘과 같은 은혜를 입은 두자성의 입장은 또 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에 혈교의 무리들에게 부모를 잃어야 했던 설지에게 있어서 어머니가 생전에 선물로 남기고 떠난 밍밍은 친혈육 처럼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밍밍과 설지 사이에 얽힌 이런 사연을 성수삼령의 애마들을 돌보는 임무를 맡은 직후 총표파자인 철무륵에게서 모두 전해들었던 두자성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면서 걱정말라고 큰소리로 다짐했었다.

하지만 두자성의 자신만만한 다짐은 불과 한식경도 지나지 않아 저 푸른 하늘의 뜬구름 마냥 조용히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잠시만 한눈을 팔다 보면 눈 앞에 있었던 밍밍이 휙하고 사라져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기 시작했으니 두자성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폴짝 뛸 노릇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행여나 밍밍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혹은 맹수의 공격을 받아 다치는 일이 발생할까 싶어 그 가볍기 이를데 없는 성정으로 늘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애타게 찾아 헤매던 밍밍을 어렵게(?) 발견한 두자성의 입에서 십년감수가 몇번째냐라는 말이 흘러나올 법도 했다. 그런데 사실 두자성의 이런 걱정은 기우일 수밖에 없었다. 공청석유 까지 복용한 밍밍이 어디 가서 쉽게 다치지도 않겠거니와 설지 역시도 무신경한게 아니라 비아로 하여금 하늘 위에서 밍밍을 지켜보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런 자세한 내막을 전혀 모르는 두자성은 오늘도 십년감수 끝에 발견한 밍밍이 그렇게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어디 다친데는 없느냐?"

"푸르릉~"

헌데 밍밍은 자신의 걸음을 막으며 쓸데없는 걱정을 늘어 놓는 두자성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콧바람을 한번 푸르릉 날려 주고는 걸음을 옮기려는데 두자성이 다시 길을 막아서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 입에 물고 있는건 뭐냐?"
"푸르릉~"
"그냥 돌 같은데 그건 어디다 쓸려고?"
"푸르릉!"
"응? 혹시 설지 아가씨 드리려고 그러는거냐?"
"푸르릉!"
"그 녀석 참, 그깟 쓸데없는 돌은 뭐하려고... 하여간 가자꾸나"
"푸르릉!"

두자성과 밍밍의 이런 모습을 만약 누군가가 보았다면 서로 말이 통하는 것으로 여기고 신기하게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두자성은 두자성대로 제 할말만 한 것이고 밍밍 역시 왜 길을 막느냐는 뜻으로 콧바람을 연신 불어낸 것에 지나지 않지만 두자성의 말이 설지에게로 이어지면서 묘하게도 둘 사이에 대화가 통하는 것 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사이 좋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일인일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통나무 의자를 차지 하고 앉아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성수삼령을 찾을 수 있었다.

"설지 아가씨!"
"어? 초록이 아저씨! 무슨 일이예요?"
"아! 예. 아가씨, 다름이 아니라 밍밍이 녀석이 아가씨께 볼일이 있는 것 같아서 말입죠. 헤헤"

"그래요? 밍밍아 무슨 일이야?"
"푸르르릉~"

자기가 다 알아서 할 것인데 쓸데없이 중간에 나서는 귀찮은 두자성을 커다랗고 맑은 눈으로 한번 째려봐 준 밍밍이 기분 좋게 콧바람을 불어낸 후 설지의 발 앞에 물고 온 돌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 보라는 뜻으로 콧바람을 몇번 불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푸륵, 푸륵, 푸르릉~"
"응? 이게 뭐야? 돌 같은데, 가만..."

밍밍의 침이 잔뜩 묻은 검은 돌을 가만히 내려다 보던 설지는 무언가 특이한 이질감을 그 검은 돌에게서 느끼고 손을 가져가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신기하게도 그 검은 돌에서 아주 포근한 느낌이 전해지며 내기를 자극하는 신비한 기운이 느껴졌다. 워낙에 미미한 콩알 만큼의 내공을 가지고 있는 설지였지만 그런 내공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진기를 자극해오는 신비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하고 신비한 기운은 이내 물 흐르듯이 순조롭게 설지의 진기에 흡수되는 듯 하더니 이내 천천히 아주 느린 속도로 설지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 조금씩 진기를 이끌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있어 운공이란 하등 필요없는 것이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운공을 하지 않고 있던 설지는 자신의 진기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연스럽게 흐르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하면서 연신 탄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랬다. 신기하게도 탄성을 토해내는데도 불구하고 주화입마의 주자도 보이지 않는 특이한 경험이 현재 설지의 체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와! 이 돌 이거 무지하게 신기하네."


그렇게 설지가 탄성을 토해내는 순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설지의 가슴에 가만히 매달려 있기만 하던 초아가 어느 순간 스르르 소리도 없이 설지의 가슴에서 떨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곧바로 설지가 쥐고 있는 검은 돌 위로 날아가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루 형언할 수 조차 없는 그윽한 만년삼왕의 향기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인세에 다시 없을 그 진한 향은 무려 방원 십장이 넘는 공간을 잠식하며 퍼져 나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퍼져 나오는 만년삼왕의 향기를 맡은 이들은 문득 심신이 상쾌해지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전신에서 활력이 넘치는 것을 깨달으며 향기의 진원지로 눈을 돌렸다.

"이,이게 대관절 무슨 향인가?"
"글쎄? 저길 보게. 아마도 성수신녀 주변에서 나는 같네"
"호! 그렇구먼, 그런데 자네는 어떤가? 난 이 향을 맡으니 심신이 편안해지고 전신에서 힘이 막 솟구치는 것 같네"
"자네도 그런가? 나도 그렇다네"
"허! 대관절 무슨 향이길래..."

이와 같은 대화가 마화이송단 여기저기에서 중구난방으로 이어질 때 철무륵과 일성 도장 그리고 혜명 대사와 유도옥 역시도 그 향기를 맡고는 연유를 알아 보기 위해 설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일성 도장은 설지의 손에서 날아 올라 설지의 가슴으로 안겨드는 초아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대충 무슨 까닭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햐! 갑자기 무슨 일이래? 설지 언니, 초아가 갑자기 왜 저래?'
"응? 그게... 음, 아마도 이 돌의 기운이 초아에게는 지기를 흡수하는 것 보다 더 좋은 회복력을 가져다 주나 봐"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 호호, 그러니까 이 돌 말이야. 이게 좀 이상해. 가만 그럴게 아니라 혜아 너도 이 돌을 한번 쥐어 봐. 대신 놀라지는 말고 알았지?"
"놀라지 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하여튼 알았으니까 줘 봐"
"그래, 여기"

설지에게서 여기저기 불룩 튀어 나온 검은 돌을 받아드는 순간 초혜 역시도 설지와 똑 같은 경험을 하면서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설지와 달리 상당한 내공을 보유한 초혜였기에 그 느낌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설지 언니, 이 돌 뭐야?"
"호호호, 어때 신기하지?"
"응! 청청 언니, 언니도 한번 쥐어 봐
"그래"

초헤에게서 검은 돌을 건네 받은 진소청도 앞서의 두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는 놀라움을 경험하고 있었다. '세상에! 진기가 자기 스스로 움직이면서 운기를 돕다니', 이런 생각이 세 사람의 머리 속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있을 때 일성 도장이 다가 왔다.

"무량수불! 설지야 무슨 일인게냐?"
"아! 도사 할아버지, 마침 잘 오셨어요. 혹시 이 돌의 정체를 아시겠어요?"
"무엇이길래 그러느냐. 어디 한번 보자꾸나"

설지에게서 돌을 건네 받은 일성 도장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자 흠칫 놀라는 듯 하다가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음을 깨닫고 이내 신색을 바로 하였다. 그리고 손 위에 놓여진 작고 검은 돌을 좀더 세세히 살펴 보기 시작했다. 스스로 운기를 돕는 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동안 보았던 서책과 들었던 이야기들 중에서 관계된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고심하던 일성 도장은 마침내 오래 전에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한토막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무량수불!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이 돌은 만년흑마령석인 것 같구나"
"예? 만년흑마령석? 무슨 이름이 그래요?"
"허허, 낸들 알겠느냐. 그렇게 이름을 지은 사람이 있었겠지. 하여간 이 돌의 생김새와 특이한 이능을 보면 만년흑마령석이 맞는 것 같구나"
"좀더 이야기해주세요"

일성 도장의 입에서 만년흑마령석에 대한 이야기가 막 시작될 때 쯤에는 철무륵과 혜명 대사, 그리고 유도옥도 서로 돌을 돌려 가면서 만져 보고 살펴 보면서 신기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마무리될 쯤에는 어디서 놀다가 왔는지 목검을 든 사도연이 나타나 커다란 목소리로 설지를 외쳐 부르면서 설지의 품에 안겨 들었다.

"호호, 우리 연이 잘 놀았어?"
"응! 현진 오라버니하고 머루 따먹고 왔어"
"머루? 호호, 그랬구나"
"근데 설지 언니, 손에 든 그건 뭐야?"
"응? 이거? 신기한 돌이야."
"신기한 돌?"

"그래. 가만... 용아 이런 돌 전에 본적 있어?"
- 그래, 내가 예전에 살았던 깊은 바다 속에 그런 돌이 있었다.
"음. 그럼 지금도 있겠네?"
- 아마도 그럴걸.
"가져다 줄 수 있어?"
- 어느 정도 크기가 필요한데?

"음, 보자... 이 정도 크기"

그렇게 말하면서 설지가 양손을 모아 펼쳐 보였다.

- 알았다. 내 가져다 주마.
"갔다 오려면 얼머나 걸려?"
- 인간들의 시각으로 반시진이면 충분하다.
"호호, 금방이네. 그럼 부탁해"
- 알았다. 다녀오마.

대화를 끝낸 용아가 설지의 어깨 위에서 날아 올라 하늘로 향하더니 순식간에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 자리에 있는 일성 도장을 포함한 무인들이 아무리 절대의 경지에 도달한 무인들이라고 해도 천년을 넘게 살고 있으며 영수의 제왕이기도 한 용의 흔적을 추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물론 초아의 도움으로 자연지기의 운용이 가능한 설지의 눈에는 사라져 가는 용아의 뒷 모습이 뚜렷이 보이고 있었다.

"무량수불! 용아가 어디 가는 것이냐?"
"호호, 이 돌을 보니까 문득 좋은 생각이 나서 이런 돌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어요"
"허면 만년흑마령석이 이거 말고도 더 있다는 말이냐?"
"예. 도사 할아버지. 예전에 용아가 살았던 심해에 가면 이런 돌이 더 있데요"
"무량수불! 자칫 화를 불러 올지도 모르는 귀물이거늘 어쩌려고 그러느냐?"

"음, 우리 연이랑 꼬맹이 저 자식에게 각각 옥패 하나씩 만들어 주려고요"
"우와, 설지 언니, 드디어 옥패 만들어 주는거야?"
"그렇단다. 호호호"
"응? 현진에게도?"
"예. 현진 꼬맹이가 겉으로 보기에는 저렇게 엉성해 보여도 명색이 무당 장문인의 사제잖아요. 그러니까 도움이 될만한 것 하나 정도는 수중에 지니고 있어도 괞찮지않을까요?"
"허허,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운 일이긴 하다만..."
"호호호, 너무 큰 걱정은 하지마세요."

설지의 말을 들으면서 일성 도장은 깊은 생각에 잠겨 들었다. 자칫하면 만년흑마령석으로 인해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현재 무림이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면 현진에게도 언제든지 위험이 찾아올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공 증진에 도움을 주는 만년흑마령석의 존재가 현진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일성 도장이 애써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사이에도 만년흑마령석을 가지러 날아가는 용아의 비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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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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