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 언니! 그런데 이상한게 있어"
"응? 뭐가 이상해?"
"아까 그 꽃들 설지 언니가 강기로 만든거지? 그렇지?""
"그렇지! 그런데 그게 왜?"
"전에 오라버니한테 들었었는데 강기는 무지하게 날카로워서 뭐든 다 부순다고 했어!"
"음... 아마도 그럴걸"
"그런데 설지 언니가 강기로 만든 꽃은 어떻게 만져도 괞찮은거야?"
"아! 그거... 그건 말이야..."

아직은 보살핌이 필요한 불과 여섯살의 어린 사도연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도연도 엄연히 무가 출신이었기에 강기의 위력에 대해서는 오라버니인 사도청으로 부터 얼핏 들어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강기에 대한 상식과 설지가 만들어낸 강기 꽃이 보여준 외견상의 화려함이 너무도 달랐기에 거기서 문득 괴리감을 발견하고 이처럼 의문을 표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도연이 이렇게 설지에게 물어 오자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의 귀가 갑자기 커다랗게 변하는 것 처럼 보였다. 모두가 가지고 있던 의문점을 나이 어린 사도연의 지적으로 풀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주변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설지의 입을 주시하며 귀를 기울인 까닭이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자신의 입을 주시하는 뜻밖의 사태에 직면하자 좀처럼 당황하는 법이 없던 설지 조차 어쩔 수 없이 당황하며 당혹성을 터트려야만 했다. 깊이를 측량하기 힘든 무위를 선보인 설지 역시 여자였던 것이다. 

"뭐, 뭐야? 다들 왜 이런 반응이야?"
"큭큭, 설지 언니도 당황할 때가 다 있네"
"크하하, 그 녀석 새삼스럽기는... 그 보다 어떻게 한건지나 한번 이야기 해보거라"

호탕한 웃음 소리에 이어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외치듯 말하는 철무륵을 따라서 몇사람의 고개가 함께 끄덕여졌다. 철무륵의 그런 모습 덕분에 당혹감에서 쉽게 빠져 나와 신색을 회복한 설지가 사도연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어 주면서 따뜻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리고 사도연을 바라 보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방 천지에 존재하는 모든 기운에 심신을 맡기듯이 온전히 개방하고 그 기운들과 하나가 되면 마음이 이는데로 검이 따르는 법이야. 그렇게 되면 시전자가 원하는데로 강기에도 생과 사의 기운을 부여할 수 있게 되는거지"

제법 심오한 무리가 깃들어 있는 것 같은 설지의 말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고 있었지만 몇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그 몇사람 중에 포함되는 초혜는 어디선가 들어 봤던 것 같은 설지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아직 어린 사도연은 설지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그게 무슨 말이야'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설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의문을 제기했다.

"설지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응? 아하하, 그렇지, 우리 연이는 아직 어려서 이런 말은 좀 어렵지? 그러니까 무인이 강기의 수발이 능숙해지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비로소 시전자가 원하는데로 강기에도 생과 사의 기운을 부여할 수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야."

"생과 사의 기운? 강기에도 생명이 있어?"
"그럼! 당연히 있지. 절대 고수가 만들어내는 강기가 얼핏 생각하기에는 그저 내력의 발출에 의해 생성되는 단순한 기의 응집체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강기가 만들어지는 순간 부터 그 강기는 하나의 생명체가 되는거야. 그러니 시전자가 그 강기에 자신의 뜻을 심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지. 어때? 내 말을 알아 듣겠니?"

사도연의 눈높이에 맞춰서 쉽게 풀어서 설명하느라고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던 설지의 말에도 불구하고 사도연은 커다란 눈을 더욱 크고 동그랗게 뜬 귀여운 모습으로 고개를 좌우로 살레살레 젓고 있었다. 아직 어린 사도연이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말이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런 사도연과 전혀 다른 반응이 나타나고 있었다.

설지의 말을 듣고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던 철무륵과 혜명 대사, 그리고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이 거의 동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순간에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서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털썩 주저 앉아 가부좌를 취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가부좌를 튼 세 사람은 조금씩의 시각차를 두고 각자 눈부신 빛무리를 온몸에 휘감기 시작했다. 절대지경에 도달한 세 사람의 절대 고수가 설지의 말 한마디에 깊은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응? 설지 언니, 저 분들 왜 저래?"
"쉿! 큰 소리내면 안돼. 세 분은 지금 깨달음을 얻고 삼매지경에 드셨어"
"우와! 신기하다"

설지에게 주의를 들은 사도연이 제딴에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춘다고 낮추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감탄성을 토해내었다. 당연히 사도연의 이런 작은 목소리가 삼매지경에 든 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사도연의 손을 잡고 한걸음 물러서서는 조용히 뒤로 돌아 장내를 빠져 나오는 설지를 따라서 초혜와 진소청 그리고 일성 도장과 현진 도사도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들이 빠져 나온 장내에서는 막 소리없는 부산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삼매지경에 든 자파의 어른을 보호하기 위해 소림사와 화산파에서 앞장서서 장내를 정리하는가 하면 몇몇은 빠른 동작으로 호법을 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아래, 위로 온통 짙은 초록색의 옷을 차려 입은 초록이 두자성도 당당히 포함되어 있었다. 녹림이십사절객의 몇과 함께 두 눈을 부릅뜨고 철무륵의 곁을 지키면서 좌우를 둘러 보는 모습이 예전과는 달리 사뭇 진중하기도 했다.

"설지 언니! 아까 그 말 말야"

삼매지경에 빠져든 세 사람에게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다다르자 무언가를 기억해내고 입이 간질거렸던 초혜가 가장 먼저 설지에게 입을 열었다.

"응? 무슨 말?"
"아이 참! 마음이 일면 검이 따른다, 뭐 그런 말 말이야"
"응? 그 말이 왜?"
"흐흐흐, 그 말이 말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예전에 내가 어디선가 한번 들었던 것 같더라고... 청청 언니도 그렇지?"

음흉하게(?) 느껴지는 웃음 소리를 흘리며 말하던 초헤는 곁에 있던 진소청에게 고개를 돌려 동의를 구했다. 그러자 희미한 미소를 베어 문 진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막 생각이 났던 것이다.


"흐흐, 그럴 줄 알았어"
"뭐,뭐야, 두 사람"
"흐흐흐. 이거 왜 이러실까? 아주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지, 무당파의 제일 고수이신 도사 할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 무공을 전수해 주시던 첫날에 '천지기운에 심신을 조화시켜 마음이 일면 곧 검이 따르게 해야 하느니'라고 하셨었지, 기억나시나?"
"응? 아하하! 그, 그게 말이야... 계집애! 그 때가 언젠데 별걸 다 기억하고 있어"
"흐흐흐, 그걸 기억해낸 나도 나지만 그 말을 아직 까지 기억하고 있다가 살짝 바꾸어서 써먹는 누구 보다야 기억력이 좋겠어?"
"요것이!"

그 순간 앞 이마를 두 손으로 재빨리 감싸며 잽싸게 뒤로 물러나는 초혜였다. 앞 이마를 하도 많이 가격당하다 보니 어느 순간이 되면 반사적으로 회피하는 요령을 터득하게 된 것이었다.

"아쭈! 이젠 제법인데"
"헤헤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이 정도 쯤이야"
"무량수불! 허허허, 내가 그런 말을 했었더냐?"
"예. 도사 할아버지"
"살다보니 설지 언니가 말로써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순간을 다 보게 되네. 하여간 특이해, 특이해"

*            *          *

누런 색깔의 강물이 도도히 흐르는 황화강을 끼고 있는 정현은 예로 부터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큰도시였다. 그리고 정현과 개봉 사이에 있는 등봉현의 숭산 소림사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관문이 또한 정현이기도 했다. 지금 그런 정현으로 얼핏 보기에도 백여명은 충분히 넘어 보이는 인원으로 구성된 대단위 행렬 하나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행렬의 선두에는 어이없게도 당나귀 한마리가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행렬을 인도하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헌데 기이하게도 그런 당나귀의 등에는 사람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대신 잘 생긴 작은 매 한마리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당나귀의 걸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용케 떨어지지않고 졸고 있는 매는 다름아닌 비아였다. 당연히 그런 비아를 태우고 터덜터덜 걷고 있는 당나귀는 밍밍이었으며 밍밍을 따라서 정현으로 들어서는 행렬은 성수의가의 의행으로 위장하고 있는 마화이송단이었다.

"설지 언니! 여기가 정현이야?"
"응! 여기가 바로 정현이야. 우리 연이는 정현이 처음이야?"
"응! 처음이야"

행렬의 선두에서 천천히 달리고 있는 마차 안에서 귀여운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뒤 이어 마차의 창이 열리더니 고개를 쑥 내밀고 바깥을 이리저리 살펴 보면서 연신 탄성을 터트리는 어린 여아는 바로 사도연이었다. 의도치 않게 말 한마디로 철무륵과 혜명 대사 그리고 유도옥에게 깨달음을 안겨 주었던 설지와 그 일행들이 마침내 소림사가 바로 지척인 정현에 당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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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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