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 냄새 좋다! 설지 언니, 거리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
"응? 정말이네, 가만... 밍밍 이녀석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거야?"

정현으로 접어들면서 부터 줄곧 마차의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연신 탄성을 발하며 주변 구경을 하던 사도연은 어느순간 부터 거리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 오는 것을 깨닫고 냄새의 출처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사도연의 시선 앞으로 거리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각종 음식점들의 모습이 스르르 다가오더니 이내 시선 밖으로 밀려 사라져 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지금 자신들이 타고 있는 마차가 천천히 달려가고 있는 대로의 한쪽 옆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으며 대로변에는 만두나 당과 같은 먹거리들을 파는 가게들을 위시해서 찻집이나 주점, 그리고 제법 커다란 객잔 까지 모조리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풍경을 이리저리 살펴 보며 입맛을 다신 사도연은 내밀었던 고개를 집어 넣고 양발을 까불거리며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설지를 바라 보았다. 

"설지 언니! 객잔이야, 객잔!'
"응? 객잔이라고?"
"큭큭! 그러고 보니 밍밍이 녀석이 알아서 객잔으로 향하고 있었나 보네"
"하여튼 이 녀석은..."

사도연의 말을 듣고 창 밖 풍경을 잠시 살펴 본 설지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초혜의 말대로 지금 행렬이 향하는 곳은 원래의 목적지인 정현의 관병들이 사용하는 넓은 연무장이 있는 쪽이 아니라 인근의 객잔이 자리하고 있는 방향이었던 것이다. 한편 설지의 반응이 어떻든간에 행렬을 선두에서 진두지휘(?) 하고 있는 밍밍은 묵묵히 제갈길(?)인 객잔을 향해 걸음을 옮겨 놓기에 여념이 없었다. 객잔을 가야 작은 콩고물(?)이라도 자신에게 떨어진다는 것을 저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설지 언니, 나 맛있는 것 먹고 싶어"
"맛있는 것?"
"응!"
"호호.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그러자꾸나, 오랜만에 객잔 풍운이나 한번 경험해 볼까?"
"응? 객잔 풍운이 뭐야?"
"호호호. 그 왜 있잖니, 객잔에서 맛잇는 요리를 먹다가 우연히 싸움에 휘말려 들게 되고 그러다 멋있게 등장해서는 나쁜 사람들을 일거에 제압하는 뭐 그런거 말이야"
"아! 헤헤, 그럼 나도 객잔 풍운 경험할래'
"호호호. 그러자꾸나"

설지와 사도연이 그렇게 쓸데없이 주고 받던 객잔 풍운 이야기가 마무리를 향할 때 쯤 마침내 마차도 자리에 멈추어 서고 있었다. 정현의 관병 연무장으로 향하던 행렬이 밍밍의 음흉한 꼼수덕에 정현에서 가장 큰 객잔 앞에 다다르자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버렸던 것이다. 마차가 멈추자 창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설지와 일행들의 귀에 우렁우렁한 목소리 하나가 파고 들었다.

"크하하! 밍밍이 네놈도 이따금 보면 제법 귀여운 짓을 하는구나. 마침 잘 되었다. 객잔에 온김에 모처럼만에 한잔 해야겠구나. 설지야 뭐하는게냐? 얼른 내려 오너라"
"푸르릉~"

정현에서 가장 큰 객잔인 천룡객잔을 운영하는 왕소금은 지금 객잔 바로 앞 입구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광경을 객잔의 계산대에 앉아서 목도하고 있었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마차 바퀴 소리가 자신의 객잔을 향하는 것을 확인하고 앞으로 들어올 수입을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때 쯤 느닷없이 왠 당나귀 한마리가 등에 매 한마리를 태우고 가장 먼저 객잔의 입구에 떡하니 도착했던 것이다.

헌데 뒤이어서 왠 산도적 같이 생긴 중년 사내 하나가 불쑥 시야에 나타나는가 싶더니 객잔 쪽을 힐끗 한번 바라보고는 호탕한 웃음 소리와 함계 매 한마리를 등에 태운 당나귀의 콧잔등을 쓰다듬어 주며 귀엽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보기에 털 빛깔이 반지르하게 윤이 나는 것이 비루먹은 놈은 아니었으며 매 한마리를 등에 태우고 있는 특이한 모습이긴 하지만 절대로 귀여운 놈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왕소금도 뒤이어 벌어지게 될 더욱 놀랄만한 일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눈을 의심할만한 그런 일을...

절대로 귀엽지 않은 당나귀와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의 옆에 제법 구색을 갖춘 마차 하나가 멈추어 서는가 싶더니 곧이어 마차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작은 체형을 가진 여자 아이 하나가 가장 먼저 마차에서 폴짝 뛰어 내렸다. 그리고 마차를 향해 돌아 서더니 마차 안의 누군가를 향해 어서 빨리 내리라는 듯 손짓을 해보이고 있었다.

제법 귀엽게 보이는 여자 아이 하나가 손짓으로 재촉하는 마차 안에서 과연 누가 내리나 싶어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왕소금은 어느순간 부터 두 눈을 부릅뜨고 멍하니 마차에서 내리는 이들을 바라 보아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쁜 당혜 하나가 먼저 보이는가 싶더니 곧바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는 이는 아마도 선녀가 있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천하절색의 미모를 갖춘 앳된 여인이었던 것이다.

나라를 기울어지게 할 만큼 미인이라는 뜻의 경국지색이 있다면 바로 저런 여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탄을 절로 나오게 하는 미녀였다. 하지만 왕소금의 감탄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앳된 미녀의 뒤를 이어서 어딘가 모르게 싸늘한 기운을 전신으로 풍기는 성숙한 여인 하나가 마차에서 내려 서고 있었는데 싸늘한 분위기가 흠이라면 흠이어었지만 앞의 앳된 여인 보다 더욱 아름답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부릅뜬 왕소금의 두 눈은 더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져야만 했다. 세번째로 마차에서 내린 여인이 앞의 두 미녀가 가진 단점들인 앳된 모습과 싸늘한 기운 대신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어떻게 보면 성결하게 까지 느껴지는 모습으로 왕소금의 시선을 가득 채웠던 것이다. 그렇게 거의 정신을 놓다시피 하며 여인들을 살펴 보고 있던 왕소금은 마차의 문이 탁하고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제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왕소금은 경국지색의 세 여인들이 누구인가 싶어 마차 위를 살펴 보기 시작했다. 마차 위에 달린 표기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고관대작들은 물론이고 한다하는 명성을 가진 지체 높은 가문들에서 나온 마차라면 의당 가문을 상징하는 표기가 달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랬다. 왕소금의 예상대로 마차 위에는 검은 색의 깃발 하나가 달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어디보자. 뭐라고 적혀 있나... 성... 수... 의... 헉! 성수의가!"


검은 색의 깃발에 황금색으로 수놓아진 태극천과 성수의가라는 글자를 확인한 왕소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마치 구르듯이 달려나가 세 여인과 일행들을 맞이했다. 이따금씩 객잔을 찾았던 손님들 중에 귀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성수의가 만큼은 아니었다. 특히 가난한 이들의 병을 모른채 하지 않고 무료로 고쳐주는 성수의가의 성수신녀는 무림인들 보다 일반인들에게 더욱 높은 명망을 얻고 있는 귀인 중의 귀인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짐작이 맞다면 지금 왕소금의 눈 앞에 있는 이는 분명 성수신녀일 것이다. 허니 구르듯이 달려 나와 최대한 정중히 맞이하는 것은 절대 과례가 아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왕소금의 눈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은 바로 설지와 사도연이었다. 마차에서 가장 늦게 내린 성결한 여인이 가장 먼저 마차에서 뛰어 내린 어린 여아의 손을 잡고 서 있었던 것이다.

"어,어서 오십시오. 나리들... 소인은 천룡객잔의 왕소금이라고 하옵니다"
"호호, 반가워요. 왕아저씨, 우리 일행들에게 자리 하나 마련해 주세요."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소인을 따라오시지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객잔 안으로 설지 일행을 안내하던 왕소금은 이따금 설지를 힐끗 힐끗 훔쳐 보며 뜻모를 한숨을 내쉬곤 했다.그도 그럴 것이 지금 왕소금의 머리 속에서는 살만 뒤룩뒤룩 찐 볼품없는 그의 부인과 성결한 천하절색의 설지가 서로 비교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왕소금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 보던 사도연이 손을 잡고 걸어 가고 있던 설지를 올려다 보며 입을 열었다.

"설지 언니, 저 아저씨 왜 저래?"
"응? 글쎄?"
"크하하, 그야 설지가 워낙 예쁘니까 그러는 것이 아니겠느냐? 어떻소? 주인장! 내 말이 맞지?"

뜻밖에도 정확한 대답을 철무륵이 들려 주고 있었다. 그에 당황한 왕소금이 급히 입을 열어 부인했지만 더듬거리며 들려 오는 목소리에서 철무륵의 말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아,아닙니다"
"크하하, 아니기는, 괜찮소, 괜찮아"
"송,송구합니다"
"크하하"

한꺼번에 백여명은 수용이 가능할 듯 싶은 제법 넓은 객잔 안이 철무륵의 호탕한 웃음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부르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철숙부! 좀 조용히 해. 사람들이 전부 쳐다 보잖아"
"응? 크하하, 좀 보면 어떻느냐. 그렇지 않습니까, 어르신?"
"무량수불, 기분이 좋으신가 보이. 허허허"
"예. 모처럼만의 객잔 출입 아닙니까."
"아휴! 하여간 철대숙은 그 목소리 좀 어떻게 해야 돼"
"크하하"

초혜의 핀잔을 듣자 더욱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철무륵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떠들썩하니 걸음을 옮기는 일행을 왕소금은 조용한 이층으로 안내했다. 이층도 일층 마냥 넓은 공간이었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로 탁자가 채워져 있던 일층과 달리 한산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응? 주인장, 이층은 왜 이리 조용한거요?"
"예, 그것이 점심 무렵은 늘 이처럼 조용합니다. 하지만 저녁이면 술을 찾는 손님들로 인해 여기도 일층 처럼 대부분의 자리가 채워지게 됩니다."
"아! 그런거였소? 허면 오늘은 우리가 대낮 부터 술을 좀 팔아 주고 가야겠구려. 제일 좋은 술 좀 내오시오"

"예! 허면 요리는 어떤걸로..."
"뭐 그것도 주인장이 알아서 맛있는 걸로 인원수에 맞게 가져다 주시오. 설지야. 괜찮지?"
"응! 그렇게 해"

"아! 그리고 밖에 있는 그 당나귀 말이오"
"아! 예, 알아서 여물을 내주도록 당부해 놓겠습니다."
"크하하.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그놈에게도 술 한병 내주라는 그 말이외다."

"예? 당나귀에게 술을요?"
"크하하. 그렇소. 그리고 그 놈은 마굿간에 들어가려 하지 않을테니 그냥 내버려 두도록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허면 당나귀에게 안주는 뭘로?"
"응? 크하하, 예끼, 여보쇼, 당나귀가 안주는 무슨 안주요"

그렇게 말하는 철무륵을 멀뚱멀뚱 바라 보던 왕소금은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런 왕소금의 입에서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말은 바로 이런 말이었다. '예끼 여보쇼, 그럼 당나귀가 술은 무슨 술이요'

"설지 언니, 밍밍이 술도 먹어?"
"응! 어떤 할아버지 덕분이지"
"어떤 할아버지라니?"
"있어! 도사 비슷하게 생기신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는 설지의 시선 끝에 놓여 있는 이는 다름아닌 일성 도장이었다. 사실 한동안 귀양에 있는 성수의가에서 머물때 호아랑 자주 객잔에 가서 술을 마시곤 했던 일성 도장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부터는 그런 자신들을 따라 온 밍밍에게도 장난 삼아 술을 가르친 이가 바로 일성 도장이었던 것이다.

"크하하"

"큭큭큭"
"흠,흠"

설지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는 철무륵과 초혜, 그리고 무안하기 때문인지 헛기침을 연발하는 일성 도장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단어를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지켜 보는 이들을 훈훈하게 만드는 가족 같은 정겨움이 그들에게서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주문한 요리를 기다리던 이들에게 마침내 한상 가득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마화이송단의 대부분은 객잔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숙영지로 예정된 관병들의 연무장으로 향했지만 천룡객잔 이층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만 해도 철무륵과 일성 도장, 혜명 대사와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을 비롯해서 도합 삼십여명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차려지는 요리의 양도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우와! 우와! 맛있겠다"

어린 사도연의 감탄 처럼 모처럼만에 제대로 된 요리를 구경하는 이들은 맛있는 향기 까지 코속을 자극하자 더이상 참지 못하고 서둘러서 각자의 앞에 놓여진 요리에 젓가락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요리 한점으로 입맛을 다스린 후에야 비로소 술을 한잔씩 돌리는 일행들이었다. 여행에서 쌓인 피곤함이 은연 중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설지 언니, 이거 매워"
"응? 매워?"
"응!"
"호호호, 어디 보자, 언니가 먹어볼게"

자신의 앞에 놓인 요리 한점을 냉큼 집어서 입에 넣었던 사도연은 너무 매워서 삼키지도 못하고 입에 넣었던 요리를 도로 뱉어 내고 말았다. 이에 설지가 사도연이 먹었던 요리 한점을 입으로 가져가자 진소청과 초혜도 덩달아 요리 한점씩을 입으로 가져 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의 동시에 목을 부여잡은 세 여인에게서 이 같은 억눌린 외침이 흘러 나왔다.

"크윽! 화,화독이다"

그리고 이 말이 끝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함께 자리한 다섯명의 매화검수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그 서슬에 그들의 엉덩이를 여지껏 지탱해주었던 고마운 의자 몇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나딩구는 바람에 일순 장내가 고요해졌다. 사실 매화검수 다섯명은 무당십이검과 소림 십팔나한 그리고 녹림 이십사절객 등의 주요 고수들이 모두 숙영지 구축을 살펴 보기 위해 앞서 갔기에 자신들의 장문인을 포함해서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일행들의 호위 자격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세 여인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화독이라는 외침이 흘러 나오자 이를 좌시 못하고 주변 경계를 위해 즉각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지켜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상했다. 특히 조금전에 화독이라고 외쳤던 세 여인 중의 하나인 초혜가 멀뚱한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바람에 매화검수 다섯 사람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아저씨들 왜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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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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