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석아! 그러다 넘어질라, 조심하거라"
"네~"

마치 다람쥐가 나뭇가지 사이를 뽀르르 달려가는 것 처럼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사도연의 뒷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호걸개와 혁련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도연의 뒷모습이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자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하던 호걸개가 걸죽한 욕설 한마디를 내뱉으며 설지 일행이 한참 포식 중인 탁자를 향해 다가 갔다.

"이런 육시랄 인사들이 있나. 우리 두 사람 입은 입도 아니더냐?"
"허허허, 어서오시게. 객적은 소리 그만하고 어서 와서 앉으시게나"
"크하하, 늦으셨습니다. 어서오시지요"
"어서오세요. 거지 할아버지, 교주 할아버지"
"킁!"
"허허허"

뭔가 잔뜩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던 호걸개가 한소리를 더하려다 말고 콧방귀를 뀌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 그 옆자리에 천마신교 교주 혁련필이 앉자 일성 도장이 두 사람에게 화주 한잔씩을 부어 주었다.

"엥? 이게 뭐야? 이거 화주아닌가?"
"허허, 맞네, 화주일세. 한잔하시게"
"누가 시킨게야?"

"내가 시켰네만 왜 그러는가?"
"하! 이런 답답한 말코를 내가 막역지우라고..."
"그게 무슨 말인가?"

일성 도장의 의문에 탁자 위에 수북히 놓인 요리들을 가리키며 호걸개가 재차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게. 여기 이렇게 푸짐하게 차려진 요리들을 보니 음식값도 꽤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지 않은가?"
"그야 그렇겠지"
"그러니까 이 말코 도사야. 여기있는 음식값을 치를 여력이 자넨 있나?"
"그야..."

"나야 물론 거지니까 당연히 빈털터리고 산적 두목이나 집에서 쫓겨난 교주는 두말할 것도 없고... 자, 생각해보게. 셈을 누가 치르겠나?"
"..."
"쯧, 말코하고는... 당연히 설지 저 놈이 셈을 치르지 않겠나? 그러니 이때가 기회인데 고작 화주가 뭔가 화주가? 이보게 점소이!!"

말은 꽤나 길었지만 호걸개의 요지는 이거였다. '공짠데 고작 화주가 왠말이냐'

"허허허, 그러고 보니 그렇구만. 내가 생각이 짧았구만"
"뭐,뭐야? 이 분위기는? 혜아! 지금 어른들이 우리 벗겨 먹자고 달려드는 것 맞지? 그렇지?"
"응! 그런 것 같은데"
"이씨, 거지 할아버지!!"

"어이쿠, 놀래라, 왜 그러느냐?"
"아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켈켈켈! 그럼 금존청 시켜도 되겠느냐?"
"마음대로 하세요"
"켈켈켈, 그나저나 점소이 이 놈은 어디간거야?'

같은 시각 호걸개가 찾는 점소이는 사도연을 데리고 계산대를 차지 하고 앉은 왕소금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있었다.

"주인 어른!"
"무슨 일이냐?"
"예. 이분 소공녀께 철전 몇개를 쥐어 주라고 하십니다. 계산은 나중에 같이 하신다고..."
"철전을?"

"예!"
"그야, 뭐 어려운 것도 아니지... 그래 귀여운 소공녀께서는 철전을 어디다 쓰실려고 그러십니까?"
"헤헤, 당과 사먹을려고요. 설지 언니가 여기 이거 금자를 줬는데 너무 큰 돈이라고 철대숙이 그러셨어요"


아직 어린 아이답게 두서 없이 말을 늘어 놓긴 했지만 그 의미는 충분히 전달받은 왕소금이었다. 그런 왕소금의 시선으로 사도연이 펼쳐 보인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금자가 황홀한 빛을 뿌려대며 다가 오고 있었다. 상인 특유의 기질 탓에 잠시 금자에 시선을 빼앗겼던 왕소금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고작 당과 하나 사먹으라고 어린 아이에게 금자를 쥐어 준다? 이는 고관대작이나 엄청난 부호들도 잘 하지 않는 일이었다. 순간 왕소금의 머리 속으로 퍼뜩 스쳐 가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눈 앞에 보이는 작고 귀여운 이 소공녀의 신분이 성수의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으리라는 것을...

"혹시 소공녀께서 뉘신지 소인이 알 수 있을까요?"
"헤헤, 저는 사도...."


왕소금의 질문에 별생각 없이 사도세가의 여식이라고 말하려던 사도연이 문득 이제 더이상 사도세가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바로 머리를 흔들어 침울한 생각을 날려 버린 사도연이 밝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헤헤, 그러니까 저는 설지 언니의 제자예요"
'예? 설지 언니의 제자라고요? 그게 무슨..."

사도연의 말을 듣고 잠시 설지라는 이름을 생각하던 왕소금이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칠복이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소공녀를 데리고 내려 오면서도 그저 성의가의 가솔들 중에 하나겠거니 하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허면 성수신녀의 제자라는 말씀이신지?"
"헤헤, 맞아요."

왕소금과 칠복이의 짐작대로 눈 앞의 소공녀가 성수신녀의 제자였던 것이다. 그제서야 왕소금과 칠복이는 성수신녀가 금자 하나를 어린 소공녀에게 쥐어 준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알기에 성수신녀의 나이가 많지 않기도 했지만 여지껏 제자가 있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눈 앞의 소공녀가 바로 성수신녀가 거둔 첫번째 제자라는 이야기인데 당연히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다 이처럼 귀여운 소공녀라면 금자인들 아깝게 여겨지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서 왕소금과 칠복이가 그토록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던 까닭은 성수신녀의 제자라는 신분이 갖는 위치가 절대로 간단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다. 민간에서는 가히 신앙의 대상 처럼 여겨지는 이가 성수신녀이고 보면 그 제자 역시 이름값만으로도 충분히 고귀한 존재인 것이다.

"허허, 그러시군요. 오늘 이 왕소금이 안계를 넓혔습니다. 성수신녀의 제자를 다 뵙다니..."
"예?"

하지만 사도연의 반응은 '이 아저씨가 왜 이래?' 하는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성수신녀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존경을 받고 있는지를 제대로 헤아리기에는 사도연의 나이가 아직은 너무 어렸다.

"허허허, 아닙니다. 철전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까? 자, 여기 있습니다."

그러면서 철전 한줌을 쥐어 사도연의 손에 쥐어 주는 왕소금이었다. 철전을 받아든 사도연이 기쁜 표정으로 갯수를 헤아려 보니 무려 아홉개의 철전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헤헤, 아홉개나 되네. 아저씨, 이걸로 당과를 몇개나 사먹을 수 있나요"
"음, 보자, 칠복아, 요즘 당과 하나에 얼마나 하더냐?"
"예. 어르신, 철전 하나를 가져 가면 당과 네 개를 살수 있습니다요"

"허허, 들으셨습니까. 철전 하나에 당과 네 개를 준다고 하는군요"

"우와! 신난다."
"허허허"
"아참! 아저씨, 이 금자는 어떻게 해요? 드릴까요?"

"허허허, 아닙니다. 잘 가지고 계십시오. 그보다 당과 파는 가게 위치는 아십니까?"
"헤헤, 아까 오다가 봤어요"
"그러시군요. 그럼 다녀오십시오"
"네~"

종종 걸음으로 객잔을 나선 사도연이 당과 파는 가게가 있는 방향을 향해 달려 가는 모습을 확인한 점소이 칠복이가 다시 계단을 밟고 이층을 올라갈 즈음 걸죽한 목소리 하나가 자신의 귀에 와닿았다. 바로 점소이를 찾는 호걸개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를 확인한 칠복이가 잽싼 걸음으로 후다닥 이층으로 달려 올라가자 자신을 찾고 있던 늙은 거지 하나가 반색을 하며 손짓했다.

"부르셨습니까요?"
"켈켈켈, 그 놈 참, 불렀으니까 왔겠지"
"하명하실 일이라도..."

"하명은 무슨, 가서 금존청이나 몇병 내오너라"
"예? 금존청이요?"
"그래!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게냐?"

"아,아닙니다. 찾는 손님이 거의 없어서 몇병이나 있는지 확인을 해봐야 합니다요"
"그럼 뭘하는게야. 냉큼 달려가지 않고"
"아! 예, 예"

호걸개의 호통 소리에 바짝 긴장한 칠복이가 한순간 몸을 뻣뻣이 굳히고 금존청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런 칠복이의 발걸음을 고운 목소리 하나가 살며시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이봐요. 점소이 아저씨. 잠시만요"

호걸개의 호통에 굳어 버렸던 전신이 노곤노곤하게 풀어지는 것을 확인한 칠복이가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런 칠복이의 시선으로 자리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어려 보이는 여인 하나의 모습이 빨려들 듯 다가 왔다. 바로 초혜였다.

"설지 언니! 우리도 한잔 해"
"응? 우리도?"
"응! 청청 언니는 어때?"
"그러지 뭐"

"헤헤헤, 좋았어! 점소이 아저씨, 우린 달콤한 여아홍 한병 가져다 줘요"
"크하하, 그러고 보니 우리 초혜가 술이 많이 고팠나 보구나"
"흥! 알아서 챙겨줄 생각을 안하니까 그런거 아니예요"
"그러게, 벗겨먹을 생각만 하느라고 우리들은 안중에도 없었을걸"

초혜와 설지의 타박에 당황하여 손사래를 치는 철무륵의 모습에 객잔 이층에서는 왁자하니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편 철전 아홉개를 손에 쥐고 당과 가게로 달려갔던 사도연은 당과 네 개를 양손에 나눠 쥐고 많은 가게들이 자리한 거리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막 포목 가게 옆을 지나치는 사도연의 귓속으로 희미하지만 분명한 여자의 비명 소리 하나가 들려 왔다.

갑자기 들려온 비명 소리의 출처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사도연의 귓속으로 재차 낮은 비명이 들려 왔다. 그 비명 소리는 포목 가게 옆으로 이어진 골목 안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에 골목 어귀로 살며시 걸음을 옮긴 사도연은 골목 안의 상황을 살펴 보기 위해 담장 뒤에 숨어서 빼꼼히 고개만 내밀고 골목 안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런 사도연의 시선으로 어딘가 모르게 불량스러워 보이는 장정 세 사람의 모습이 먼저 보였고 그런 그들의 모습 사이로 언뜻언뜻 여인 두 사람의 모습이 함께 보여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 사도연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내들에게 얻어맞은 것인지 흐트러진 차림으로 입에서 피까지 흘리고 있는 두 여인은 사도연이 익히 알고 있는 여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소홍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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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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