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은 아가씨, 오,오지 마세요"
"응? 소홍 언니 왜 그래?"

담벼락에 몸을 숨긴채 골목 안쪽을 향해 빼꼼히 고개를 들이밀고 골목안 사정을 확인하던 사도연은 두 여인 중 하나가 소홍임을 확인하고 깜짝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부르짓듯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한편 사도연으로 부터 소홍이라고 불린 여인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어린 소녀의 목소리에 흠칫하며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을 외쳐 불렀던 소녀 보다 더욱 놀라고 말았다. 뜻밖에도 골목 어귀에 서서 자신을 부르고 있는 이가 바로 사도연이었던 것이다.

이에 깜짝 놀한 소홍이 황급히 손을 저어 여기서 빨리 달아나라는 시늉과 함께 다급한 목소리를 토해내었다. 하지만 소홍의 다급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사도연은 소홍이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성큼성큼 골목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사도연을 지켜 보는 세 장정들의 입에서는 음흉한 웃음 소리가 나직히 흘러 나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목도 축일겸 수금(?)이나 좀 해볼까 하고 저잣거리로 나섰던 흑사방 정현 지부 소속의 파락호 세 사람은 날카로운 매와 같은 시선으로 먹잇감을 찾아 다니다가 시전을 둘러 보며 간간히 웃음을 터트리는 두 여인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서로를 바라보며 씩하고 음흉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옷 차림새로 보건데 제법 부잣집의 하녀들 처럼 보이는 그녀들이 채워줄 자신들의 빈 주머니는 물론이거니와 또다른 무엇인가를 채워 주기에 충분한 반반한 얼굴을 그녀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로 파락호들의 결정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흑심을 품고 그녀들을 은밀히 따르던 파락호들은 포목 가게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하는 그녀들을 입구에서 기다리다 막 포목 가게를 나서는 그녀들을 잽싸게 나꿔채고는 골목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가진 것들을 모조리 탈탈 털어내고 있던 중이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그녀들이 비록 흑사방이라는 흑도 연합 소속의 파락호일 망정 삼류 무공이나마 한자락 익히고 있는 파락호들을 당해낼리 만무했다.

그렇기에 분한 마음을 속으로 삼키며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던 은자를 다 내어주고 거기다 뺨을 맞는 등의 극심한 곤욕을 함께 치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갑자기 골목 어귀에서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 와서 파락호들의 관심을 끌었다. 자신들 앞의 두 계집년들이 하는 꼴을 보아하니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는 작은 꼬맹이가 아무래도 제년들의 상전인 듯 싶었다. 더불어 입성을 보아하니 제법 값나가는 귀중품이나 패물도 수중에 지니고 있는 것 처럼 보여 파락호들은 서로를 바라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씩하고 웃음 지었다.

"흐흐흐. 귀여운 꼬마 아가씨는 뉘신가?"
"그러는 아저씨들은 누구세요? 왜 언니들을 괴롭혀요?"
"응? 우리가 누구냐고? 흐흐흐, 이 어르신들은 저년들에게 받을 빚이 있는 사람들이란다"
"빚이라고요?"
"아,아니예요, 작은 아가씨"

"시끄럽다, 이 년들,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데 어디서 끼어 드는게냐? 자, 어디 까지 이야기 했더라?"
"빚이 있다고 했어요"
"그래! 그랬지, 흐흐흐, 빚이 있다고 했었지. 어쩔테냐? 네가 저년들의 상전으로 보이는데 대신 빚을 갚겠느냐?"
"음, 제가 언니들의 상전은 아니지만 빚은 갚아드릴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양손에 들고 있던 당과를 한손으로 옮긴 사도연이 품에서 전낭을 꺼내 파락호 중 하나에게 내밀었다. 뜻밖에도 순순히 전낭을 내미는 사도연을 보며 어린 아이에게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싶었던 파락호는 전낭을 열다말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전낭을 채 다 열기도 전에 누런 빛이 너무도 반갑게 눈을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 이것봐라"
"왜 그러나?"
"하하, 이것 좀 보게, 요 조그만 계집 아이가 금자를 지니고 있구만"
"금자라고?"
"그래, 이것 보게"

그렇게 말하며 전낭에 손을 집어 넣었다 뺀 파락호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는 작지만 선명한 황금 빛을 뿌리고 있는 금자 하나가 잡혀 있었다.

"어젯 밤 꿈 속에서 소나기를 흠뻑 맞았는데 아무래도 오늘 황재를 할려고 그랬나 보이"
"흐흐흐, 나는 어제 밤 꿈에 개가 나왔다네"
"응? 그럼 그건 개꿈아닌가?"
"흐흐흐, 아무래도 그 개가 재복을 지닌 개였던 모양일세"

과연 그럴까? 자신들이 지금 누구를 상대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짐작 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파락호들은 전낭을 갈무리 하고는 다시 사도연의 모습을 세세히 살펴 보기 시작했다. 값나가는 패물을 가지고 있나해서 였다. 그리고 그런 기대를 가진 파락호 중 하나의 시선은 어렵지 않게 사도연의 손가락에 끼워진 거무튀튀한 지환을 찾아낼 수 있었다. 패물에 대한 전문적인 식별 능력이 없는 자신이 보기에도 심유한 광채를 간직하고 있는 지환이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년 손가락에 있는 지환도 빼게, 제법 값나가게 보이는군"
"호! 그렇군"

그렇게 말하며 파락호 하나가 사도연의 지환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사도연의 손가락에 끼워진 지환을 빼내기 위한 파락호의 첫번째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사도연이 황급히 손을 뒷춤으로 감추며 뒷걸음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안돼요"
"이 년이"

거부하는 사도연의 모습에 화가 난 파락호 하나의 손바닥이 작고 여린 사도연의 뺨에 짝 소리를 내며 가 닿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갸냘픈 비명 소리가 골목 어귀로 흘러 나갔다.


"하하, 그랬단 말이죠?"
"그러문요. 정말 그때는 죽었구나 싶었습니다요. 생각해 보십시요. 총표파자께서 목숨 처럼 소중히 여기시는 설지 아가씨의 전낭을 털다니... 아휴"

사도연이 골목 안에서 파락호로 부터 따귀를 얻어 맞기 바로 직전에 골목에 맞닿아 있는 포목 가게 쪽으로 크고 작은 그림자 두 개가 다가서고 있었다.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형상으로 볼때는 그저 어른과 어린 아이 하나가 만든 그림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막상 그림자를 만들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직접 보는 순간 사람들은 그 특이한 외형을 좀처럼 잊을 수 없을 것 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그림자를 만들고 있는 두 사람 중에 키가 큰 어른은 전신을 온통 녹색으로 감싸다시피 하고 있었으며 그 옆의 작은 아이는 깨끗한 백색의 도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두 사람은 숙영지에 들렀다 오는 초록이 두자성과 무당파의 소사숙이자 꼬맹이 도사로 사저들에게 불리우고 있는 현진 도사였다.

"하하, 그러니까 설지 누님과 두 분 사저가 장난을 친거로군요"
"맞습니다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등줄기로 식은 땀이 다 납니다요"
"꺅!"
"악! 작은 아가씨!"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던 두자성과 현진 도사가 막 포목 가게 옆의 골목 어귀를 지나치려 할때 갸날픈 비명 소리 하나가 골목 안에서 흘러 나오며 두 사람의 발목을 붙들었다. 헌데 문제는 그 비명이 단순한 아이의 비명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설지의 도움으로 무공에 상당한 진전을 이룬 두 사람에게 너무도 익숙한 기운이 비명과 함께 골목 안에서 감지되었던 것이다. 거기다 뒤에 들려온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성은 분명 두 사람이 잘 알고 있는 이의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
"어서!"

낯익은 기운을 감지하고 거의 동시에 골목 안으로 뛰어든 두 사람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땅바닥에 나딩굴었다가 한 여인의 도움으로 힘겹게 일어서고 있는 작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어린 소녀는 어디를 어떻게 맞았는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비틀거리는 주변으로는 당과 몇개가 흙이 잔뜩 묻은 채 굴러 다니고 있었다. 두자성과 현진 도사의 눈에 보이는 소녀는 바로 사도연이었다.

"연아! 이게 대관절 무슨 일이냐?"
"현진 오라버니, 와아앙!"

갑자기 골목 안으로 난입(?)한 두 사람 중에서 현진 도사를 발견한 사도연이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을 발견하고 서럽게 흐느끼는 사도연에게 다가간 현진 도사는 우선 크게 다친데가 없는지 사도연의 몸 여기저기를 살펴 본 후 별다른 상처가 없자 그제서야 긴 한숨과 함께 안도감을 뱉어냈다. 옆에서 사도연을 부축하고 있던 소홍은 현진 도사가 사도연을 살펴 보는 것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흐느끼는 사도연을 품에 꼭 안고 등을 토닥이며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한편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이로 총표파자를 꼽아야 할지 아니면 설지를 꼽아야 할지 최근에 와서 곧잘 헷갈려 하던 두자성은 설지의 제자인 사도연이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 화가 너무 나서 푸들푸들 떨리는 몸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자연 옅은 살기가 두자성의 몸에서 자욱히 일어나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되어야 할 파락호들은 두 사람이 골목 안으로 난입하자 마자 서로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걸음을 옮겨 이미 골목 어귀 쯤에 당도해 있었다.

눈치 하나로 먹고 사는 파락호들답게 범상치 않은 기운을 흘리는 두자성과 현진 도사를 발견한 순간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파락호들의 의도는 거의 성공할 것 처럼 보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았으면...

"거지 할아버지! 뭐하느라 늦으신거예요?"
"응? 초혜 네가 나를 기다렸더냐?"
"아이 참! 그렇다치고 빨리 말씀해 보세요"
"그러면 그런거지 그렇다치고는 또 뭐냐. 하여간 녀석하고는.... 별일 아니다, 꼴에 정파 후기지수들이라고 숙영지에서 늘 신교측과 자리 다툼이 빚어지고 있잖느냐, 그래서 내가 숙영할 자리를 정해주고 왔다."
"거지 할아버지, 난 볕 잘들고 바짝 마른 땅이 좋은데 우리 자리는요"

숙영지의 자리를 정해주고 왔다는 호걸개의 말에 설지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허! 그 녀석 참! 새파랗게 젊은 것이... 인석아 그런 땅은 우리 늙은이들이 차지해야지. 쯧쯧, 걱정 말거라, 초혜 녀석 보복이 두려워서라도 제일 좋은 자리는 너희들에게 배정했으니.."
"호호호, 고맙습니다"
"에잉!'
"허허허"

그럼 그렇지 하며 설지와 일행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조손들이 연출하는 것 처럼 화기애애하고 그림 같은 풍경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풋풋한 웃음을 터트리던 설지가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더니 옆에서 열심히 오리 고기를 뜯어 먹고 있던 비아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비아! 연이에게 가 봐. 빨리"

그러자 열심히 오리 고기를 뜯고 있던 비아가 '갑자기 무슨 일이야' 하는 표정으로 설지를 바라 보았다. 하지만 설지의 표정에서 다급함을 읽은 비아는 군소리(?)없이 곧바로 창쪽으로 뒤뚱거리며 걸어가 창틀을 박차고 날아 올랐다.

"무슨 일이냐?"
"설지 언니, 갑자기 왜 그래?"
"연이의 내기가 심하게 흔들렸어"
"연이가?"
"응!"
"내가 먼저 가 볼게"

사도연의 내기가 흔들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초혜가 두말 않고 가장 먼저 창에서 뛰어 내려 사라져 갔다. 그 뒤를 이어 호아와 백아 그리고 용아 까지 창밖으로 사라져 가자 설지도 자리에서 일어나 창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설지의 뒤로는 진소청이 싸늘한 냉기를 흘리며 따르고 있었다.

"철숙부! 설아 좀 챙겨줘"
"걱정 말거라, 나도 곧 따라 가마"

설아를 철무륵에게 맡긴 설지의 모습이 창에서 사라지자 뒤를 이어 진소청의 모습도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허 참! 갑자기 무슨 일인지"
"연이의 내기가 흔들렸다고 하는걸 보니 곤경에 빠진 듯 싶네"
"설아! 이제 그만 가방 속으로 들어가거라"

호아와 백아, 그리고 용아는 영수들 답게 허공을 아무런 무리 없이 달려 가거나 날아 갈 수 있지만 아직은 조금 긴 거리를 한번에 뛰는 것이 전부인 설아는 철무륵의 말에 설지가 벗어 놓고 간 가방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설아가 들어가고 나서 가방을 집어 든 철무륵은 창 쪽 대신 계단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일성 도장을 향해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어르신! 제가 가볼테니 여기 그냥 계십시오"
"그러세"
"허 참! 갑자기 이 무슨..."

사도연이 파락호에게 맞은 일로 인해 빚어진 이 일련의 사태는 천룡 객잔의 이층 창을 통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인 셋이 마치 날아 내리듯이 내려 오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삼선녀가 천계에서 강림했다는 소문으로 변질되어 한동안 사람들 사이에 파다하게 흘러 다니기도 했다. 한편 설지의 다급한 말을 듣고 오리 고기 까지 팽겨쳐 두고 날아 오른 비아는 어렵지 않게 사도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사도연을 향해 날아가는 비아의 매서운 시선에 슬금슬금 뒷걸음치며 골목을 빠져 나오려는 세 사람이 보였다. 다음 순간 비아는 더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예의 날개치기로 막 골목을 빠져 나오려는 파락호들을 인정사정 없이 패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잘 구운 오리 고기를 포식하던 자신의 평온함을 방해한 댓가이자 소심한 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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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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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06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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