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악"
"으윽"
"이.이게 뭐야?"

삼류 무공이나마 익히고 있는 자신들이 보기에도 가히 심상치 않은 기세를 흘리는 두 사람이 어린 소녀에게 잠시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사이에 눈치 빠른 파락호들은 숨직인 채 뒷걸음질로 슬금슬금 골목을 빠져 나와 막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가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자신들의 전방 시야를 가리며 하늘에서 부터 뚝 떨어지듯이 등장한 매 한마리의 난폭한 공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들도 모르게 비명성과 당혹성을 발해야 했다. 그 바람에 잠시 초록이 두자성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던 파락호들의 모습이 두자성의 시선에 다시 걸려 들고 말았다.

"이런 개잡놈들이 있나, 작은 아가씨를 저렇게 만들어 놓고 감히 도망을 치려 해?"

골목 어귀에서 갑자기 들려온 비명 소리를 듣고 나서야 사도연이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에 흥분하여 파락호들의 종적을 잠시 놓쳐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두자성이 자신을 질책하며 비명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 두자성의 시선으로 도망치려 했던 세명의 파락호들이 비아의 사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연신 골목 안쪽으로 밀리며 얻어 터지고 있는 장면이 다가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두자성이 이채를 발하며 파락호들을 향해 진한 살기를 흘리기 시작했다. 비아가 왔다면 설지도 곧이어 당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파락호들을 대상으로 가벼운 몸풀기 운동(?)을 할 시간이 얼마 없다는 얘기였다. 이에 두자성은 서둘러서 큰걸음으로 성큼성큼 파락호들을 향해 다가 가기 시작했다. 입가에는 좀체로 보기 힘들었던 사악한 미소 까지 드리운채...

한편 맛있는 오리 고기를 눈 앞의 파락호들 때문에 내버려 두고 왔다는 생각이 든 비아는 예의 날개치기로 세명의 파락호들을 번갈아 가며 후려치다가 두자성이 다가오자 강력한 날개치기 한방씩을 날려 파락호들을 끝내 바닥에 나딩굴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골목길의 담장 위로 훌쩍 날아간 비아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날개를 접으며 살포시 내려 앉았다. 마치 이제 자신의 볼일은 모두 끝났다는 듯이.

 

그렇지만 비아의 날카로운 시선만은 여전히 바닥에 쓰러진 파락호들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여차하면 파락호들에게 너무도 흉악한 무기 역할을 했던 자신의 날개를 다시 활짝 펼쳐 들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대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용서를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감히 도망을 치려 해"

비아가 담장 위로 내려 앉자마자 쓰러진 파락호들에게 다가간 두자성이 가벼운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비아의 공격에서 벗어나면서 한숨 돌리나 했던 파락호들에게 진정한 악몽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가볍게 옆구리를 툭툭 차는 것 처럼 보였지만 내력을 담은 두자성의 발길질에서 엄청난 고통이 파락호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 치며 비명을 질러 보려 했던 파락호들은 그마저도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부터인지 모르지만 자신들의 아혈이 봉쇄되어 있었던 것이다. 두자성이 발길질로 신나게 매타작을 벌이기 시작하던 그 순간 골목 어귀 에서는 누군가의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 오는가 싶더니 이내 두자성에게 익숙한 여인의 다급한 음성 하나가 골목 안으로 빠르게 날아 들었다.

"연아!"

목소리의 주인공은 비아를 따라 천룡 객잔의 이층 창에서 제일 먼저 뛰어 내렸던 초혜였다. 설지로 부터 사도연의 내기가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달려 왔던 초혜는 골목 안쪽에서 소홍의 품에 안겨 훌쩍이는 사도연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수 있었다. 아직 내력을 다스리거나 제대로 운용하지는 못하지만 설지가 정성껏 기반을 잡아 주고 있는 사도연이었기에 여섯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내력이 사도연의 단전에는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도연의 내기가 흔들렸다는 것은 외부로 부터 뜻하지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는 의미였기에 사도연을 찾아서 달려 오던 초혜는 사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달리는 마차에라도 치어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소홍의 품에 안긴 사도연을 발견하는 순간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골목 안의 풍경을 보는 순간 대충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이 가기도 했다.

"으아앙! 초혜 언니!"
"그래, 그래 무슨 일이니?"
"훌쩍, 훌쩍, 저 아저씨들이 훌쩍..."

소홍의 품에 안겨서 훌쩍이던 사도연이 초혜를 발견하고 다시 커다랗게 울음을 터트리며 초혜에게 달려와 안겨 들었다. 소홍이 다독여 주었지만 억울함이 채 가시지 않았기에 초혜의 품에 안긴 사도연의 울음 소리는 더욱 크고 구슬프게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골목 어귀에서 다시 한번 급박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 오더니 호아를 선두로 백아와 설지 그리고 진소청이 각각 모습을 드러내었다.


"연아!"
"설지 언니! 으아앙"

울음소리가 갈수록 작아지기는 커녕 더욱 커져만 가는 사도연이었다. 놀란 가슴을 다독이며 달려왔던 설지는 그런 사도연을 먼저 품에 안아들었다. 연후 파락호들을 연신 두들겨 패고 있는 두자성 쪽으로 시선을 한번 주었던 설지는 두자성을 지나서 소홍과 애향 그리고 현진 도사를 향해 차례로 시선을 옮겨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진 도사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들인 설지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품에 안긴 사도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괜찮아?"
"훌쩍, 응, 훌쩍"
"어디 아픈데 있니?'
"훌쩍, 응, 여기가 아파"

그렇게 울먹이면서 사도연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자신의 빰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 사도연의 뺨은 붉은 손자국과 함께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어디 보자"

안아 들었던 사도연을 내려 놓은 설지가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춘 후 사도연의 볼을 살살 쓰다듬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가 아프다고?"
"응"
"언니가 안 아프게 해줄게. 아~ 해봐"
"아~"

시키는대로 작고 귀여운 입을 한껏 벌린 사도연의 입속을 잠시 살펴 본 설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부풀어 오른 뺨에 손을 가져다 대고 부드러운 진기를 흘려 넣어 붓기를 가라 앉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이라고 할 만큼 빠른 시간에 사도연의 뺨에서 붓기가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붉은 손자국은 그대로 남아 사도연이 치른 곤욕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우리 연이가 튼튼해서 입술이 조금 찟어진 것 외에 다행히 다른 상처는 없구나, 밥만 잘 먹으면 금방 다 나을거야"

"정말?"
"그럼, 언제 이 언니가 거짓말 하는 것 봤어?"
"아니!"
"호호, 하지만 특제 보령환 하나는 먹어야겠구나"
"으음..." 

특제 보령환 하나를 먹어야겠다는 설지의 말에 금새 심각한 표정을 짓는 사도연이었다.

"우리 연이가 무슨 생각하는걸까?"
"으음, 나... 보령환 먹기 싫어"

주저주저 하면서 어렵게 말을 꺼내는 사도연이었다. 아마도 다른 무인들이 사도연의 이 말을 들었다면 가슴을 치며 통탄해 마지 않았을 것이다. 설지가 만든 특제 성수보령환에 공청석유가 들어 있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응? 먹기 싫어? 왜?"
"너무 맛없어"
"호호호, 원래 약은 맛없는거야. 그래도 먹어야 튼튼해지지"
"싫은데..."
"호호호"

투정을 부리듯 하며 안겨드는 사도연을 번쩍 안아든 설지가 사도연의 등을 토닥여 주며 소홍과 애향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초록이 두자성에게 얻어 맞고 있는 세 사람과 소홍과 애향의 흐트러진 옷매무새로 보건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는 설지였다. 하지만 당사자들로 부터 직접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두 사람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여준 설지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 괜찮아? 어디 다친데 없어?""
"예. 아가씨, 저희는 괜찮습니다."
"피를 흘린 것 같은데, 어디 한번 봐"
"아,아니예요. 아가씨 저희는 정말 괜찮습니다."
"그래도 확인해야겠으니까 이리 와봐"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세세히 살펴본 설지가 사도연에게 그랬던 것 처럼 부드러운 진기를 이용하여 부풀어 오른 뺨을 다스려 주었다.

"흠, 이제 괜찮을거야. 어디 이제 한번 말해 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예. 아가씨 그러니까..."

두 사람을 대표해서 소홍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박산현에서 설지로 부터 구원받은 소홍과 애향은 그날 이후 부터 성수의가의 가솔 중 하나로써 의술을 익히는 한편으로 숙수가 없는 의행에서 숙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풍찬노숙과 비슷한 숙영 생활에서 마땅한 음식 장만이 쉬울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부실한 식사를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었다.

그런데 모처럼만에 성시가 가까운 곳에서 숙영하기로 결정이 내려지자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을 구입하기 위해 서둘러 시전이 있는 저잣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때마침 개방의 태상방주인 호걸개가 자신과 함께 온 제자들과 개방 정현 지부의 제자들 까지 모조리 숙영지로 데리고 와서 짐 정리를 도와주는 바람에 별달리 할일이 없어진 것도 소홍과 애향이가 생각을 굳히는데 큰 몫을 하였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숙영지를 나선 두 사람은 정현의 저잣거리를 찾았고 여인들답게 각종 노리개 등을 구경하며 시전 여기저기를 둘러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포목점을 발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고운 옷감들을 살펴 보며 눈요기를 실컷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막 포목점을 나서는 길에 갑자기 나타난 세명의 파락호들에게 붙잡혀 골목안으로 끌려 들어 왔으며 그 이후 사도연이 나타나 파락호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되었다.  

"음, 그러니까 저 사람들이 우리 성수의가의 가솔들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짜고짜 공격했다는거네"

옆에서 듣고 있던 초혜의 말이었다. 그런데 초혜의 이 말이 가져온 파장은 의외로 컸다. 왜냐하면 골목 어귀에는 이미 상당수의 사람들이 모여 들어 무슨 일인가 싶어 골목 안쪽을 지켜 보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대로라면 파락호들을 먼저 발견한 사람들이 못볼 것을 봤다는 듯이 서둘러 자리를 피했을 것이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명의 여인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거기다 흉악하기 그지없는 파락호들을 개패듯이 때려 잡고 있는 온통 녹색 차림의 사내를 보게 되자 사람들은 두려움 보다는 속 시원하다는 생각과 함께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들의 정체가 뭘까 하는 생각에 쉽게 자리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성수의가라니... 그렇다면 자신들 눈앞의 저 아름다운 여인들이 바로... 여기 까지 생각이 미친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골목 안은 점차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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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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