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을?"
"예! 아가씨. 부탁드려요"
"이번 일 때문에 그래?"
"그런 것도 있고 성수의가에서 제대로 일을 하려면 무공을 익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음, 그건 그런데..."
"잠깐,잠깐, 잠까안!"

흑사방 정현 지부로 신나게(?) 달려 가려던 발걸음을 멈춰 세운 초혜가 설지와 소홍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설지가 막 승낙하려는 듯 하자 '어머! 뜨거워라' 하듯이 냉큼 끼워 들었다.

"응? 혜아 왜 그래?"
"잠깐, 잠깐만, 설지 언니 대답하기 전에 잠시만 기다려 봐, 소홍 언니!"
"예?"
"그거 다시 생각하면 안될까? 응? 응?"
"어찌 그러시는지..."
"안되겠지? 아마 안될거야, 아휴! 내 팔자야. 이번에는 무려 열두권이잖아"
"..."

느닷없이 끼어 들어 두서없이 황망한 말을 늘어 놓았던 초혜가 마지막에는 체념한 듯이 긴 한숨을 내쉬며 뒤로 돌아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초록이 아저씨, 뭐하세요. 안가세요?"
"아! 예, 예! 막내 아가씨"

무슨 말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 초혜의 행동을 멍하니 바라 보고 있다가 화들짝 놀란 두자성이 파락호 중 하나의 뒷통수를 후려 갈기며 입을 열었다.

"뭐해? 이 자식아, 앞장 서"
"으윽, 예? 예! 아,알겠습니다"
"다녀올게요"
"다녀 오겠습니다"

초혜와 두자성이 파락호 중의 하나를 끌고 계단을 내려가자 그때 까지 영문을 몰라 하던 호걸개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초혜, 저 녀석이 갑자기 왜 저러는거냐? 열두권이라니?"
"호호호"
"제가 말씀드릴게요"

설지의 웃음 소리에 이어서 진소청이 얼굴 가득 미소를 담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좀체로 보기 힘든 진소청의 미소에 호걸개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진소청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초록이 아저씨와 연이 오라버니인 사도 소협에게 설지 아가씨가 비급 한권씩을 건넨건 알고 계시죠?"
"암, 알고 있지, 저러다 소림의 기둥 뿌리가 흔들리는게 아니냐는 엄살도 얼핏 들었다만"

그러면서 슬쩍 소림사의 혜명 대사를 바라보는 호걸개였다.

"맞아요. 바로 그 비급 때문에 혜아가 저러는거예요."
"비급 때문이라니? 그게 왜?"
"그러니까 비급을 만들 때 설지 아가씨가 머리 속에서 떠올린 구결을 이야기하면 그걸 혜아와 제가 보충한 후에 옮겨 적었거든요. 그런데 옮겨 적는 걸 전부 혜아가 했었어요"
"맞아요. 나도 그때 도와줬어. 헤헤"

듣고 있던 사도연이 귀여운 표정으로 이야기 하자 옆에 있던 설지가 그런 사도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호호, 우리 연이가 제일 고생했지"
"응! 응! 맞아, 나찰 언니가 잘 쓸 수 있게 먹을 많이 갈아줬어!"
"호호호"
"허허허"
"크하하"

만약 초혜가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듣고 있었다면 귀에서 불이 날 정도로 팔딱팔딱 뛰며 항의를 했을 것이다. 고작 먹 몇번 갈다가 설지 품속에 안겨서 잠에 빠진 사도연이 제일 많이 고생했다면 밤새도록 구결을 옮겨 적었고 거기다가 구결에 무슨 문제가 없는지 살피려 직접 구결에 따른 운기를 해보다가 자칫하면 주화입마 비슷한 것에 걸릴뻔한 자신은 대관절 뭐란 말인가?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초혜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호! 그러니까 소청이 네 말은 초록이 녀석과 청이에게 돌아간 두권의 비급을 과정은 어찌 되었든 전부 초혜가 만들었다는 그런 이야기더냐?"
"예, 거지 할아버지, 거기다가 구결에 이상이 없는지 직접 운기해보느라 혜아의 고생이 좀 심했었었죠. 호호"
"크하하, 그래서 열두권이라고 했구나"

그랬다. 박산현에서 설지에게구출된 소홍의 일행이 모두 열두명이었던 것이다. 열두권이라고 하며 푸념했던 초혜의 말에 담긴 의미가 보다 확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좌우간 이 날 벌어진 초혜의 작은 푸념이 가까운 훗날에 성수십이선녀라는 여고수들의 등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허면, 저 아이들에게도 무공을 가르칠 것이냐?"

진소청의 말을 듣고 있던 일성 도장이 소홍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설지에게 물어 보았다.

"음... 소홍이와 아이들이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겠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가씨"
"그래, 그러니 이제 너희들도 앉아서 뭐 좀 먹어"
"아,아니, 저희들은..."
"호호, 괜찮아, 성수의가의 식솔들이 먹을 것을 앞에 두고 다른 사람 눈치 보면 안돼"
"예, 아가씨. 그럼.."

대답한 소홍과 애향이 탁자 한쪽에 앉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 보던 호걸개가 문득 생각난 듯 일성 도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보게, 말코!"
"허허, 왜 그러나?"
"전부터 궁금했던게 하나 있는데 말일세"
"말해보시게. 그 성질에 여태껏 궁금한 것을 어찌 참았나?"

"켈켈, 그렇지 않아도 근자에 궁금한 것 때문에 팔에 두드러기가 막 생길려던 참일세"
"안 씻어서 그런게 아니고?"
"예끼, 이 사람"
"허허허"
"호호호"
"크하하"
"허허허

일성 도장의 농담에 큰 목소리로 부인하는 호걸개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양팔을 들어 올려 벅벅 긁어 대는 호걸개를 보며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켈켈켈, 다른게 아니고 말일세, 초혜, 저 놈 말이야, 소청이도 그렇고"
"응, 두 아이들이 왜?'
"아니, 초혜 저 놈은 태극권을 극성으로 익혔고 소청이는 태극혜검을 극성으로 익혔다고 하지 않았었나?"
"맞네, 그런데 왜 그러나?"

"생각해보게. 태극권과 태극혜검을 저토록 어린 나이에 극성으로 익혔다면 그 자질이 어디 보통 자질이겠나?"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왜 초혜 저 놈은 태극혜검을 익히지 않았으며 소청이는 왜 태극권을 익히지 않았는지 그게 궁금해서 말일세"
"허허허, 난 또 무슨 말이라고... 허허허"

"응? 아니 왜 대답은 않고 실실 웃기만 하는게야? 설마?"
"허허허, 그 설마가 내 생각과 같다면 맞네"
"허면 두 녀석 다 그렇단 말인가?"
"허허허, 직접 물어보게"

"허! 어디 소청이 네가 한번 말해 보거라, 너도 태극권을 익혔느냐?"
"예. 거지 할아버지"
"허면 태극권도 대성했다는 말이더냐?"
"예. 그런 셈이죠'
"허! 그러면 그런거지 그런 셈은 또 뭣이더냐."
"아이 참, 거지 할아버지 뭘 그리 꼬치 꼬치 묻고 그래요. 무공은 원래 전부 드러내는게 아니라면서요"

듣고 있던 설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좌중을 돌아 보던 호걸개가 빽하고 고함을 질렀다.

"인석아! 이건 그것과 다른거잖느냐"
"다르긴 뭐 달라요. 내가 보기엔 똑 같구만"
"허! 그러고 보니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다만 성수의가에는 일대종사들이 그득하구만"
"호호, 일대종사는 무슨... 호호호"

"내 하나만 더 물어봄세"
"그러시게"
"허면 초혜 저 녀석은 왜 검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겐가?"
"호호호, 그건 혜아가 무식해서 그래요"

듣고 있던 일성 도장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 올랐다.

"응? 무식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호호호, 그게 그러니까 혜아가 태극혜검을 펼치면 검을 죄다 터트려 버리거든요."
"검을 터트려 버린다고?"
"그게 청청 언니 만큼 세밀하게 진기 운용이 되지 않아서 아무리 좋은 검이라도 혜아가 들고 태극혜검을 펼치면 검이 견뎌내지를 못해요. 한마디로 힘만 엄청 센 무식한 녀석이죠. 호호호"
"허허허"

늘 특이한 웃음 소리를 흘려내던 호걸개가 허탈한 목소리를 웃음을 흘렸다. 내력을 받쳐주는 검이 없어서 검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니... 누가 이런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 봤겠는가? 한마디로 괴물 같은 녀석이라는 생각이 드는 호걸개였다. 한편 탁자 한쪽 옆에 꿇어 앉아 있는 두명의 파락호들은 장내에서 오고가는 이야기에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자신들이 건드린 상대가 성수의가의 식솔들이며 그 중에 작은 꼬마는 성수신녀의 제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함을 했던 것은 약과였다. 태극혜검이라니 그것도 극성에 이른 태극혜검을 익히고 있다니... 태극혜검이 무엇이든가? 강호에 존재하는 수많은 무공 중에서 단연 최상위에 자리하는 무공이 바로 무당파의 태극혜검이 아니든가?

그제서야 두 명의 파락호는 자신들이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존재들을 어리석게도 건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자신들의 두 눈을 파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호걸개의 말을 듣는 순간 명년 오늘이 바로 자신들의 제삿날이라는 생각과 함께 멍해지는 파락호들이었다.

"아참! 저 놈들이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는걸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한가 보구나. 귀 씻고 잘 듣거라 멍청한 놈들아! 저기 앞에 보이는 말코 도사가 바로 무당파의 최고 어른인 일성 도장이고 그 옆은 성수신녀와 화산파 장문인이시다. 그리고 커다란 눈알을 번뜩이는 저 친구는 녹림 총표파자고 네 놈이 말했던 마교, 아니지 신교의 교주가 바로 내 옆의 이 분이시다. 그럼 나는 누구냐고?  나야 개방의 태상방주인 호걸개지, 어때? 듣고나니 소감이 어떠냐? 딱 죽고 싶지. 켈켈켈"

한편 호걸개의 웃음 소리가 천룡 객잔의 이층에서 방정 맞게 울려 퍼질 그 즈음 객잔에서 그리 멀지 않은 흑사방 정현 지부의 정문 앞에 도착한 초혜는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예요?"
"예. 막내 아가씨. 이 놈이 거짓을 말한게 아니라면 여기가 맞습니다요"
"거짓말한게 아니예요. 저기 위에 흑사방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네요"
"어라? 그렇네요. 나원, 별... 흑도 주제에 현판 까지 달고 있다니..."
"아마 그동안 무서운게 없었나 보죠. 이젠 다르겠지만..."

그렇게 말한 초혜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왼손바닥으로 오른 주먹을 문질렀다. 그리고는 말이 필요없다는 듯 곧바로 오장이 넘게 떨어진 자리에 위치한 현판을 향해 출수했다. 그것도 사람 머리통만한 커다란 권강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굉음은 흑사방의 현판 뿐만 아니라 정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커다란 누각이 그대로 폭삭 주저 앉듯이 허물어져 내리는 소리였다. 너무도 어이없게 주저앉는 누각을 보며 끌려온 파락호는 할 말을 잠시 잃어버렸다.

"어? 어? 저, 저"

'창작 연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협 연재] 성수의가 161  (0) 2014.02.23
[무협 연재] 성수의가 160  (0) 2014.02.16
[무협 연재] 성수의가 159  (0) 2014.02.09
[무협 연재] 성수의가 158  (0) 2014.02.02
[무협 연재] 성수의가 157  (0) 2014.01.26
[무협 연재] 성수의가 156  (0) 2014.01.19
Posted by 까만자전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