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eidoscope - (Love song) For Annie

칼레이도스코프 (Kaleidoscope) : 1967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

피터 달트리 (Peter Daltrey, 보컬, 키보드) : 1946년 3월 25일 영국 런던 출생
에디 퓨머 (Eddy Pumer, 기타, 보컬) : 1947년 10월 7일 영국 런던 출생
스티브 클락 (Steve Clark, 베이스) : 1946년 영국 출생, 1999년 5월 1일 사망
댄 브리지먼 (Dan Bridgeman, 드럼, 보컬) : ?

갈래 :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 포크 록(Folk Rock),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members.madasafish.com/~chelsearecords/
노래 감상하기 : http://youtu.be/71ePjwAk89g

포크 음악 형식의 아름다운 팝 발라드 곡인 <Please Excuse My Face>를 포함하여 사이키델릭 팝과 프로그레시브 록의 형식을 띠고 있는 음악 까지 다양한 색깔의 음악을 담아내었던 데뷔 음반 <Tangerine Dream>을 1967년 11월 24일에 발표했었던 영국의 사이키델릭 록 밴드 <칼레이도스코프>는 데뷔 음반 공개 이후인 1968년 1월 26일에 싱글 <A Dream for Julie / Please Excuse My Face>를 발표하면서 차트 공략에 나서게 된다.

1967년 9월 15일에 발표했었던 데뷔 싱글 <Flight from Ashiya / Holidaymaker>에 이은 통산 두번째 싱글이기도 한  <A Dream for Julie / Please Excuse My Face>가 공개되자 당시 영국의 음악 주간지인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에서는 싱글을 향한 좋은 평을 신문에 게재하기도 했었다. 이에 한껏 고무된 칼레이도스코프는 자신들의 싱글이 라디오 방송에서도 자주 소개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더욱 큰 기대감을 부풀리게 된다. 하지만 초조한 마음으로 주시했던 차트 진입이 결국 무산되는 결과로 이어지자 칼레이도스코프의 그러한 기대 역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던 싱글 차트 진입은 결국 폰타나 음반사(Fontana Records)의 압박으로 이어졌고 이에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칼레이도스코프는 1968년 9월에 도노반(Donovan)>의 <Jennifer Juniper>에 영향 받은 싱글 <Jenny Artichoke / Just How Much You Are>를 세번째 싱글로 공개하게 된다. 그리고 라디오 출연과 클럽 활동 등을 병행하며 차트 진입을 위한 안간감힘을 쏟아 부었지만 세번째 싱글 역시 차트 진입과는 거리가 먼 참담한 성적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아울러 연이은 음반과 싱글들의 실패는 칼레이도스코프에게 재정적인 압박으로 작용했고 결국 밴드는 파산을 하는 지경에 까지 내몰리게 된다. 칼레이도스코프에게 시련의 계절이 찾아온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밴드는 어쩌다 한번 있는 라디오 공연을 포함해서 클럽 출연 등으로 근근히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가려 하지만 이 마저도 그리 쉬운 상황이 아니었다. 인기 없는 밴드의 클럽 공연에 난색을 표하는 클럽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시선을 유럽 지역으로 돌린 칼레이도스코프는 미국의 사이키델릭 록 밴드인 <컨트리 조 앤 더 피시(Country Joe and the Fish)>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Amsterdam) 공연에 동행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1968년 11월에 네덜란드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영하의 추위 속에서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도착한 공연장은 최악의 조건으로 칼레이도스코프를 맞이하였다. 공연 일정에 맞춰서 네덜란드에서만 공개된 싱글 <Flight from Ashiya / (Further Reflections) In the Room of Percussion>을 앞세운 칼레이도스코프를 기다리는 것은 열악한 무대 장치와 장비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감행해야 했던 칼레이도스코프는 어렵게 공연을 마치고 한숨을 돌린 후 곧장 본국인 영국으로 귀환하는 대신 네덜란드 라디오 출연과 함께 암스테르담 주변의 클럽 무대를 찾게 된다. 어려운 자금 사정을 조금이나마 덜어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체류 기간 내내 공연 활동을 해야만 했던 칼레이도스코프가 영국으로 돌아오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소속 음반사인 폰타나에서 제공한 마지막 기회였다.

두번째 음반 제작을 위한 녹음실 사용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기회가 찾아온 칼레이도스코프의 음반 녹음은 1969년 초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14일에 싱글 <Do It Again for Jeffrey / Poem>이 먼저 공개되었으며 4월에는 마침내 칼레이도스코프의 두번째 음반 <Faintly Blowing>이 공개되었다. 데뷔 음반을 통해서 사이키델릭과 포크 그리고 프로그레시브 록 등 다양한 색채의 음악을 담아내었던 칼레이도스코프의 두번째 음반은 데뷔 음반 보다 한층 더 사이키델릭 음악 쪽으로 치우친 포크 록을 구사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칼레이도스코프의 음악을 외면했다. 당연히 차트 진출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1969년 7월에 발표한 싱글 <Balloon / If You So Wish>를 끝으로 폰타나는 칼레이도스코프와 계약 해지를 하게 된다. 밴드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참으로 지독히 불운했던 밴드가 바로 칼레이도스코프가 아닌가 여겨진다. 물론 이런 불운의 원인 제공에는 당시 유행했거나 사람들이 좋아했었던 음악의 맥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한 칼레이도스코프의 판단 착오도 큰 몫을 했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시디(CD)의 모습으로 다시 사람들 앞에 등장한 칼레이도스코프의 <Faintly Blowing> 음반은 그리 박한 평가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유의 음향 효과가 삽입되어 전형적인 사이키델릭 록의 특성이 드러나는 타이틀 곡 <Faintly Blowing>을 시작으로 데뷔 음반의 <Please Excuse My Face>를 연상케 하며 시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 <Poem>, 그리고 관현악을 삽입한 진보적인 성향의 록 발라드 <If You So Wish>와 강렬한 사이키델릭 음향이 전편을 아름답게 채색하는 <Music> 같은 곡들에서 기대 이상의 칼레이도스코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보컬에 반향 효과를 준 <(Love song) For Annie>는 사이키델릭의 몽환적인 흐름과 포크 음악의 부드러움이 결합되어 상당한 흡입력을 발휘하며 다가오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누군가를 지극히 사랑한다면 <(Love song) For Annie>에서 처럼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렬하게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한편 성적 부진으로 폰타나와 결별한 칼레이도스코프는 밴드 이름을 <페어필드 팔러(Fairfield Parlour)>로 바꾸고 버티고 음반사(Vertigo Records)와 계약한 후 1970년에 프로그레시브 록 애호가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명반 <From Home To Home>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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