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무관들이 여러 곳 자리하고 있는 정현에서 무림 문파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오십여년여전에 개파 선언을 한 문도 수 백여명 정도의 신검문이 유일했다. 더불어 중소 문파 가운데서는 제법 내실이 잘 다져져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였으며 표면적으로는 정도를 지향하고 있는 문파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파의 무공 증진 보다는 신병이기 수집에 혈안이 된 모습을 종종 보여 주었기에 일각에서는 그런 신검문을 향해 사파 성향의 문파라는 소리와 함께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 바로 그 신검문의 정문 앞에 때 아닌 무림인들 수십여명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와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판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정도 문파임을 자처하는 신검문이었기에 숨길 것 없다는 듯히 훤하게 열려 있는 정문의 좌우에는 각기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네 명의 문지기가 제법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내며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문지기들의 시선에서는 지금 당혹한 표정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었다.

정문 앞을 거의 가로막다시피 하며 서있는 많은 무림들의 한쪽 옆에 소 한마리가 끄는 제법 커다란 수레 하나가 정지해 있었는데 바로 그 수레가 문제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수레 위에 신음을 흘리는 것으로 보아 부상을 입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신검문도 십여명이 짐짝처럼 켜켜히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위사들이 보기에 부상을 입은 채 수레에 쌓여(?) 있는 문도들은 신검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나갔던 신검문도들이 분명해 보였다.

그랬기에 신검을 회수하는 대신 부상을 당한 채 한무리의 무림인들에게 끌려 왔다는 것은 일이 틀어졌다는 의미라는 것을 위사들은 잘 알고 있었다. 자연히 대처할 바를 쉽게 찾지 못한 위사들의 표정에서는 당혹스러움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정문을 가로 막고 있는 무인들의 복장을 보아하니 소림과 무당은 물론이고 개방과 화산의 무인들 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당혹감을 넘어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좋은 의미로 보이지 않는 방문자들의 면면을 대충이나마 잠시 살펴본 위사들 가운데 한사람인 동천랑은 지금 머리 속으로 언제 신검문에서 구대문파 가운데서 무려 네 곳이나 되는 문파 소속 무인들의 방문을 이처럼 한꺼번에 받은 적이 있었던 가를 곰곰히 떠올려 보고 있었다. 하지만 없었다. 분명 자신이 아는 한 구대문파 가운데 네 문파는 고사하고 한 문파에서도 신검문을 방문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헌데 신검을 회수하러 갔던 문도들이 신검 대신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 네 문파 소속의 무인들과 함께(?) 돌아 왔다는 것은 분명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은 같은 조 위사들의 조장인바 맡은 바 임무는 충실히 다해야만 했다. 결국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가며 방문 목적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어,어서 오십시오. 강호의 고인들을 신검문의 동천랑이 뵙습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제법 구색을 갖추어 인사를 건네면서 굳이 누구랄 것 없이 전방을 향해 방문 목적을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청량감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 하나가 일행들을 향해서인 듯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철대숙! 여기예요?"
"그런가 보다. 저기 현판에 신검문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잠시 욱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당랑거철이라고 작은 사마귀가 커다란 수레바퀴를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동천랑은 욱하는 대신 천천히 시선을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눈이 번쩍 뜨여질 정도로 아리따운 낭자의 모습이 자신을 눈을 아프게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이 꿈에서도 그리던 침어낙안의 모습이 바로 저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미녀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는 이는 품에 작은 소녀 하나를 안고 있는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그런데 그 사내의 분위가 참으로 묘했다. 언뜻 보면 분명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좀더 자세히 살펴 보려고 하니 나이를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기이한 분위기가 몸 전체에서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동천랑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이는 다름아닌 사도연을 품에 안은 철무륵이었다.

탈태환골을 거치면서 반로환동 비슷한 경지에 도달했기에 외모는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지만 녹림 총표파자라는 엄청난 지위와 그동안 쌓아온 연륜이 더해지면서 철무륵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이하고 모호한 분위기가 몸 전체에서 발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초록이 네 놈은 저 잡놈들을 뭐하러 주워온거냐?"
'헤헤. 총표파자님 그런 말씀 마십시요. 녹림도의 철칙이 뭡니까요? 한번 손에 들어온 것은 절대 다시 내놓지 않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은 먼저 줏는 놈이 임자다 아닙니까요?"

"켈켈켈. 이 놈아 그건 녹림도의 철칙이라기 보다는 우리 개방의 철칙 같구나"
"엥? 그렇습니까요? 헤헤. 그러고 보니 그렇기도 합니다요. 죄우간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주워 왔으니 응당 신검문에서 그에 합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겠습니까요. 헤헤"
"끙, 이 와중에도 네 놈의 그 철저한 영업 정신만은 칭찬해주고 싶구나. 되었다. 그건 그렇고 설지야, 어떻게 하려느냐?"

초록이 두지성의 철저한 영업 방식에 혀를 내두른 철무륵이 시선을 돌려 설지의 의향을 물었다.

"응! 우선 문주님을 뵙는게 순서겠지"
"문주님은 무슨... 하여간 알았다. 이봐 거기. 그래 문지기, 자네 말이야"
"예? 옙"
"들어가서 녹림 총표파자 철무륵이 신검문주를 청한다고 전하게"

갑자기 지목당한 동천랑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자신 보다 어리게 보이는 사내의 말에 왜 압도 당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함께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철무륵의 다음 말을 듣는 순간 동천랑은 앞뒤 재지도 않고 정문 안으로 휭하니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사라져 가는 동천랑의 입 속에서는 작은 읊조림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제길 녹림 총표파자라니, 소림과 무당 그리고 화산과 개방도 모자라 녹림이라니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하지만 그런 동천랑도 천마신교의 무인들 까지 신검문의 정문 앞에 함께 와 있다는 것만은 전혀 짐작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알았더라면 반응이 좀더 다르게 나타났을까?

"어쩐지 위사들 치고는 제법 날카로운 기세를 드러낸다고 생각했더니 그게 다 신병이기 덕이었나 보군"

신검문 안쪽을 향해 황급히 사라져 가는 동천랑의 모습을 보면서 철무륵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동천랑이 정문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기세와는 달리 펼쳐 보이는 경공이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철무륵의 눈에는 저러다가 넘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엉성한 경공술을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무량수불, 설지야, 어떠냐?"
"예. 도사 할아버지, 예상대로 마기가 느껴져요"

일성 도장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들어 보인 설지의 손목에서는 성수지환이 가벼운 떨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마도 신검문 내부에서 미약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듯 했다. 이에 설지가 왼손을 들어 성수지환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자 떨림이 점차 진정되는가 싶더니 곧이어 평소 처럼 평범한 지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응? 설지 언니, 방금 그거 어떻게 한거야"
"응? 아! 글쎄, 갑자기 부드럽게 만져주면 진정될 것 같다는 들어서 그랬는데 진짜 효과가 있네"
"뭐야? 그럼 그거 혹시 염이 발현되면서 부터 일어나는 현상인거야?"
"아마 그런가 본데"
"햐. 그참 그거 볼수록 신기한 놈일세"

그렇게 말하는 초혜에게 그 순간 철무륵의 알밤이 날아 들었다.

"에라! 이 녀석아, 젊은 것이 말투가 그게 뭐냐?"
"크아악"

철무륵의 기습을 미처 대처하지 못하고 무척이나 오랜만에 알밤을 허락한 초혜는 커다란 비명과 함께 양손을 머리로 가져가 문지르기 시작했다.

"응? 초혜 언니, 아파?"
"크아악, 그럼 아프지, 아이구 초혜 죽는다. 아아악"

철무륵의 품에 안겨서 재미있다는 표정을 한 채 초혜의 모습을 지켜 보던 사도연의 질문이었다. 그러자 죽는 시늉을 하면서 엄살과 함께 처절한 비명으로 대답을 하는 초혜였다.

"크하하하"
"허허허"
"호호호"
"헤헤헤"

한편 자신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장난치듯 하는 사람들을 지켜 보는 세 사람의 위사들은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수레 한가득 실려 있는 부상당한 문도들을 먼저 수습하는 것이 순서지만 이상하게도 선뜻 나서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무당십이검과 소림십팔나한 그리고 매화십이검수가 자연스럽게 흘려내고 있는 기세에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압도당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은신하고 있는 천마신교의 무인들이 암암리에 흘려보내는 기세 까지 더해지고 있으니 모르고 있었지만 위사들로써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무인이 발산하는 자연스러운 기세에 이처럼 운신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것은 신병이기의 덕을 우선시하는 신검문의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했다. 물론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신검문도일 경우는 그렇지 않겠지만 문지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위사들의 경지로는 명문대파의 무인들이 자연스럽게 흘려내는 기세 조차 버거웠던 것이다 

그렇게 신검문의 위사들이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있는 듯한 순간을 힘들게 보내고 있는 사이에 동천랑이 사라졌던 신검문의 안쪽에서 부터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발자국 소리만으로 꽤 여러명이 정문을 향해 달려 오고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잠시 뒤 정문 앞에 모습을 드러낸 신검문도는 모두 스무명이었다. 그리고 그런 신검문도들 중에서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은 풍채가 좋은 중년 사내 하나가 한걸음 나서서 설지 일행을 향해 포권으로 예를 표하며 입을 열었다.

"반갑소이다. 신검문을 맡고 있는 위하성이라고 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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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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