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무륵이외다"

앞뒤 다 잘라 버리고 퉁명스럽게 이름만 밝히는 철무륵을 바라 보는 신검문주 위하성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중소 문파의 하나라고는 하나 일문의 문주인 자신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데 반해 돌아온 철무륵의 대답에서 마지 못해 알려준다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아울러 대충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전갈을 동천랑으로 부터 듣고 정문으로 다급히 달려 나왔던 위하성은 철무륵의 저런 태도가 어쩌면 도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머리 속에서 경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름 없이 아끼는 애검을 집무실에 앉아서 느긋하게 손질하고 있던 위하성은 정문 경비를 담당하고 있던 동천랑으로 부터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구르듯이 자신의 집무실로 달려온 동천랑이 소림과 무당은 물론이고 화산과 개방의 무인들에다 녹림 총표파자 까지 지금 정문 앞에 당도해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방문이 결코 좋은 뜻의 방문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함께 전했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좋은 뜻이 아닌 것 같다니?"
"예, 문주님! 신검을 회수하러 나갔던 마일랑 조장과 수하들이 모조리 부상을 당한 채 한꺼번에 수레에 실려 왔습니다."
'뭐, 뭐라고 마일랑이?"

동천랑의 입에서 마일랑의 이름이 거론되는 순간 위하성은 너무 놀라 비명과 같은 부르짖음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무,문주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아,아니다. 그,그래서 한꺼번에 실려왔다고?"
"예.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마일랑 조장과 수하들은 그들 구대문파 일행들에게 제압당한 것으로 보이며 뜻밖에도 녹림도 가운데 한사람이 문도들을 짐짝 처럼 수레에 싣고 왔습니다."

"허! 갑자기 이 무슨... 가만, 마일랑이 추적하고 있다고 전해 왔던 신검이 혹시 구대문파에서 흘러 나온 것이더냐?"
"소인은 그것 까지는 잘..."
"아! 흠,흠, 그렇지 참"

지금 이 순간 위하성의 머리 속은 맹렬히 회전하고 있었다. 마일랑과 자신을 포함한 신검문의 몇 사람만이 은밀하게 공유하고 있는 비밀이 지금 외부로 드러나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하며 머리를 굴려 봐도 마땅한 해결책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마일랑이 그 비밀을 드러내지 않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는...

"청량! 게 있느냐?'
"예. 문주님, 부르셨습니까?"

위하성이 집무실 한쪽을 바라보며 청량이라는 이름을 나직히 부르자 갑자기 동천랑의 바로 앞에서 사람 형체 하나가 스르르 나타나는가 싶더니 곧바로 위하성을 향해 부복하며 입을 열었다.

"신검호위대 전부를 소집하라"
"전부 말씀이십니까? 알겠습니다."

신검호위대 전부라는 말에 뜻밖이라는 듯 한차례 반문한 청량이 위하성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동천랑의 눈 앞에서 스르르 사라졌다. 지켜보는 동천랑의 입장에서는 눈이 부릅떠질 정도로 참으로 기막힌 은신술이었다. 하기야 저만한 능력이 있으니 자신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신검호위대 십팔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드는 동천랑이었다.

그렇다. 역사가 일천한 신검문에서는 소림사의 십팔나한을 흉내내어 열여덟명으로 구성된 신검호위대를 따로 운용하고 있었다. 즉 소림 십팔나한 처럼 가히 무적에 가까운 호위대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집단이었다. 당연히 신검호위대는 신검문 최고의 무력집단이며 그들 각자가 소지하고 있는 병기는 신병이 아닌 것이 없었다. 지금 그런 신검호위대 전부를 위하성이 소집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 보는 동천랑은 문주의 과한 조치에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신검문이 문도수가 많지 않은 중소방파이나 엄연히 정도 측에 소속된 문파이며 지금 정문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방문자들도 녹림을 제외하면 마도나 사도의 무인들이 아닌 정도를 대표하는 구파일방이라는 거대 문파 소속의 무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치 사마외도와 전면전을 치르기라도 할 듯 아니면 문파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듯이 방문자들을 세워 놓고 느닷없이 신검호위대 전부를 소집하라니? 동천랑의 내심으로 불안감이 서서히 증폭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불안감이 머지않아 현실로 닥치게 되리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의 동천랑은 전혀 짐작 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런 동천랑의 상념은 다시금 자신 앞에 스르르 모습을 드러내는 청량에 의해서 깨어졌다.


"문주님, 준비 끝났습니다."
"그래? 그럼 따라 오너라, 지금 본문의 정문에 귀한 손님들이 당도해 있다고 하니 마중을 나가봐야 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하는 위하성의 입가로 비릿한 미소가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은 동천랑만의 착각이었을까?

"알겠습니다."
"동천랑, 네가 앞장 서거라"
"예, 문주님"

쓸데없는 생각들이라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정리한 동천랑이 문주를 포함한 신검호위대를 안내하며 정문을 향해 달려 가기 시작했다.

"호! 위명이 쟁쟁하신 녹림총표파자가 아니외까?"
"위명은 무슨, 맞소이다. 내가 바로 그 철무륵이외다"
"헌데 무슨 일로 총표파자 께서 저희 신검문을 방문하셨는지? 아! 그보다 뒷쪽으로 고인들 께서 계시는듯 한데 이 위모에게도 소개시켜 주지 않으시겠소?"

일문의 문주 답게 제법 위엄이 깃든 표정과 강단 있는 음성으로 이야기하는 위하성을 보며 철무륵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만한 표정이 언제 까지 지속될지 한번 보자 하는 심정으로 호탕하게 웃으며 가장 먼저 일성 도장 부터 소개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좋소이다. 그게 뭐 그리 어렵겠소. 이쪽은 무당파의 일성자 어르신이고 그 옆은 제자이신 현진 도사라고 하오"

철무륵과 인사를 나눌 때만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있던 위하성의 거만한 표정이 느닷 없이 튀어나온 일성자란 이름에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바뀌고 말았다. 일성자란 이름은 중소문파가 아니라 구파일방의 그 누구라도 함부로 처신할 수 없게 하는 무게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세간에서 당금 무림의 천하제일인으로 거론되는 이가 바로 무당파의 일성도장이었다.

"허허허, 무량수불, 반갑소이다."

"예? 아! 예. 신검문의 위하성이 일성자 어르신을 뵙습니다."

철무륵의 첫번째 소개에서 부터 당황하기 시작한 위하성은 철무륵의 소개가 이어질수록 점점 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개방의 호걸개, 화산파 장문인 유도옥, 소림사의 혜명 대사 등, 이름만 들어도 식은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엄청난 거물들의 이름이 철무륵의 입에서 줄줄이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소개는 마지막에 이루어졌다.

"흠, 그리고 저기 검은 용포를 걸치고 계신 저 분은 천마신교의 혁련필 교주시오"
"헛! 천,천마신교!"

"허허, 왜 그리 놀라시오, 본교에 무슨 원한이나 빚이라도 있으신게요?"
"아,아니외다. 죄송하외다. 다소 뜻밖이라 못 볼 꼴을 보여드렸구려. 다시 한번 사과하리다"
"되었소, 하기야 정도 문파 지역인 정현에 나 같은 마인이 불쑥 나타난 것이 어찌 의외가 아니겠소. 허허허" 

물론 정도 문파의 지주인 소림사의 입김이 미치는 정현에 천마신교의 교주가 나타난 것이 놀라운 사실이기는 했다. 하지만 위하성이 그토록 당황스러워 했던 것은 그것과는 궤를 달리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오늘 우리가 여기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바로 이 아이 때문이요"
"신검문의 문주님을 뵙습니다. 성수의가의 나설지라고 합니다"

다른 이들의 소개가 모두 끝난 후 마지막으로 철무륵에 의해서 설지가 소개되었다. 정작 위하성은 일행들의 맨앞에 서있는 제법 반반한 미색을 가진 세 여인들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헌데 그들 중 하나가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며 하는 말에 위하성은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성수의가의 나설지라고 하면 성수신녀라는 별호로 무림을 위진 시키고 있는 이가 아니던가?

"아! 반갑소이다. 내 성수신녀의 위명은 익히 전해 듣고 있었소이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보니 오히려 소문이 다소 못한 것 같구려"
"과찬이십니다"

신검문주 위하성과 성수신녀 나설지가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이가 하나 있었다. 다름아닌 일성 도장의 옆에 서있는 현진 도사가 그 주인공이었다. 위하성과 인사를 나누면서 단 한번도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지 않는 설지의 모습이 다소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장난치기를 좋아하면서도 온화한 분위기를 늘 간직하고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던 화사한 누님이 바로 설지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굳은 표정의 설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온화함 대신 냉랭함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밍밍이의 부상을 접한 설지의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고개를 조금만 들어 올려 위쪽을 바라 보면 용사비등한 글씨체로 신검문이라고 새겨져 있는 커다란 현판이 정문 위쪽에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잠시후면 누군가에 의해서 저 멋진 현판이 산산히 부서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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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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