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데 성수신녀 께서 무슨 일로 우리 신검문을 찾으셨소이까?"
"저 녀석 때문입니다."
"저 녀석이라 하시면..."

저 녀석이라는 말에 의문을 떠올리면서 신검문주 위하성은 설지의 손지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서 시선을 옮겨 갔다. 그런데 성수신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다 보니 그 곳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심한 부상을 당한 이들이 마치 짐짝 처럼 수레에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초록이 두자성에 의해 어쩔수 없이 수레에 실려온 부상당한 신검문도들이었다. 무림에 위명이 쟁쟁한 이들이 한꺼번에 몰려온 바람에 미처 문도들을 확인하지 못했던 위하성이 뒤늦게 부상자들을 살펴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음, 저들은 우리 신검문의 문도들 같구려"
"맞습니다."
"헌데... 왜?"

대답을 들으면서 다시 의문이 생기는 위하성이었다. 성수신녀가 말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저 녀석이라고 했던 이가 신검문도들 가운데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 같지는 않았기에 대관절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성수신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수레 쪽을 향해 다시 시선을 고정 했다. 

그러자 이질적인 모습 하나가 새삼스럽게 다가 왔다. 바로 왠 당나귀 한마리가 수레에 실려있는 부상자들을 콧잔등으로 쿡쿡 쥐어박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지금 밍밍은 자신을 부상입힌 신검문도들에게 화풀이라도 하듯이 콧잔등으로 쥐어박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밍밍의 화풀이에는 비아의 날개도 한몫 거들고 있었다.

"설마? 저 녀석이라고 한게 저 당나귀를 말하는게요?"
"맞습니다."

여전히 딱딱한 음성으로 대꾸하는 설지를 잠시 일별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인 위하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전해 듣기로 성수신녀는 온화한 성품을 가졌다고 하던데 막상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구려"

일문의 문주인 자신을 대함에 있어서 냉랭함으로 일관하는 성수신녀의 처사를 힐난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당혹감을 느낄 정도로 이전 보다 더욱 냉랭하기만 했다.

"저를 포함해서 본가의 식솔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이들에게는 자그마한 아량도 베풀 생각이 없으니까요"
"위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요?"

"저 당나귀는 밍밍이라고 합니다. 제가 어릴 때 부터 함께 성장한 동생 같은 녀석이죠. 헌데 저 녀석이 점시 외출을 나갔다가 피를 흘리며 돌아 왔습니다. 이만하면 설명이 되었는지요?"
"허! 그러니까 지금 저깟 당나귀 한마리가 우리 문도들에 의해 조금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이처럼 기세등등하게 몰려 오셨다는 그 이야기구려"

그렇게 말하면서 시선을 좌우로 돌리며 중인들을 돌아 보는 위하성의 눈빛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 원! 어처구니가 없어서... 좋소이다. 우리 문도들의 실수를 내 은자로 보상해드리리다. 은자 열냥이면 되겠소이까?"

위하성은 은자 두냥이면 당나귀 한마리를 사고도 남을 액수이기에 열냥이라면 충분하고도 넘칠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하성의 그런 단순한 생각이 참으로 멋들어진 신검문의 현판에게는 커다란 재앙이 되고 말았다.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강기 하나가 현판을 산산히 부서 버렸던 것이다.

"어머머, 이를 어째, 실수했네. 신검문주님 죄송해요. 헤헤"

목소리의 주인공은 초혜였다. 그리고 산산히 부서져 낙하하고 있는 현판을 그렇게 만든 것이 자신의 손이라는 듯 앞으로 내밀었던 오른 손을 왼손으로 찰싹 소리가 나게 때리기 까지 했다. 그 모습을 바라 보던 초록이 두자성과 현진 도사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 내기 위해 심호흡을 깊이 해야만 했다. 나이가 어려도 도사는 도사인지 현진 도사의 예언(?)이 정확히 실현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한편 갑작스런 사태에 깜짝 놀란 위하성이 고개를 뒤로 돌려 상황 파악을 하다가 분기탱천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이게 무슨 짓이냐? 감히 우리 신검문의 현판을 부수다니"
"어머, 그렇게 화를 내시면 더욱 죄송하잖아요. 아끼시는건가 봐요. 호호호, 아 참!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전 초혜라고 해요."
"초혜?"

잠시 그 이름을 떠올려 보던 위하성은 곧 소요선자라는 별호를 떠올릴 수 있었다. 별호의 주인공인 초혜는 신검문주인 자신도 감히 무시하기 힘든 이가 분명했다. 하지만 현판을 부숴버렸다는 것은 명백한 선전포고와 다름없았기에 앞뒤 가릴 여지가 없었다.

"소요선자셨구려. 그렇다해도 이 무슨 무례한 짓이오. 성수의가에서 우리 신검문을 공격하겠다는 것이오?"
"어머! 실수라니까요. 부숴진 현판 대신 금자로 보상해 드릴게요. 금자 한냥이면 되죠?"

초혜의 이 말은 밍밍을 상처 입힌데 대한 보상으로 은자를 운운했던 위하성을 명백하게 비꼬는 말이었다. 그리고 일문의 문주라는 위하성이 초혜의 이 같은 말에 담긴 뜻을 파악하지 못할리 없었다. 자신의 말에 불만을 가지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벌인 시비였던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시비라고 보기엔 그 도가 지나쳤다. 무림 문파의 현판을 부쉈다는 것은 곧 적대적이라는 의미였기에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문답무용이라는 의미로 받아 들여도 되겠소?"

이번에 묻는 말은 초혜가 아니라 설지를 향해서 였다.

"그렇습니다. 본가는 신검문의 도발 행위를 묵과하고 넘어갈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도발? 지금 도발이라고 하신게요. 누가 누구를 도발했다는 거요? 도발은 성수의가에서 먼저 한것 같소이다만"


"분명히 말씀드렸을텐데요. 저기 있는 밍밍이는 제게 있어서 동생과 같은 녀석이고 따라서 성수의가의 식솔이기도 합니다"
"허, 그런 억지가, 고작 당나귀 한마리를 상처 입혔다고 이리 핍박하다니 혹시 성수의가가 마교 소속이었던게요?"

강호에선 해도 될 말이 있고 해서는 안될 말이 있으며 또한 장소를 가려가면서 해도 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그런데 위하성은 이런 강호의 불문율을 지금 두 가지나 깨트리고 있었다. 천마신교를 신교도 앞에서 마교라는 이름으로 불러서는 안되는 것이 해서는 안될 말에 속하며 더욱이 그런 천마신교의 교주가 자리하고 있는 장소에서 신교를 마교라고 부르는 우를 범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는 천마신교 교주 혁련필의 분노를 불러 오고 말았다.

"허허허, 마교라, 마교..."

자신이 말해 놓고도 아차 싶었던 위하성은 한쪽 옆에 서있던 혁련필에게서 갑자기 엄청난 살기가 전해져 오는 것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또한 동시에 숨쉬는 것 조차 버거워지게 되자 절대지경에 조금 못미치는 자신의 경지를 생각하고는 이내 경악하고 말았다. 천마신교 교주 혁련필이 일패도지하여 수하 몇명과 함께 강호로 쫓겨 났다는 것은 공공연한 소문이 되어 확산되고 있는 것이 작금 강호의 현실이었다.

하여 천마신교 교주를 소개 받을 때 놀라기는 했으나 내심 조금 우습게 보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헌데 막상 혁련필이 뿜어내는 기파를 몸으로 직접 경험해보니 힘을 숭상하는 천마신교의 교주가 지닌 힘이 자신의 상상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천마신교의 교주가 위하성을 향해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를 띤채 한걸음 한걸음 다가 서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올 수록 마치 거물에 매인 것 마냥 옴짝달싹할 수 없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위하성은 지금 내심으로 갈등하고 있었다. 자신이 숨긴 힘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은 좀더 참아야 하는 것인지 상황 파악이 잘 안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옭아매었던 살기가 어느 순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이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펴 보니 성수신녀가 혁련필의 걸음을 막아선 채 정중한 포권을 취해 보이며 무언가를 이야기 하고 있는 모습이 눈으로 들어 왔다.

"죄송합니다. 교주 할아버지!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셨으면 합니다."
"허허, 신녀 께서 그처럼 부탁하시니 내 잠시만 참고 있도록 하지요."
"고맙습니다. 교주 할아버지"

위하성은 지금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담금 강호에서 천마신교 교주의 걸음을 막아설 수 있는 이가 뉘 있으랴? 헌데 약관에 불과한 성수신녀가 교주의 걸음을 막았으며 이를 목도한 교주는 자신의 걸음을 막아선 성수신녀의 행동을 탓하기 보다는 부드러운 웃음으로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작 놀랄 일은 천마신교 교주가 약관에 불과한 성수신녀가 기다려달란다고 해서 선뜻 거기에 동의했다는 것이었다.

"그리 물으시니 답을 드리지요. 본가는 천마신교와 아무런 사이도 아닙니다."
"그,그렇구려. 내 말이 헛나왔소이다. 험험, 그렇다고 해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짚고 넘어가야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허면 다시 한번 묻지요. 고작 당나귀 한마리 때문에 정파 소속인 우리 신검문을 성수의가에서 공격하겠다는 것이요?"
"밍밍이는 고작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을텐데요. 그리고 이유는 또 하나 있습니다."
"허, 또 하나 있다?' 어디 계속해보시구려"

"예. 마공, 마공 때문입니다."
"마,마공이라니... 대관절 그게 무슨 말이요?"
"저기 실려 있는 부상자 중에 한 사람이 금지된 마공 중의 하나인 역혈마공을 익혔더군요. 그것도 대성 수준으로..."
"그,그럴 리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마귀로 변하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까지 말한 설지가 공력을 운기하여 성수지환의 반응을 살펴 보기 시작했다. 곧 마기를 느낀 성수지환이 미세한 떨림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마기의 근원은 설지의 앞에 서 있는 위하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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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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