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로 부터 핀잔 아닌 핀잔을 들은 초혜가 어정쩡한 모습으로 운기를 하는 사이에 설지는 추대주의 당문혈과 제문혈에 양손의 장심을 밀착하고 자연지기를 운용하여 내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당문혈에 밀착한 장심으로 유입되는 자연지기를 이용하여 심장을 보호하고 제문혈에 밀착한 장심으로 유입되는 자연지기로는 내상을 다스리기 위함이었지만 이를 지켜 보는 혁련필과 흑룡대원들의 안색은 시커멓게 죽어 버렸다.

두 곳 모두 치명적인 사혈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자연지기를 이용하여 추대주의 내부를 관조하기 시작한 설지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각하게 변해갔다. 애초의 예상 보다 상태가 많이 나빴던 것이다. 내부의 장기는 물론이고 기맥 대부분이 막히거나 찢어져 진기의 유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손상된 장기를 먼저 치료한 연후에 보령환의 약력을 이용하여 망가진 기맥을 다스리는 순으로 치료를 결정한 설지가 밀착했던 장심을 잠시 떼고 한숨을 불어냈다.

"휴!"
"어떻소이까?"

초조하게 지켜 보고 있던 혁련필이 이때다 싶었는지 성마르게 질문했다.

"음, 그게... 장기는 물론이고 기맥 까지 일부 손상되어서요."
"허,허면, 무공을 잃게 된다는 말이오?"
"그건 아니예요. 단지 시일이 조금 더 소요될 것 같아요"

"시일이 소요 된다 하면?"
"먼저 손상된 장기를 치료하고 차후에 기맥을 다스려야 하니까 며칠은 걸릴 것 같아요"
"허,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그럼 전..."
"허허, 미안하외다. 어서 어서 보시구려"
 
혁련필에게 짧게 설명을 마친 설지가 다시 추대주의 당문혈과 제문혈에 양손의 장심을 밀착하고 자연지기를 운용하여 본격적인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 옆에서 운기를 하고 있던 초혜는 한쪽 눈을 빼곰히 뜨고 설지를 한번 힐끗 바라 보더니 조용히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나 양쪽 팔을 빙빙 돌리며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보령환 한알을 복용했다지만 운기를 해봐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진소청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혜아! 다했으면 이리와서 좀 도와줘"
"응? 응! 청청 언니"

추대주를 치료하고 있는 설지 쪽을 향해 혀를 한번 쏙 내밀어 보인 초혜가 진소청이 있는 곳으로 달려 갔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사도연이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중얼거리자 장내 여기저기에서 작은 웃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쯧쯧! 언제 철들려는지..."

조금 무거웠던 분위기가 사도연의 한마디로 해소된 덕분인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침중한 표정을 한 채 추대주를 치료하는 설지를 바라 보고 있던 두자성이 그제서야 시선을 돌렸다. 당장 수습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겨 가던 두자성의 발길에 무언가가 툭하고 부딪쳤다.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이라지만 무공을 익힌 자신이 걸어가다가 피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건드렸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진 두자성이 주위를 훼훼 둘러 보며 자신의 실책을 목격한 사람이 있나 살펴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자신을 유심히 주목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발에 부딪친 것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두자성의 시야에 새하얀 검집을 한 검 한자루가 들어왔다.

"응? 이건 뭐지?"

언뜻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검 한자루를 발견한 두자성이 허리를 숙여 검을 집어들었다. 재질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눈부시도록 새하얀 백색을 띤 검집의 양쪽 가운데 부분에는 일렬로 나란히 비취옥 세 개씩이 박혀 있었으며 검파(손잡이)와 검신의 경계를 이루는 검반에도 옆으로 나란히 비취옥 세 개가 박혀 있었다.


"햐! 비취옥이 아홉 개나 박혀 있구나. 이 놈들만 빼서 팔아도 제법 돈 되겠는데"

엄연한 무인인 두자성이 검에 박힌 비취옥이나 빼서 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아무리 녹림도라고는 하나 제 버릇 개 못준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하여간 제법 값어치 있게 보이는 검을 주웠다며(?) 희희낙락한 두자성은 검파를 가볍게 틀어 잡고 백색의 겁집에서 검을 조심스럽게 뽑아 보았다. 그러자 귀로는 들리지 않았지만 마치 스르릉하는 울음을 토하는 듯한 검신이 검집에서 부드럽게 빠져 나와 두자성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너무도 잘 손질된 검신은 검집과 마찬가지로 순백색을 띠고 있었으며 태양에 비친 검신에서도 마치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나오는 듯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검신을 거쳐서 눈으로 전해지는 태양광은 따뜻한 것이 아니라 북풍한설 처럼 차가운 기운을 내포하고 있었다. 덕분에 두자성은 한 여름에 오한이 드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어라? 갑자기 왜 이래?"

그때 진소청을 도우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초혜가 쪼르르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초록이 아저씨! 그 검은 뭐예요?"
"아! 막내 아가씨! 글쎄올습니다요. 소인이 여기서 주운 검인데 보아하니 이 놈도 명검인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러네요"
"그렇습죠. 헤헤, 가만! 막내 아가씬 지금 큰 아가씨 돕고 계신게 아니었습니까요?"
"아 참! 그렇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휑하니 달려가 버리는 초혜를 보며 두자성은 좀전에 사도연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서 잠시 키득거렸던 두자성은 검을 다시 납검하고 단단히 틀어쥔 채 걸음을 옮겨 멍하니 서있는 신검문도들에게 다가갔다.

"이보슈! 다들 뭐하쇼?"'

금단의 마공인 역혈마공을 익힌 이가 문주를 포함해서 무려 여섯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기함을 한 신검호위대 가운데 하나가 두자성의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나섰다.

"본인은 신검문의 유장호라고 하외다. 뉘신지?"
"아! 녹림의 초록이 두자성이외다"

"초록이? 험험, 하여튼 반갑소이다'

대개 무인들이 통성명을 할때는 자신의 별호와 이름을 동시에 말하는 것이 예의이다. 하지만 작은 중소방파인 신검문의 유장호에게는 아직 별호가 없었으며 두자성에게는 녹광사신이라는 새로운 별호가 막 붙었지만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두자성은 자연히 초록이라는 조금은 우스운 자신의 별명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들은 유장호는 온통 초록색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한 두자성의 복색과 묘하게도 잘 어울리는 초록이라는 별명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무례해 보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가면서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그리 참을 것 없소이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성수신녀 께서 직접 지어주신 초록이라는 별명이 난 무척 좋다오"
"죄,죄송하외다."
"아니외다. 그보다 정리를 좀 해야될 것 같지 않소이까. 내가 실어온 신검문의 부상자들은 안으로 데려가시고 어질러진 주위의 정리도 하셨으면 하오. 신검문에 대한 처결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역혈마공에 의한 부상자들이 수습된 후에야 가능할 것 같소이다만."
"아,알겠소. 그리하리다"

유장호의 대답이 끝나자 마자 신검문도들의 손길을 바빠지기 시작했다. 실려온 부상자들을 옮기랴, 부선진 현판과 담벽 그리고 여기저기 흉하게 패인 바닥들을 정리하랴, 바쁘게 돌아가는 신검문도들을 보며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린 두자성이 걸음을 옮겨 철무륵에게 다가 갔다.

"총표파자님!"
"무슨 일이냐?"

긴장된 표정으로 설지와 추자의을 보고 있던 철무륵이 두자성을 힐끗 보여 입을 열었다.

"추대주는 설지 아가씨께 맡겨 두시고 이거나 한번 보십쇼'
"응? 그건 검 아니냐?"
"맞습니다요. 제가 방금 저기서 주운건데 검집도 검신도 모두 새하얀 검입니다요'
"응? 검신도? 가,가만, 그 검 이리 줘 보거라"
"예? 예! 여기 있습니다요?"

두자성에게서 빼앗듯이 검을 받아든 철무륵이 검파를 잡고 검을 검집에서 뽑아 들었다. 그러자 한순간 서늘한 기운이 주위로 퍼져 나갔다.

"웃!"


자신이 뽑아 들때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에 깜짝 놀란 두자성이 경호성을 발했다. 그 소리를 듣고 뒤늦게 고개를 돌린 일성 도장의 눈에 잠시 이채가 떠올랐다가 사라져 갔다.

"허! 그 검은 한빙검이 아닌가?"
"어르신이 보기에도 그렇습니까?"
"틀림없는 것 같네. 서늘하게 풍겨 나오는 예기하며 검신의 모습 등이 내가 아는 한빙검의 모습 그대로일세"
"하.한빙검이요?"

깜짝 놀란 두자성의 부르짖음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한빙검으로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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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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