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기를 접한 신검문도들이 경악, 충격, 혼란이라는 모든 감정들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바람에 장내는 다시 극도로 소란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란스러움 중에는 난생 처음 접하는 기사와 그 기사를 일으킨 장본인인 설지를 향한 작지만 강한 경외심 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끈적하고 답답한 마기를 흘려내던 검은색의 연기들이 설지의 손목 어림으로 모두 모여드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람들 앞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설지의 손목에 채워진 성수지환이 마기를 모두 흡수해버렸다는 사실을 알리 없는 신검문도들 속에서 흘러나온 외마디 경악성이 허공 중으로 퍼져나갔다.

"저럴 수가!!"

한편 역혈마공을 익힌 자들과 신검문도들 사이에 섞여있던 마공을 익힌 자들에게서 마기를 잔뜩 흡수한 성수지환은 지금 이순간 기분이 몹시 좋다는 듯 작은 떨림을 연신 설지의 손목에 전달해주고 있었다. 이에 설지가 가만히 손목에 채워진 성수지환을 쓰다듬어 주자 이전 까지는 발생하지 않았던 새로운 현상 하나가 성수지환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설지의 손길이 닿자 마치 보검이 새로운 주인을 처음 만났을 때 기분 좋은 검명을 토해내듯이 나직한 울음 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소리는 작지만 분명 검명과 흡사한 소리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모든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나직한 울음을 토해내던 성수지환에서 투명한 강기의 빛이 스르르 빠져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엄청난 크기를 가진 검의 모습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온전한 검의 모습으로 변한 강기의 크기는 무려 이장은 족히 될듯 싶었다. 마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신장들이 들었던 검이 있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기검은 드러난 모습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갑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검의 형체를 띠고 있던 강기가 좀더 투명해지는가 싶더니 윗 부분 부터 스르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던 자리에는 강기검 대신 텅빈 허공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몇 절대 고수들은 강기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모습을 감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강기검이 보여 주었던 기세 만큼은 미세하게나마 여전히 전달되고 있었던 것이다.

"허! 설마? 무량수불"
"어르신! 저거 아무래도 심검 같습니다"
"그런것 같네. 허허!'

"엥? 심검? 철대숙, 방금 심검이라고 하셨어요?"
"그래! 초혜 넌 저 기세가 느껴지지 않는게냐?"
"아뇨. 모습이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기세 만큼은 선명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어디에 있는지 알겠는데 심검이 원래 그런거예요?"
"응? 선명하게 느껴진다고..."

초혜의 질문에 다시 질문으로 답하며 허탈해하는 철무륵이었다. 사라진 강기검이 선명하게 느껴진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비록 실전 경험은 자신 보다 일천하지만 무공 성취 만큼은 자신 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공연히 두주먹을 불끈 쥐고 수련에 박차를 가해야겠다는 엉뚱한 경쟁심을 불태우는 철무륵이었다. 그것도 어린 질녀를 앞에 두고...

"아이 참! 심검이 원래 그렇느냐니까 무슨 엉뚱한 소리예요. 지금 무슨 생각하는거예요?"

빽 고함을 지르듯이 다시 질문하는 초혜의 목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신색을 추스린 철무륵이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그게 말이다.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렇지! 심검이란건 원래 그 기척을 느낄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모습을 감추었으나 기세가 느껴지는 외형 만큼은 내가 알고 있는 심검이 분명한 것 같구나"
"알려져 있다? 그럼 한번도 본적이 없는거예요?"
"그,그렇지 당금 무림에서 심검지도에 이른 무인은 없는 것으로 안다."

"어라? 그럼 도사 할아버지도..."
"무량수불! 맞다. 네 녀석 말대로 이 할애비도 아직 심검지도에는 이르지 못했구나. 하지만 현진을 비롯한 네 녀석들은 심검지도에 다다르지 않겠느냐? 내 그리 믿고 있다. 허허허"

"예? 저희가요?"
"그래. 허허허"
"헤헤, 그럼 오늘 부터 심검 수련이나 해볼까?"

심검지도에 이르는 길이 초혜에 의해 마치 시전에서 당과를 사는 것 처럼 가벼워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가벼움이 심검지도에 이르는 길을 좀더 빠르게 앞당겨준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아참! 심검지도고 뭐고 그러니까 설지 언니가, 아니지, 성수지환이 만든 저 현상이 심검과 비슷하다는거죠?"
"그래. 분명 심검과 비슷해 보이는구나"
"하지만 저렇게 무거운 기세를 흘려내면 피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에이 그러고 보니 심검도 별거 아니구만"

초혜의 의해 심검지도의 위상이 다시 한번 급전직하하는 순간이었다.

"끙! 이 녀석아! 심검이 그리 피하기 쉬울리가 있느냐. 시전자가 뜻을 품으면 바로 그순간 원하는 곳에 심검이 모습을 드러낼 터인데 피하고자시고 할 순간이 어디 있느냐"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헤헤"
"무량수불! 허허, 이제 완전한 심검으로 변해가는 것 같으이"
"예?"


철무륵과 초혜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설지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던 일성 도장이 감탄어린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이에 초헤에게서 시선을 돌린 철무륵이 강기검이 있는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철무륵은 분명히 느끼고 또 보았다. 강기검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점점 약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부터 전혀 그 기세를 감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기세 까지 완전히 사라진 강기검이 있던 자리에는 텅빈 허공만이 보일 뿐이었다.

"어라? 이젠 기세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네? 설지 언니, 강기검을 거둔거야?"
"응? 호호, 아니야,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걸"

"그래? 청청 언니는 어때? 보여? 느껴져?"
"아니, 기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햐! 그것 참, 신기하네, 그러면 이게 성수지환의 네번째 단계라는 환인가 본데 마지막 단계에서는 또 뭘 보여주려나?"

초혜의 말 그대로였다. 마기를 잔뜩 흡수하고 기분 좋은 검명을 토해내던 성수지환이 마침내 네번째 단계인 환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바로 심검지도였다. 원래 심검지도란 절대고수의 참오와 깨달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외지물인 성수지환은 마기를 이용해서 심검지도에 올라서고 있었다. 이는 분명 기사 중의 기사였다. 

"허! 방금 내가 본게 무엇이오? 설명해줄수 있겠소?"

웅성거리던 신검문도들 사이에서 예의 노인이 다시 설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심검을 거둬 들인 설지가 성수지환을 한차례 쓰다듬은 후 노인을 향해 대답했다.

"아! 예, 어르신, 보셨겠지만 제압당한 저들은 분명 마공을 익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공을 익히면서 몸속에 쌓았던 마기는 조금 전에 제가 모두 제거했습니다."
"그렇구려, 그러면 뒤에 본 그 커다란 검의 형상은 대관절 무엇인게요?"
"아. 그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해요"

"허허, 그렇구려. 다른 사람의 무공 내력을 자세히 알려해서는 안된다는 것 쯤은 내 알고 있으니 괘념치 마시오"
"이해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리고 저기 마공을 익힌 자들은 당분간 저희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몇가지 확인해 볼 것이 있어서요. 아! 물론 더이상의 위해는 없을 것임을 제가 성수의가의 이름으로 천명하죠"

"허허, 그 문제는 내가 나설 일이 아닌 것 같소이다. 어디보자... 그렇지! 장호, 자네가 나서게"
"예. 어르신, 그리하겠습니다."

설지에 의해 문도들 몸에서 마기가 드러나고 그런 마기를 흡수하는 과정을 신검문의 다른 이들 보다 좀더 가까이서 지켜본 탓에 어렴풋하게나마 지환과 마기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던 유장호가 신검문을 대표해서 앞으로 나섰다. 마공을 익힌 자들을 제외하면 현재 신검문도들 중에서 가장 고강한 무공을 소지하고 있고 더불어 그런 무인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가 바로 유장호이기 때문이다.   

"아! 유대협,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들은 본가에서 데려가야겠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려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단 말씀하셧듯이 더이상의 위해가 있어서는 아니됩니다. 조사가 끝난 후 저들의 처분은 저희 신검문 자체에서 의논하여 처리할 것입니다."
"예. 그리 하시는게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리 알고 저희는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예. 그리하시지요. 아! 그리고 한가지 더..."
"예?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요?"
"다름이 아니라 본문의 검인 화룡검과 한빙검은 어찌 하실 것인지요?"

쉽게 말해서 유장호의 말은 너희가 가져간 화룡검과 한빙검을 돌려 달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한번 손에 들어온 것은 절대 내줄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녹림 총표파자 철무륵의 생각은 달랐다.

"응? 그게 무슨 소리요?  검을 어찌 하다니? 전투 중에 주인 잃은 물건을 녹림에서 습득하여 새로운 주인들을 찾아줬는데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소?"

너무도 당당한 철무륵의 주장에 일시 말문이 막히는 유장호였다. 더구나 개인의 이름이 아닌 녹림에서 습득했다고 못박아버렸으니 녹림과 비교하면 그 위세가 보잘 것 없는 신검문의 입장에서는 두 눈 멀쩡히 뜨고 문파의 보검을 빼앗겨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저 검들은 분명 본문의 것입니다."

"크하하, 한때는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오. 녹림이 달리 도적 집단이라고 불리겠소이까?"

유장호의 입장에서는 정말 할말 없게 만드는 철무륵이었다. 녹림에서 내어주지 않겠다면 힘이 없는 신검문의 입장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에 유장호는 무당과 소림 그리고 회산파의 인물들에게로 시선을 차례로 돌리며 도와 달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명색이 정파를 대표하는 이들이기에 자신의 부탁을 들어 주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유장호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시선을 외면하는가하면 작게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성수신녀! 신녀 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저요? 저야 뭐..."

설지가 막 뭐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유장호를 지목하고 뒤로 물러났던 노인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장호! 되었네. 그만하시게, 내 무공은 모르지만 명검에는 주인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잘알고 있네. 그러니 그 검들의 운명도 그렇게 결정지어진 것이겠지. 그러니 그만 포기하게, 지금은 검보다는 본문을 먼저 추스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하지만, 어르신..."
"어허! 그렇게 하래도, 그리고 정 아깝다면 그 두 자루의 검으로 우리 신검문이 성수의가와 연을 맺었다고 생각하시게"

노회한 노인의 입을 통해서 신검문과 성수의가가 연을 맺은 사이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제서야 노인의 내심을 짐작한 유장호가 한발 물러섰다. 문파의 재건에 성수의가의 힘이 미친다면 대문파로 성장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그러면 모두 해결된거죠? 그럼 저희는 이만..."

포권으로 예를 취한 설지가 몸을 돌리자 다른 일행들도 분분히 포권을 주고 받으며 인사를 대신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 와중에 유장호와 노인의 내심을 짐작한 철무륵이 피식하고 실소를 터트리며 다른 이들과 보조를 맞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품에 안겨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고 있던 사도연이 어느새 축 늘어져 깊은 잠에 빠져 든 것을 다독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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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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