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우리 엄마 좀 봐주세요"
"응? 그게 무슨 말이냐?"

한편 두자성에게 의원이냐고 물었던 예운성은 호걸개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다시 두자성을 향해 기대가 가득한 마음으로 입을 열고 있었다.

"천하제일의 의술을 가진 분을 아저씨가 가까이서 보필하신다면서요?"
"응? 그래! 아까 말했던 성수신녀가 바로 그분이시지"
"그러니까 의원이 맞으시잖아요?"

 

"하하, 의원은 아니래도 그러는구나. 그건 그렇고 잠시만 있어 보거라. 호걸개 어르신!"
"응? 아! 왜 그러는가?"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요?"

"저 아이 애비였던 그 놈 생각이 나서 말이야. 헌데 왜 그러는가?"
"다른게 아니고 운성이 엄마되는 이가 아프다는데 잠시 들러봐야 하지 않겠습니까요?"
"아! 그렇지. 어서 서두르세"

"예. 그리하지요. 운성아 앞장서거라. 네 집으로 가보자꾸나. 작은 아가씨! 그래도 되겠습니까요?"
"응! 응! 그렇게 해요. 아픈 사람이 있다는데 초혜 언니 머리통 보다 큰 월병은 다녀와서 사지 뭐"
"켈켈, 우리 연이가 이제 다 컸구나"

제법 의젓하게 말하는 사도연이 귀여운지 호걸개가 주름이 가득한 손을 들어 사도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 초록이 아저씨!'
"예? 왜 그러십니까요?"
"철전 이만큼이면 만두도 살수 있는거예요?"

철전이 가득 담긴 전낭을 들어 보이며 사도연이 말했다.

"물론입니다요. 만두 정도는 사고도 남습니다요. 헌데 갑자기 만두는 왜?"
"그냥요. 만두가 먹고 싶어서... 헤헤"

"하하, 그러십니까요? 그럼 소인이 만두 몇개 사오겠습니다요."
"헤헤, 많이 사오세요. 여기 철전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사도연의 손에는 철전 대여섯개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두자성은 그 철전을 가져갈 마음이 전혀 없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넣어 두십시오. 그깟 만두 몇개 쭘이야 제 돈으로도 살 수 있습니다요"
"헤헤, 알았어요. 대신 많이 사오셔야 해요"
"예. 작은 아가씨.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보시오. 주인장!"

한쪽 옆으로 비켜서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 보고 있던 만두 가게 주인을 부르며 두자성이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사도연의 곁에 줄곧 가만히 서있기만 하던 현진 도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연이 너 만두 별로 좋아하지 않는거 아니었어?"
"응? 아! 헤헤, 그냥..."

그러면서 사도연의 시선이 예운성의 손에 들려 있는 터져버린 만두 쪽으로 이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노회한 호걸개가 사도연의 내심을 짐작하고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우리 연이가 누굴 닮아서 이리 착할꼬, 앞으로도 그렇게만 살아가거라."
"응? 사숙,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만두랑 착한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쯧쯧, 누가 말코 나부랭이 아니랄까봐. 저리 둔해서야, 원. 이 놈아 연이가 정말 만두가 먹고 싶어서겠느냐?"
 "예? 그럼..."

같은 정도인 구파일방 소속에다가 사부인 일성 도장과의 친분을 생각하면 개방의 태상방주인 호걸개를 현진 도사가 사숙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호걸개 역시 마치 제자를 대하듯 스스럼없이 현진 도사를 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호걸개의 시선이 예운성의 손에 들린 만두로 향하자 그제서야 무언가를 깨달은 현진 도사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켈켈, 이제서야 눈치 챘느냐?"
"죄송합니다. 사숙, 제가 좀 미련해서 말입니다."
"켈켈, 제 놈이 미련하다는걸 알긴 아는구나"

그때였다.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사도연이 고함을 빽하고 지르듯이 큰 목소리로 호걸개를 불렀다.

"거지 할아버지!"
"아이쿠! 깜짝이야. 이 녀석아 할애비 심장 떨어지는줄 알았다. 뭔일이냐?"
"현진 오라버니 미련하지 않아요"

 비수라도 하나 튀어 나올듯한 날카로운 눈을 한 사도연이 현진 도사의 역성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호걸개가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나직히 입을 열었다.

"오호라! 벌써 부터 현진 저 놈을 챙기는 것이냐?"
"그,그게 아니라... 몰라요"
"켈켈켈, 고 놈들 참 귀엽게 노는구만"
"사숙!"

"켈켈켈"
"어르신 뭐가 그리 재미있습니까요? 작은 아가씨! 여기 만두 사왔습니다요"
"이야. 만두다. 만두!"

만두 가게에 들렀다가 오는 두자성의 손에는 뚜껑이 달려 있는 제법 커다란 대나무 광주리 두 개가 양손에 하나씩 들려 있었다.

"어떻습니까요? 이만큼이면 되겠습니까요?

현진 도사가 두자성으로 부터 건네 받은 대나무 광주리 하나를 열어본 사도연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았다.

"우와! 많다. 하나, 둘, 셋... 스무개다"
"예. 많이 드시라고 넉넉하게 사왔습니다요."
"헤헤. 신난다."
"어르신, 이제 그만 운성이 저 아이 집으로 가보시죠"
"그러세"

그렇게 일행들과 함께 예운성의 집으로 걸음을 옮기는 두자성과 현진 도사의 손에 들린 대나무 광주리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주위로 퍼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여기예요"

예운성의 안내를 받아 당도한 곳은 정현의 가난한 이들이 주로 모여 산다는 외곽지의 빈민촌이었다. 당장 허물어져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이는 허름한 가옥들과 남루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오가는 빈민촌에 들어설 때 부터 호걸개의 인상은 찌푸려질대로 찌푸려진 채 펴질줄을 모르고 있었다.

대관절 무슨 사정이 있었길래 개방의 촉망받는 제자였던 이와 한림원 학사 출신의 아버지를 두고 있는 이가 이런 빈민촌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그 빈민촌에서도 가장 허술해 보이는 집으로 자신들을 안내하는 예운성의 모습이 너무도 아프게 다가오는 호걸개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진작에 개방 제자들로 하여금 가끔씩 살펴 보라고 일렀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여기더냐?"
"예. 아저씨. 엄마한테 먼저 말씀드릴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래. 천천히 하거라"

딱히 문이라고 할 것도 없어 보이는 허술한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간 예운성이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듯 두런거리는 소리가 방밖으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어르신, 이상한데요? 아무리 개방 제자였다고는 하지만 그런 분이 지내기에도 이 집은 너무 허술합니다요"
"그러게나 말일세.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인지..."

두자성과 호걸개가 안타까운 음성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사도연과 현진 도사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 보고 있었다. 몰락한 집안이라고는 하지만 사도세가에서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성장한 사도연과 어린 시절 잠시 걸식하기는 했었지만 소림사와 함께 명문 정파의 태산북두로 불리우는 무당파의 도사가 된 현진에게는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산다는게 마냥 신기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예운성이 들어갔던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할아버지, 들어 오세요."
"오냐. 다들 들어 가자꾸나"
"예. 어르신"

"예! 사숙"
"예~"

사도연의 대답을 끝으로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서던 일행들은 문턱을 넘자마자 코를 찌르는 악취에 다급히 숨을 골라야만 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거동이 불편한 성인 여성을 아직은 어린 예운성 혼자서 보살피고 있었으니 청결하다면 그것이 되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송구합니다. 제가 거동이 불편해서 이렇게 누워서 귀빈들을 맞습니다"
"허허, 아닐세. 편안하게 누워 계시게. 이야기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개방의 호걸개라고 한다네."
"예. 어르신, 작고한 부군으로 부터 자주 말씀 들었습니다."

"허허. 그랬구만. 아! 자네들도 인사 나누게"
"전 사도연이라고 해요. 헤헤"
"빈도는 무당파의 현진이라고 합니다"
"녹림의 두자성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성이에게 대충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무슨 일로 어려운 걸음들을 하셨는지요?"
"그게 자네 병세를 한번 살펴볼까해서 말이네. 뭣하는가 어서 한번 살펴보게"
'예. 어르신, 성이 어머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뼈만 남은 것 같은 앙상한 팔목 쪽으로 손을 가져간 두자성이 부드러운 기운을 흘려 넣으며 예운성의 어머니를 살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두자성의 안색이 어두어지고 양쪽 미간이 좁혀지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봐서 그리 간단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만은 방안의 모두가 인식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손을 거둔 두자성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왜 그러는가?"
"저 그게..."
"어허. 이 사람, 빨리 말하지 않고 뭘 하는게야"

"아! 예. 어르신, 아무래도 설지 아가씨께 모셔가야 겠습니다요."
"심각한가?"
"그게 그러니까... 기력이 쇠한 것은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요. 헌데 이상하게도 그 외에는 별다른 병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요. 거동이 불편하다고 하셨는데 제가 볼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이야기죠. 헌데도 저리 거동을 못하는 걸 보니 설지 아가씨께 보이는게 낫겠다는 생각입니다요"

"그런가? 휴! 그나마 죽을 병은 아니라는 소리군, 맞나?"
"그게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것 같습니다요."
"그래? 그럼 설지에게 데려가도록 하지, 자네 생각은 어떠신가? 설지라고... 아니지 성수신녀라고 하면 더 잘 알겠구먼, 하여튼 근처에 성수신녀가 와 있다네. 어떤가? 가볼텐가? 아! 돈 걱정일랑 하지 않아도 되네"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처지이온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어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운성이는 어쩌라고..."
"무슨 말못할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선 설지에게 가보세나. 자네가 거절하면 억지로라도 데려갈 것이야."
"그럼 어르신, 제가 얼른 가서 수레 하나 구해오겠습니다요"
"그렇게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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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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