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gul Thrash - What's This I Hear

모굴 스래시 (Mogul Thrash) : 1970년 영국에서 결성

제임스 리더랜드 (James Litherland, 기타, 보컬) : 1949년 9월 6일 영국 샐퍼드(Salford) 출생
존 웨튼 (John Wetton, 베이스, 보컬) : 1949년 6월 12일 영국 더비(Derby) 출생
마이클 로젠 (Michael Rosen, 트럼펫) : ?
맬컴 던컨 (Malcolm Duncan, 테너 색소폰) : 1945년 8월 24일 영국 스코틀랜드 몬트로즈(Montrose) 출생
로저 볼 (Roger Ball, 색소폰) : 1944년 6월 4일 스코틀랜드 브로우티 페리(Broughty Ferry) 출생
빌 해리슨 (Bill Harrisson, 드럼) : ?

갈래 :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재즈 록(Jazz Rock), 퓨전(Fusion)
공식 웹 사이트 : 없음
공식 에스앤에스(SNS) : 없음
노래 감상하기 : http://youtu.be/kxePn81EYYs

음악을 취미 생활로 즐기는 이들의 경우에는 더욱 자주 경험하게 되겠지만 음악을 즐겨 듣다 보면 <이런 밴드도 있었어?>하는 순간을 누구나 경험하게 된다. 특히 단 한장의 음반만을 세상에 남기고 사라져간 밴드들을 만날 때면 그런 인상이 더욱 강하게 와닿게 마련인데 오늘의 주인공인 영국의 재즈 록 밴드 <모굴 스래시> 또한 내게는 그런 밴드였다. 그런데 모굴 스래시라는 다소 특이한 이름을 가진 이 밴드의 정체를 알게된 후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뜻밖의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름들이란 다름아닌 <제임스 리더랜드>와 <존 웨튼>이었다. 제임스 리더랜드는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재즈 록 밴드 <콜러시엄(Colosseum)>이 데뷔 음반을 녹음하던 1969년 당시에 <짐 로치(Jim Roche, 기타)>를 대신하여(참고: Colosseum) 기타를 잡았던 인물로 이후 1970년에 발표된 세번째 음반 <The Grass Is Greener> 까지 콜러시엄의 기타를 책임졌던 인물이었으며 존 웨튼은 모굴 스래시에 참여한 후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패밀리(Family)>를 거쳐 <킹 크림슨(King Crimson)>에서 그 역량을 인정받게 되는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모굴 스래시에 합류할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은 신인에 불과했던 존 웨튼은 차치하고서라도 제임스 리더랜드의 행보를 살펴 보다 보면 <왜?>라는 의문이 문득 들게 된다. 콜러시엄이 1969년에 발표한 데뷔 음반을 포함하여 같은 해에 발표된 두번째 음반 <Valentyne Suite>와 이듬해인 1970년에 발표된 세번째 음반 <The Grass Is Greener> 까지 명반들의 행진에 함께 했던 그가 돌연 콜러시엄에서 탈퇴하고 새로운 밴드인 모굴 스래시를 결성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제임스 리더랜드가 후일 밝힌 바에 따르면 콜러시엄에서의 탈퇴는 음악적 갈등이나 법률적인 문제와는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 명확한 이유는 바로 <소외>였다고 하는데 이런 느낌을 그에게 안겨준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돈>이었다. 다른 구성원들에 비해 조금 늦게 가입하긴 했지만 콜러시엄 음악의 완성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다고 믿었던 자신이 수익금 배분에서 항상 가장 적은 금액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은 1970년 초에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일로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제임스 리더랜드는 모욕감을 곱씹으며 밴드에서 탈퇴를 결심하였고 거의 동시에 즉각적으로 콜러시엄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향후의 행보는 우리가 아는 모굴 스래시라는 새로운 밴드의 결성이었다. 세명의 관악기 연주자가 포함된 모굴 스래시의 출발은 콜러시엄에서 탈퇴한 제임스 리더랜드가 트럼펫 연주자인 <마이클 로젠>의 음반 <Jade>에 객원 연주자로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음반 녹음을 하면서 만나게 된 연주자들과의 인연이 <맬컴 던컨>과 <로저 볼>, 그리고 존 웨튼에게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공개 모집을 통해 드러머인 <빌 해리슨>이 합류하면서 마침내 밴드의 체계가 완성이 된 것이다. 그런데 밴드의 이름을 왜 모굴 스래시로 지었을까? 이런 이름이 등장한 배경에는 당시 토요일 밤에 방영되었던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이 있었다. 빠른 속도로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떠들썩한 분위기의 이 프로그램을 구성원 모두가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로 쇼 프로그램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모굴 스래시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여튼 밴드의 이름 까지 확정한 모굴 스래시는 제임스 리더랜드와 존 웨튼이 각각 보컬을 담당하고 관악기가 포함된 강렬한 재즈 록을 들려 주는 싱글 <Sleeping in the Kitchen/St. Peter>를 1970년에 발표하면서 데뷔하였다. 그리고 1970년 6월에 녹음한 음반을 이듬해인 1971년에 <Mogul Thrash>라는 제목을 붙여 데뷔 음반으로 발표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모굴 스래시의 유일한 음반은 관악기가 포함된 강렬한 재즈 록을 들려준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재즈 음악의 즉흥성과 록 음악의 강렬함을 접목시켜 실험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음악을 들려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음반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 하나만을 골라 보라고 한다면 음반의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What's This I Hear>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콜러시엄의 두번째 음반인 <Valentyne Suite>의 두번째 곡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제임스 리더랜드가 만든 곡인 <Elegy>를 좀더 강렬하게 편곡하고 확장한 버전을 수록한 모굴 스래시의 데뷔 음반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뛰어난 구성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곡이 바로 <What's This I Hear>이기 때문이다. 

아스라하게 다가오는 트럼펫 연주로 시작하여 강렬한 재즈 록을 들려 주는 <What's This I Hear>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활력은 신선한 자극이 되기에 충분하며 색소폰이 중심이 되어 3분 20초 경 부터 울려 퍼지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은 이 곡이 가진 또 다른 묘미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데뷔 음반 공개 이후 모굴 스래시는 밴드 관리상의 문제와 법률적인 문제가 대두됨으로 인해 해산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런 이유로 데뷔 음반이 곧 밴드의 유일한 음반이 되고 말았다.  (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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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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