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어르신, 작은 아가씨, 소인 얼른 다녀오겠습니다요. 그동안 만두나 드시고 계십시요"
"예. 다녀오세요."

들고 온 대나무 광주리를 앞으로 내민 두자성이 방문을 열고 나가자 그제서야 만두에 생각이 미친 호걸개가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광주리의 뚜껑을 열었다.

"켈켈, 어디 보자, 어이구 먹음직스게도 생겼럽구나. 어디 한번 먹어 볼까"

그렇게 말하면서 호걸개가 만두 하나를 집어 들어 덥석 깨물었다. 만두를 한입 깨물자 향긋한 향과 함께 고기 특유의 육즙이 혀를 자극하자 만족스러운 표정을 떠올린 호걸개가 만두를 꿀꺽 씹어 삼킨 후 광주리를 사도연 앞으로 내밀었다.

"옜다. 연이도 먹고, 성이도 하나 먹거라. 아! 그러고 보니 만두에 고기가 들었구나. 현진 네 녀석은 먹으면 안되겠다."
"무량수불! 저는 괜찮습니다."
"헤헤, 만두다."

"성이 넌 뭐하느냐. 얼른 하나 집지 않고"
"예? 예. 그게... 저 엄마 먼저..."
"응? 켈켈켈, 그 녀석 참, 네 어미는 어련히 알아서 이 할애비가 챙겨줄까, 그러니 얼른 네 놈이나 먼저 하나 집거라"
"예."

"어디 보자. 자네도 하나 먹어 보게. 저 녀석 연이가 자네 모자를 생각해서 사온걸세, 그러니 입맛이 없더라도 하나 먹어 보게"
"전 괜찮습니다. 성이가 맛있게 먹는 걸 보니 배가 부르네요"
'어허! 이 사람이 뭐라도 먹고 얼른 기운을 차릴 생각을 해야지. 어서 하나 먹어 보게"
"그,그럼, 하나만..."

누운 채 힘겹게 손을 뻗어 뼈만 남은 앙상한 손으로 만두 하나를 집어드는 예운성의 어머니 눈에서 한방울 눈물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자신들 모자에게 이처럼 따뜻하게 다가와주는 이들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자신이 처한 처지가 생각나서 순간적으로 흘러내린 눈물이었다.

"어허! 이 사람 아이들이 보네, 그깟 만두 하나 갖고 왠 눈물 타령인가?"

"죄,죄송합니다. 어르신 저도 모르게..."
"엄마!"
"그래. 그래. 괜찮다. 난 괜찮으니 어여 만두나 맛있게 먹으렴"

갑자기 눈물 한방울을 흘리는 엄마를 보면서 걱정어린 목소리로 예운성이 엄마를 불렀다. 하지만 이내 갸녀린 손으로 눈물을 훔친 예운성의 엄마가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에운성의 얼굴에서도 따뜻한 미소가 함께 피어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두 사람의 다정한 행동을 보고 있던 사도연이 갑자기 울먹거리는가 싶더니 커다랗게 울기 시작했던 것이다.

"으아앙! 엄마!"
"여,연아! 갑자기 왜 그러니"
"으아앙! 몰라, 몰라, 엄마! 엄마가 보고 싶어"
"아이구, 우리 연이가 갑자기 왜 그러누. 이리 오너라 이 할애비가 안아 주마"

그러자 호걸개의 품으로 안겨든 사도연이 더욱 큰 소리로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것은 예운성 모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르신! 무슨 일인지요. 갑자기 그 아이가 왜?"
"허허, 그럴 일이 있네, 내 나중에 알려줌세. 그러니 지금은 그냥 모른 척 하시게"

사도연의 등을 다독이며 진정시키던 호걸개의 말을 들은 예운성의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아이 앞에서는 하지 못할 심각한 일이 있었음을 직감한 것이다. 하지만 늘 밝은 표정으로 가문이 멸문당하던 날의 충격을 잊어가는 것 같던 사도연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호걸개와 현진 도사는 근심어린 표정을 떠올려야만 했다.

한참 동안을 서럽게 울던 사도연의 울음 소리가 서서히 잦아질 즈음 갑작스럽게 방문이 왈칵 열리더니 수레를 구하러 갔던 두자성이 뛰어 들어 왔다.

"아,아가씨, 작은 아가씨 왜 그러십니까요? 어르신 무슨 일입니까요?"
"어허, 이 놈 보게 잘하면 한대 치겠구먼. 별일 아니니 걱정 말게"
"별일 아니라니요. 작은 아가씨께서 눈이 퉁퉁 부어 올랐는데요"
"쯧! 그냥 이들 모자를 보면서 연이가 제 엄마 생각이 났던거야. 그러니 그만하게"
"아!"

그제서야 상황을 납득한 두자성이 힘없이 축 늘어진 사도연을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아직은 어린 여섯살의 여자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엄마를 하루 아침에 흉수들에게 잃어야 했으니 그 충격이 오죽할까? 그동안은 설지 덕에 지난 날의 악몽을 조금씩 지워나가고 있었지만 예운성 모자를 보면서 불현듯 엄마 생각이 났을 것이다. 여기 까지 생각한 두자성이 호걸개에게 힘없이 안겨 있는 사도연의 등을 가만히 쓸어 주었다.

"그래, 수레는 어떻게 되었나."
"아! 예. 구해왔습니다요. 밖에 세워뒀으니 이제 그만 가시지요"
"가긴 가야 할텐데 연이 이 녀석 때문에..."
"으음, 전 괜찮아요 할아버지"

힘없이 안겨 있던 사도연이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만년흑마령석으로 만든 지환과 옥패의 신묘한 작용이 빠른 속도로 사도연의 쇠잔해진 기력을 되찾아 준 것이다.

"오냐. 정말 괜찮은게냐?"
"예. 할아버지, 죄송해요"
"허허, 죄송할게 뭐 있느냐? 그럼 이제 그만 가자꾸나"

"연아! 괜찮아?"
"응! 현진 오라버니" 
"어르신 그럼 가시지요. 그런데 성이 어머니는 어떻게..."

"내가 안고 나가지, 어떤가? 그래도 괜찮겠는가? 아버지라고 생각하시게"
"예. 어르신 그럼 부탁드립니다"
"그래, 그럼 다들 가자꾸나"


뼈만 앙상한 파리한 안색의 여인을 이불째 안아든 호걸개가 먼저 나선 후 나머지 일행들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일행들이 다 쓰러져가는 집 입구에 당도하자 주위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튼튼하게 보이는 커다란 우마차 한대가 세워져 있었다. 우마차 중에서도 최상급이 틀림없었다.

"켈켈, 자네 돈 좀 썼나 보구먼"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지나가던 관병들에게서 빌려 온 것 입니다요"
"관병들에게? 허면 이 우마차가 관용이란 말인가?"

"예. 그렇습죠. 그러니 이처럼 튼튼한게 아니겠습니까요"
"켈켈, 그 놈 재주도 좋구먼, 딱 봐도 녹림인으로 보이는데 그런 주제에 관병에게 우마차를 빌려? 켈켈켈"
"하하하, 그게 어디 저 때문이겠습니까요? 설지 아가씨 덕이지요"

"응? 그게 뭔 소린가? 허면 설지 이름을 판게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요. 처음에 관병들에게 가서 우마차를 빌려 달라고 하니까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는 표정들이이었다가 설지 아가씨 이름을 말하니까 군말없이 빌려주던뎁쇼"

"그럼 그렇지. 하여간 어서 가세. 근데 우마차에 소는 왜 없는가?"
"그냥 제가 끌고 가는게 훨씬 낫습니다요. 그래서 소는 떼놓고 마차만 가져온겁니다요"
"그런가? 그럼 가세. 성이 너도 엄마 옆에 타거라"
"예"

"작은 아가씨. 작은 아가씨도 타고 가시겠습니까요?"
"아니, 난 밍밍이 타고 갈래요"
"그럼 그렇게 하십시요. 밍밍아 이리 오너라'

우마차가 신기한지 다가와서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던 밍밍이의 등에 사도연을 올려준 두자성이 우마차를 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옆으로 밍밍이가 따라 붙었고 뒤로는 호걸개와 현진 도사가 붙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초록이 아저씨!"
"예. 작은 아가씨 말씀하십쇼"
"초혜 언니 머리통만한 월병 사가야 돼요"
'하하, 걱정 마십시요. 제가 오다가 월병 잘 만드는 집도 알아두었습니다요.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특이한 행렬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온통 초록색의 복색을 한 사람이 끄는 우마차와 그 우마차 위에 누운 파리한 안색의 깡마른 여인, 그리고 당나귀를 타고 가는 어린 여아와 그런 그들을 뒤따라 가는 늙은 거지와 어린 도사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리라.

"작은 아가씨. 여깁니다요. 월변도 팔고 당과도 함께 파는 가게입니다요"
"우와! 저 월병 진짜 크다"
"어떻습니까요? 제 말이 맞지요. 초혜 아가씨 머리통만한 월병 구하는게 여기서는 그리 어려운게 아닙니다요. 잠시 기다리십시요. 소인이 얼른 사오겠습니다요."
"나도, 나도 같이 가"
"하하, 그러시겠습니까요? 그럼 함께 가시지요"

월병과 당과를 파는 가게 앞에 마차를 세워둔 특이한 일행들이 가게로 들어오자 가게를 지키고 있던 중년 여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며 일행을 맞아 들였다.

"어서들 오세요"
"아주머니, 커다란 월병 보여 주세요. 우와 이것 무지하게 크다. 이만하면 초헤 언니 머리통보다 훨씬 크겠는걸"
"하하, 초혜 아가씨 머리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 월병보다는 작을겁니다요"
"그렇죠? 그럼 이걸 사 가야지. 헤헤. 이거랑 당과도 하나 둘 셋 넷... 음, 열다섯 개, 열다섯 개 주세요"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헤아려 보던 사도연이 당과 열다섯 개를 주문했다. 대충 세어봐도 일행들과 설지, 진소청, 초혜 까지 하나씩 다 돌아가는 숫자였다. 그리고 월병 가게를 나서는 일행들의 입에는 전부 당과 하나씩이 물려 있었다. 물론 기다리던 밍밍의 입에도 어김없이 당과 하나가 들어갔다.

그렇게 당과랑 월병 까지 모두 챙긴 사도연과 일행이 두자성이 끄는 우마차와 함께 숙영지에 당도하니 설지가 입구에 나와서 일행들을 반갑게 반겨 주었다.

"다녀오셨어요? 연이 넌 왜 울었어?"
"응? 설지 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요녀석, 이 언니가  모르는게 어디있어"
"헤헤, 별일 아냐. 자, 당과 먹어"
"호호, 고맙구나. 그런데 그 병자는 누구시길래..."

설지가 우마차에 실려온 병자를 보는 사이 개방 제자 하나가 다급히 뛰어왔다. 예운성의 아버지인 예기준의 죽음과 관련해서 주변 정황을 조사하러 갔던 개방의 오결제자였다.

"태상방주님! 다녀 왔습니다"
"그래! 알아 봤느냐?"
"예. 자초지종을 살펴 보니 조금 특이한 일이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특이한 일?"
"예. 신기의원과 관련해서 비슷한 일이 몇차례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예. 그전에 잠시 확인할게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예운성의 어머니에게로 시선을 돌린 개방제자가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하나만 물어보겠소이다. 가감없이 대답해 주시오. 혹시 저 아이의 아버지가 앓기 전에 무슨 약 같은 걸 드시지 않았소?"

갑자기 자신을 돌아 보며 질문을 하는 개방제자를 보며 흠칫했던 예운성의 어머니가 마지 못한 듯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현령님의 초대를 받고 간 자리에 신기의원의 의원이 있었지요. 그 사람이 아이 아버지에게 닳여 주라며 보약을 한재 주었습니다."
"흠. 역시 그렇구려"

"갑자기 보약이라니?"
"예. 태상방주님 아무래도 그 보약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야? 그럼 그 놈이 고의적으로..."

호걸개가 버럭 고함을 치는 것과 동시에 예운성의 어머니 입에서도 경악에 찬 음성이 흘러 나왔다.

"그,그럴 리가 보약은 문제가 없었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을거요. 혹시 보약을 다 먹고 나서 갑자기 쓰러진 것이 아니오?"
"그,그렇습니다."
"틀립없소이다. 그 보약에 무슨 짓을 한 것이. 비슷한 일이 인근에서 몇차례 더 벌어졌으니까 말이요"

그때였다. 그때 까지 잠자코 듣고 있던 설지가 싸늘한 냉기를 풀풀 날리며 불쑥 끼어 들었다.

"지금 그 말은 그 의원이 고의적으로 먹어서는 안될 약재를 사용했다는 말인가요?"
"그,그렇소이다. 신녀"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세요. 아! 우선 초록이 아저씨는 저 분을 안으로 옮겨서 쉬도록 해주세요"
"예. 설지 아가씨"

두자성이 우마차를 끌고 숙영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보고 있던 설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말씀해 보세요"
"예. 그게 신기의원을 조사하러 간 동료가 오면 더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겠지만 우선 드러난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렇게 개방제자의 입을 통해서 예운성 모자와 연관된 이야기가 설지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설지의 꼭 쥔 두 주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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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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