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두자성이 끌고 가는 우마차의 옆을 따라 가고 있던 사도연과 현진 도사는 갑자기 들려오는 와와 하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 보고 있었다. 두자성 역시 갑자기 들려온 함성이 의아하긴 마찬가지였기에 우마차를 끌던 걸음을 잠시 맘추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초록이 아저씨! 누가 싸우나 봐요?"
"하하, 그게 아니고 비무를 하는 것 같습니다요"
"응? 비무?"

"예. 작은 아가씨, 어디 보자 저쪽은 우리 식구들이고 반대편은 도사 복장인 걸로... 아! 녹림과 무당이 비무를 하는 것 같습니다요"
"우와 녹림과 무당이? 구경가야지, 현진 오라버니 우리 구경 가"

"그,그래"
"초록이 아저씨, 나 내려줘요"
"예. 작은 아가씨. 으차!"

밍밍의 등에 앉아 있던 사도연을 내려준 두자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작은 아가씨 먼저 가십시요. 전 이 분 모셔다 드리고 천천히 가겠습니다요. 아! 월병도 두고 가십시요. 제가 잘 챙겨 놓겠습니다요."
"응! 알았어요. 부탁드려요. 우와 비무다, 비무"

현진 도사의 손을 잡고 비무가 펼쳐지고 있는 곳으로 냉큼 달려가고 있는 사도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예운성은 잠시 후 자신의 눈을 의심할만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사도연이 달려가면서 '비켜요'라고 외치자 비무를 보기 위해 모여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좌우로 쫙 갈라지면서 길을 열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운성아! 그만 가자"
"예. 아저씨"

사도연이 비무장 가까이 접근하자 좌우로 갈라졌던 사람들이 다시 한데 모이며 터줬던 길을 다시 메우는 광경 까지 모두 지켜 보고 있던 두자성이 그제서야 세워 두었던 우마차를 다시 움직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가까이 있는 가장 큰 막사를 향해 우마차를 끌고 갔다.

주변에 있는 여러개의 작은 천막들과 다르게 유난히 큰 그 막사는 거동이 불편한 병자들을 임시로 수용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었다. 한편 녹림과 무당의 비무가 펼쳐지는 곳 까지 어렵지 않게 다가간 사도연은 잠시 두리번거리다 이내 일성도장과 같이 앉아 있는 철무륵을 발견하고 곧바로 다가가서 안겨 들었다.

"철대숙!"
"어이쿠! 연이구나, 어딜 다녀온게냐?"
"예. 당과랑 초혜 언니 머리통만한 월병 사러 다녀왔어요"
"응? 당과는 알아듣겠다만 초혜 머리통만한 월병은 뭐냐?"
"그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주위를 한번 쓱쓱 훑어본 사도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초혜 언니가 자기 머리통만한 월병 사오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초혜 언니 머리통이 오죽 커요. 그만한 크기의 월병을 찾느라고 꽤 고생했어요"
"응? 크하하하"
"헤헤헤"

한참 비무가 펼쳐지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주위의 사람들도 사도연의 말을 듣고 나직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철무륵의 품에 안겨 있는 사도연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쓰윽하고 나타난 것이다.

"뭐? 내 머리통이 어쩌고 어째? 요녀석이"

사도연의 귀를 잡고 쭉쭉 잡아당기는 그 그림자의 주인공은 바로 초혜였다.

"아아아!"
"아프냐? 나도 아프다! 요것아"
"미,미안해, 잘못했어, 초혜 언니"
"아휴! 요 쥐방울만한게, 내 월병은?"
"응! 초록이 아저씨가 가져 올거야. 헤헤"

쭈욱 잡아 당겼던 사도연의 귀를 놓아준 초혜가 병자를 치료하다 묻은 앞섶의 핏자국을 툭툭 두들기며 철무륵의 옆에 털썩하고 주저 앉아 입을 열었다.

"아이고 힘들다! 철대숙 어떻게 되었어요?"
"응? 비무말이냐?"
"예. 그럼 뭐겠어요?"

"녀석! 병자들 돌보느라 힘들긴 힘든가 보구나. 어쨌건 비무는 지금 까지 동수다"
"동수요? 우와! 녹림과 무당이 동수라니, 이거, 이거 산적들이 너무 강한거 아냐? 어디보자 관병이 저쪽에 있던가?"
"응! 맞아 저쪽에 있어"

초헤의 실없는 농담에 제까닥 응수하는 사도연이었다. 이어서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어쭈! 요 녀석들 봐라."
"헤헤헤"
"호호호"


거의 동수를 이루며 비무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녹림과 무당파의 비무는 이제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녹림이십사절객의 대형인 엽정과 무당파의 대제자이자 무당십이검의 최고 고수인 청진 도사의 비무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개방의 오결제자로 부터 예운성의 아버지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서 전해듣고 있던 설지는 신기의원을 조사하러 갔던 또 다른 개방제자의 이야기까지 듣고나자 화를 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망연자실해지고 말았다.

"어찌 의원이라는 자가.... 그러니까 뭔가 의심스러운 약재가 전달된 것으로 짐작되는 집에서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그 배경에는 신기의원 뿐 아니라 현령 까지 연괸되어 있는 것 같다는 그런 이야기예요?"
"그렇소이다. 그리고 사달이 벌어진 집에는 어김없이 젊은 부인이 있다는 공통점도 있소이다. 물론 그리 넉넉치 않은 형편임은 두 말할 것도 없고 말이오"

"허! 이런 쳐죽일놈이 있나. 그러니까 네놈 말은 그 신기의원인가 뭔가 하는 곳의 의원이라는 놈이 젊은 부인이 있는 집만 골라서 남정네들을 고의적으로 독살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냐? 그것도 여자를 노리고?"
"예! 태상방주님. 그런 듯 합니다. 아니 사실일 겁니다. 호면걸개를 포함해서 사망한 이들 모두가 신기의원으로 부터 상당한 빚을 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빚이라니?"
"예. 그러니까 부군이 쓰러지자 부인들은 의원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을테고 궁핍한 살림 탓에 제대로 약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결국은 그 약값이 쌓이고 쌓여서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의 빚으로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렇게해서 도저히 빚을 갚을 능력이 없게 되었을 무렵에는 한결 같이 부군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남자들이 죽고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 의원이라는 놈이 마각을 드러내어 빚 탕감 대신에 동침을 요구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사실이예요?"

갑자기 싸늘한 냉기를 머금은 질문 하나가 이야기를 하던 개방제자를 향해 날아 들었다. 지나가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설지를 발견하고 다가온 진소청이었다. 

"그,그렇소이다. 진소저"

개방의 오결제자라고는 하나 싸늘한 냉기가 풀풀 날리는 진소청의 모습을 보자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말 까지 한번 더듬은 그가 다시 입을 열였다. 계속하라는 무언의 질책이 설지로 부터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 아마도 호면걸개의 부인 께서도 그런 식으로 당했던 듯 합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현령이 있었습니다."
"현령은 어떻게 연관된 것이더냐?"
"예. 태상방주님, 그러니까 그 의원 놈이 노린 여인들은 호면걸개의 부인 처럼 하나 같이 지금은 몰락했지만 과거에는 한다하는 집안 출신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잘 나가던 시절에야 언감생심 쳐다볼 수도 없었을 집안의 여식들을 그 집안이 몰락하고 결혼 후 살림살이도 궁핍함을 면하지 못하자 이때다 하고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현령은 바로 이 과정에서 독살된 이들의 죽음을 대충 무마해주는 조건으로 막대한 금전을 제공받았던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처리한 인원이 스무명은 족히 되는 듯 합니다."

"청청 언니"
"예. 아가씨"

모든 설명이 끝나자 설지가 냉기를 풀풀 날리고 있던 진소청을 불렀다.

"어떻게 처리하는게 좋을까?"
"글쎄요. 의원이라는 자가 결혼한 젊은 여인들을 탐하여 독살 까지 서슴치 않았으니 곧바로 잡아들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만 엄연히 국법이 존재하니 그런 식으로는 곤란하겠죠."

"그건 소청이 네 말이 맞다. 무인라면 무인의 방식으로 처리해버리겠지만 의원이라면 양민이 아니더냐? 그것도 엄연히 국법의 보호를 받는 의원 신분이니 그런 식의 처리는 곤란할거다"
"예 맞아요.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아가씨께는 봉황옥패가 있으니 옥패의 위엄을 빌리는 방법이 제일 무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하면 성수의가에서 무고한 의원을 핍박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허허, 그렇게 하는게 좋겠구나. 봉황옥패의 힘을 사용하면 관에서 처리하는 형식이 될 것이니 뒷 탈도 없을 것이고 말이다."
"봉황옥패라..."
"왜 그러는게냐? 옥패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게냐?"

"아뇨. 그게 아니라 봉황옥패를 사용하면 황상께 그 사유가 전달되게 되어 있거든요. 이야기를 전해들은 황상께서 진노하시어 혹여 다른 무고한 의원들 까지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어서요"
"켈켈켈, 난 또 무슨 말이라고, 이 녀석아 성군이신 황제 페하께서 일 처리를 그리 허투루 하겠느냐? 그런 걱정일랑 말거라"
"그럴까요?"

"암! 내 장담컨데 무고한 의원이 피해를 입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썩은내가 진동하는 악질관리들에게 재수없이 잘못 걸리는 의원들이 간혹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말이다."
"그렇겠죠? 그럼 봉황옥패를 이용해서 현령과 그 의원을 처리해야겠군요. 이런 일에는 초혜가 적격인데 이 녀석이 어디 갔지?"

"혜아는 비무 구경을 하고 있을겁니다."
"응? 비무 구경을?"
"예. 아가씨, 급한 병자들을 모두 살펴본 후 곧바로 비무 구경을 한다며 뛰쳐 나갔습니다."

"켈켈, 초혜 그 녀석은 의원 보다는 싸움꾼 기질이 더 강한 것 같구나"
"참나! 거지 할아버지 싸움이 아니라 비무잖아요. 비무!"
"헹! 그거나 그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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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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