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lagard - Hybris

앵글라고드 (Anglagard) : 1991년 스웨덴 스톡홀름(Stockholm)에서 결성

요나스 엥데고드 (Jonas Engdegård, 기타) :
토드 린드만 (Tord Lindman, 보컬, 기타) :
요한 호그바이그 (Johan Högberg, 베이스) :
토마스 욘손 (Thomas Johnson, 키보드) :
아나 홀름그렌 (Anna Holmgren, 플루트) :
마티야스 올손 (Mattias Olsson, 드럼) : 1975년 1월 9일 중국 홍콩(Hong Kong) 출생

갈래 :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심포닉 록(Symphonic Rock), 아트 록(Art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anglagardrecords.com/
공식 에스앤에스(SNS) : https://www.facebook.com/anglagardrecords
추천 감상하기 : http://youtu.be/-V0CVXV_pkI

Anglagard - Hybris (1992)
1. Jordrök (11:10) : http://youtu.be/ngLxOB-ZNuw
2. Vandringar i vilsenhet (11:53) : http://youtu.be/MnYSuFn_qJA
3. Ifrån klarhet till klarhet (8:04) : http://youtu.be/pobMatVKpSQ
4. Kung Bore (12:57) : http://youtu.be/-V0CVXV_pkI
(✔ 표시는 까만자전거의 추천 곡)

토마스 욘손 : 멜로트론, 해먼드 오르간, 신시사이저, 클라비넷(Clavinet), 피아노, 교회 오르간
요나스 엥데고드  : 기타, 어쿠스틱 기타
토드 린드만 : 보컬, 기타, 어쿠스틱 기타
요한 호그바이그 : 베이스
아나 홀름그렌 : 플루트
마티야스 올손 : 드럼, 타악기

표지 도안 (Design) : 안더스 요한손(Anders Johansson)
표지 삽화 (Illustration) : 요란 스텐바이그 (Göran Stenberg)
제작 (Producer) : 로게 스코흐 (Roger Skogh)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서비스가 되었지만 삐~ 하는 신호음을 내는 전화 모뎀을 사용하여 <하이텔>과 <천리안>이라는 이름의 피시(PC)통신을 이용하던 1990년대 중반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의 접속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당시는 아직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등장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이었는데 당연히 피시통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은근과 끈기>라는 한국인의 특질이 많이 요구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교류는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즈음 피시통신망을 이용하는 우리나라의 프로그레시브 록 애호가들 사이에서 스웨덴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앵글라고드>의 이름이 한참 많이 회자되고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이후 고만고만한 네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의 음악들만 들어 오다 전통적인 방식의 프로그레시브 록을 완벽하게 들려주는 밴드가 영국이 아닌 스웨덴에서 1992년에 등장했었으니 그런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내가 앵글라고드라는 다소 특이한 발음의 밴드를 처음 알게된 것도 바로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 밴드를 처음 알게된 후 제일 먼저 궁금하게 여겼던 것은 밴드 이름의 근원이었다.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천사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앵글라고드라는 단어가 그냥 우연히 밴드의 이름으로 채택된 것은 아닌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까지 밴드 이름에 대한 근원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아울러 아무런 상관은 없지만 천사의 집이라는 이름에서 문득 어린이 드라마인 <천사들의 합창(Carrusel: 회전목마)>이 동시에 떠오르기도 했었다.

멕시코에서 제작된 드라마인 천사들의 합창은 멕시코의 한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새로 부임한 <히메나> 선생님과 귀여운 제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과 1991년 사이에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누리기도 했었다. 어린이 드라마로써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빈부격차>, <인종차별>, <종교갈등>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드라마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이 맑은 눈동자로 설득력있게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네오 프로그레시브 록과는 차별되는 전통적인 방식의 온전한 프로그레시브 록을 들려 주는 앵글라고드의 음악에서도 바로 이런 무거운 진지함과 친절한 설득력을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내 머리 속에서 앵글라고드와 천사들의 합창이 동시에 떠올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드라마의 제목이 가진 원래의 뜻은 <회전목마>이지만 번안되는 과정에서 <천사>라는 이름이 들어감으로 인해서 밴드의 이름을 떠올릴 때 천사들의 합창이 함께 연상되었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앵글라고드는 1991년에 결성되었다.

1991년의 무더운 어느 여름날에 <토드 린드만>과 <요한 호그바이그>는 1970년대의 프로그레시브 록을 현재에 완벽히 재현할 밴드를 구상하고 신문의 한 귀퉁이에 밴드 구성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싣게 괸다. 그 신문 광고는 <요나스 엥데고드>와 <토마스 욘손>의 시선을 잡아 끌었고 결국 두 사람은 토드 린드만과 요한 호그바이그를 만나 밴드 결성에 합의하게 된다. 앵글라고드의 출발이었다.

밴드 결성 후 네 사람은 곧바로 곡 만들기에 들어갔으며 9월에는 <마티야스 올손>을 가입시킴으로써 완성된 밴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2년 봄에 마지막으로 플루트 연주자인 <아나 홀름그렌>이 가입함으로써 앵글라고드는 비로소 완전체를 이루게 된다. 완전체가 된 이후의 앵글라고드는 거침이 없었다. 고향인 스톡홀름 지역에서 여러차례 벌인 공연으로 큰 호응과 자신감을 동시에 얻었던 것이다.

공연을 통해 얻은 이런 자신감은 4월에 있었던 데모 테이프 제작에 그대로 반영되었으며 그 결과로 앵글라고드는 1992년 7월 부터 9월 까지 약 삼개월 동안을 녹음실에서 머물며 데뷔 음반을 제작하게 된다. 데뷔 음반을 위한 자료 수집과 연습 등의 시간에 소요된 이개월의 값진 보상이 포함된 앵글라고드의 데뷔 음반은 그렇게 1992년 말에 우리 곁으로 찾아 왔다. 앞서 잠시 이야기했듯이 딱 네 곡만 수록된 앵글라고드의 데뷔 음반은 <킹 크림슨(King Crimson)>과 <제네시스(Genesis)>의 진중함에 더해서 서정적이고 친절한 설득력이 공존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어쿠스틱 악기와 멜로트론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점만 놓고 보더라도 앵글라고드의 음악적 성격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기도 하는데 밴드가 멜로트론을 애용했던 이유는 관현악단과 같은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를 자신들의 음악에 도입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는 11분이 넘는 연주 시간을 가진 첫 번째 곡인 <Jordrök>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단조로우면서 조금 무거운 느낌의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는 이 곡은 킹 크림슨의 음악에서 자주 마추쳤던 뒤틀린 듯한 선율이 기타와 드럼 등을 통해 드러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곧이어 등장하는 멜로트론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이 생동감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곡에서 드러나는 치밀하고 서사적인 진행 방식은 앵글라고드 음악의 특징이자 19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통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곡과 마찬가지로 11분을 훌쩍 넘겨 버리는 연주 시간을 가지고 있는 두 번째 곡 <Vandringar i vilsenhet>는 밴드의 홍일점인 <아나 홀름그렌>의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플루트 연주로 시작하고 있는 곡으로 초반부에서 부터 신비로운 분위기가 가득 흘러 넘치고 있는 곡이다.

이런 신화적인 신비감은 플루트가 담당하고 있으며 치밀하게 전개되는 완급 조절과 복잡한 구성력은 곡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 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 곡에서도 멜로트론은 요소요소에서 등장하여 극적 구성과 생동감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음반의 마지막에 자리한 십삼분에 이르는 가장 긴 곡 <Kung Bore>는 아름답게 흐르는 기타 연주로 시작하는 곡으로 데뷔 음반에서 가장 뛰어난 곡이 아닌가 여겨진다.

극적이고 서사적인 구성에 어울리는 치밀한 연주는 키보드를 중심으로 했던 19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의 음악들을 떠올리게 하고 있으며 동시에 킹 크림슨과 제네시스에게서 얻은 영감이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플루트 연주가 긴 여운을 남기며 음반을 마감하는 앵글라고드의 데뷔 음반은 분명 우리가 자주 접했었던 1970년대의 프로그레시브 록을 전통적인 방식의 악기로 재현하고 들려주는 음반이다.

하지만 이는 밴드 스스로가 의도했던 것은 아니며 잊혀져 가고 있던 프로그레시브 록의 원형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한 일이라고 한다. 하여튼 네오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던 프로그레시브 록 애호가들에게 큰 만족을 안겨 주는 동시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앵글라고드의 데뷔 음반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프로그레시브 록 음반의 한장으로 프로그레시브 록의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평점 : ♩♩♩♩)

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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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닉유스 2014.08.20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대로 몰라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프로그레시브 록과 네오 프레그레시브 록의 차이는 무엇인지? 예스나 킹크림슨, 핑플 이후에 등장한 프로록 밴드, 즉 시기상의 개념인지 아니면 작곡이나 사운드 메이킹에서 기존 프로록과 차별화된 지점이 있는지 궁금해서요. 제 생각엔 그다지 사운드 상의 차이가 있을까 싶은데 제가 1980년대 프로록엔 무지한지라.. 그때는 프로록이 거의 멸종 위기가 아니었나요.

    • Favicon of https://wivern.tistory.com BlogIcon 까만자전거 2014.08.20 1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질문하신 내용을 읽다 보니까 문득 두 음악 사이에
      뚜렷하게 차이나는 외형적인 모습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프로그레시브 록과 네오 프로그레시브 록의 차이점을 열거하자면
      독자성과 모방성, 그리고 실험성과 상업성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예컨데 르네상스 같은 밴드는 클래식을 많이 차용하긴 했지만 독자성과
      실험성을 갖춘 음악이었기에 유통기한이 현재 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 같고
      반대로 1980년대에 등장하기 사작한 네오 밴드들은 제네시스에게
      영향 받은 밴드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들의 음악은 독자성 보다는
      모방성이 강했기에 유통기한이 상대적으로 짧았던 것 같습니다.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할 때 모방성은
      흉내내기에 급급했다는 인상이 작용할 가능성이 크게 마련이죠.
      때문에 진중한 실험성 보다는 가벼운 상업성에 치우쳤다는 평가가
      네오 프로그 밴드들을 향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적어 놓고 보니 두서가 없는 것 같은데 쉽게 말해서 제네시스류의
      네오 밴드들은 마치 구연동화에 흉내낸 음악을 포함시켜 놓은 것
      같은 가벼운 음악을 들려 주고 있기에 이런 점들을 프로그레시브
      록 애호가들은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2. 이현 2014.08.20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자전거님..그동안 건강하셨나요^^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앞으론 자주 인사드릴게요.
    워낙 좋은곡들을 선곡해 주시니 개인적으로 너무 감사드립니다. 어렷을때 (?)의 추억도 자주 떠오르는 공간이네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곡들 부탁드립니다.

    기리고 말씀해 주신것에 첨언을 드리자면.. 두분의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
    60년대 그 전성기를 맞은 히피음악에서의 실험성을 가지고 온 6-70년대의 프로그레시브/아트락은 (이 둘의 차이점은 미세하게나마 존재하지만 여기선 같은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 특히 유럽지역, 그중 에서도 영국을 중심으로 강세를 띄엇는데요..이 당시 영국밴드들은 현재까지도 소위 "LEGEND" 라는 별칭을 붙이고 있는 그룹들이 많습니다.

    이 그룹들은 그들 특유의 화려하고 실험성있는 음악으로 대중성면에서도 인기있는 그룹들로 남았는데요.

    중요한것은 그 이후의 후배세대 와는 무언가다른 '작품성' 이라 일컫는것이 후배세대들보다 강했다는 생각입니다. 비틀즈의 비틀즈 앨범을 이겨낸 킹크림슨의 데비앨범부터, 746주의 대기록을 갖고잇는 핑크 플로이드까지..말그대로 아트락의 전성기를 70년대라 합니다.

    말씀해주신 제너시스도 초기 그들의 실험성을 지키지 못한것이 어찌보면 오명(?)으로 남을수 있지요..이러한 현상은 제너시스 만이 가지고 있는 해당사항은 아니었습니다.

    피터 가브리엘이 탈퇴한 이후의 그들의 음악은 그냥 팝밴드 로서의 딱 그것. 정도로 인식될수도 있었는데요.

    위에서 질문해주신 네오 그룹이라고 하는 그룹들도 선배의 영향을 받고 그들의 음악을 해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크로스오버의 시대라 불리는 80년대였지요..
    83년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YES, 87년 팝 빌보드 역사상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운 GENESIS/PETER GABRIEL , 조금 다르긴하나 1979년 앨범차트 싱글차트를 모두 석권했던 핑크플로이드.. 소위 레전드라 불리는 이분들이..상업화 될 수밖에 없었던 바로 '시대적 흐름'도 질문헤주신 이유에 들어간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70년대 후반을 거칠수록 이 선배그룹들의 제정상태도 안 좋아 졌던것도 이유이고 무엇보다, 그 당시의 음악셩향은, 팬들의 원하는것은 이미 70년대와 너무 달라져 있었던것이 이유라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후배 아트락팀 들의 활동범위는 그것들을 넘지 못햇던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아트락 분야에만 한정된것은 아니고, 헤비메틀, 칸트리 등등 대중음악 전반에 걸쳐 이런 흐름은 80년대 전반에 걸쳐 나타났습니다.

    간단하게 나마 제생각을 적엇는데요..오히려 혼란만 준것같네요^^ 아무튼 다시한번 건강 조심하시고 마지막여름 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wivern.tistory.com BlogIcon 까만자전거 2014.08.21 1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서오세요. 오랜만에 글 남겨 주셨네요.
      그것도 낄끔기획이 생각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하셔서요.
      입문자들의 개념 정리에 많은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이제 가을 장마가 끝나가려나 봅니다.
      건강하시고 자주 들러주세요. :)

  3. 소닉유스 2014.08.22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쟁쟁하신 분들의 답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80년대생이고 90년대 중반부터 록 음악을 듣기 시작해선지 아무래도 어르신(?)들보다는 록음악에 관한 지식이나 록을 대하는 감수성의 깊이가 많이 딸림을 늘 느낀답니다. 저도 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내며 록/팝을 들었으면 어땠을까 가끔 상상합니다.많이 배우고 갑니다ㅎ

  4. 소닉유스 2014.08.22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리고! 최근에 사이먼 레이놀즈의 <레트로 마니아>란 책을 사서 읽고 있습니다. 과도한 복고열풍이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집어삼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문화 비평서에요. 선배들의 음악세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명멸한 네오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을 보니 새삼 복고에만 열중하는 현재의 음악씬을 되돌아보게 되네요.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프로그레시브의 시대는 끝났지만 알려져 있지만 않을 뿐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밴드들도 많이 있겠죠. 최근엔 엄청 유명하던데 모르고 있었던, kaipa랑 transatlantic에 관심이 가더군요.

    • Favicon of https://wivern.tistory.com BlogIcon 까만자전거 2014.08.23 1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카이파까지 언급하시는 걸 보니 개미지옥에 한발 걸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을겁니다. :)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