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누가 내 욕하나?"

한편 설지가 초혜를 찾고 있는 그 시각 초혜는 누가 봐도 조신함과는 거리가 멀게 철무륵의 옆에 대충 퍼질러 앉아서 엽정과 청진 도사의 비무를 구경하고 있다가 갑자기 귀를 만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초혜 언니, 왜 그래?"
"응? 아! 누가 내 욕을 하는지 귀가 가려워서 말야"
"누가 욕을 하면 귀가 가려워? 안 씻어서 그런게 아니고?"
"뭐! 요 녀석이, 에잇 간지럼 신공이닷"
"꺅! 꺄르르, 항,항복, 항복"

엽정과 청진 도사의 치열하게 전개되던 비무도 어느덧 막바지에 도달한 듯 두 사람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사도연의 짤막한 비명과 자지러지는 웃음 소리가 한꺼번에 비무장으로 흘러 들었다. 참으로 공교로운 시점이었다. 초혜의 그런 모습을 보던 철무륵이 눈에서는 이채를 발하면서도 입으로는 퉁명스럽게 타박을 했다.

"쯧쯧, 잘하는 짓이다. 누구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비무를 하고 있는데 초혜 네 녀석은 조용히 있지는 못할 망정 바로 옆에서 장난질이냐?"
"앗! 그렇지, 헤헤, 철대숙 죄송해요"

짐짓 놀라는 척 하면서 사과를 하고 있었지만 그런 초혜의 얼굴에서는 전혀 미안해하는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장난스런 미소를 베어문 초혜가 재차 사도연을 공격(?) 했던 것이다.

"에잇! 받아라. 나의 필살기닷"
"꺅! 까르르르, 그,그만, 그만, 항복이야, 항복!'
"호호호! 짜식, 까불고 있어"

절정에 달한 간지럼 신공으로 사도연의 항복을 받아낸 초혜가 공격의 선봉에 나섰던 손가락을 입으로 후하고 불면서 승리의 표정을 떠올릴 때였다.

"혜아! 너 뭐해?"
"응? 아! 설지 언니구나, 비무 구경하러 온거야. 벌써 끝나버렸는데?"
"아니, 네게 뭐 좀 부탁할려고"

"부탁?"
"그래, 부탁!"
"뭔데? 재미있는 일이야?'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무슨 부탁이냐 하면..."

개방의 제자들에게서 전해들은 예운성의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설지가 초혜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표정이 굳어가던 초혜가 마침내 모든 자초지종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이씨! 그 신기의원인가 뭔가가 어디 있는거야? 내 당장 가서..."
"기다려봐. 그렇게 달려가서 무조건 때려 부순다고 해결될 일이 아냐"
"응? 그럼 어떡하라는 거야?"

"우선 증좌를 확보해야지"
"증좌?"
"그래. 개방 제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독살에 쓰인 약초가 따로 있을 것 같은데 혜아 넌 뭐라고 생각하니?"

"그야... 음.. 독초이긴 한데 무공을 익힌 무인 조차 감지할 수 없을 독초라... 아!"
"생각난게 있어?"
"응! 설지 언니는?"

"내 생각엔 금각충을 복용시키다가 마지막에 천향초를 복용시킨게 아닐까 해, 네 생각은 어떄?"
"나도 같은 생각이야. 둘 다 몸을 보하는데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지만 함께 복용하게 되면 극독으로 작용하니까"
"그래. 또한 금각충은 장기 복용하게 되면 오히려 기력이 점점 쇠잔해지는 문제가 있지. 아마 틀림없을거야"

"그래서 그 두 약재는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게 국법으로 정해져 있잖아?"
"그러니까 증좌를 먼저 확보해야한다는 이야기야. 아무래도 이 곳 현령도 함께 연루된 것같으니까 말야"
"현령 까지? 오호!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숙영하는데도 단 한번도 현령이 얼굴을 비치지 않았구나. 난 청백리라서 그런 줄 알았더니 찔리는 구석이 있었던거군"

"그래. 그러니까 넌 개방 제자들 하고 신기의원으로 가서 은밀하게 금각충과 천향초를 찾아 봐"
"찾으면?"
"신기의원과 관련된 사람들은 일단 죄다 끌고 와.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하지 말고"
"오호! 그렇단말이지. 알았어. 다녀올게. 그런데 같이 갈 개방 제자들은?"

"거지 할아버지?"
"켈켈, 저기 저 녀석들을 데리고 가거라. 개방 제자가 독살당했다고 하니까 서로 앞다퉈 갈려고 하기에 몇놈 추려 놓았다" 
"햐! 역시 개방의 준비성 강한건 알아줘야 해"
"그거 칭찬인게냐?"


칭찬 같긴 하지만 막상 초혜의 입을 통해 들으니 전혀 칭찬 같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호걸개의 뇌리 속으로 파고 들고 있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혀를 쏙 내밀어 보이는 초혜였다. 그리고는 휑하니 자신의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초혜를 보며 호걸개의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한편 한쪽에 따로 모여있는 개방 제자들에게로 다가가던 초혜는 자신을 부르는 철무륵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야 했다.

"초혜야!"
"왜 그러세요?"
"그 녀석도 데리고 가거라"

초헤와 철무륵의 대화 사이를 뚫고 초혜 쪽으로 걸어오는 이는 바로 초록이 두자성이었다.

"막내 아가씨. 소인이 함께 가겠습니다요"
"그러실래요? 그럼 함께 가요. 아저씨들 준비되셨어요?"
"예! 초소저"
"그럼 가요"


한무리의 거지들을 이끌고 초헤와 두자성이 숙영지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 보던 설지가 호걸개와 함께 예운성의 모자가 있는 천막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신기의원과 현령은 초혜가 증좌를 확보하는데로 처리하면 되겠고... 보자, 문제는 조금 전에 보았던 부인인데..."
"그게 무슨 말이냐? 문제라니?"

영초와 영물을 다루는 능력 뿐만 아니라 숙부인 성수신의 나운학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의술을 가진 설지의 입에서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지막하게 흘러나오자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호걸개였다.


"응? 아! 그게 말이죠, 잠깐 살펴 보긴 했지만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 같았거든요"
"별 다른 이상이 없다? 그런데 왜 운신을 전혀 못하는 것이냐?"
"그러니까 문제죠. 우선 병자를 다시 한번 자세히 보고 나서 이야기해요'

호걸개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예운성 모자가 있는 천막에 당도한 설지는 문 역할을 하는 길게 드리워진 천을 옆으로 들추고 천막 안으로 들어 갔다. 설지의 뒤를 따라 호걸개 역시 천막 속으로 들어가는 바로 순긴 그들의 뒤쪽 비무장에서 와하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무승부로 끝난 개방과 무당의 비무가 완전히 마무리되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한편 경공을 전개하여 순식간에 신기의원이 보이는 지척 까지 당도한 초혜와 두자성 그리고 개방 제자들은 은밀히 근처의 숲으로 이동했다. 신기의원의 위치를 우선 파악했으니 어떤 식으로 증좌를 확보할 것인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혀 쓸모없는 행동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숲으로 들어온 초헤가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우선 거기 세 사람은 신기의원 외곽을 지켜 보고 있다가 빠져나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제압하세요. 그리고 나머지 분들은 나랑 함께 신기의원 안으로 들어거서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무조건 제압합니다. 다들 아셨죠?"
"예?"

한여름임에도 순간 북풍한설이 휑하니 숲을 할퀴고 지나가는 듯햇다.

"막내 아가씨, 설지 아가씨 께서 은밀하게 행동하라고 하셨습니다요"
"그러니까요. 은밀하게"
"예? 소인은 무슨 말인지 잘..."

"아이 참! 모조리 제압해버리고 나면 자연히 은밀하게 행동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개방에서 조사해본 결과 약재에 문제가 있는게 분명하다면서요? 전 개방을 믿어요."
"예. 그건 그렇지만... 우선 작전을 먼저 짜고..."
"작전은 무슨, 그냥 들어가보기로 해요"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씩씩하게 앞장 서는 초혜를 보며 난감해하는 표정을 떠올렸던 두자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곧바로 초혜의 뒤를 따라 붙었다. 그러자 잠시 멍하게 있던 개방 제자들도 서둘러 두 사람의 뒤를 따라서 신기의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때 부터 은밀한(?) 초혜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우당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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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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