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자성이 현청의 입구에서 막 발걸음을 돌리던 같은 시각, 현령의 집무실 의자에는 흑염을 보기 좋게 기른 중년 사내 하나가 앉아서 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절강성 항주에서 나는 용정차 한모금을 입에 머금은 그는 입안에서 맴도는 차향을 즐기며 창 밖으로 보이는 현청 안뜰의 평화로운 풍경이 마음애 드는지 흡족한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긴 수염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그가 바로 정현의 현령 남일영이었다.

"허허, 좋구나, 모든 일이 뜻대로 되어 가니 말이야. 이제 대업을 이룰 날도 그리 멀지 않았음이야. 허허허, 좋구나, 좋아"
 
뜻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며 나직한 웃음을 터트리는 남일영이었다. 그런데 그런 남일영의 한가로운 오후를 방해하는 소리가 있었다. 등 뒤의 벽쪽에서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쿵 쿵, 쿵'

"으응? 이건..."

소리가 들려오자 흠칫한 남일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벽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들려 오는 사람 목소리가 남일영의 귓가에 와 닿았다.

"이 놈이!"

여태 까지 느긋한 표정으로 휴식을 취하던 남일영의 표정이 돌변했다. 한겹 서리가 내려 앉은 듯 냉막한 표정으로 돌변한 것이다. 그런 남일영이 손을 들어 올려 소리가 들려온 벽면의 어느 한 곳을 스치듯 지나쳤다. 그러자 낮은 기관음 소리와 함께 벽이 좌우로 갈라지며 그 속에서 목소리의 주인공이 다급하게 튀어 나왔다. 그는 바로 신기의원에서 비밀 통로를 이용해 빠져나온 신학수였다.

"이,이보시오, 현령, 큰일났소이다"
"어허! 대체 무슨 일이요. 평소에는 비밀 통로를 사용하지 말라고 누누히 이야기했거늘..."
"그, 그게 아니라, 큰일 났다 하지 않았소"

"큰일?"
"그,그렇소이다. 성,성수의가에서 들이 닥쳤소"
"성수의가? 아니 의원에 성수의가가 찾아 올 수도 있지. 그게 무슨 문제가 되오?"

"허참, 그게 아니라니까 그러시오, 그 년놈들이 천향초와 금각충의 존재를 알고 있었소이다'
"뭣이라? 허면 남은 천향초와 금각충은 어떻게 했소?"
"다급히 빠져 나오느라 미처 처리하지 못했소이다."

"이런 제길... 성수의가에서 확실히 천향초와 금각충에 대해서 이야기 했단 말이오?"
"그렇소이다. 내 두 귀로 똑똑히 들은 연후 다급히 거래 장부만 챙겨서 몰래 빠져 나온 것이오"
"허면 남은 약재 외에 다른 증좌는 없겠구려?"

"그렇소이다"
"허! 이것 참..."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골똘히 생각하던 남일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장부 먼저 내게 주시오"
"여,여기 있소이다"

신학수에게서 거래 내역이 적힌 장부를 받아든 남일영이 대충 장부를 넘겨 보다 찻물을 데웠던 화로 속으로 던져버렸다. 그러자 잠시 후 달구어진 숯불에 견디다 못한 장부가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일영이 혀를 끌끌 차며 걸음을 옮기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쯧! 아깝지만 할 수 없지"
"아깝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아,아니 그보다 나는 이제 어찌해야 하오?"  
"허허, 염려마시오. 내가 깨끗하게 해결해 드리리다"
"정,정말이오, 고,고맙소이... 큭... 이,이게 무슨..."

잠시지간 얼굴에 화색을 떠올렸던 신학수가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바닥으로 털썩 쓰러졌다. 검에 심장이 꿰뚫린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런 신학수의 등 뒤 쪽에는 언제 빼들었는지 검을 든 남일영이 쓰러진 신학수를 바라보며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깝지만 네 놈이 이쯤에서 죽어줘야겠다는 소리였다. 그동안 내 덕에 원하던 계집들을 실컷 품었으니 별로 억울하진 않을게다. 흐흐흐" 

단칼에 신학수를 베어버린 남일영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피를 털어낸 검을 납검한 남일영은 다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는데 그 말을 누군가가 곁에서 들었다고 하더라도 의미를 알 수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을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남일영이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업에 차질이 없을려면 조속히 다른 놈을 찾아봐야겠군, 그나저나 오랜만에 신응을 사용해야 하나?"


한편 호아를 안고 숙영지로 돌아온 초혜는 서둘러 설지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으며 그 뒤를 두자성과 일행들이 바짝 붙어서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따르고 있었다.

"설지 언니!"
"혜아구나, 그래 갔던 일은?"
"응, 반만 성공이야"

"응? 반만 성공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니?"
"헤헤, 천향초와 금각충은 찾았는데 의원은 놓쳤어"
"의원을 놓쳐?"

"막내 아가씨, 소인이 말씀드리겠습니다요."
"그러실래요?"
"예. 막내 아가씨. 소인이 따라 갔으니 소인이 말씀드리겠습니다요"

"어떻게 된 일이예요?"
'예. 설지 아가씨,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그렇게 된 것 입니다요"
"그러니까 도망간 의원을 따라가다보니 비밀통로가 현청으로 연결되었더란 말이죠?"

"그렇습니다요'
"음... 이상하네"
"설지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나도 그게 아주 이상해, 왜 의원과 현청이 비밀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지 말야"
"음... 비아! 이리와 봐"

밍밍의 등 위에서 한가로이 꾸벅꾸벅 졸고 있던 비아가 갑자기 들려온 설지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한차례 삐끗했다. 하지만 곧바로 날개를 푸덕여 잠을 쫓은 비아가 설지 곁으로 날아 내렸다.

"삑!"
"호호, 녀석 졸다가 떨어질뻔 했구나. 너  현청이 어디있는지 알고 있지?"
"삑!"
"호호, 그래, 그럼 지금 곧장 현청으로 가서 날아 오르는 전서구가 있으면 모조리 제압해. 알았지?"
"삑!"

날카로운 고성으로 대답을 한 비아가 먼지를 휘날리며 날아오르더니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설지 언니, 갑자기 전서구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응? 아! 그게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기의원과 현령을 중심으로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그런 현령의 뒤에는 따로 흉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현령이 누군가에게 보고하지 않을까?" 

"오호! 이제 보니 우리 설지 언니 제법 똑똑한데"
"요 녀석이"
"헤헤헤"

설지가 초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그 순간 사도연은 초혜 일행이 가져온 항아리 속에서 천향초와 금각충을 한줌씩 꺼내 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 생김새에 대해서 알 수 없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종종 걸음으로 설지에게 다가와 올려다 보며 입을 열었다.

"설지 언니! 이게 천향초랑 금각충이야?"
"호호, 그렇단다. 거기 누렇게 생긴 것이 금각충이고 그 옆이 바로 천향초라는거야"
"헤, 그렇구나, 근데 천향초는 냄새도 좋고 색깔도 고운데 금각충은 조금 징그러워, 마치 털이 숭숭난 다리가 여러개 달린 벌레를 보는 것 같아"
"호호호, 그래서 금각충이라는 이름을 얻은거야. 우리 연이 제법이구나"
"참나! 제법은 무슨, 누가 봐도 징그럽게 생겼구만"

설지의 칭찬에 기분 좋은 미소를 떠올렸던 사도연은 초혜의 퉁명스러운 말에 인상을 찡그리며 날카로운 고성으로 항의했다.

"초혜 언니!!"
"앗! 미안, 미안, 호호호"
"치!"
"인석들아 되었다. 장난은 그만 치고 어서 도망간 그 놈이나 잡으러 가자꾸나"

초헤와 설지 그리고 사도연이 하는양을 지켜 보고 있던 호걸개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 그렇지! 설지 언니, 도망간 그 의원을 잡으려면 현청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 갈거야?"
"그러자, 비아가 먼저 갔으니까 우리도 지금 바로 가기로 해"
"청청 언니는?"

"청청 언니는 지금 위급한 병자를 보고 있어서 발을 뺄 수가 없어"
"위급한 병자라고"
"응, 할머니 한 분이 독사에게 물렸는데 여기로 곧바로 오지 않고 지체하는 바람에 목숨이 경각에 달린 채 도착했었어"
"아니? 왜 그러셨데?"

"민간요법으로 버텨볼려고 하셨던 모양이야. 설아의 도움으로 독은 모두 제거했지만 손상된 장기가 일부 있어서 지켜봐야 할 것 같아"
"그렇구나"
"출발할까?"

설지가 그렇게 말하며 초혜와 호걸개를 대동한 채 막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혁련필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신녀!"
"아! 예, 교주 할아버지"
"우리 아이들 몇 데려가시구려, 잠행과 은신에 남다른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니 해가 되진 않을거외다"

그렇게 말하는 천마신교 교주 혁련필의 뒤 쪽으로 온통 흑의로 몸을 감싼 흑룡대원 다섯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호호, 고맙습니다. 아마 큰 도움이 될거예요."
"허허허, 마음껏 부려 먹어도 된다오. 그럼 다녀 오시구려"
"예. 교주 할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설지 언니, 화산파 아저씨들은 안 데려가?"
"이번에도 함께 가는게 좋겠지?"
"응! 아무래도 위압감은 화산파가 최고잖아"

"호호, 그럼 장문인 할아버지께 부탁드려서 매화검수 아저씨들도 함께 가도록 하자."
"나도, 나도 갈거야"
"응? 우리 연이도?"
"응, 나도 갈거야"
 
사도연의 말을 듣고 잠시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던 설지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승락했다.

"그렇게 하려무나. 이 언니랑 손잡고 가자꾸나"
"이야! 신난다"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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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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