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가 움직이는 곳에는 항상 그림자 처럼 따라 다니는 청진 도사와 몇몇의 무당파 도사들, 그리고 개방도와 매화십이겸수는 물론 모습을 감춘 채 뒤를 따르는 천마신교의 흑룡대 까지 사도연의 손을 잡고 숙영지를 벗어나는 설지의 뒤로는 초혜와 두자성 뿐만 아니라 이처럼 많은 무인들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관과 무림이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생각하면 정현의 현청으로 일개 문파 정도는 순식간에 지워버릴 막강한 무력이 향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문제가 될 공산이 상당히 큰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행의 선두에서 사도연과 나직히 대화를 주고 받으며 간간히 웃음을 터트리는 설지의 모습에서 그런 우려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근처의 풍광 좋은 곳으로 나들이를 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정현의 백성들을 의식한 설지의 의도적인 행동이기도 했다. 싸늘한 예기를 발산하는 무인들을 대동하고 기세등등한 걸음으로 현청으로 향한다면 무인이 관을 침법하기 위해 움직였다는 식으로 자칫 의도치 않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가 있는 것이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가기도 하지만 그 말이 달려가는 도중에 여기저기 군살이 보태져 종내는 실제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와전될 가능성이 크기에 그걸 염두에 둔 행동이었다. 아울러 자신의 공연한 행동으로 인해 황궁에 있는 황제에게 근심을 안겨줄까 싶은 설지의 세심한 처사이기도 했다.

"언니, 언니! 여기야?"

설지와 도란도란 말을 나누며 걷던 사도연이 설지의 손을 잡아 당기며 물었다. 사도연의 눈 앞에 장창을 비켜 든 위병 두 사람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다가가는 일행들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여기가 현청이야"
"멈추시오. 여기는 현청이요. 무슨 용무로 오신게요"
"물렀거라. 봉황패주시다"

제지하는 위병을 잠시 힐끗 본 두자성이 초혜의 눈짓에 따라 앞으로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위병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반문했다.

"봉황패주?"
"어허! 이 놈이!"
"됐어요. 뒤로 물러나세요"

두자성의 목소리가 커질려고 하는 순간 설지가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물론 그런 설지의 손에는 봉황옥패가 서늘한 기운을 풍기며 들려 있었다.

"본녀가 바로 봉황옥패의 패주예요. 현령을 만나러 왔으니 기별을 넣어주세요"
"예? 봉확옥패라니..."
"이, 이 사람아, 봉황옥패 모르는가? 고,공주마마의 신분을 알리는 패가 아닌가"
"헉!, 죄,죄송합니다. 소인이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뒤늦게 봉황옥패가 뭔지 깨달은 위병이 먼저 오체투지로 황족을 대하는 예를 올렸으며 뒤이어 또 다른 위병 하나도 오체투지의 자세로 극진한 예을 올렸다. 한편 위병들의 그 같은 모습을 지켜보는 사도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위병들이 마치 호아 앞의 고양이 처럼 오금을 펴지 못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일어들 나세요."
"예. 마마,"
"한 분은 들어가서 현령께 기별을 넣어주세요.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은 저와 같이 온 분들과 함께 현청의 출입을 지금 이 시각 부터 완전히 통제해주세요. 그 누구도 제 허락없이 들어오거나 나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아시겠죠?"
"예. 마마 잘 알겠사옵니다"

설지의 명을 받고 황급히 안으로 사라지는 위병을 따르는 일행들의 뒤로 매화검수 두 명이 남아 위병과 함께 정문을 지키기 시작했다. 굳이 날카로운 예기를 숨기지 않는 두 사람의 매화검수로 인해 지금 부터 현청으로 접근하려는 자들은 스스로 그 발걸음을 돌리게 될 것이었다.

한편 막 현청의 정문을 지나쳐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설지의 앞으로 검은 물체 두 개가 거의 동시에 떨어저 내려 일행들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두개의 검은 물체 중 하나는 다름아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전서구를 제압하기 위해 먼저 현청으로 날아왔던 비아였는데 뜻밖에도 그런 비아의 뒤로 황금색의 깃털을 가진 매 한마리가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따르고 있었다.

"응? 비아? 우와? 설지 언니, 이  새는 뭐야?"
"호! 이 녀석 깃털이 죄다 황금색이네. 그런데 정말 뭐야?"

탐스러운 황금빛 깃털을 가진 매를 보며 사도연이 먼저 감탄성을 터트렸고 곧바로 초혜 마저 신기하다는 표정과 함께 감탄성을 토해냈다. 그러자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심통이 난 듯 비아가 고개를 돌리더니 한쪽 날개를 들어 올려 황금색 매의 뒷통수를 냅다 후려갈겨 버렸다.

"끽!"
"어멋!. 비아!"
"비아, 왜 그래?"

다시 한번 두 사람이 놀라는 음성을 토해내자 이어지는 비아의 날개 세례를 온몸으로 견뎌야만 하는 황금색 매는 죽을 맛이었다. 자신이 누구인가? 천마신교 내에서 특급전서를 보낼 때만 동원되는 귀하신 몸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자신을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도 모를 평범하게 생긴 매 한마리가 그야말로 매타작을 하고 있으니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공연히 두 사람에게 짜증이 나는 황금색 매였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구원해준 것은 무척 친숙한 복장의 무인 한 사람이었다.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는 비아의 날개 세례에 기를 펴지 못하는 자신의 눈 앞으로 어디에서 튀어 나왔는지 모르지만 전신을 온통 검은색 일색으로 감싼 무인 하나가 자신이 누구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신녀! 그 놈은 우리 신교에 세 마리 뿐인 천산신응 중 한 놈입니다."
"천산신응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강철 처럼 단단한 몸을 가졌으며 사람의 말을 알아 듣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에 천리를 왕복해도... 하! 그냥 신교의 전서응입니다"

비록 쫓겨 나왔지만 천마신교의 교도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흑룡대원은 오랜만에 보는 신응이 반가워서 장황한 설명을 해나가다 문득 그 곁에 있는 비아를 보고는 이내 말을 얼버부리며 말을 끊어버렸다. 천산신응이 아무리 영특하다고 해도 비아와 비교하면 그저 그런 조금 뛰어난 매에 불과했기 떄문이다.

그랬다. 천신신응을 가리켜 천마신교 내에서는 영물이라고 까지 이야기하는 자들이 많지만 막상 비아와 비교해 볼 때 영물이라는 이름이 아까운 평범한 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호호, 신응이 부족한게 아니고 비아 녀석이 워낙 별종이예요. 그러니 실망하지 마세요."
"알겠소이다. 초소저, 그럼!"
"호호호"

나타났을 때 처럼 다시 스르르 사라지는 흑룡대원을 보며 초혜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흑룡대원의 태도와 신응이라는 이름을 얻은 매라고 할지라도 비아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맞물리면서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한편 초헤가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 하는 그 순간 사도연은 비아의 날개 공격에 괴로워 하는 신응에게 다가가 비아의 날개를 제지해 주면서 근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비아! 이제 그만 해. 얘, 어디 다쳤어?"

사도연이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비아를 말려주자 이제 까지 말리는 시누이에 불과했던 사도연이 무척 고마웠던 신응은 쪼그려 앉은 사도연의 품으로 안겨들며 부리를 비벼대기 시작했다. 마치 나 좀 도와줘라는 듯이...

"응? 헤헤, 이제 보니 너 무척 귀엽게 생겼다. 넌 이름이 뭐야?"

말을 알아듣는다고 했지만 말을 할리가 없는 신응에게서는 삑하는 작은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응? 삑? 설지 언니 얘가 뭐라고 하는거야?"
"호호. 글쎄, 이 언니도 그건 모르겠구나. 잠시만 비켜 보겠니. 아무래도 그 녀석 발에 묶인게 전서 같은데 살펴봐야겠구나'
"이거?"
"그럐"

신응의 발에 묶인 작은 가죽 주머니를 열어보는 설지의 옆에 있던 사도연이 그 안에 든 전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디보자. 응? 이건..."
"왜 그래? 설지 언니? 뭔데 그래?"
"전서가 맞긴한데 그게..."
"왜 그래. 어디 봐, 응? 이게 뭐야?"

설지와 초혜가 번갈아가며 난처해 할 때 잠시 전 사라졌던 흑룡대원이 기척도 없이 다시 나타나 전서를 힐끗 본 후 입을 열었다.

"그건 밀어외다."
"밀어라고요?""
"그렇소이다. 신녀! 천마신교에서 사용하는 밀어로 작성된 것이외다"

"응? 신교의 밀어라고?"
"설지 언니,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러게, 비아, 신응이 분명 여기 현청에서 나온거 맞니?"
"삐익"

천산 신응을 신기해 하며 좋아하는 사도연의 모습에 그때 까지도 한 쪽 구석에서 툴툴거리고 있던 비아가 당연하다는 듯 고성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이게 어떻게 된거야? 현청에서 신응을 날려 보낸게 누구지? 현령인가?"
"내가 물어볼게"

그 때 사도연이 나서서 신응의 머리를 쓸어주며 입을 열었다.

"얘. 누가 네게 전서 심부름을 시킨거니? 현령 아저씨야?"

하지만 사도연의 질문에도 천산신응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영물이라고 까지 불리우는 천산신응이었기에 아무리 비아의 힘에 굴복했다고는 하지만 쉽사리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토설(?)할 리는 만무했던 것이다.

"소용없을거외다. 제대로 훈련 받은 녀석이라 전서를 전달하는 것 외에는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을거요"
"그래요? 그렇다면 할수 없죠. 그런데 그 밀어의 내용은 해독이 가능한가요?"
"음... 시간이 좀 걸리겠지먼 해독 체계가 바뀌지 않았다면 충분히 해독이 가능할 거외다."
"그럼. 해독 부탁해요"
"알겠소이다"

나타날 때 처럼 다시 스르르 사라지는 흑룡대원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 보고 있던 사도연이 그가 모습을 완전히 감추자 다시 입을 열었다.

"설지 언니! 이 녀석은 이제 어떡할거야? 그냥 날려 보내?"
"응? 아! 그 녀석은 교주 할아버지께 데려가자꾸나. 그 분이 주인이니까 말야"
"혹시 내가 키우겠다고 하면 나 주실까?"

"호호, 신응이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응! 응! 그러니까 교주 할아버지께 언니가 잘 말씀드려 줘'
"호호호. 그래. 그렇게 하자꾸나. 하지만 신응을 내어 주시지 않을지도 모르니 그렇다고 실망하면 안돼, 알았지?"

"응! 헤헤"
"자! 들어가 보자꾸나. 비아는 그 녀석 데리고 오너라"
"삐익"

한 차례 날카로운 고성으로 대답한 비아가 꼬리 쪽에 신응을 따르게 하고 날아 올랐다. 인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두 마리의 매가 허공을 선회하는 이 곳은 정현의 현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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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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