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단칼에 신학수를 베어버린 남일령은 관병들을 불러 시체를 치우게 하고 뒷수습을 위해서 몇가지 명령을 하달하다가 황급히 달려온 위병으로 부터 봉황패주가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이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남일영은 짐짓 귀찮다는 듯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쯧! 귀찮게 빨리도 왔구만, 설나 그 계집이 무슨 낌새라도 챈 것은 아니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집무실을 나서던 남일영은 아차 싶었던지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옷 매무새를 돌아 보았다. 단정했다. 그것도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너무 단정했다. 자신은 있는지도 몰랐던 비밀 통로에서 뛰쳐 나온 사람을 살수로 오해하고 드잡이질 끝에 죽인 사람의 행색으로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관복 여기저기를 손으로 꾹꾹 쥐어 주름을 가게 하고 옷매무새도 조금 흐트러지게 한 후 집무실을 나서던 남일영은 문득 신발을 내려다 보다 탐탁치않다는 듯 다시 한번 가볍게 혀를 찼다. 자신의 가죽신 역시 피 한방울 묻어 있지 않은 깨끗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국 집무실 바닥에 남아 있는 핏자국을 신발 바닥으로 쓱쓱 문질러 피를 묻힌 후 양쪽 가죽신의 윗부분에 조금씩 칠한 후에야 만족스럽다는 듯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인 남일영이 집무실을 나섰다.

"봉황패주가 오셨다고 했느냐?"
"예. 그렇사옵니다."
"허면 뭣하는게야? 속히 앞장 서지 않고, 마마를 기다리시게 할 참이냐?"

집무실을 나설 때 까지만 하더라도 느긋한 표정이던 남일영이 순식간에 다급한 표정으로 돌변하여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위병에게 호통을 쳤다. 자신이 정확히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현령의 불호령에 찔끔한 위병이 황급히 돌아서서 마치 달려가기라도 하듯이 재빠른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위병의 뒷 모습을 비릿한 미소와 함께 바라보던 남일영도 이내 위병의 뒤를 따라서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종종걸음은 그리 오래 지속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현령의 집무실이 있는 내당으로 들어서는 설지 일행의 모습이 두 사람의 시야에 가득 들어 왔기 때문이다.

"천세, 천세, 천천세! 소신, 정현 현령 남일영이 삼가 봉황패주를 뵙습니다"

설지 일행을 발견한 남일영이 짐짓 다급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황급히 오체투지를 해보였다.

"일어서세요"
"예. 마마, 송구하옵니다"
"그래, 현령이시라고요?"
"그렇사옵니다. 헌데 현청에는 무슨 일이시온지요?"

"듣자하니 백성들에게서 현령의 칭찬이 자자하더군요. 내 그래서 겸사겸사 들려 보았습니다"
"송구하옵니다. 그저 소신은 주어진 책무에 한치의 소홀함도 없었을 뿐이거늘, 이 모두가 황제 폐하의 성은이 아닌가 사료되옵니다"
"그러시군요. 이제 보니 남현령은 청렴하신데다가 겸손하기 까지 하시고 위정자로써의 덕목이 제대로 갖춰진 분이시군요."
"황공하옵니다."

겉으로는 군신간의 평범한 대화 처럼 보이지만 지금 이 순간 설지와 남일영은 서로를 탐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꼬투리를 잡히려 하지 않는 남일영과 뭔가 하나라도 꼬투리를 잡아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려는 설지의 기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한편 뭔가 상당히 묵직한 분위기로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며 별로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던 사도연이 설지의 소매자락을 잡아 당기며 입을 열었다.

"언니, 설지 언니!"  
"응? 왜 그러니?"
"현청 구경해도 돼?"

"현청 구경? 그러고 싶니?"
"응! 나, 구경할거야"
"그럼, 그렇게 하려무나. 보자 누가 안내를 좀 해야겠는데..."

"마마, 그분 소공녀께옵서는 뉘신지요?"
"아! 연아 인사드리거라, 현령님이셔, 이 녀석은 저의 제자 입니다"
"안녕하세요"
"허허, 반갑소이다. 성수신녀의 제자시라면 차기 성수신녀의 자리를 예약해놓으신 분이구려. 그래 현청을 구경하고 싶으시다고?"

"예! 안되나요?"
"허허, 안될게 무어 있겠소, 여봐라, 게 누구... 아! 자네가 모시고 가서 현청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드리게"
"예? 예! 아,알겠사옵니다"

미처 자리를 피하지 못하고 그때 까지 한쪽 옆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위병은 자신이 지목받자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가시방석 같은 이 자리를 언제 빠져나가나 하는 궁리로 이제나 저제나 하고 있었던 위병이었기에 지목당한 놀라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어허, 뭘 그리 놀라는게야"
"아,아니옵니다. 소공녀님, 저를 따라오시지요'
"잠시만요. 연아, 호아랑 함께 가거라."

"응! 알았어, 설아도 함께 데려가면 안돼?"
"설아도?"

"응!"

"그렇게 하려무나"
"헤헤, 신난다. 설아! 뭐해? 자는거야?"
"캬오"


설지가 메고 있던 잡낭 속을 들여다 보며 사도연이 설아를 부르자 곧바로 낮은 기성이 응답 처럼 들려 왔다. 그리고 이내 사람들의 눈에 작고 하얀 용을 닮을 설아가 잡낭 속에서 빠져 나와 사도연의 팔목을 타고 어때 위에 올라가 앉는 모습이 비쳐 들었다. 그렇게 사도연의 어깨에 자리를 잡은 설아는 어서 가자는 듯 양쪽 앞발을 번갈아 가며 구르기 시작했다.

"헤헷! 설아 녀석도 신나는가 봐"
"호호, 그렇구나. 가서 구경하고 오너라. 아! 아무거나 함부로 만지면 안되는 것 알지?"
"예~ 다녀오겠습니다. 아저씨 가요"

어깨 위에 설아를 올려 놓고 위병을 재촉하여 호아와 함께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청진 도사는 문득 어린 시절의 설지를 보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들었다.

"무량수불, 허허" 
"응? 보표 아저씨, 왜 그러세요?"
"허허, 아니외다. 연아 저 녀석이 저렇게 달려가는걸 보니 문득 신녀의 어릴 때가 생각나서 그렇소이다"
"응? 연아 저 녀석이 저를 닮았어요?"
"무량수불, 그렇소이다, 판박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외다"

청진 도사의 말을 들은 다른 무당파의 도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미소을 입가에 매달았다. 자신들도 어린 시절의 설지를 지켜 보았기에 지금의 사도연이 얼마 만큼 설지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 그래요? 난 몰랐네"
"청진 도사님, 정말이십니까요? 작은 아가씨의 모습이 아가씨 어린 시절과 그렇게 많이 닮았습니까요?"
"무량수불, 그렇소이다. 허허허"

용아를 어깨 위에 올려 두고 백아, 호아와 함께 뛰어다니던 설지의 어린 시절 모습은 분명 현재의 사도연과 많이 닮은 모습이었다. 일행들은 그 때를 생각하며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 다시 들려온 목소리에 그만 환상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남일영이 안으로 들기를 청했던 것이다.

"마마, 여기서 이러지 마시옵고 안으로 드시지요"
"그렇게 하죠. 물어볼 것도 있고 하니 그렇게 하는게 좋을 것 같네요"
"예, 그럼 이쪽으로 오시옵소서, 원래는 소신의 집무실로 모셔야 하나 잠시 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많이 어지럽사옵니다. 하여 빈청으로 모시겠사옵니다"

"불미스러운 일이라고요?"
"예. 마마, 갑자기 왠 놈이 제 집무실로 뛰어 드는 바람에 살수인 것으로 오인하고 드잡이질을 하다가 인명을 상해하는 일이 벌어져 많이 어지럽혀졌사옵니다"

"인명을 상해했다? 누가 죽었다는 말씀이세요?"
"송구하오나 그렇사옵니다. 마침 마마께서 방문하신 날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져 송구스럽기 그지 없사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이야기 해보세요"
"예. 마마, 우선 자리에 앉으시지요"

몇마디 나누는 사이에 빈청에 도착한 일행들이 설지를 필두로 모두 자리에 앉자 남일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입을 연 남일영의 설명이 모두 끝나자 설지와 일행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남일영은 업무를 보다가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차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자신의 집무실 벽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누군가가 황급히 벽을 뚫고 뛰쳐 나와 자신에게 다가왔다고 했다.

이에 놀란 남일영은 그 인영이 살수인 것으로 착각하고 드잡이질을 하다 어렵게 검으로 베고 제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압하고 나서 보니 그 인영은 뜻밖에도 살수가 아니라 신기의원의 의원인 신학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신학수 임을 확인했을 때에는 이미 절명한 상태였다는 말로 설명이 마무리 되었던 것이다.

"허면 신의원이 무슨 일로 비밀통로로 온 것인지는 모르시겠군요?"
"그렇사옵니다. 소신은 비밀통로... 예? 비밀통로라니요?"
"모르셨어요? 신의원은 신기의원에서 현청 까지 연결된 비밀통로를 이용해서 현령의 집무실로 뛰어든거예요"

"그,그럴리가...죽여주시옵소서 마마, 소신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옵니다. 단지 벽속에 숨어 있다가 뛰어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사옵니다."
"의원을 살수로 오인하고 죽였는데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송구하오나 마마, 그 일은 마마 께옵서 당도하시기 바로 직전에 벌어진 일이라 소신이 미처 자세한 조사를 하지 못했사옵니다. 하온데 마마 께옵서는 그 일로 현청을 왕림하신 것이온지요?"

"아! 그건... 신의원이 나라에서 금지한 약재를 사용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해서 몇마디 물어볼깨 했는데 신의원을 데리러 갔던 사람들이 신기의원에 도착했을 때는 신의원이 이미 비밀통로로 빠져나간 이후더군요. 그래서 혹시 현령 께서 뭔가 아는게 있나 싶어서 물어 보려고 왔습니다."
"그러셨군요. 허나 소신은 그에 관해서 아는게 전혀 없사옵니다. 신의원과도 일면식만 있을 뿐 평소 왕래하지 않는 사이이옵니다"
"그래요?"

남일영의 설명은 어떻게 들으면 허술한 것 같지만 막상 내용을 들여다 보면 옷 매무새도 그렇고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귀가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허니 듣고 있던 설지와 일행들은 한숨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증좌도 없고 중요한 증인 마저 사라져버렸으니 여죄를 캐는 일에 있어서 봉착에 부딪힌 것이다. 허나 그 실마리는 뜻밖의 곳에서 풀리려 하고 있었다. 설아를 어깨에 올리고 현청 구경을 하던 사도연이 설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걸음을 멈춘 곳에서 우연히 그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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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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