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 껍질의 파괴

넥스트 (N.EX.T) : 1992년 대한민국 서울(Seoul)에서 결성

신해철 (보컬, 키보드) : 1968년 5월 6일 대한민국 서울 출생, 2014년 10월 27일 사망
임창수 (기타) :
이동규 (전자 드럼, 베이스) :
이수용 (드럼) : 1969년 1월 15일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 출생

갈래 : 프로그레시브 메탈(Progressive Metal), 헤비메탈(Heavy Metal),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관련 웹 사이트 : http://www.cromfan.com/
관련 에스앤에스(SNS) : http://twitter.com/cromshin
노래 감상하기 : http://youtu.be/0mkLlu58VPU / http://youtu.be/2lXhyj3QycI (실황)

1995년 1월 3일, <들국화>, <시나위>, <양병집>, <김민기>등의 음악에 심취해 있던 나는 또 다른 그들의 음반을 구하기 위해 매장으로 향하다가 입구의 창 너머에 걸린 무척 예쁜 표지의 엘피(LP) 음반 하나를 발견했다. 예쁘고 귀엽게 생긴 여우와 토끼가 등장하고 다람쥐와 달팽이 까지 등장하는 그 음반을 발견한 순간 자연스럽게 그 음반의 정체에 대해 점원에게 물었고 결국 그 음반은 그날 내 손에 쥐어졌다. 그런데 표지를 보는 순간 외국 가수나 밴드의 음반이겠거니 했던 나의 짐작은 뜻밖에도 음반을 받아 들고나서야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 음반은 우리나라 록 밴드의 데뷔 음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해 중반 경에 난 그 밴드의 실제 공연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음반을 통해서 너무도 익숙했던 그들의 공연 장면은 내게는 참으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제복을 갖춰 입고 등장한 그 밴드의 리드 보컬이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 헤드뱅잉(Headbanging)을 선보였던 것이다. 텔레비전에 출연한 우리나라 록 밴드가 헤드뱅잉을 연출하는 것은 단연코 쉽게 볼 수 없던 장면이었기에 그 모습은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같은 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는 그 밴드의 두 번째 음반과 세 번째 음반이 결국 내 손에 들려져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난 그 밴드의 어정쩡한 팬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케이블 텔레비전 서비스가 정식으로 시작된 것은 1995년 3월 1일이었다. 당시 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개국한 한 방송사는 음악 전문 채널을 표방하며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와 공연 영상을 틀어주고 있었는데 1997년 경에 그 채널을 통해서 난 내가 좋아하는 그 밴드의 공연 장면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음반과 세 번째 음반을 통해서 그 밴드의 음악에 만족해 하던 내게 약 두시간 정도 방송 되었던 그 공연 영상은 방송 내내 눈을 뗄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가슴이 예쁜 세 명의 백보컬이 간간히 화면에 잡혔던 탓도 있다는 것은 부인할 생각이 전혀 없다. 하여튼 그날 이후 그 밴드의 리드 보컬은 또 다른 공간에서 다시 한번 나와 만나게 된다. 가정용 컴퓨터의 보급이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고 인터넷 문화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들던 이천년대 초반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터넷 용어가 거침없이 방송 전파를 타고 있었다.

지금에야 그 의미를 다들 충분히 짐작하고 있지만 당시 그 방송을 진행하던 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초딩>, <중딩>, <고딩>, <대딩>, <직딩>이라는 용어는 컴퓨터 통신에 익숙하지 읺은 사람들에게는 거의 외계어와 다를바 없는 말이기도 했다. 혹시나 해서 부언하자면 초딩이라는 말은 초고속 인터넷이 도입되기 이전에 전화 모뎀을 사용해서 컴퓨터 통신을 하던 이들이 통신비를 줄이기 위해서 초등학생이라는 단어를 짧게 줄여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일반화된 것이었다.

전화 모뎀의 사용 시간에 비례해서 요금이 부과되었기에 통신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짧게 줄인 말이 언제 부터인가 컴퓨터 통신 동호회원들간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후일 일반화가 되었다. 바로 이런 환경에서 초딩, 중딩, 그리고 직장인을 줄인 직딩 등의 용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는 표준어가 아닌 인터넷 용어를 공중파 라디오에서 진행자가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는 것은 거의 금기 사항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 행위였다.

그런데 그 방송을 진행하고 있던 밴드의 리드 보컬은 마치 애청자와 공치기 놀이를  하듯이 거리낌없이 인터넷 용어를 사용하며 거부감을 줄여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마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신해철>이었다. <서태지>와 함께 1990년대를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수가 바로 <신해철>이고 보면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Ghoststation, 약칭 고스)>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이끌고 가던 그에게 팬들이 붙여준 마왕이라는 별명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시절의 친구들이었던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 학생들과 연합하여 <무한궤도>를 결성하고 <그대에게>라는 노래로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신해철은 무한궤도의 해체 이후 솔로 활동을 하다가 1992년에 <New EXperiment Team>이라는 뜻의 <넥스트>를 결성하고 같은 해에 <Home>이라는 제목의 음반을 데뷔 음반으로 발표하였다. 앞서 이야기한 여우와 토끼가 등장하는 예쁜 표지를 가진 음반이 바로 이 음반이다.

그리고 2년 후인 1994년에 넥스트는 두 번째 음반인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을 발표하게 된다. 그런데 이 음반은 이전 까지 우리나라 가수들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획기적인 시도를 선보여 한국 가요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음반이기도 하다. 헤비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을 접목한 이른바 프로그레시브 메탈을 들려 주고 있기 때문인데 외국의 밴드들에게서는 자주 목격되고 있었지만 국내 밴드로써는 처음 시도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음반이기에 과거 <동서남북>이 명곡 <나비>의 확장판에서 들려 주었던 진일보한 록 음악과 비견될만한 음악 작업이 넥스트의 두 번째 음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분명 록 음반이었지만 부드러운 감성으로 일관했던 데뷔 음반을 생각하면 넥스트의 변화 아닌 진보는 가히 눈부시다는 표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특히 수록 곡 가운데 1970년대의 <킹 크림슨(King Crimson)>을 듣는 것 같은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와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 껍질의 파괴>는 음반을 대표하는 성격의 곡들로 전자가 서정적이고 웅장한 면을 강조하고 있다면 후자는 화려하고 압도적인 질주감으로 무장한 곡으로 우리 가요사에 보기 드문 명곡이라 할 수 있다.

마왕은 떠났다. 아마도 차원을 거슬러 다른 세상에서 우리를 살펴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떠난 빈자리를 우린 그가 남긴 음악으로 채워야만 한다. 그 헛헛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생전에 그가 보인 행보와 그의 음악을 추억하며 우린 또 다른 마왕의 출현을 간절히 기다려야만 할 것 같다. 우리 시대의 영원한 마왕 신해철! 그래서 그가 벌써 그립다. (평점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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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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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aramjby 2015.10.08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